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스페셜 원과 개혁자 >
와아아···, 와아아···!
올드 트래포트 경기장.
그 피치 위로 향하는 터널 안에서 관중들이 내지르는 함성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폴 포그바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토해낸 뒤 중얼거렸다.
“이긴다.”
단단히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로 중얼거린 포그바.
그런 포그바를 바라보는 동료 선수들도 하나같이 진지한 얼굴로 진행 요원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경기는 다른 평범한 경기들 중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같은 연고지에 속한 라이벌 클럽, 맨체스터 시티와 벌이는 더비 경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라면 절대로 다른 경기들과 같은 취급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절대 져선 안되고, 비겨서도 안 된다.
오직 승리라는 결과만이 용납되는 경기를 앞둔 선수들은 하나같이 눈동자와 함께 경기를 향한 열의를 뜨겁게 불태우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오늘 더비전의 핵심이라 일컬어지는 선수인 포그바는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질 못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뛸 수 있도록 몸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중 마침내 진행 요원이 선수들을 향해 입장을 시작할 것을 알렸고, 주심과 두 명의 부심을 시작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선수들은 터널을 빠져나와 곧 잔디를 밟았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 번 귓가를 때리는 함성 소리에 포그바는 침을 삼켰다.
“믿는다, 포그바!”
“절대 지지마! 시티 녀석들을 확실히 부숴버려!”
“너희라면 할 수 있어! 이번에 시티를 밟고 선두를 노리는 거야!”
하나같이 잔뜩 흥분한, 그리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응원을 보내고 있는 홈 팬들.
그들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포그바는 다시 한 번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 경기는 어떻게든 이기겠다고 말이다.
팬들을 위해서, 구단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간 포그바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 사이에 섞여 있는 한 선수를 찾았다.
그와 같은 미드필더이면서 최근 맨체스터 시티의 상승세에 누구보다 또렷하게 힘을 보태고 있는 선수, 최재혁을 말이다.
한국에서 호주를 거쳐 영국에 도착한 어린 선수를 바라보던 포그바는 더 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재혁을 살핀 뒤 여러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대부분이 재혁이 지금까지 어떤 활약을 펼쳤고, 얼마나 커다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인지를 설명해주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려보던 포그바는···.
“훗.”
짧게 웃었다.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미소였다.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는 존중과 그런 상대를 적으로 만나 경기를 펼치게 된 것에 대한 흥분감, 그리고···.
‘이 경기를 승리로 끝내면서 내가 모든 것을 가져가게 될 미래를 향한 기대가 공존하는 미소···, 말이지.’
찾아올 결과에 대한 자신감.
그 모든 것들을 단번에 나타내는 미소를 한 차례 흘린 포그바는 손을 마주치며 지나치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며 지나치다가 마침내 그가 기다리던 재혁이 눈앞에 다가오자 그의 오른손을 힘주어 잡은 뒤 말했다.
“최선을 다해라.”
“···물론이죠.”
엉겁결에 포그바의 말에 대답을 해버린 재혁.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얼굴로 멀어지는 포그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재혁이었으나, 포그바는 그런 재혁의 시선을 뒤에 둔 채로 자리로 향했다.
지금부턴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으니까.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그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니까.’
삐이이익!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주심이 휘슬을 길게 불며 경기의 시작을 알렸고, 동시에 포그바는 공을 향해 뛰기 시작하면서 초반부터 무서운 기세로 텐션을 올렸다.
***
“맨유, 맨체스터 시티를 매섭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포그바의 패스가 오른쪽에 위치한 마타에게 정확하게 이어지면서 맨유의 공격이 계속 됩니다!”
“마타, 델프를 앞에 두고 침착하게 공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다가온 래쉬포드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돌파! 오른쪽 측면 깊숙이 파고 듭니다! 완전히 열린 코스! 그대로 코스를 따라서 마타가 크로스를 올립니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공을 향해 두 선수가 몸을 날립니다! 루카쿠와 오타멘디! 서로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공중볼 경합! 그 결과는···, 루카쿠의 헤더!”
“아! 아쉽게도 각도가 너무 벌어졌습니다! 헤딩슛이 골대를 빗겨 나가면서 맨체스터 시티의 골킥으로 경기 재개됩니다. 아직까진 0대0. 일단 경기는 여전히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들 정신 차려! 왜 그렇게 쉽게 공을 건드리게 두는 거야? 우리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우리 플레이를!”
