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27화 (127/225)
  • < 127. 달성하기 위한 목적 >

    “응? 형민. 거기서 뭘하고 있어?”

    토트넘 구단을 나타내는 싸움닭 문양을 가슴에 단 코치가 복도를 따라 걷다가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형민을 발견한 뒤 고개를 갸웃이며 물었고, 허리를 숙이고 앉아 휴대폰을 내려보고 있던 형민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며 답했다.

    “그냥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확인하고 싶은 거?”

    평소 쾌활한 언행으로 주변을 밝게 빛내주는 형민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다는 것에 코치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표하며 되물었다.

    앞으로 2시간 정도가 흐르면 경기가 시작될 시간인데,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니?

    코치는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형민의 곁에 앉다가 형민이 휴대폰으로 보고 있던 화면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차 물었다.

    “확인하고 싶다는 게···, 맨시티의 경기였어?”

    “뭐, 그렇죠.”

    코치의 말에 쓴웃음을 흘리던 형민과 그런 형민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이는 코치.

    코치는 머릿속으로 18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시티와 펼쳤던 지난 경기를 떠올리며 마른 입술을 핥았다.

    ‘정말 아쉽게 졌었지.’

    리그 15연승이라는 기록을 갱신했던 맨체스터 시티는 그 날 토트넘을 제물로 삼아 16연승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상대 팀의 기록 달성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당시 경기 내용이 그 어떤 때보다 아쉬웠기에, 그리고 그 아쉬움이 대상이 바로 신형민을 향하고 있었기에 코치는 현재 형민이 어떤 심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지를 알아차리고 콧등을 쓸어내리며 형민에게 말을 붙였다.

    “아직도 마지막 찬스를 놓친 걸 기억하고 있는 거야?”

    “후우···. 그걸 어떻게 잊어요?”

    후반 43분. 점수는 2대1.

    겨우 한 점 차이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나온 맨체스터 시티의 실수.

    중원에서 측면으로 벌려주던 패스의 속도가 크게 죽으면서 알리의 발끝에 공이 걸렸고, 알리는 그 공을 몰고 이동하다가 중앙으로 침투하는 케인의 발 앞으로 연결해 주었다.

    하지만 상대 수비 때문에 공은 케인에게 연결되지 못하고 허공으로 튀어 올랐고, 마침 공이 떨어지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던 형민이 그대로 발리 슈팅을 시도했는데···.

    코치는 마지막 장면을 기억해내곤 형민의 어깨를 토닥였다.

    “정말 아쉬웠던 슈팅이었어. 하필 그 슛이 골대를 맞고 나올 줄이야.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그거야 그냥 운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 다음 장면이죠.”

    냉정하게 위로의 말을 자른 형민은 시선을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 화면에 둔 채로 계속 말했다.

    “골대를 맞고 나온 공을 재혁이가 잡으면서 그대로 바로 역습으로 방향을 전환. 길게 뻗어 나간 공은 곧장 아구에로에게 향했고, 그 패스는 득점으로 연결. 결국 그 날 3대1로 졌잖아요. 2대2로 끝낼 수 있었던 경기를 2점차 패배로 만든 거에요. 어쩌면 무승부도 가능했던 경기였는데···,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죠.”

    “···.”

    “운이라고 치부하기엔 맨시티는 자신들에게 온 기회를 너무 잘 살렸어요. 결과론적이겠지만, 그런 디테일한 부분을 살릴 줄 알아야 진짜 실력이 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전···.”

    “으음, 혹시 그거 때문에 심적으로 힘들다면 감독님께 미리 말을 해. 지금이라면 아마 늦지 않고 명단을···.”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지난 경기 결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던 게 아니었어?”

    “전혀 아닌데요.”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이던 둘.

    그 중에서 먼저 정신을 차린 형민이 코치를 향해 한 차례 웃어보인 후 손을 저으며 답했다.

    “오히려 그 반대에요. 그 날 경기를 졌기 때문에 오늘을 기다리고 있던 거라고요.”

    “오늘을 기다리고···, 있어?”

    “네. 그리고 이제 원하던 것도 확인 했으니. 슬슬 저도 몸을 움직여야겠네요. 그럼 먼저 가볼게요.”

    “어, 형민! 말은 끝까지 해주고 가야지!”

    마지막 말을 끝으로 당황해하는 코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형민.

