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25화 (125/225)
  • < 125. 누군가에겐 우상, 혹은 신 >

    “거짓말! 진짜에요?”

    “그럼. 물론이지. 믿기 힘들다면 조엘이 한 번 물어볼래?”

    소년에게 씨익 미소를 보이며 제안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슬쩍 재혁의 어깨에 손을 걸쳤고, 그런 둘을 어색한 얼굴로 번갈아 바라보던 조엘은 재혁의 앞에 다가와 반들거리는 녹빛 눈동자로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최재혁 선수가 맞아요?”

    “어···, 일단은 내가 맞는데···.”

    “대박!”

    재혁이 뺨을 긁적이면서 대답한 것에 조엘은 더 없이 환한 얼굴로 크게 웃어 보이더니 소리쳤다.

    마치 우상을 만난 것처럼, 혹은 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조엘과 조엘을 앞에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행동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재혁을 살피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미소를 띤 얼굴로 턱을 매만지더니 넌지시 말을 흘렸다.

    “그보다 계속 여기에 있으면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조엘?”

    “아! 맞아요! 다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감독님도 오실 거에요?”

    “물론. 오늘 그 저녁을 먹으려고 여기가지 온 거니까. 자, 그럼 갈까?”

    “네! 제가 앞장 설게요!”

    과르디올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엘이 움직였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조엘의 뒤를 쫓다가 슬쩍 재혁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웃으며 턱을 까딱였다.

    “자네도 배고프지? 같이 할텐가?”

    “여기까지 오게 하셔놓고 굶기려고 하셨어요?”

    “병원 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보니. 어디까지나 취향의 존중인 거지.”

    큭큭, 평소와 달리 가볍고 재치있는 말들로 대꾸하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향해 재혁은 그와 닮은 미소를 보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이라곤 하지만, 슬픔보다 다른 감정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인듯 했으니까.

    그렇게 조엘과 헨델 간호사의 뒤를 따라 이동한 재혁은 곧 카페테리아에 도착했고, 이미 자리에 앉아 함께 밥을 먹을 준비하고 있던 다른 아이들은 뒤늦게 도착한 조엘을 발견하고 꺄르르 웃으며 소리쳤다.

    “조엘! 늦었잖아! 벌써 우리가 다 준비했지롱!”

    “미안, 하지만 오늘 감독님이 오셨어!”

    “감독님? 진짜? 어디?”

    “와, 진짜다! 대머리 감독님이다!”

    “이녀석들아. 대머리보고 대머리라고 하면 어떡하냐? 우린 다 친구잖아. 친구를 놀리면 되겠어?”

    “하지만 감독님은 정말 대머리잖아요? 꺄르륵!”

    과르디올라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게 익숙했는지 아이들은 어느새 그에게 다가와 깔깔 웃으며 감독의 팔이며 다리에 달라 붙었고, 그런 아이들을 상대하는 과르디올라 감독도 즐거운 듯 웃는 얼굴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넋을 놓고 바라보던 재혁은 눈에 익지 않는 장면을 계속 지켜보며 쓰게 웃었다.

    평소 훈련장이라던가, 경기장에서 보여주던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을 계속 보고 있자니 쉬이 적응이 되지 않던 것이다.

    사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과르디올라의 쌍동이 형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빠져있던 중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건 것에 재혁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고, 로비에서 그와 과르디올라 감독을 맞이해주었던 헨델 간호사가 다가온 것에 다시 한 번 그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헨델은 붉은 빛이 감도는 머리칼을 가느다란 손가락들로 쓸어 뒤로 넘기면서 말했다.

    “참 신기하죠? 괴짜라고 알려지신 분이지만 아이들하곤 정말 잘 어울려주세요. 몇몇 아이들은 감독님이 언제 또 오시냐고 매번 물어볼 정도라니까요.”

    “그러게요. 저도 감독님께서 저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건 처음 보네요.”

    “호호, 역시 그런가요? 아무래도 닮아 있기 때문일 거예요.”

    “닮아 있다고요?”

    헨델의 말에 재혁이 고개를 갸웃이며 고개를 돌렸고, 간호복 깃을 고치면서 헨델이 말을 이었다.

    “감독님께서 언제고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시거든요. 아이들을 상대하며 얻는 기쁨의 과정과 경기에서 승리를 통해 얻게 되는 기쁨의 과정이 많이 닮아 있다고 말예요. 물론 저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할 순 없지만, 아마 최재혁 선수라면 다르지 않을까요?”

    “으음, 글쎄요. 저도 뭔가 확 와닿는게 없는데···.”

    “그런가요? 아쉽네요. 오늘은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날인 줄 알았는데.”