에데르손이 골킥을 준비하는 동안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향해 호통을 친 콤파니의 목에 핏대가 바짝 섰다.
경기가 시작된지 벌써 20분.
하지만 20분동안 그들이 보여준 게 거의 없다는 점에서 콤파니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올드 트래포트라고 해도 이건 정도가 심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의 분노에 선수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술을 곱씹었다.
콤파니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선수들 또한 답답함에 숙이 거북했던 것이다.
오늘 경기를 위해 준비한 무리뉴의 전술을 토대로 진영을 구축한 맨유는 그 어떤 때보다 탄탄하게 수비 라인을 구축하고 있었고, 그 짜임새 있는 수비 전술에 맨시티의 선수들은 크게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특히 중원을 담당하고 있는 페르난지뉴와 케빈이 말이다.
‘완전히 뒤로 눌러 앉아 있어. 저건 역습이 아니면 나올 생각이 없다는 거잖아?’
‘그런 팀을 응원하는 주제에 사람들은 고함을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망할.’
둘은 에데르손 골키퍼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귓바퀴를 끊임없이 맴도는 맨유 팬들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니 홈 팬들의 응원은 기세등등, 벌써 경기를 이긴 것마냥 경기장이 떠나가라 응원가들을 연속해서 부르고 있던 것이다.
경기가 답답하니 모든 상황에 대해 짜증이 일었고, 그 감정을 해소할 길이 없으니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동에 감정이 섞이기 시작하니 플레이도 유연성을 잃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게 바로 나타난 것은 골킥 이후에 이어진 플레이에서 두 사람이 보여준 연계에서 였다.
짧은 골킥으로 오른쪽 풀백인 카일 워커에게 공이 이동했고, 워커는 페르난지뉴에게 공을 밀어주면서 라인을 따라 이동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삼각 편대를 구축,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페르난지뉴의 발에 공이 멈춘 것을 확인하면서 워커가 눈동자를 반짝였다.
이제 공이 케빈에게 이어지고, 자신이 계속 라인을 따라 달리게 된다면 케빈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삼각 편대가 구성되게 된다. 그리고 그 편대들 중에선 분명 골대로 향하는 길을 안내해줄 가이드가 있을 것이다.
두텁게 줄을 세운 맨유의 수비 벽에 어느 정도 균열을 일어나게 할 수 있는 순간이 마침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리에 힘을 붙인 워커가 서서히 속도를 올렸다.
마침 페르난지뉴의 패스도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케빈에게 향한 상황.
드디어 기회가 온다.
환희에 찬 미소와 함께 달리기를 계속 하면서 케빈의 플레이를 기다리던 워커의 얼굴이···.
퉁, 퉁!
“···?!”
일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을 눈에 담고 구겨졌다.
분명 공이 이어지는 것까진 모든 게 예상대로 진행되었지만, 케빈은 공을 받음과 동시에 다시 페르난지뉴에게 패스를 돌려준 것이다.
전체적인 모습으로 본다면 90분의 경기 중 한 번의 패스가 뒤로 물러난 것이었겠지만, 그 한 번의 패스가 순간적인 템포를 죽였고, 이어지는 플레이의 맥을 끊은 것이었기에 다른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당황해 발이 꼬였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었다.
공을 돌려 받은 페르난지뉴가 템포가 죽으면서 좌측면에 열린 사네를 찾아 제대로 패스만 연결해준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 또한···.
투웅!
“···뭐?!”
페르난지뉴는 사네에게 패스를 주는 게 아닌, 그와 함께 라인을 맞추고 있던 실바에게 공을 건네면서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이로써 확정이다.
이번 플레이는 완전히 힘을 잃었다.
모든 빌드업을 다시 처음부터 쌓아 나가야 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기세를 잃고만 맨체스터 시티는 결국 또 다시 빗장을 친 맨유의 줄수비에 곤욕을 치렀고, 전방 압박을 통한 빠른 역습에 재차 실점할 위기를 경험한 뒤 진땀을 식혔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을 쭉 지켜보고 있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공이 골대를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토해낸 뒤 이마에 패인 주름을 긁었다.
‘예상보다 훨씬 고전하고 있군.’
무리뉴 감독이 수비 라인을 두껍게 구축할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식으로 전술을 준비하는 지는 이미 수년 간의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설마 이정도로 크게 밀릴 줄이야.
‘정말 무서운 친구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거지.’
생각을 끝내며 건너편 벤치에 서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무리뉴 감독을 지켜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작게 웃었다.
