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18화 (118/225)
  • < 118. 버젼 2 >

    21일, 챔피언스 리그 예선.

    26일, 허드슨 필드와의 리그 원정 경기.

    29일, 사우스햄턴을 상대로 리그 홈 경기.

    그 다음 달 3일, 웨스트 햄을 상대로 리그 홈 경기 이후 또 한 번 이어지는 챔피언스 리그 예선전까지.

    아직 박싱데이는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음에도 참가 중인 대회가 많아 가혹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였으나···.

    [맨체스터 시티, 이번에도 승리! 조 1위로 진출을 확정!]

    [태풍 같은 일정 속에서 태풍 같은 성적을 기록 중인 맨체스터 시티. 대체 패배는 언제?]

    [패배를 모르는 맨체스터 시티, ‘이번 시즌 맨시티는 지는 법을 모른다.’ 팬들은 벌써부터 기대만발!]

    해당 경기들에서 기록한 맨시티의 전적은 4승 1무로 80%라는 높은 승률을 거두었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구성된 스쿼드에 과르디올라라는 두뇌가 추가되면서 올해의 맨체스터 시티는 단어 그대로 무적의 시즌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그 덕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질문을 받아야만 했다.

    “과르디올라 감독님. 시즌이 거의 절반이 흐른 지금까지도 패배가 없는 상황인데, 이제 슬슬 무패 우승에 대한 욕심이 나지 않으십니까?”

    “또 그 질문이군요.”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성 기자에게 질문을 받은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마를 긁적였고, 벌써 몇 번이고 받은 적이 있는 질문에 대해 기계처럼 대답했다.

    “저와 제 선수들은 그저 닥쳐오는 경기들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결과는 과정에 따른 것이고, 혹여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할 지라도 과정이 충분하다면 결국 마지막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무패 우승이라는 가능성에 긍정적이라는 말씀이신 겁니까?”

    “아니죠.”

    자신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 말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간 기자의 말을 곧장 정정해준 과르디올라 감독은 작지만 확신에 찬 미소를 떠올리면서 대답을 계속 했다.

    “오히려 무패 우승이라는 목적에 대한 가정은 아예 처음부터 생각해두지 않고 있다는 말이죠. 저희의 이번 시즌 목표는 확실합니다. 다른 팀들은 흉내낼 수 없는, 저희만 할 수 있는 축구. 바로 저희만의 색깔을 완벽하게 구성하게 되는 게 목푭니다.”

    “맨체스터 시티만의 색깔을 구성하는 게 목표라니···.”

    “보통은 트로피라던가, 시즌 종료에 맞춘 대회 성적을 목표로 구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색깔이라니···. 혹시 팀 컬러를 말씀하신 겁니까?”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기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숙덕였다.

    색깔이란게 만약 팀 컬러를 의미하는 거라면 이미 맨체스터 시티는 다른 어느 구단들보다 확실히 구축한 상태이지 않은가?

    짧은 패스와 중원 지배를 통한 경기 지배라는 특유의 팀 컬러를 말이다.

    물론 그 컬러라는 게 팀이 아닌,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도하는 팀이라면 모두가 갖추는 컬러라는 점에서 의미가 미묘하게 달랐지만 말이다.

    그 점을 꼬집으면서 기자들 사이에 섞여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면서 물었다.

    “감독님께선 이미 선수들을 통해 원하는 축구를 구사하고 있는게 아니던가요? 지금 맨체스터 시티가 역대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니었습니까?”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는 건 분명 사실입니다. 제 뜻대로 움직여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색깔에는 역시 아직 부족한 것도 부정할 수 없겠군요.”

    “지금 이게 부족하다고요?”

    “제가 선수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묻는 기자를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이 곧장 대꾸해주며 말을 이었다.

    “팀이 있고, 선수들이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다. 거기서 내가 하는 역할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공이 상대 진영의 파이널 써드에 진입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파이널 써드에서부터 상대 골대에 공을 집어넣는 것. 거기서부턴 내가 아닌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다.”

