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전술개혁 >
“티키타카의 새로운 공식이요?”
해설자의 말을 들은 캐스터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티키타카의 새로운 공식이라니.
대체 무얼 보고 저런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그의 상식 내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캐스터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자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메모지를 슬쩍 꺼내 들었다.
재혁이 포지션을 바꾸면서부터 이루어진 패스 워크를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 놓은 패스맵이었다.
해설자는 그걸 캐스터가 볼 수 있는 위치에 내려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전술을 구성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세 가지 있다는 건 잘 알고 계시겠지요?”
“점유, 포지션, 그리고 그를 이용한 플레이들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맞습니다. 그리고 그 세 가지를 통해 과르디올라 감독이 강조하는 것이 또 하나 있죠.”
“그것들을 통해 강조하는 거라면···, 아!”
캐스터가 짧게 탄성을 흘렸고, 해설자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유기적으로 패스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동료들을 좌우에 하나씩 놓는 것. 일명 티키타카 삼각편대의 구성이죠. 그리고 그러한 편대를 구성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섭니다.”
“골을 넣으려면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매 순간 전진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적을 말씀하시는 거죠?”
“맞습니다.”
정확하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읽어낸 캐스터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보인 해설자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전술을 짜고,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의미는 결국 하나의 이유 때문입니다. 골을 넣기 위해서, 그리고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서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유기적인 패스 워크를 통해 상대 진영을 파고들 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걸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전술이 바로 티키타카라 불리는 삼각편대 전술이고,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술론을 그 무엇보다 확실하게 설명해주는게 바로 그것이죠. 그런데···.”
잠시간 말을 끌던 해설자는 피식,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오늘 그 전술의 개념이 완벽하게 뒤집어졌습니다.”
“개념이···, 뒤집어졌다고요?”
“만약 캐스터님께서 보통의 삼각편대를 구성한다면 어떤 식으로 구성하시겠습니까? 여기 그림으로 한 번 그려주시죠.”
“서로가 공을 받기 편한 곳이면서 빠른 속도로 패스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편대들을 구성하지 않을까요?”
펜을 건네 받은 캐스터가 종이 위에 조그마한 삼각형들을 여러 개 그려넣었다.
각 선수들의 자리에서 서로 짧은 패스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조그만 삼각형들을 여러 개 말이다.
캐스터가 그린 패스 도형들을 확인한 해설자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일반적인 사람···, 아니. 어떤 누구라도 모두 캐스터께서 그린 것처럼 도형을 구축할 겁니다.”
“···?”
“하지만 오늘 과르디올라 감독이 준비해온 패스맵은 기존의 것들과 많이 다른 모습을 띠고 있죠. 이게 바로 그 패스맵입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최재혁 선수에게 지시를 내린 후, 어떤 형태로 바뀌었는지 한 번 직접 확인해보시죠.”
“이···, 이건···?”
말을 끝냄과 동시에 해설자가 캐스터에게 자신이 그렸던 패스맵을 보여주었고, 해설자가 보여준 패스맵을 확인하면서 캐스터는 동그랗게 뜬 눈동자로 패스맵을 내려보며 입을 떨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커다란 삼각형.
지금까지 그가 그렸던 조그만 삼각형들이 아닌, 재혁은 경기장 위에 크기에 제한을 두지 않고 원하는 크기에 맞는 삼각형을 계속해서 그리고 있던 것이다.
캐스터는 믿기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침을 삼켰고, 혼란스러워하는 캐스터를 향해 해설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
“저도 패스맵을 확인하기 전까진 왜 최재혁 선수가 과르디올라 감독의 공간론에 반하는 중장거리 패스에 집착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죠. 하지만 지금보니 아니었습니다. 최재혁 선수는 그 누구보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공간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던 겁니다. 짧은 패스로 이루어지는 티키타카가 아닌, 새로운 개념의 티키타카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게 그 증거입니다.”
“화, 확실히···. 이런 개념의 티키타카는 저도 본 적이 없어요. 아니 그것보다, 이게 정말 가능한 겁니까?”
“지금까지 눈으로 보지 않았습니까? 오늘 맨체스터 시티가 어떤 식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압도하고 있었는 지를 말예요.”
“···.”
“그리고 이건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한 차례 입술을 멈춘 해설자는 경기장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웃었고, 곧 조그만 목소리로 멈췄던 말을 이었다.
“새로운 전술의 개혁. 그 불씨가 지금 막 타올랐다는 시작 말이죠.”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투웅!
모든 것을 뒤집는, 새로운 개혁을 알리는 패스가 또 한 번 재혁의 발에서부터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캐스터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마이크를 손에 쥐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 최재혁 선수의 발끝에서 또 한 번 긴 패스가 날아갑니다! 이번에 그의 패스를 받은 선수는···.”
