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38화 (138/225)
  • < 138. 도박수 >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첼시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한 남성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 자신이 기분 나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

    맨체스터 시티의 2군···, 아니다. 2군도 아니었다.

    ‘갓 20살 넘짓한 선수들을 상대로···, 우리가 압도되고 있다고?’

    U-21 선수들이 주축으로 구성된 오늘의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그가 응원하는 첼시는 후반전이 시작되기 무섭게 상대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더니 그 이후부터는 쭉 주도권을 빼앗긴 채로 계속 그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고 있던 것이다.

    남성은 이 믿기 힘든 광경이 준 충격에 그저 입을 벌리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가 또 한 번 찾아온 위기 상황에 신음을 흘렸는데···, 다행히도 이번엔 상대의 슈팅이 골대를 벗어난 것을 확인하면서 간신히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을 뿐.

    경기가 재개되자 또 다시 밀리고 있는 팀을 지켜보면서 남성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대체 전반전의 그 기세는 다 어디로 가버린 거야!”

    “88번이야.”

    “뭐?”

    “88번이라고. 그 기세를 다 날려버리게 한 사람이···.”

    남성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의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고, 남성은 친구의 말에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재차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친구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지금 지고 있는 게 저 꼬마 한 명 때문이라고?”

    “정확히 말하면 ‘한 명’ 때문은 아니지. 하지만 저 한 명 때문에 나머지 10명이 성가시게 된 건 사실이니···. 그렇게 말하면 또 네 말도 틀린 게 아니겠구나.”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거야?”

    “아마 이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닐 걸?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해설자들도, 감독들도, 그리고 분석원들도.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저 88번이 부리고 있는 마법에 홀린 것처럼 말이지.”

    “···.”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야. 저 88번 때문에 지금 첼시는 완전히 길을 잃은 거라고. 아마···, 당분간은 계속 방황하겠지.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말야.”

    친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남성은 넋을 잃었다.

    다른 누군가의 말이었다면 바보 취급을 하고 비웃었겠지만···, 3부 리그에서 프로를 목표로 축구를 하고 있는 실업 선수들을 지도하는 코치라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친구의 분석을 비웃을 정도로 남성은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멍하니 친구를 바라보고 있던 남성은 또 한 번 울리는 함성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틀었고, 이번에도 맨체스터 시티, 그 중에서도 친구가 말했던 88번, 재혁의 패스가 날카롭게 패널티 박스 안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남성도 남들처럼 비명을 질렀다.

    원투 패스 이후 굴러오는 리턴 패스를 멈추지 않고 찍어 차 보낸 로빙 패스는 척 보기에도 첼시에게 있어서 제법 많이 위험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득점 이후 기세가 올랐는지 케이힐을 상대로 자신이 있게 돌파를 시도하는 브라함까지 공세에 가세를 하고 있었으니···.

    “망할, 누가 저 꼬마놈 좀 막아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너만 있는 게 아닌 것 같군.”

    “뭐?”

    “저길 봐.”

    친구가 쭉 뻗은 검지로 한 곳을 가리키며 남성에게 나즈막이 말했다.

    “암살자들 등장이야.”

    ***

    “후반 13분! 콘테 감독, 여기서 교체 카드를 사용하는군요. 드링크워터와 아자르를 교체해주고, 파브레가스 대신에 캉테를 투입합니다!”

    “이건 승부수네요.”

    콘테 감독의 교체로 바뀌고 있는 선수들에 대해 캐스터가 언급했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해설자가 간단하게 축약했다.

    승부수.

    해설자는 한 단어로 현재 벌어진 모든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했다.

    전반전을 압도하던 첼시가 후반전부터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맨체스터 시티의 중원을 차지하고 있는 재혁의 존재감 때문이었으니, 콘테 감독은 방위를 가리지 않고 활동적으로 필드를 누비는 드링크워터와 캉테를 동시에 투입해 그 존재감을 묶으면서 분위기에 반전을 유도한 것이었다.

    선택적인 문제로 본다면 분명 적절한 판단이었으나···.

    “오늘 경기까지 뛰게 되면서 캉테 선수와 드링크워터 선수는 복귀 이후 지금까지 첼시가 소화한 스케쥴들 중 90% 이상을 뛰게 됐어요. 오늘만큼은 조금이라도 쉬게 해주는 게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앞으로 이어질 경기 일정을 담보로 시도하는 승부수이면서 동시에 도박수인 거죠.”