    “헨델 간호사님! 얼른 와서 앉아요! 다 식겠어요!”

    “네. 알겠어요. 그럼 우리도 갈까요?”

    재혁이 뺨을 긁적이며 대답한 것에 헨델은 말끝을 살며시 끌어올리며 물음표를 흘렸다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대답한 뒤 재혁을 향해 물었고, 재혁은 헨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와 함께 식탁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커다란 테이블에 여러 음식들과 사람들이 모여 앉은 식탁.

    재혁은 그 사이에 섞여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미 한 쪽 편에 앉아 달라붙는 아이들과 함께 그룹을 이룬 상태였고, 간호사들도 담당하는 아이들이 몇 명씩 있었는지 식사 준비를 도와주면서 그들의 곁에 앉았다.

    그렇게 식사 준비가 다 끝이 나자 단체로 짧게 기도를 드린 후 포크를 손에 쥔 사람들은 곧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했고, 재혁 또한 앞에 놓인 음식을 입에 넣어 천천히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있었기에 자연히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진 것이다.

    다만 밥이 맛있는 건 좋은 일이지만···.

    ‘단순히 밥 때문에 이곳에 왔을 리가 없을 텐데.’

    재혁의 고개가 살며시 기울었다.

    자신이 왜 축구를 해오는지, 그 근원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체 그 근원이란게 무엇인지 감이 오질 않는다며 재혁은 상념에 빠진 채로 또 한 번 포크를 뻗어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어 우물거렸고···.

    “···?”

    한 소년과 시선이 마주쳐 자신도 모르게 눈을 키웠다.

    오늘 로비에서 처음 만났던 조엘이었다.

    조엘은 건너편에 앉아 조심스레 밥을 먹으면서 연신 재혁의 눈치를 보고 있던 것이다.

    재혁은 입 안에 있던 고기를 꼭꼭 씹어 삼킨 뒤 넌지시 물었다.

    “왜 그러니?”

    “아, 아뇨. 그게···.”

    포크로 접시를 깨작이던 조엘은 재혁이 말을 걸자 부끄러웠는지 빨갛게 꽃을 피운 얼굴로 헤헤 웃으면서 대답했다.

    “진짜 최재혁 선수랑 같이 밥을 먹고 있다는 게 신기해서요.”

    “신기해?”

    “저도 축구 선수가 꿈이었거든요. 맨체스터 시티의 유스에도 포함 되어 있었어요. 물론···, 아프기 전의 이야기지만.”

    “···!”

    뜻밖의 이야기에 재혁이 크게 뜬 눈으로 조엘을 바라보았고, 그런 재혁의 시선을 느꼈는지 조엘은 더더욱 붉어진 얼굴로 민머리를 긁적이며 계속 말했다.

    “그렇지만 최재혁 선수처럼 재능이 뛰어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재미로, 제가 하고 싶어서 계속 다녔던 거니까요. 아마 13세 이상 유스팀으로 갈라지게 될 때가 오면 더 이상 팀에 남을 수 없을 거란 것도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는데···.”

    말을 이어가던 조엘의 입술이 순간 멎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었지만, 다시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흔들리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내 속에서 차오르는 슬픔을 꾹 참아낸 조엘은 재혁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치만 이젠 괜찮아요! 최재혁 선수가 있으니까!”

    “내가 있어서 괜찮다고?”

    “제 꿈이었거든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가 되어서 경기에서 이기고, 또 우승을 위해 뛰는 게 말예요. 그걸 최재혁 선수가 대신 이뤄줄 것 같으니까, 이젠 괜찮아요! 비록 제가 직접 뛰는 건 아니지만, 지켜보면서 응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세요!”

    히히, 마지막에 이를 환히 드러내며 웃어보인 조엘은 다시 포크를 움직여 멈췄던 식사를 이어갔고, 그런 조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재혁의 머릿속은···.

    ‘상상도 못 했다.’

    전과 달리 복잡하게 꼬였다.

    그의 과거, 과거 속의 미래, 그리고 현재의 자신이 동시에 겹쳐 보이면서 조엘의 입밖으로 튀어 나온 단어 하나, 하나들이 가슴을 깊숙하게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 다가온 충격은 다른 게 아니었다.

    프로 선수가 되어 축구를 한다는 이유의 근원.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에게 해주었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마음이 떨린 것이다.

    축구 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그저 당연한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특권 혹은 꿈같은 기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그 생각.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동안 잊고 있던 그 특권에 대해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자 재혁의 마음 속에 커다란 태풍이 한 차례 찾아왔는데, 그 태풍은 오래지 않아 힘을 잃었고, 천천히 호흡을 고르기 시작한 재혁은 구름이 걷히면서 속이 깨끗하게 정리된 눈동자를 반짝이며 조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재혁을 건너편에 앉아 쭈욱 살펴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입가에 조그만 주름과 함께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역시 생각이 깊은 녀석이야. 다행히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듯 하군.’