“케빈 데 브루위너. 스몰링의 뒷공간을 파고드는 케빈의 발 아래로 최재혁 선수의 패스가 정확하게 이어졌군요. 바로 이런 패스들이 맨체스터 시티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고 있는 겁니다!”
“맨유, 또 한 번 위기입니다! 린델로프 선수가 뒤늦게 케빈을 쫓습니다만···.”
“이미 박스 안으로 침투를 끝낸 케빈! 그대로 슈팅을 때립니다! 데 헤아 골키퍼가 공을 쫓아 몸을 날려보지만···, 손이 닿지 않습니다! 고오오올! 맨체스터 시티,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인 추가 시간에 또 한 번 골망을 흔들면서 흐름을 완전히 지배하는데 성공합니다!”
“데 헤아 골키퍼, 이번 실점은 제법 아쉬웠는지 그대로 얼굴을 감싼 채로 잔디 위에 무너집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죠. 주심이 휘슬을 불면서 전반전은 2대0으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꿀꺽.
침을 삼키며 호흡을 고른 캐스터는 화면에 비춰지는 재혁을 눈에 담으면서 말했다.
“지금 상황을 보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단순히 경기에서만 지고 있는 게 아닌 것 같군요. 그러면 저희는 후반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
라커룸으로 돌아온 맨유 선수들의 표정은 밝지 못 했다.
아니, 밝을 수가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닌 홈인 올드 트래포트에서 라이벌 구단인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지고 있다는 이 상황에서 감히 어느 누가 웃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엔 그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감독인 무리뉴가 아직까지 한 마디도 꺼내놓고 있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분위기가 굳어버린 것이다.
선수들을 앞에 두고서 이마를 감싸쥐고 있는 무리뉴 감독은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완패다.’
적어도 이번 만큼은 완벽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분명 성과는 있었다.
‘그 꼬마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지.’
과르디올라 감독의 티키타카는 분명 확실히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만약 그 상태로 조금만 더 맨체스터 시티를 압박할 수 있었다면 분명 먼저 실점을 했을 것은 자신들이 아닌 상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과르디올라 감독이 취한 변칙수.
예상 못 한 일격에 허를 찔리고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설마 티키타카를 그런 식으로 개조할 줄이야. 아니지···. 그걸 티키타카라고 부를 수나 있는 걸까?’
짧은 패스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고 지어낸 명칭인 티키타카와는 분명 거리가 있는 전술이다.
하지만 그 개념 자체는 분명 공유하고 있었으니···.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찌푸린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털어낸 무리뉴 감독의 시선이 전술판으로 향했다.
준비한 것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고, 경기에서도 2점차로 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2점차이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빠른 속도로 다시 한 번 맨체스터 시티가 준비한 진영을 확인하고, 오늘 선발로 내보낸 선수들을 쭉 확인하던 무리뉴 감독.
그는 이후 두 눈을 감고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머릿속으로 오늘 전반전에서 맨시티가 보여준 움직임을 형상화 시켰고, 그 속에서도 재혁이 보여주었던 움직임들을 다시금 기억해내면서 입술을 매만졌다.
그러길 대략 3분.
짝짝!
마침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 무리뉴 감독이 가볍게 손을 맞부딪치며 박수 소리를 냈다.
그러자 지금까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던 선수들의 시선이 무리뉴 감독에게 모였고, 감독은 그런 선수들을 하나둘 살펴보면서 입을 열었다.
“후반전엔 우리도 진영을 바꾼다.”
툭, 툭.
짧은 한 마디를 선수들에게 남기고 전술판을 향해 손을 뻗은 무리뉴 감독.
그는 이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자석 말들을 옮겼고, 그렇게 전반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진영을 완성시킨 후 손을 멈췄다.
다만 무리뉴 감독이 완성시킨 진영을 확인한 선수들은 당황한 목소리로 감독에게 물었다.
“저, 감독님?
“이건···.”
“앞으로 남은 시간은 45분이다. 2골을 넣는데 45분씩이나 필요는 없겠지.”
당황한 목소리로 물으려는 선수들의 목소리를 가뿐히 잘라내고 대꾸한 무리뉴 감독.
그는 이내 씨익, 자신에 찬 얼굴로 미소를 떠올린 후 말했다.
“25분. 적응할 시간은 딱 25분을 주겠다. 그리고 25분이 지나면···, 포그바.”
축구화 끈을 다시 고쳐 매고 있는 포그바를 찾은 무리뉴 감독은 슬쩍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는 포그바를 향해 기대에 찬 시선을 보내며 말을 끝냈다.
“네 선택에 모든 걸 걸겠다.”
***
“대체 언제 그런 걸 준비한 거야?”