    “···.”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선수들이 유지하는 간격과 공간, 혹은 패스를 넣는 방향까지도 철저하게 조율합니다. 파이널 써드로 향하기 전까진 말이죠. 하지만 한 번 공이 파이널 써드에 도착하는 순간부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때부턴 제가 아닌 선수들이 주어진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순간이니까요. 공이 골라인을 넘기 위해선 순간의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번득임이 필요하고, 그건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에서 나오는 것이니. 최상의 결과를 위해 최상의 조건을 주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과르디올라 감독님이 원하는 요구를 완벽하게 소화중인 게 아닙니까? 오늘 경기까지를 포함하면 맨체스터 시티의 볼 포세션 이후 파이널 써드로 향하는 패싱 성공률은 83%로 리그 최고 수준인걸요.”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을 듣고 있던 기자들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며 되물었고, 주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기자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만약 과르디올라 감독이 원하는 축구가 지금 그가 말한 것처럼 파이널 써드로 향하기 위한 축구라면 다른 어느 구단보다 맨체스터 시티는 그 역할에 충실하고 있던 것이다.

    83%라는 성공률을 반대로 해석하면 실패할 확률이 겨우 17%라는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기록을 듣고도 과르디올라 감독은···.

    “글쎄요.”

    피식, 얇은 실소를 흘린 후 또 한 번 이마를 긁었다.

    범인들과 다른, 본인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드러나는 얼굴로 말이다.

    기자들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감독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제가 지금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신 분이 이곳에는 없는 것 같···.”

    “하프 스페이스에 대한 영향력을 설명하시던 게 아닙니까?”

    “···!”

    “제가 이해한 바를 조금 더 명확하게 설명하자면, 감독님의 영향력이 닿을 수 있는 지역에서 공을 전개하는 방식과 경기를 지배하는 방법, 그리고 그 방식과 방법들이 파이널 써드 이후에선 선수들에게 넘어가게 되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다른 팀들과 확실한 차이점을 두고 싶어하시는 게 아닌가요?”

    기자들 사이에 섞여 있는 누군가에 의해 말이 잘렸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 뒤로 계속 이어진 남성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벙찐 얼굴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할 말을 빼앗긴 것과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것은 고요한 침묵.

    어떠한 기자들도 선뜻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과르디올라 감독 또한 그런 상황에 섞여 멍하니 목소리를 낸 남성을 찾더니···.

    “하하하. 오늘 제가 큰 실례를 할 뻔 했군요.”

    큰 소리로 한 차례 웃음을 터트렸다.

    그에 따라 굳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기자들도, 회견에 함께 참여한 스태프들도, 과르디올라 감독을 따라 웃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회견장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지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손을 뻗어 물 잔을 찾았고, 입술을 한 차례 적신 뒤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분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한국 스포츠의 이상민입니다.”

    “이상민 기자님이시군요. 한국에서 오셨나 봅니다. 최근 한국에서 부쩍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군요.”

    상민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것처럼 반복적으로 되뇌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곧 그의 이름을 확실히 머릿속에 넣어두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멈췄던 말을 이었다.

    “재밌는 말씀을 기자님께 들었으니, 저도 그럼 보답을 해드려야 맞는 거겠죠.”

    “보답이요?”

    “나흘 뒤에 진행될 다음 경기. 그 경기를 통해 제가 보여드리고자 하는 축구의 색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려드리겠습니다.”

    “나흘 뒤에 있을 경기를 통해서요?”

    “자, 잠깐만요. 나흘 뒤에 있게 될 경기라면···!”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둘러 서로를 살펴보던 기자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맨체스터 더비!”

    “그러면 그때 다시 한 번 뵙겠습니다.”

    “감독님,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굳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그런 말씀은 하신 이유가···!”

    찰칵, 찰칵!

    멀어지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자리를 벗어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저 떠나는 감독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 것만이 기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회견장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뿐.

    신문사로 돌아와 펜을 손에 쥔 기자들은 제각기 그들이 이해한 방식대로 글을 적어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과르디올라 감독, 맨체스터 더비를 앞두고 선전포고! ‘나의 축구로 지배한다.’]