    해설자의 이어진 말처럼, 이 판단으로 인해 첼시는 많은 부분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감당하게 된 것이다.

    다만 그것은 현 경기를 관중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내린 판단이었고.

    첼시의 수장인 콘테 감독은 필드 위에 새로이 투입된 두 선수를 지켜보며 침을 삼켰다.

    ‘오늘 경기는 단순히 한 경기만의 의미를 지닌 게 아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결과’를 가져다 줄 한 경기다. 아니, 그런 경기여야 했는데···. 그걸···, 저 대머리가 다 망쳐버렸어.’

    으득.

    지난 시즌엔 리그 우승과 FA컵 준우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이번 시즌엔 가장 우선 순위로 두었던 리그 우승이 거의 물건너간 상황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늘 경기의 상대인 맨체스터 시티 때문에 말이다.

    그런 상황 중 리그 컵 결승이란 무대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만나게 된 것을 그 누구보다 기뻐하던게 자신이지 않던가.

    그런데 거기에 과르디올라 감독이 내보인 선발 패가 U-21라니.

    으드득, 다시 한 번 이를 간 콘테 감독은 애써 분을 삭히기 위해 숨을 고른 후 입꼬리를 살며시 말았다.

    ‘자네의 선택이 그렇다니, 그렇다면 나도 내 선택을 확실히 보여줘야겠지. 그 누구보다 바로 내가 오늘 거머쥘 왕관에 욕심이 크다는···, 바로 그 선택을 말야.’

    오늘 경기의 승자는 자신이 될 것이다.

    그런 확신에 찬 미소를 보이면서 콘테 감독이 바쁘게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벤치에 앉아 콘테 감독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마침내 독을 풀었군.’

    콘테 감독의 판단에 자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잡을 구석이 없는, 정석적인 판단이었다.

    아마 자신이라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리라.

    재혁이 자유롭게 활개를 치게 되면서 모든 상황이 뒤집어진 것이었으니.

    그 기세를 잠재우려면 당연히 그 뿌리를 잘라야 하는 게 옳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재혁이를 모르니까 내릴 수 있는 판단인 거지.’

    씨익, 과르디올라 감독 또한 콘테 감독이 그런 것처럼 살며시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리고 기대에 찬 시선으로 필드를 바라보았다.

    마법사가 부리는 마법이 현대 상식으로 이해가 되는 종류의 것이던가?

    아니다.

    상식으로 이해가 된다면 그건 마법이 아니었으니까.

    과르디올라 감독이 앉은 자세를 고치면서 반대 편 벤치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는 콘테 감독을 향해 속삭였다.

    “특등석에 앉은 만큼, 벨트라도 차는게 좋을 거야, 콘테 감독.”

    왜냐면 앞으로 진짜 재밌는 게 곧 시작될 거니까.

    바로 오늘 경기를 결정지어줄 마술사, 재혁의 마술쇼가 말이다.

    ***

    쿠웅, 쿵!

    선수 교체 이후 재개된 경기에서 재혁의 몸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전방으로 나가면 드링크워터가, 후방으로 빠지면 캉테가 사정없이 어깨 싸움을 걸어온 탓이었다.

    파울은 아니겠지만, 분명 몸이 받고 있는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고, 현재 재혁과 어깨를 맞부딪치며 공을 다투고 있는 캉테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왜···.

    ‘쓰러지지 않는 거야?!’

    파앙!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공을 지켜내는데 성공한 재혁은 동료를 찾아 패스를 뿌렸고, 재혁의 발끝을 떠나는 공을 멍하니 바라보던 캉테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눈썹을 찡그렸다.

    처음 콘테 감독이 재혁을 ‘부수라’고 말했을 때, 캉테는 그게 과하다고 생각했었다.

    전반기 리그 경기에서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비록 놈에게 당하긴 했지만, 못 막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재혁을 다시 경험해보니 캉테는 콘테 감독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재혁은 라인을 부수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끊임없이 길을 파내는 불도저 같은 놈이 되어버린 것이다.

    ‘···리그에 온 지 반 년이 좀 넘었을 녀석인데. 그 사이에 이렇게 또 성장하다니. 정말 믿기 힘든 성장속도다.’

    캉테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돌렸고, 맨체스터 시티의 진영을 돌고 있는 공을 살펴보며 눈을 빛냈다.

    확실히 무섭게 컸지만, 다른 의미로 이제 겨우 반 년을 넘게 성장했을 뿐인 어린 선수라는 의미이기도 했으니.