하프 타임이 끝에 가까워지자 경기장으로 돌아가던 중, 다비드 실바가 재혁의 옆에 바짝 따라붙은 후 물었다.
특별히 설명을 듣진 않았지만, 오늘 경기장에서 재혁이 펼친 영향력이 어떤 것인지는 대강 감으로 느끼고 있었기에 실바는 매우 놀란 얼굴이었다.
그런 실바를 향해 재혁은 어깨를 으쓱인 뒤 대답했다.
“준비한 건 제가 아니죠. 감독님이 준비하신 거죠. 저는 준비해주신 걸 그대로 따라할 뿐인 거에요.”
“그게 대단하다는 거지.”
겸손하게 대답하는 재혁을 향해 손을 저어보인 실바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대단한 감독들은 많아. 모두 머릿속에 획기적인 전술이며 전략들을 담고 있지. 하지만 그걸 그대로 이행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재혁, 너는 그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인거야.”
“어째 좀 과한 칭찬인 것 같은데···.”
“아니. 전혀.”
또 한 번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자른 실바.
그는 진지한 목소리처럼 가라앉은 눈동자로 재혁을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개인 기술을 갈고 닦는 것처럼, 전술을 이해하는 것 또한 따로 공부를 해야 배울 수 있는 거야. 그리고 그런 만큼, 재혁이 네가 전술을 이해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는 걸 모를 수가 없지. 축구 선수의 훈련은 단순히 훈련장을 벗어난다고 해서 끝이 나는 게 아니라는 걸, 바로 네가 누구보다 확실히 증명해주고 있는 거야. 그런 동료를 향해, 경기를 이길 수 있게 도와주는 동료를 향해 하는 말이 절대 과할 수가 없지. 오히려 부족하다구.”
“···.”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한다. 후반전도 잘 부탁해.”
툭툭, 가볍게 재혁의 어깨를 토닥인 뒤 실바는 복도를 빠져나갔고, 그런 실바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재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걸 다 알아주시네.’
실바의 말대로였다.
훈련장에서 훈련이 끝나면 과르디올라 감독과 따로 면담을 진행했던 재혁은 오늘을 위해 따로 전술 이해를 위한 훈련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물론 평소에도 따로 공부를 해왔던 거긴 했지만, 과르디올라 감독과 함께 진행하는 전술 훈련은 지금까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노동이었다.
하나의 플레이를 분 단위로 나누고, 그것을 진행해가며 이루어지는 행동들을 초 단위로 나누면서 어떤 식으로 플레이가 펼쳐져야 하는 지를 예상하고 실제로 행동할 수 있을 지를 계속 고민해야 했으니. 결코 쉬울 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오늘 경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재혁은 그동안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가 조금은 옅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후우, 그럼 가볼까.”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경기장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잔디를 밟는 순간, 수만 여 관중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재혁.
모두 하나같이 자신을 향해 악의를 담아 노려보고 있는게 바로 느껴졌고, 재혁은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본 후 생긋 미소를 떠올렸다.
“악역이 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확실한 악당이 되어야 겠군.”
그래야 죄책감이라는 족쇄로부터 조금은 마음이 편할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동료들과 손을 맞부딪치며 경기를 준비한 재혁은 필드 위에 섰고, 상대 진영을 살펴보다가···.
‘···결국 저쪽에서도 따라왔군.’
선수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쓰게 웃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런 것처럼, 무리뉴 감독도 승부수를 던진 게 바로 눈에 들어온 것이다.
***
‘상대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래. 할 수 있다.”
후우, 깊게 들이 마셨던 숨을 토해내면서 포그바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머릿속으로는 경기장으로 돌아오기 전, 무리뉴 감독이 그에게 해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상대가 하고 있는데 우리가 굳이 해내지 못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주 짧지만 그런 확신이 깃든 한 마디에 포그바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고, 후반전을 뛰기 시작하면서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마샬, 조금 더 내려와! 항상 열린 공간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돼!”
“래쉬포드! 계속 움직여! 발을 멈추지마! 공은 어차피 너한테 갈거야!”
“마타, 도와줘! 공을 받으러 계속 와줘야 해!”
재혁과 마찬가지로 중원에서 프리롤을 부여 받은 포그바.
그는 계속해서 선수들의 위치를 조정함은 물론, 스스로 빌드업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공세를 이끌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처음 5분간은 익숙하지 않은 플레이 스타일에 모두가 혼란스러워했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고, 점차 무리뉴 감독이 말했던 25분에 가까워지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서서히 폼을 회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흐름이 좋아요. 올드 트래포트에서 쉽게 무너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선수들이 총력을 다하고 있어요.”