    연신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코치를 향해 시선 한 번 줄법도 하건만, 형민은 오히려 발에 속도를 붙이면서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후 복도를 따라 계속 걸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론 지난 날 경기가 끝난 후, 재혁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자신이 경기에 출장한다면 절대로 지지 않겠다, 라니. 어린 게 건방지게 말야. 하지만··· 그 말을 전부 지키고 있어. 그것도 다른 게 아닌, 자기 실력으로 증명해서 말이지. 정말 괴물같은 녀석이야.’

    안 그래도 무섭게 성장 중인 놈인데, 무언가를 계기로 그 기세가 더욱 물이 올랐다.

    대체 무엇이 녀석을 저렇게 만든 것인지, 고개를 저으며 상념에 빠졌던 형민은 이내 정신을 차리면서 숨을 토해냈다.

    재혁이 녀석이 출장하는 경기에서 지지 않겠다고 했겠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든 경기를 출장할 때마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해주마.”

    짝!

    기합을 넣기 위함이었는지 손을 모아 자기 뺨을 때린 형민은 필드 위로 향하자 몸을 풀고 있던 다른 선수들을 찾을 수 있었고, 곧 그들 사이에 스며들어 경기를 준비했다.

    그렇게 동료들과 함께 근육을 풀던 중, 형민의 뺨이 붉은 것을 발견한 알리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신! 뺨이 왜 그래? 큭큭, 어디서 맞았어?”

    “어, 맞았지.”

    “뭐? 진짜로 맞았다고? 누구한테?”

    장난으로 물은 것에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형민을 앞에 두고 알리가 놀라 되묻자, 형민이 이내 표정을 풀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과거의 나한테. 각오를 제대로 다지라는 의미로 한 대 맞았지.”

    “뭐야? 그게?”

    재미없는 장난이라는 생각에 알리가 쯧쯧 실소를 흘리며 자리를 떠난 것에 형민은 필드를 노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한 번 지켜보라고. 네가 그런 것처럼, 과연 내가 어떻게 변할지 말야.”

    와아아···!

    경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자 홈 관중들이 하나둘 입장하며 소리를 질렀고, 형민은 그런 관중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다시 몸을 데우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마침내 시침이 정각을 가리켰고, 하늘에선 눈 싸라기 알갱이들이 천천히 떨어지며 때가 왔음을 알렸다.

    프리미어 리그의 19라운드, 전반기 마지막 경기가 왔음을 말이다.

    ***

    “후와···! 나 이런 곳 처음 와봐요!”

    맨체스터 시티의 홈 구장, 에티하드 경기장의 VIP 관중석에 처음 와본 조엘은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을 흘렸고, 조엘과 함께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온 헨델도 고개를 끄덕이며 어째선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건 나도 그래. 세상에···, 여기가 정말 관중석이야? 프리미엄이라는게 괜히 비싼게 아니구나.”

    “간호사 누나! 저기 봐봐요! 과자랑 음료들도 있어요! 와! 지렁이 젤리다!”

    “어머, 조엘! 그렇게 막 움직이면 위험해!”

    잔뜩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선보이며 관중석 내부를 살피던 조엘.

    확실히 아직 애는 애였는지, 조엘은 간식이 쌓여 있는 테이블을 향해 신이 난 얼굴로 달려가다가 그만 다리를 휘청였다.

    흥분한 탓에 잠시간 잊고 있던 사실, 항암치료를 진행하면서 약해진 신체 근육이 그의 몸을 지탱해주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헨델이 서둘러 쓰러지는 조엘을 향해 서둘러 달려갔지만 둘 사이엔 거리가 제법 있는 상황.

    결국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에 도와달라고 지명을 지르려던 헨델은 어떤 남성이 손을 뻗어 조엘을 받아주는 것을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토해낸 뒤 황급히 둘의 곁으로 달려갔다.

    가장 먼저 남성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헨델은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다며 조엘을 혼냈다.

    “그렇게 막 움직이면 어떡하니! 정말 다칠뻔 했잖아! 말을 안 듣고 맘대로 움직이다가 다쳐버리면 다음부턴 외출 허락 못 받아! 그러고 싶어?”

    “죄, 죄송해요···.”

    “어휴···. 그래도 안 다쳐서 다행이긴 한데···, 아 참. 정말 감사합니다. 조엘이 몸이 약한 아이다보니 넘어지면 정말 위험했는데,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오히려 찾기 쉬워서 제 쪽에서 이 꼬마한테 고맙다고 말해야겠군요.”

    “네? 그게 무슨···?”