오늘 준비한 전술을 보니, 확실히 무리뉴는 특별한 감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뉴와 비교했을 때 자신 또한 평범한 것은 아니다.
무리뉴 감독이 스스로를 스페셜 원이라고 부른다면, 자신은 본인을 이렇게 부를 것이니까.
‘전술의 개혁자’라고 말이다.
천천히 벤치에서 몸을 일으킨 과르디올라 감독은 터치 라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고.
“재혁!”
제수스의 뒤를 받치고 있던 재혁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감독의 목소리를 들은 재혁의 고개가 벤치 쪽을 향했고, 재혁과 눈을 마주친 과르디올라 감독은 재혁을 향해 짧은 한 마디를 전했다.
“계획 변경이다. 지금부터 위치를 바꾼다. 아래로 내려가라.”
“너무 이르지 않아요? 후반전을 기점으로 사용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후반전?”
재혁의 되물음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피식 실소를 흘린 뒤 대답했다.
“앞으로 25분이 지나면 남은 45분이 허사가 될 상황인데 어떻게 더 기다릴 수 있겠어? 그건 그때가서 고민한다. 일단은 지금 흐름을 바꾸는 게 먼저야.”
“알겠습니다.”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재혁은 경기가 재개되기 전, 발을 옮겨 위치를 이동했다.
필드 위에 올라와 있는 선수들,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두 팀의 선수들은 그런 재혁을 발견하고 제각기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맨유의 선수들은 갑자기 포메이션을 변경하려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긴장한 얼굴로 재혁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 보았고, 같은 팀인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 또한 의아한 얼굴로 재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재혁. 갑자기 왜 내려온 거야? 감독님의 지시야?”
“네. 저보고 내려가라고 하셔서요.”
“그래? 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듣질 못 했는데?”
다비드 실바와 페르난지뉴, 두 선수가 의아해하는 것이 당연했다.
보통 포메이션이 변한다면 같은 팀 선수들에게 언질을 주는 게 먼저였으니까.
하지만 실바와 페르난지뉴는 어떠한 말도 들은 게 없었기에 재혁에게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은 것이다.
그런 둘을 향해 재혁은 빙긋 웃어 보이면서 답했다.
“괜찮아요. 두 분의 위치는 그대로일테니까요. 그냥 제 위치만 바뀌는 거예요. 공격형 미드필더의 자리에서 프리롤로 말이죠.”
“프리롤···, 이라고?”
“네. 프리롤이요. 그러니까 저에 대해선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툭툭, 손을 털면서 숨을 고른 재혁이 얼굴에 떠올린 미소를 한층 더 짙게 펼쳐 보이면서 말했다.
“제가 알아서 팀에 녹아들테니까요.”
***
맨체스터 시티가 새로운 진영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같은 장면을 필드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무리뉴 감독도 미간을 찌푸린 뒤 생각에 잠겼다.
‘88번의 위치를 바꿨어? 어째서지?’
과르디올라 감독이 준비하는 전술의 평소 핵심은 세 가지로 축약시킬 수 있다.
공간, 지배, 그리고 전진.
티키타카라던가, 삼각형을 이루는 편대 조직력은 그 세 가지를 위한 보조 수단이었고, 결국 과르디올라 감독이 준비한 전술을 깨기 위해서라면 저 세 가지를 중점으로 삼아 공략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리뉴 감독은 오늘 준비한 전술로 그걸 어느 정도 성공시키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어째선지 기묘하다.
그런 알싸한 느낌이 한 순간 등골을 훑고 지나간 것에 무리뉴 감독은 침을 삼켰다.
이건 그간의 경험이 알려주는 경고였다.
앞으로 무언가 예상 못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경고 말이다.
하지만 경고는 어디까지나 경고일 뿐.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일에 대한 경고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기다린다.
과연 저 88번의 쉬프트가 어떤 일을 벌이지를 말이다.
그렇게 경기가 재개되었고, 에데르손의 골킥으로 재시작되는 경기를 가만히 지켜보던 무리뉴 감독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뭐야? 88번을 내리면서 포메이션을 바꾼 게 아니었어? 지금 저 88번의 자리랑 카일 워커의 위치가 완벽하게 겹치고 있잖아?’
중복되는 위치에 두 선수가 함께 위치하고 있는 장면.
도저히 그의 상식으로는 벌어져선 안 될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던 탓이었다.
< 119. 스페셜 원과 개혁자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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