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39화 (139/225)

< 139. …우승? >

모두가 초조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재혁을 바라봤었다.

그만큼 그가 받았을 충격이 가볍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충격을 털고 일어난 듯, 재혁이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해보이자 사람들은 이번엔 박수를 쳐주었다.

어린 선수를 위한 응원의 의미가 담긴 박수였다.

그 후 재혁이 프리킥을 차기 위해 도움닫기를 시작하면서 디딤발을 놓았을 땐, 다들 침을 삼켰다.

어렴풋한 기대와 걱정.

그 두 가지가 동시에 깃든 얼굴로 말이다.

하지만 그 표정들은 동시에 하나가 되었다.

바로 재혁이 공을 차는 순간, 그리고 재혁의 발끝을 떠난 공이 종착점을 찾는 바로 그 순간.

철썩!

“미···, 미쳤다!”

“드, 들어갔어! 골이다아! 골이야!”

“대박! 저게 저렇게 들어간다고? 세상에···. 내가 대체 지금 뭘 본 거야?”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믿기 힘든 기적을 경험한 순례자들처럼 눈을 크게 뜨고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설마 웸블리에서, 그것도 결승전이라는 무대 위에서, 19살짜리 어린 선수가 첼시를 상대로 판세를 뒤집는 프리킥으로 득점에 성공할 것이라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아직까지도 굳어 있는 다리를 멍하니 내려보던 첼시의 쿠르투아 골키퍼.

그는 방금 재혁이 찬 프리킥의 궤도를 머릿속으로 다시 떠올려보면서 입술을 떨다가 골대 안에 떨어져 있는 공을 천천히 주워들며 중얼거렸다.

“우···, 움직일 수 없었어···.”

그가 흘린 혼잣말처럼, 방금 재혁이 찬 프리킥은 도저히 반응할 수 있는 종류의 프리킥이 아니었다.

빠르고 강하게 회전하던 공은 방향을 깎고 들어오는 궤적도 날카로웠지만, 회전 속도가 어마무시했고, 동시에 대각선 방향으로 걸린 탑스핀으로 인한 낙차 또한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기에 쿠르투아 골키퍼는 그 속도에 반응하고 몸을 날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제자리에 서서 기도를 할 뿐이었다.

제발 슈팅이 벗어나게 해달라고, 혹은 골대를 맞게 해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은 쿠르투아가 아닌 재혁의 손을 들어주었고, 모든 상황이 뒤집혔다.

캐스터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변화한 상황을 설명했다.

“맨체스터 시티! 추가 점 득점에 성공하면서 차이를 벌리는데 성공합니다! 지금 터진 이 한 점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한 점이 되겠지요?”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경기는 앞으로 20분 가량 남았고, 동점을 위해 따라가야 하는 첼시는 한 명이 퇴장된 상황이에요. 게다가 빠진 선수가 캉테라면 그 한 명은 단순히 한 명의 공백이 아닐 겁니다. 첼시에겐 뼈아픈 한 방이군요.”

“이쯤되면 승기가 거의 맨체스터 시티 쪽으로 기울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직 모릅니다. 첼시에겐 20분 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한 점을 지켜야 하는 맨체스터 시티에겐 20분 씩이나 남은 상황이니 말예요. 축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거니까요.”

“말씀하시던 중 첼시의 선수들이 얼른 공을 센터 서클로 가져와 경기를 재개하는 군요! 비록 한 명이 부족하지만, 경기를 포기한 얼굴이 아닙니다.”

“오늘을 위해 이만한 스쿼드를 준비해서 경기장에 올라온 첼시입니다. 왕관이 아니면 다른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게 분명하죠. 아마 남은 시간동안 경기 내용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 예상이 됩니다. 부디 다치는 선수가 나오진 않았으면 하는 군요.”

다시 시작된 경기를 지켜보며 남긴 해설자의 말처럼, 재개된 시합의 분위기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비록 10명이 남았지만 완벽한 1군 선수들로 진영을 꾸린 첼시는 쉴 새 없이 맨체스터 시티를 몰아치며 동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그런 첼시의 공세를 육탄방어까지 동원해가며 막아내고 있었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는 뜨거워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누구보다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선수는 다른 누가 아닌 재혁이었다.

