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36화 (136/225)
  • < 136. 마법의 시작 >

    1대0.

    전반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선취점을 얻어낸 후에도 첼시는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압도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맨체스터 시티의 골문을 노렸고, 한 차례 흔들리긴 했지만 다시 안정을 되찾은 맨체스터 시티는 재혁을 중심으로 어떻게든 첼시의 공세를 틀어 막으면서 추가적인 실점은 기록하지 않았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런 ‘당연한’ 결과 속에서도 겨우 1점 밖에 실점하지 않은 맨체스터 시티의 집중력을 칭찬하면서도, 아무리 10백이라지만 유스 선수들을 중심으로 짜인 맨시티의 수비를 뚫어내지 못하고 있는 첼시의 공격진들을 향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게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머물고 있는 라커룸의 분위기는 당연함과 평범함과는 거리가 제법 있어 보였다.

    “마지막까지 무실점으로 지킬 수 있었는데!”

    맨시티의 센터백인 올리버가 아쉬운 듯, 큰 목소리로 유니폼을 갈아 입으면서 말했고, 그런 올리버의 말에 다른 선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골도 노릴만 했던 거 아닌가? 몇 번은 분명 기회가 있었어.”

    “그러니까 말야. 막바지에 브라함한테 찔러준 패스는 되게 좋았는데, 아쉽네.”

    “놓쳐서 미안하게 됐다.”

    “흐흐, 삐졌어? 삐지라고 한 말이 아닌데. 기분 풀어.”

    자신의 말에 브라함이 음료수를 내려놓으면서 투덜거리자 제이콥이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고, 그런 선수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재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이 분위기.

    지고 있지만 지고 있지 않는 것 같은 이 분위기를 지켜보고 있자니 자연히 미소가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라커룸을 살펴보고 있던 것은 재혁만이 아니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라커룸으로 들어온 과르디올라 감독도 헛웃음을 흘리더니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이게 지금 지고 있는 팀 분위기냐? 뭐가 이리 화기애애해?”

    “그야 감독님께서 우리보고 잘했다면서요!”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드필더인 라비가 소리쳤고, 그런 라비의 말을 들은 과르디올라 감독은 잠시간 뺨을 긁적이더니 그들을 따라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하긴 했지. 45분동안 정말 고생했다. 계획대로 잘 따라줬어.”

    “헤헤. 그렇죠?”

    “그럼 이제 남은 45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우리의 목적이 1대0으로 경기를 끝내는게 아니니까 말이지.”

    “예!”

    전술판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난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렇게 자석들을 하나씩 꺼내 손에 쥐면서 후반전을 위한 전술 지시를 준비했고, 선수들은 마치 강아지들이 모여 앉은 것처럼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감독의 말을 기다렸다.

    재혁도 음료수를 손에 쥐고 천천히 자리를 옮기다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선수를 발견하고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네메챠, 왜 그러고 있어?”

    “아. 재혁.”

    재혁의 부름에 간신히 고개를 든 네메챠.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웃지 못하고 있던 네메챠는 재혁의 목소리를 듣자 더욱 더 짙어진 그림자를 얼굴에 깔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전반전에 골을 먹은 게 나 때문이잖아. 내가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끝날 때까지 0점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못 참아서···.”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

    “어떻게 안 하냐? 나 하나 때문에 모두의 노력이 무너진 건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

    “뭐···?”

    되묻는 재혁을 향해 고개를 기울인 네메챠.

    그런 네메챠를 향해 재혁은 담담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혼자만의 실수 때문에 우리가 실점했다고? 그건 너무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거지. 그 말을 조금 바꿔서 이야기하자면 네메챠, 네가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우리가 지고 있다는 이야긴데···, 그러면 나를 포함한 나머지 10명의 노력은 아무 것도 아닌 거잖아?”

    “···!”

    “네가 정말 팀을 걱정하고 있다면 너 때문에 실점했다고 자책하고 있을 게 아니라, 그 영향력을 바꿔서 네 덕에 팀을 이기게 하겠다는 욕심을 불태우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게 바로 될 만큼 쉽진 않겠지만···, 정말 오늘 이기고 싶다면 가능한 최선을 다해야 겠지?”

    말을 끝낸 재혁은 손에 쥐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던 음료수 병을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네메챠의 안색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선수들에게 항상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실수가 경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 때문에 위축되는 일 정도는 앞으로도 평생 다른 선수들과의 경쟁이라는 사회 속에서 싸워야 할 프로 선수라면 모두가 매번 느끼게 될 감정이었다.

    하물며 어린 선수라면 그 감정의 기복은 더욱 심할 것이리라.