    캉테는 굳은 얼굴로 재혁을 노려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패스. 놈이 뿌리는 패스만큼은 확실히 죽이면 돼. 아마 녀석의 발을 죽이라는 감독님의 말씀은 바로 그런 의미였겠지.’

    후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시금 심호흡과 함께 정리한 캉테가 천천히 멈췄던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른 곳은 안 가세요?”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데 어딜 가겠어?”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로 묻는 재혁에게 간단히 대꾸하며 이번에도 재혁의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물론 아직 재혁의 발에 공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기다리면 이 꼬마에게 공이 올 게 분명했으니, 굳이 다른 곳으로 갈 이유가 없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캉테의 예상은 머지 않아 적중했다.

    사라락!

    후방에서 에드워드와 올리버 사이를 돌던 공이 다시금 재혁의 발을 향해 구르기 시작한 것이다.

    공이 재혁이 있는 곳으로 굴러오는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캉테는 멈췄던 몸싸움을 다시 걸었고, 재혁도 그런 캉테를 상대로 단단하게 버텨내면서 받은 공을 전방으로 이어준 후 달리기 시작했다.

    다만, 결국 이번에도 재혁의 패스를 끊어내지 못하자 캉테의 표정이 한 차례 굳었으나, 그는 곧 안색을 회복한 후 재혁의 뒤를 쫓아 달렸다.

    ‘한 번에 죽이지 못 한다면 두 번, 그리고 세 번을 시도하면 될 일이야!’

    재혁을 막으면 반드시 이 경기는 승리한다.

    그 믿음에 대한 보상을 위해 캉테는 무리해서라도 재혁의 뒤를 쫓다가···.

    ‘왔다···!’

    마침내 눈에 들어온 기회를 포착한 뒤 눈빛을 밝혔다.

    패스 앤 무브 이후 포덴에게서 돌아올 리턴 패스를 받기 위해 중앙으로 파고드는 재혁의 움직임이 멈춰서게 될 장소를 정확하게 읽은 것이다.

    때마침 재혁의 앞엔 후방 커버를 위해 투입된 드링크워터가 적절하게 나타난 상황.

    이번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캉테가 다리에 속도를 붙였고, 이어지는 장면을 지켜보던 중계진들의 말소리가 다급하게 빨라졌다.

    “포덴의 패스를 받아내면서 중앙으로 침투하는 최재혁 선수! 빠릅니다! 첼시의 입장에선 자꾸 이런 식으로 침투를 허용하면 굉장히 껄끄럽죠?”

    “하지만 앞에 드링크워터 선수가 버티고 있어요! 돌파가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최재혁 선수, 멈추지 않고 계속 공을 몰고 달립니다! 드링크워터 선수는 신중하게 거리를 재면서 타이밍을 엿보고 있는데···. 아앗! 이때 캉테 선수가 나타났습니다! 최재혁 선수, 두 명의 압박을 버텨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재혁을 막아서기 위해 두 명의 선수가 동시에 등장한 상황.

    이런 상황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말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다른 누구도 아닌, 첼시에서 수비력과 활동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두 선수의 압박을 재혁이 뚫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진짜로 놀라게 한 것은 그 뒤에 이어졌다.

    자리에서 한 바퀴를 빙글 도는 아주 기본적인 턴.

    그저 공을 발 안쪽으로 끌어 당겨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아주 기본적인 턴을 재혁은 시도했고, 그 턴이 끝나는 순간···.

    “도···, 돌파했습니다! 최재혁 선수, 두 선수의 압박에서 가뿐한 턴 한 번으로 완벽하게 벗어나는데 성공했습니다!”

    “첼시, 이건 정말로 위험합니다! 미드필더의 커버가 없는 쓰리백은 상대 공격에 가장 취약할 순간이거든요!”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예상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캐스터가 가장 먼저 놀라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설마하니 저 상황에서 드링크워터와 캉테의 수비를 동시에 뚫어내고 공간을 찾아 이동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설자 또한 믿기 힘든 장면을 봤다며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마이크를 손에 쥐고 소리쳤다.

    뚫기 가장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던 벽을 넘었고, 이제 맨체스터 시티의 앞에는 첼시의 마지막 수비벽들만이 남은 상황이었으니, 자연히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반응은 곧 관중들에게도 전달됐다.

    첼시의 팬들은 절망을,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은 기대를 품은 얼굴로 각자의 팀을 응원하기 위해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고, 그런 양팀 팬들의 얼굴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온 것은···.