    “소개가 늦었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하던 중, 남성이 한 말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지 못 한 헨델이 그를 향해 되물었고, 남성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헨델과 조엘을 향해 고개를 꾸벅이며 말했다.

    “스포츠 에이전트로 일을 하고 있는 베르겐이라고 합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현재 뛰고 있는 최재혁 선수를 담당하고 있죠.”

    “베르겐 에이전트님이셨군요. 아, 그렇다면 오늘 저희를 도와주러 오신다던 분이···.”

    헨델이 티켓을 전해 받으며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자 베르겐이 그녀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접니다. 최재혁 선수가 특별히 부탁을 하더군요. 귀중한 손님들이 오실 예정이니, 불편하지 않게 도와달라고 말이죠.”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물론 제가 없어도 여러 편의 서비스들이 많아 머무시는데 불편함이 없겠지만, 그래도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쓸 수 있는 거니까요. 안내역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군요.”

    “그럼 염치없지만 부탁드릴게요.”

    재차 고맙다는 말을 정중히 전한 헨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담갖지 말라는 말로 대화를 끊은 베르겐.

    그는 조엘을 일으켜 세워주면서 그가 원하던 과자를 손에 쥐어 주었고 헨델에게는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 건네준 뒤 안내를 시작했다.

    “VIP룸이 보기에는 지정 좌석이 없는 것 같지만, 다른 관중석들과 마찬가지로 일단은 정해진 자리가 있긴 합니다. 예를 들면 저기 보이는 소파에는 이사님들이 앉는 곳이고, 그 건너편엔 팀장님들이 자리하는 곳이죠.”

    “아, 그렇군요.”

    “하지만 애초에 저 자리들은 축구 경기를 관람하기엔 그다지 좋은 위치가 아니죠. 경기 중에도 업무를 봐야 하는 분들이 주로 앉는 자립니다. 우리같이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앉을 자리는 바로···, 이곳이죠.”

    “우와! 정말 여기서 경기를 보는 거예요?”

    베르겐이 가리킨 곳을 확인한 조엘이 놀라 탄성을 흘렸고, 헨델 또한 의자 가죽을 손으로 만져보면서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이 의자 엄청 좋아 보이는데요? 정말 이런 곳에 앉아도 되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그러기 위해 설치한 의자니까요. 그리고 의자만 좋은 게 아닙니다. 그 외에도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도 많이 준비되어 있죠. 예를 들면 경기를 보며 해설을 듣고 싶은 분들을 위해 오디오 장치가 준비되어 있기도 하고, 개인용 스크린으로 따로 원하는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편의성과 안락함. 그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해주는 자리인 것이죠.”

    “간호사 누나, 얼른 앉아 봐요! 의자도 엄청 따뜻해! 대박이야!”

    “어머, 정말이네. 세상에, 이게 모두 관중석에 포함되어 있는 거라니···.”

    헨델은 마치 5성 호텔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에 계속 물건들을 사용하기 부담스러워했으나, 베르겐은 손님이 사용해주지 않으면 물건들이 설치되어 있는 이유가 없다며 편히 쓰라고 했다.

    그런 베르겐에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던 헨델은 다시 한 번 오늘 티켓을 준비해준 재혁에 대해 떠올리며 뺨을 붉혔다.

    “최재혁 선수님께 정말 고맙다고 꼭 또 한 번 말씀을 전해드려야겠네요. 그냥 티켓만 보내주셔도 정말 감사했을 텐데 이런 자리까지 준비해주다니···.”

    “글쎄요. 제 생각이 맞다면 아마 최재혁 선수는 두 분을 만나게 된다면 도리어 고맙다는 말을 할 것 같군요.”

    “저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요?”

    도움을 받은 건 본인들이거늘,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을 거라니.

    헨델이 베르겐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이자, 베르겐이 그녀를 향해 생긋 미소를 떠올리며 답해주었다.

    “두 분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최재혁 선수가 제게 한 말이 있었거든요.”

    “최재혁 선수가 한 말이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이란 많을수록, 그리고 확고할수록 좋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헨델 간호사님과 조엘, 두 분은 그런 재혁에게 하나의 목적이 되어주었으니. 선수의 입장에서 당연히 고마울 수 밖에요. 그러니까···.”

    털썩.

    베르겐도 두 사람의 옆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서 진하게 떠올린 미소로 경기장을 내려보며 말했다.

    “과연 오늘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한 번 지켜보도록 합시다.”

    < 127. 달성하기 위한 목적 > 끝

    ⓒ 권주호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