    하지만 모두가 느낄 감정이라고 해도 받아 들이는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었고, 재혁은 네메챠에게 그 변화의 기틀을 마련해준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장 후반전부터 달라진 네메챠가 필요했으니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건 그와 함께 승리를 위해 뛰어줄 다른 10명이었지, 자신감을 잃은 선수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네메챠의 답을 기다리고 있던 사이, 재혁은 또 다른 인물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가장 앞에서 자석을 손에 쥐고 서있던 과르디올라 감독이었다.

    그 또한 네메챠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재혁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네메챠를 살피면서 재혁에게 눈빛으로 묻고 있던 것이다.

    이대로 후반전을 진행해도 괜찮겠냐고.

    그런 감독의 물음에 재혁은 일단 기다렸다.

    아직 본인에게 확실한 답을 듣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짧은 침묵이 이어졌고, 마침내 입술을 뗀 네메챠는 재혁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지? 겨우 내 실수 하나 때문에 경기에서 지고 있다니. 이건 말도 안 되지. 하지만 이건 확실히 해주겠어. 지는 건 모르겠지만, 이기는 건 확실히 나 때문에 이기게 해주겠다고.”

    “후후, 그래. 어디 한 번 어떻게 되나 보자.”

    “물론이야. 후우, 이제 좀 숨이 트이니까 목이 마르네. 그거 내가 마셔도 돼?”

    “어. 가져가.”

    그동안 속에 쌓아 놓고 있던 긴장이 풀리자 갈증을 느꼈는지 재혁에게 받은 음료수를 꿀꺽, 꿀꺽 삼키기 시작한 네메챠를 가만히 지켜보던 재혁은 고개를 돌려 과르디올라 감독을 찾았고···.

    ‘괜찮겠네요.’

    ‘다행이군.

    미소가 깃든 얼굴로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주면서 네메챠의 상태를 그에게 전달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제야 안도한 듯,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자세를 고치면서 자신에게 집중된 선수들의 눈동자들을 똑바로 마주보며 크게 외쳤다.

    “자, 그럼 지금부터 후반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후반전은 전반전과 다르게 가나요?”

    “다르게 가냐고? 그걸 질문이라고 묻는 거냐, 라비?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라.”

    앞으로 남은 것은 마지막 45분인 후반전.

    라비의 질문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간단한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45분 안에 모든 걸 바꿔놓을 거다. 웃는 사람도, 우는 사람도, 그리고 왕좌에 앉게 될 사람도 말이지.”

    ***

    “우승까지 앞으로 45분이다! 오늘 결승을 시작으로 우리의 페이스를 되찾는 거다! 다들 마지막까지 정신 똑바로 차려!”

    “예!”

    “그럼 다시 나간다! 준비는 다 됐겠지?”

    마지막으로 선수들에게 물은 콘테 감독이 먼저 자리를 떠났고, 그 뒤를 쫓아 선수들도 하나둘 이동을 시작하며 필드로 다시 올라왔다.

    이제 전반전이 끝난 상태였기에 아직까지 특별한 교체는 없는 상황인지라 필드에 올라온 11명의 선수들에 변화는 없었다.

    아자르는 다시 올라온 필드 위에서 피부와 머리를 식혀주는 찬공기를 조심스레 마시고 뱉어내길 반복하다가 반대편에 자리하기 시작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을 살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 선수, 재혁을 말이다.

    아자르는 머릿속으로 재혁이 그에게 건넸던 말들을 떠올리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다시 재밌어 질거라고? 무슨 건방진 소리를 하는 거냐, 꼬마.’

    모든 게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상황이거늘.

    거기서 주제를 모르고 떠들다니.

    찡그린 얼굴로 재혁을 노려보던 아자르는 이내 표정을 풀더니 피식 실소를 흘렸다.

    ‘케빈, 실바, 그 외에 다른 선수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자신의 위치를 착각하고 있나 보군.’

    만약 지금 그가 상대가는 맨체스터 시티가 리그 베스트들로 구성된 맨시티였다면 재혁의 말에 충분히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이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설명할 때 쓰이는 단어.

    지금 그의 주변에 있는 건 케빈과 실바가 아닌 아직 어린 햇병아리들 뿐이었으니.

    아자르는 식어있는 근육에 긴장을 주기 위해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정도 열이 올라오자 다시 재혁을 두 눈에 담으면서 미소를 떠올렸다.

    과연 저 건방진 태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보겠다는, 그런 미소를 말이다.

    그렇게 빤히 재혁을 바라보던 아자르는···.

    ‘여기서 웃어?’

    재혁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면서 보여준 미소를 확인하곤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저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나온 감정 변화였다.

    아자르는 당황스러웠지만 재혁이 떠올린 미소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센터 서클에 올라온 주심이 휘슬을 불면서 후반전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후반전은 맨시티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기에 첼시의 선수들은 공이 이동함과 동시에 멈췄던 발에 힘을 주며 이동하는 공을 쫓아 내달리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섞인 아자르도 전력을 다해 다리를 움직였다.

    그가 노린 선수는 단 한 명이었다.