마침내 맨유는 맨체스터 시티와 동등하게···, 아니. 특정 부분에선 그들을 압도해내면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포그바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결국 핵심은 하프 스페이스를 지배하는 것일 뿐이야!’
중원에 자유로운 선수 한 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공을 대각선, 즉 하프 스페이스를 노리고 패스를 뿌리는 것.
재혁이 마치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며 패스를 뿌린 것 같았지만, 결국 핵심은 그것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포그바는 마침내 모든 것에 적응하고 패스를 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포그바의 패스를 중앙에서 가슴으로 받아낸 루카쿠는 마침내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어 보이면서 공을 컨트롤 했다.
‘이 공을 하루종일 기다렸다!’
등에 바짝 따라붙은 오타멘디가 공을 빼앗기 위해 압박을 걸어왔지만, 이미 좋은 자세에서 공을 잡는데 성공한 루카쿠는 안정적으로 공을 컨트롤하면서 틈을 노렸다.
비록 눈으로 보고 있진 않았지만···.
‘래쉬포드라면 항상 저곳을 노리고 공간을 파고 들거니까!’
투웅!
“ ⁈”
발 뒤꿈치로 공을 밀어내는 노룩 힐패스.
느닷없는 패스 시도에 오타멘디는 반응하지 못하고 공을 흘려보냈고, 공은 루카쿠가 예상한 대로 라인 브레이킹을 시도하고 있는 래쉬포드의 앞을 향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침투 돌파!
그나마 다행이라면 콤파니가 래쉬포드의 움직임을 읽고 그를 쫓았다는 사실이었으나···.
“래쉬포드, 공을 터치함과 동시에 속도를 올립니다!”
“너무 빨라요! 콤파니, 결국 쫓지 못하고 래쉬포드를 놓치고 맙니다! 맨유의 노마크 찬스!”
“에데르손 골키퍼가 재빨리 각을 좁히면서 달려들고 있습니다! 그대로 다이빙 코스···, 였지만! 래쉬포드의 슈팅이 한 박자 빨랐습니다!”
“포물선을 그리는 공은···!”
“그대로 골망으로···! 맨유, 드디어 만회점을 터트리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세레머니를 이어갈 시간이 없죠! 래쉬포드 선수, 황급히 골망 안에 있는 공을 회수해 센터 서클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역시 맨유에요. 이대로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한 대 얻어 맞았다.
하지만 단순한 한 대가 아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입장에선 추격을 허용하는 한 골이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할 한 골인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누구보다 확실히 느낄 수 있어던 재혁은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포그바를 한 차례 살핀 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흐음, 오늘 밑천 다 드러나겠네. 하지만···.”
툭툭.
축구화 코끝으로 잔디를 차면서 바닥을 다진 재혁.
이후 천천히 고개를 든 재혁이 콧등을 긁적이며 읊조렸다.
“그렇다고 지는 것보단 이기는게 낫지. 애초에 이기기 위해서 준비한 거니까 말야.”
삐이이익!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심이 경기가 재개됨을 알리는 호각을 불었고, 재혁도 그에 맞춰 멈췄던 발을 움직였다.
추격이라는 희망의 불씨를···.
‘아니. 기껏해야 촛불정도 밖에 되지 않을 불을···.’
확실히 꺼버리기 위해서.
***
“좋아, 이대로 가자! 계속 압박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역전이다! 동점골론 부족해, 역전까지 가자!”
래쉬포드가 만회점을 터트리자 지금까지 조용하던 맨유 팬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번 시즌 최악의 경기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던 팬들은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하나같이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면서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응원가들 속엔 상대 선수들을 조롱하는 의미의 노래들도 하나둘 다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가난했던 이웃집이 로또를 맞았네! 하지만 돈으론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지!”
“얼른 돌아가라구! 맨체스터에 어울리는 색깔이 붉은 색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결국 승자 또한 정해져 있으니까!”
“티컵 강아지에게 아무리 좋은 걸 먹여봐야 결국 사이즈는 티컵! 괜히 비싸게 주고 산 옷들만 아깝네! 크하하!”
그렇게 조롱과 비웃음이 섞인 노래를 한창 부르며 흥을 돋구던 맨유 팬들은 공이 재혁의 발밑으로 향하자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 가사처럼, 티컵 사이즈의 강아지는 결국 커봐야 티컵일 거라는, 의미심장한 단어를 연달아 소리치면서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재혁은···.
투웅!
아주 간단하게 자신의 대답을 보여주었다.
공의 밑둥을 깎아 차는 짧고 간단한 대답을 말이다.
하지만 그 대답을 확인한 사람들의 반응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특히 경기를 중계하고 있던 해설자.
그는 충격에 젖은 눈동자로 공을 바라보더니 소리쳤다.
< 121. 전술개혁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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