    촤라락···, 뻐악!

    삐이이익!

    이질적인 소리가 축구장에 울렸을 때였다.

    재혁이 완벽하게 뚫었다고 생각한 순간, 캉테의 슬라이딩 태클이 깊숙하게 날아와 재혁의 왼쪽 다리를 걸었고, 그 탓에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재혁은 그대로 넘어지더니 잔디 위를 거칠게 구른 것이다.

    해당 장면을 눈으로 확인하기 무섭게 심판은 휘슬을 불었고, 캉테를 포함한 선수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재혁!”

    “아, 아니···. 저는 어디까지나 공을 보고···.”

    “이건 누가 봐도 확실한 상황이네. 캉테 선수, 퇴장이야.”

    “···.”

    “아, 결국 심판이 레드 카드를 꺼냈군요.”

    “당연한 선택이죠. 오히려 레드 카드가 나오지 않았다면 같은 장면을 본 게 맞는지 의심했을 겁니다.”

    충격을 받았을 재혁을 향해 황급히 달려가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 캉테가 퇴장당한 탓에 난감해진 첼시의 선수들, 그리고 그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중계진들까지.

    모두의 표정이 밝지 못 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벤치 밖으로 뛰쳐나와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잔디 위에 쓰러져 있는 재혁을 바라보며 하나같이 마음을 졸이고 있는 것이 그가 당한 파울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를 바로 알려주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몇몇 선수들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캉테에게 달려들려고까지 하면서 경기장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으려고 할 때.

    “후우. 난 괜찮아. 그러니까 그만해···.”

    “재, 재혁아!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너 머리부터 떨어진 다음에 엄청 심하게 굴렀다고!”

    “으윽. 로스, 오히려 네 목소리 때문에 더 어지러운 거 같아. 그러니까 좀 떨어져서 말해.”

    “미, 미안.”

    잔디 위에 쓰러져 있던 재혁이 몸을 일으키면서 손을 흔들자 격양되던 분위기가 황급히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캉테를 향해 달려가려던 로스는 그대로 방향을 틀어 재혁에게 다가와 그를 부축했고, 심판도 재혁의 곁으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괜찮나?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다면 잠깐 필드 밖으로 빠져나가 의료팀을 만나고 오는게 좋아.”

    “네. 괜찮아요. 충분히 뛸 수 있어요. 무엇보다 다리가 멀쩡하면 괜찮은 거 아니겠어요?”

    “흐음···.”

    “전 정말 괜찮다니까요. 이거 보세요. 멀쩡해요, 멀쩡해.”

    심판의 계속되는 추궁에 재혁은 캉테에게 맞은 왼쪽 다리로 서보이더니 제자리에서 뜀뛰기까지 선보이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고, 한동안 재혁의 왼 다리를 지켜보던 심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프리킥을 선언하기 위해 휘슬을 불었다.

    그렇게 주변이 일단 정리가 되었고, 재혁은 파울을 당한 위치에서 공을 발밑에 둔 채로 골대를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천천히 호흡을 마시고 뱉어내길 반복했다.

    ‘다시 없을 기회다.’

    후반전이 절반 정도 진행 됐고, 점수는 아직까지 균형을 이루고 있는 1대1.

    이런 상황에 찾아온 좋은 위치에서의 프리킥은 분명 두 번 오지 않을 기회의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제부터 첼시는 1명이 퇴장을 당한 상황이라 수비에 보다 많은 인원을 투입하게 될 게 분명했으니.

    이 기회를 잘 살려야만 한다.

    그런 생각을 쭉 이어가던 재혁은 옆에서 들린 네메챠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재혁. 정말 괜찮겠어?”

    “너까지 내 걱정이야? 난 정말 괜찮다니까.”

    “하지만···.”

    “잘 봐 둬.”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네메챠를 향해 재혁은 생긋 한 차례 웃어보이면서 말했다.

    “지금 걱정해야 할 대상이 잘못 되었다는 걸 바로 보여줄테니까.”

    말을 끝낸 후 천천히 뒷걸음질을 시작한 재혁.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모이는 시선들을 의식하면서 길게 숨을 토해낸 후···.

    뻐엉!

    도움 닫기 이후 왼 디딤발을 정확하게 공 옆에 내려놓으면서 그대로 오른 발을 휘둘러 공을 감아 찼다.

    < 138. 도박수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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