    과르디올라 감독이 본 재혁은 훌륭한 ‘선수’다.

    필드 위에서 본인이 가진 것 이상을 보여주고, 훈련도 성실히 참여하며 끊임없이 발전하는, 감독의 입장에서 본 선수로서 흠잡을 구석이 없는 완벽한 선수 말이다.

    하지만 그게 축구의 전부는 아니다.

    선수로서의 역할은 필드 위에서 뛰게 될 90분이 지나면 모두 끝이 나게 된다.

    그 90분이 끝나고나면 선수는 더 이상 선수의 역할이 아닌, 사회 구성원의 하나가 되어 세상 속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걱정한 부분은 바로 그것이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성실하고, 생각도 깊은 친구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 외의 것들과 벽을 쌓고 있는 재혁이 과연 후에 선수가 아닌 구성원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었던 것이다.

    축구 선수가 축구만 잘하면 된다고 간단히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선수가 망가지게 되는 이유가 단순히 축구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기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재혁이 좀 더 오랫동안 좋은 선수로 남아 있기를 바랬기에 오늘 이 병원에 함께 오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계획은 생각보다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조엘과 한 층 편해진 얼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재혁의 얼굴이 바로 그 증거일 것이리라.

    과르디올라 감독은 입가에 떠오른 미소을 더욱 짙게 떠올리면서 그의 옆에 앉안 아이를 돌보았고, 그렇게 저녁 식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 되었다.

    ***

    “오늘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과르디올라 감독님, 그리고 최재혁 선수님.”

    “오히려 저녁만 먹고 바로 가야한다는게 죄송스럽군요. 다음에 따로 시간을 내 오겠습니다.”

    “정말요? 아이들도 정말 기뻐할 거예요! 감독님껜 매번 신세만 지네요. 항상 감사드려요.”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두컴컴한 밤.

    병원 로비에서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셋은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도 모두 밝은 얼굴이었다.

    그만큼 함께 보낸 시간이 즐거웠다는 의미일 것이리라.

    그렇게 짧은 포옹으로 아쉬움을 달랜 셋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좋은 밤이 되라며 멀어졌고, 과르디올라 감독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한 재혁은 멀어지는 병원을 한 차례 눈에 담은 후 보조석에 앉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런 재혁을 슬쩍 살핀 뒤 시동을 걸면서 물었다.

    “그래서 내 근원에 대해 알아본 시간은 어땠나?”

    “나쁘지 않네요.”

    “나쁘지 않아? 그게 끝인가? 예상보다 싱거운 대답인 걸.”

    기어를 드라이브에 놓으면서 슬그머니 엑셀을 밟은 과르디올라 감독이 장난기가 담긴 목소리로 툴툴거렸고, 그런 과르디올라를 앞에 두고서 재혁은 턱을 괸 채로 차창 밖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요. 제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됐으니까 말이죠.”

    “그랬나?”

    “네. 너무 무거워요. 아직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황인데, 너무 무거운 현실을 알려주려고 하셨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제가 지금 서있는 위치에서 물러설 수 없게 되었어요.”

    “···!”

    의심 뒤에 떠오른 강력한 확신.

    그 확신을 재혁의 목소리를 통해 읽을 수 있었던 과르디올라 감독의 눈썹이 가늘게 떨렸고, 재혁은 이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며 물었다.

    “23일 경기는 우리 홈에서 치르는 경기죠?”

    “본머스와의 경기 말인가? 그렇지. 그 날은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경기가 진행되는 날이야.”

    “그 날 경기 티켓을 조엘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요. VIP 석들 중 남는 자리가 있을까요?”

    “흐음. 글쎄.”

    재혁의 물음에 운전대를 잡지 않고 있는 손으로 턱을 쓸어내린 과르디올라 감독은 슬쩍 미소를 흘리며 답했다.

    “조엘을 초대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과연 그 날 경기에서 네가 뛸 수 있느냐, 겠지?”

    “그거야 말로 더 쓸 데 없는 걱정이시네요.”

    큭큭,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차례 웃어보인 재혁.

    재혁은 전에 보여준 적 없는, 자신이 넘치는 미소를 담아 웃어 보인 후 조용히 읊조렸다.

    “빼고 싶으셔도 절대로 뺄 수 없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몸소 체험하게 해드리겠습니다.”

    < 125. 누군가에겐 우상, 혹은 신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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