도움과 득점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공격적인 재능을 모두의 뇌리에 각인시킨 재혁은 특훈을 통해 단련한 수비 기술도 그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모두에게 확실히 알린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중요한 순간 때마다 빛을 발하는 그의 태클 실력이었다.

윌리안에서 모라타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패스를 슬라이딩 태클로 끊어내는데 성공하면서 공격권을 빼앗 것에 성공한 재혁을 보면서 해설자는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쓸어내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정말 무어라 더 설명할 말이 없는 활약입니다. 오늘 경기를 누군가에게 설명한다면 단 한 가지만 잊지 않고 이야기하면 될 정도예요. 최재혁. 저 친구가 웸블리에 있었고, 또 뛰었다는 사실. 그 한 가지만 말입니다.”

“말씀하시던 순간, 공격권을 빼앗아온 최재혁 선수가 중거리 패스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브라함 선수의 발을 정확히 노리고 날아간 패스군요! 아,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엔 케이힐 선수의 커팅이 더 빨랐습니다. 실점을 당한 이후 케이힐 선수의 파이팅이 눈부시군요.”

“그렇게 공격권은 다시 첼시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0분!”

“10분만 더 힘내···!”

해설자가 전광판을 읽고 남은 시간을 말했을 때, 응원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케이트도 양손을 꼭 쥔 채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까지 녹지 않을 정도로 추웠고, 덕분에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그녀의 눈앞을 가릴 정도였지만, 케이트는 떨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 힘이 들어갔다.

함께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재혁이 원하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에 관한 축하 인사를 건네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재혁을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10분이야. 10분만 더 버텨!’

꼬옥 쥔 손을 한 곳에 모아 경기를 지켜보는 케이트.

그렇게 그녀를 포함한 경기장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가까워질수록 더 큰 목소리로 응원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고, 관중들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은 남은 체력을 모두 쏟아내면서 어떻게든 결과를 내기 위해 필드 위를 뛰어다녔다.

그렇게 5분···, 3분···, 그리고 1분 이후 정규 시간이 모두 끝나면서 추가 시간이 찾아왔다.

“어떻게든 뚫어!”

“페드로, 받아!”

“막아야 돼! 브라함, 너도 내려와서 같이 막아!”

“알고 있어! 이미 내려가고 있다고!”

첼시 선수들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에 뒤섞인 재혁의 목소리를 들은 브라함이 목에 핏대가 바짝 선 얼굴로 대답한 후 달렸다.

주어진 추가 시간은 앞으로 3분.

이 3분만 버텨내면 마침내 길었던 결승전이 끝이 나는 것이다.

긴장되면서 즐거웠던, 그리고 또 동시에 힘겨웠던 결승전이 말이다.

하지만 또한 3분이라는 시간이 너무도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브라함은 신음일지, 기합일지 모를 소리를 토해내며 계속해서 달렸고, 그건 다른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자리에 올라와 있는 11명의 어린 선수들에게 있어서 지금 그들이 경험하는 리그 컵 결승전이라는 무대는 생전 처음 겪는 압박의 무대였으니까.

허나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몸에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태워 사용했고···.

삑, 삑, 삐이익!

“끄···, 끝났다, 끝났어! 우리가 이겼어!”

“진짜야? 진짜 우리가 이긴 거 맞아?”

“당연하지! 저 숫자가 거짓말이겠냐? 우리가 여기서 이긴 거야!”

“우와아, 이겼다!”

마침내 울린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 소리를 듣는 순간 서로를 찾으면서 소리치다가 하나둘 자리에 주저 앉았다.

오늘 경기에 대해 모두가 의심했지만 서로를 믿었던 선수들은 자신들이 거둔 승리라는 결과 만큼은 바로 믿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물었던 것이고, 심판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그 결과를 확인시켜주자 그제야 긴장을 풀고 쓰러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필드 위에 쓰러져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을 향해 첼시의 선수들이 하나둘 다가가 축하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비록 90분간 혈투를 벌였던 경쟁 상대였지만, 경기가 끝난 이상 같은 선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동료였고, 또 아직은 경험이 미천한 어린 후배들이었으니.

결과로는 졌지만 프로라는 세계의 선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다들 쓰러져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의 손을 한 명씩 잡아주며 진심을 담아 그들을 축하해준 것이다.