    [‘지금도 부족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끝없는 욕심. 이번 목표는 무리뉴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무패 우승에는 ‘비관적’ 하지만 승리에는 ‘희망적.’ 맨체스터 시티, 맨유를 상대로 리그 우승을 위한 5부 능선을 넘는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 온 경기 당일, 해당 기사들을 접했던 무리뉴 감독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진행되는 회견 장에 얼굴을 비추며 웃었다.

    “재밌는 일이 있었더군요. 일단 ‘아직까진’ 무패를 기록 중인 맨체스터 시티와 과르디올라 감독의 능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짝짝짝, 짧게 두손을 모아 박수를 친 무리뉴 감독은 예의 여유 넘치는 얼굴로 천천히 손을 거두었고, 슬쩍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면서 말을 계속 했다.

    “하지만 축구는 11명의 선수들이 펼치는 전쟁이기 이전에, 감독이라는 전술가들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 경기를 통해 과르디올라 감독님께 확실히 알려드리고 싶군요. 파이널 써드에서 필요한 건 선수들의 ‘창의성’이 아니라, 보다 확실한 ‘정확성’이라는 말을 말입니다.”

    “오오···!”

    “그 말씀은 과르디올라 감독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반하는···!”

    “글쎄요. 지금 그런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쇼는 곧 시작될 예정이니 말이죠.”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난 무리뉴 감독은 이어지려는 기자들의 질문을 싹둑 자른 후 자신감이 깃든 미소로 그들을 바라본 후 등을 돌렸다.

    “그럼 모두, 무대에서 뵙겠습니다.”

    ***

    길바닥에 고인 물들이 얼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그런 한파도 올드 트래포트로 향하는 팬들의 발걸음을 얼릴 정도로 차갑진 못했다.

    아니, 오히려 팬들의 뜨거운 열정이 모여 추위로 꽁꽁 얼었던 경기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아올리고 있던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30분도 더 남은 상황이었지만 벌써 자리를 찾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면서 이 경기장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모두에게 알리려 하고 있었고, 그런 맨유 팬들을 상대로 맨체스터 시티의 원정 팬들도 지지 않으려는 듯 뭉쳐 앉아 유니폼을 들어 보였다.

    과연 더비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양 팀 팬들은 팽팽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올드 트래포트의 원정석 라커룸에 앉아 축구화에 발을 꿰고 있던 재혁은···.

    “재혁,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어?”

    “아, 케빈.”

    오늘 함께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케빈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케빈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는 재혁이 걱정되어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게 재혁의 옆에 앉아 어깨를 쿡쿡 찌르며 굳은 것처럼 보이는 재혁의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케빈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밖이 시끄러워서 굳은 거야? 내가 알고 있는 최재혁답지 않은데? 너도 긴장이란 걸 하긴 하는구나?”

    “흐음,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죠.”

    “다른 이유라고?”

    재혁의 말에 물음표를 담아 되물은 케빈의 고개가 옆으로 살며시 기울어졌다.

    평소와 무언가 다르다는 걸 느끼곤 있었지만 이유가 있다니?

    문득 떠오른 호기심을 따라 케빈은 자연스레 재혁을 살폈고, 재혁의 손에 들려 있는 낯선 종이 뭉치를 발견한 뒤 검지로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그게 그 이유야?”

    평소 본 적이 없었던 종이 뭉치의 존재가 계속 눈에 밟혔던 것에 케빈이 물은 것이고, 케빈의 질문에 재혁은 말없이 씨익 웃어 보인 후 답했다.

    “며칠 전, 감독님한테 받은 거예요.”

    “감독님한테 받았다고? 나는 그런 거 받은 기억이 없는데?”

    “아무래도 그렇겠죠.”

    의아해하는 케빈을 향해 한 차례 웃어보인 재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오롯이 제가 해결해야 할 일이거든요.”

    “네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최재혁 쉬프트.”

    “?!”

    생전 처음 듣는 말에 케빈이 놀라고 있는 것과 달리, 재혁은 은근한 그리움, 그리고 기대에 찬 시선으로 종이 뭉치를 내려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건 그 버젼 2 정도 쯤 되는 것 같네요. 이만한 전술을 준비해주셨는데, 이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한다면 그건 순전히 제 실력이 모자란 탓이니···. 그 어떤 때보다 확실히 준비해서 나가야죠.”

    < 118. 버젼 2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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