    지금 중원에 머물고 있는 최재혁.

    대단할 게 없는 선수 사이에서 그나마 자기 역할을 하는 재혁에게 공이 몰릴 게 분명했으니, 그를 전방에서부터 집중 마크하겠다는 생각으로 재혁에게 바짝 다가간 것이다.

    그렇게 재혁과 나란히 줄을 맞춘 아자르는 이동하는 공을 쫓아 이리저리 몸을 옮기는 재혁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재밌는 걸 보여줄 생각이지?”

    “잊지 않고 계셨네요?”

    “지루한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즐겁게 뛸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을 내가 어떻게 잊겠어? 잔뜩 기대 중이니까 얼른 한 번 보여봐.”

    재혁과 어깨와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바짝 따라붙은 아자르.

    그런 아자르의 말과 행동에 재혁은 씨익, 또 한 번 환한 미소로 크게 웃어 보였고···.

    파팍!

    공을 받기 위해 다리에 속도를 붙여 이동하기 시작했다.

    재혁이 속도를 내자 그를 쫓는 입장인 아자르도 덩달아 속도가 올라갔고, 재혁의 뒤를 바짝 쫓으면서 아자르는 계속해서 재혁이 공을 받는 것을 방해하며 괴롭혔다.

    어디 이런 견제 속에서도 그 건방짐을 유지할 수 있는지, 한 번 보여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아자르의 행동에도 재혁은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짙게 웃어 보이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그게 공을 달라는 신호인 것은 어느 누구라도 예상 가능했으리라.

    아자르가 어깨에 힘을 준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절대 네 마음대로 공을 잡을 순 없을 거다!’

    쿠웅, 쿵!

    쉬지 않고 재혁과 어깨를 부딪치는 아자르, 그리고 그런 아자르의 견제를 버텨내며 공을 힘겹게 받아낸 재혁은···.

    토옹!

    공을 오래 끌지 못하고 다시 주변에 위치해 있는 동료를 향해 패스를 밀어주어야 했다.

    아자르의 입가에 잊고 있던 미소가 다시 떠오른 것은 그 이후였다.

    ‘말만 번지르르 했지, 결국 너도 어쩔 수 없구나!’

    단순히 공을 오래 점유한다고 해서 공격이 시작되는 게 아니다.

    상대의 골문을 노리기 위해선 점유 중인 공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어야 하고, 상대의 압박을 뚫거나 버텨낼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자르가 보기에 지금 재혁이 보여준 패스들은 그저 압박에서 도망치기 위해 급급한 패스들일뿐이었던 것이다.

    이런 적이 상대라면 얼마든지 점유율을 내줄 수 있다.

    어차피 공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뒤에서 도망치는 것 뿐이었으니까.

    높은 점유율로 인한 위협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테니, 굳이 공을 뺏지 못하는데 있어서 압박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해서 재혁을 괴롭히던 아자르는···.

    “···?”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눈썹을 모았다.

    지금 막 또 한 번 재혁이 압박 때문에 공을 뒤로 돌리는 상황이 나왔으니, 분명 자신의 압박 플레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데···.

    그런데···.

    ‘왜 지금 내가 센터 서클 안에 위치해 있는 거지?’

    언제부터인지, 센터 서클 밖에서 재혁을 견제하고 있던 자신이 재혁을 쫓아 이동하다보니 센터 서클 안에 자리를 잡고 서있게 된 것이다.

    위치가 바뀌는 것에 대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던 아자르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아자르를 등뒤에 두고 있던 재혁은···.

    “오래 기다리셨죠?”

    짧은 한 마디를 조그맣게 중얼 거렸다.

    다른 이들은 듣지 못 할 정도로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말이다.

    저 목소리가 무슨 의미였는지, 아자르는 머릿속으로 이해하기도 전에 또 한 번 흘러나온 재혁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여야 했다.

    “그럼 최선을 다해볼테니 한 번 즐겨보세요. 그리고 꼭 알려주세요. 오늘 경기가 얼마나 재밌었는지를 말예요.”

    투웅!

    말을 끝냄과 동시에 뿌린 재혁의 패스.

    그 패스가 가는 방향을 살핀 아자르는 처음엔 어이없다는 얼굴로 공의 궤적을 쭉 읽다가···, 이내 두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분명 아무도 없어야 할 곳이었는데.

    ‘언제 저 녀석이 저기까지 간거야?!’

    갑자기 마술처럼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가 등장해 재혁의 패스를 이어받은 탓이었다.

    재혁의 패스를 보고 놀란 것은 아자르뿐만이 아니었다.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전술 지시를 내리던 첼시의 콘테 감독.

    그도 패스가 이어진 것을 발견하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기우뚱 기울이며 생각했다.

    ‘저 자리에···, 원래 우리 마크가 없었던가?’

    < 136. 마법의 시작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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