그렇게 선수들을 하나둘 일으켜주던 첼시의 선수들은 센터 서클 근처에 누워있는 선수를 향해 다가가며 쓰게 웃었다.

바닥에 누워 숨을 거칠게 토해내고 있는 88번, 최재혁.

비록 저 꼬마 때문에 졌지만···.

‘질만한 경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재혁의 실력은 단순히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깎아 내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 중에서도 재혁의 패스 때문에 수차례 곤혹을 치렀던 케이힐이 모두를 대표해 재혁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고생했다, 꼬마. 너희가 이겼어.”

“···.”

“정말이지···. 처음엔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우리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바로 알 수 있겠더군. 오히려 오늘 너희에게 여러 가지로 많은 걸 배운 거 같다. 그러니까···.”

재혁을 향해 말을 이어가던 케이힐의 눈썹이 기묘하게 모였다.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자신이 어떤 말을 건네도, 손을 뻗어도, 재혁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미동하지 않고 있던 것이다.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엄습하자 케이힐은 황급히 몸을 숙였고, 재혁의 상태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자 등골이 오싹하게 식었다.

그런 케이힐을 곁에서 지켜보던 브라함과 로스가 재혁에게 다가와 그의 몸을 손대려고 하자 케이힐은 그들의 손길을 막아내면서 소리쳤다.

“만지지 마! 지금 재혁의 몸에 충격을 주면 안 돼!”

“네···? 왜···, 왜요?”

갑작스런 케이힐의 목소리에 놀라 둘이 되물었고, 케이힐은 다급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더 큰 목소리로 둘에게 말했다.

“상태가 이상해! 당장 팀닥터를 불러와! 그리고 의료팀도!”

“재···, 재혁이가 이상해요?”

“왜요? 왜 그러는 건데요?”

“그걸 알기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 얼른 팀닥터를 불러오라고! 오래 끌면 안 좋아!”

“네···, 네! 알겠어요!”

“최대한 빨리!”

케이힐의 말에 둘은 숨을 헐떡이며 전력을 다해 달려 벤치로 향했고, 케이힐의 말을 과르디올라 감독과 팀닥터에게 전달했다.

승리라는 결과에 취해 있던 두 사람은 재빨리 정신을 차렸고, 얼른 다리를 움직여 재혁이 쓰러져 있는 장소로 향했다.

둘은 케이힐과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었고, 팀닥터는 의료팀과 함께 재혁의 몸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각종 기구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경기장 밖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그쯤이었다.

시상식을 진행해려면 슬슬 경기장을 치워야 하거늘, 잔디 위에 쓰러져 있는 재혁을 중심으로 스태프들이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없던 것이다.

“뭐···, 뭐야? 저기 왜 저래?”

“몰라. 그런데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가 바닥에 누워있는데?”

“선수가 쓰러져 있다고? 누가?”

“으음···, 저게 누구지···. 아! 그 친구네! 맨체스터 시티에서 제일 어렸던 선수! 88번, 최재혁 선수!”

“···?!”

관중들의 말소리를 주워듣고 있던 케이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떤 식으로 축하 인사를 건네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중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케이트는 황급히 필드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로 뛰어갔고, 들것에 실려 나가는 재혁과 그의 주변을 둘러 싼 사람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데 의식이 없어요! 바로 구급차를 태워서 병원으로 이송해야겠습니다!”

“재혁아, 최재혁! 내 말 제대로 듣고 있어? 정신 차려!”

“산소 호흡기 제대로 붙여놔요! 그리고 흔들리지 않게 좀 더 조심해요! 이제 계단 내려갑니다!”

“가···, 감독님···. 재, 재혁이 어떻게 해요?”

“괜찮을 거다.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남아서 시상식을 준비해.”

“하···, 하지만···.”

“내가 병원으로 갈테니까 너희들은 일단 남아. 그럼 아르테타 코치, 뒤를 부탁하네.”

***

피곤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이대로 가만히 누워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직 추가 시간이 3분이 남았으니까.

“일어나야 돼···.”

“아니. 그냥 누워서 쉬어도 돼.”

“···예?”

재혁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는데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를 내려보며 웃고 있었다.

재혁은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과르디올라 감독의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가벼운 뇌진탕이라군. 내참, 그런 상태로 마지막까지 뛰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가, 재혁?”

< 139. …우승?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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