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12화 (112/225)
  • < 112. 관계의 내구성 >

    “후욱···, 후욱···.”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고 있는 선수, 이가연은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뺨이며, 입술이며, 붉다 못해 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이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지만, 악이 가득 담긴 두 눈을 불태우면서 퍼져 있는 공들을 모으기 위해 발을 움직인 가연은 다시 한 번 골대를 노려보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결국 원하는 대로 공을 찬 건 딱 두 번뿐이잖아···.’

    벌써 몇 번이나 프리킥을 연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공은 그녀가 원하는 방향대로 나가주질 않았던 것이다.

    힘을 실으면 각도가 어긋났고, 각도에 신경을 쓰면 파워가 제각각이었다.

    수십, 수백 번에 이르는 연습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킥은 딱 두 번뿐이었으니.

    그나마도 어떤 식으로 찼는지 제대로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에 이후 이어진 연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사방에 퍼졌던 공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가연은 또 한 번 연습을 시작하기에 앞서 감정이 차올라 쉬이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난 달에 있었던 미국과의 친선전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나가면 결국 또 대패할지도 몰라.’

    여자 축구 쪽에선 다른 팀들과 비교가 불가한 독보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여자 축구팀.

    그런 팀을 상대로 1차전에선 나름 선방을 했다.

    그녀가 골을 터트린 건 아니었지만, 만회점을 한 점 얻었다는 것은 분명 팀 차원에서 큰 위안거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진짜 실력 차이는 그 다음 경기에서 나왔다.

    장소를 옮겨 진행하게 된 친선 2차전.

    거기서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은 미국에게 6점을 실점하며 대패하고 만 것이다.

    한국 측에서 터트린 만회 득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변명할 여지가 없는 완패였다.

    물론 에이스인 조세연이 무릎 부상으로 경기를 뛰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6-0의 결과를 무마해주는 면죄부가 되어줄 순 없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내일 치루게 될 경기를 생각하면서 가연은 감정을 가득 실어 발앞에 있는 공을 힘껏 찼다.

    “이래서야 결국 똑같잖아!”

    뻐엉! 찰캉!

    “그러게요. 그런 식으로 공을 계속 차면 달라질 게 없겠네요.”

    “누, 누구세요?”

    공이 골망이 아닌 바깥 철망을 향해 날아가면서 쇳소리가 울렸고, 그 뒤를 이어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가연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선 축구공을 발 아래에 놓고 있는 재혁이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재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가연은 뒤늦게 재혁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최, 최재혁 선수?”

    “안녕하세요?”

    상대가 이름을 부른 것에 재혁은 간단히 고개를 꾸벅이면서 가연에게 다가갔다.

    “저도 프리킥을 연습하러 왔던 건데, 저보다 먼저 오신 분이 계셨네요. 그보다 여자 팀은 내일 바로 경기가 있지 않아요? 컨디션을 유지하려면 연습보단 쉬는게 나으실 것 같은데.”

    “···저도 그냥 마음 편히 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재혁이 다가오면서 건넨 말에 가연은 작게 한숨을 토해낸 뒤 이마 아래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답을 이었다.

    “아무리 세계 최강이 상대였다지만 변변치 못한 공격도 제대로 한 번 시도해보지 못하고 대패했어요. 게다가 이번 경기부터 전담 키커를 맡게된 게 전데···, 부담이 쌓이니 킥은 또 킥대로 제대로 나가지도 않고···.”

    “흐음.”

    “아, 남자 대표팀은 이번에 콜롬비아와 비겼다고 했죠? 쉽지 않은 경기였을 텐데, 고생했네요. 특히 2골을 모두 프리킥으로 득점한 최재혁 선수는···.”

    말을 이어가던 가연의 입술이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지 않던가?

    프리킥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콜롬비아의 골문을 두 번이나 뚫어낸 남자가!

    소속팀에서도 몇 번이고 프리킥으로 득점에 성공한 적이 있는 최재혁이 말이다.

    ‘하, 하지만 뭐라고 말하면서 물어봐야···.’

    프로 세계에서 기술이란 자산이다.

    그런 자산을 그냥 알려 달라고 묻기도 미안했던 것에 가연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고, 그런 가연을 빤히 바라보던 재혁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프리킥 연습하는 거 좀 봐드릴까요?”

    “예?”

    “저도 여기에 연습하러 온 거거든요. 그런데 공을 딱 하나밖에 가져오질 않아서. 이가연 선수랑 같이 연습하면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 저야 감사하죠! 어, 그런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아.”

    의아한 점에 대해 묻는 것에 재혁은 말대신 검지를 쭉 뻗어 가연의 가슴팍을 가리켰고, 자켓에 그녀의 이름이 자수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뺨을 붉혔다.

    혹시라도 자신이 재혁을 알아본 것처럼, 재혁도 자신을 알아봐준 게 아닌가 했던 것이다.

    황급히 고개를 털어내며 잡념과 함께 부끄러움을 떨쳐낸 가연은 재혁에게 편하게 오라며 손짓을 했고, 재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공을 모아놓은 장소로 이동했다.

    슬쩍 골대와 공의 위치를 어림짐작한 재혁이 턱끝을 쓸었다.

    “20미터 정도 되겠군요. 연습하기 좋은 거리에요. 그럼 일단 한 번 먼저 차보시겠어요? 아까처럼 감정을 실어 차는 게 아니라, 정성을 다해서요.”

    “네, 넵.”

    재혁의 말에 떨쳐냈던 부끄러움이 다시금 목덜미를 엄습하는 것을 느낀 가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곧 진지한 얼굴로 돌아온 가연은 호흡을 가다듬었고, 골대와 공의 위치를 확인한 뒤 천천히 발을 옮기다가 디딤발을 놓은 후 오른발을 휘둘러 공을 찼다.

    뻐엉, 소리와 함께 높게 떠올랐던 공이 포물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별히 날카롭지도, 빠르지도 않은 포물선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장면은 공이 골라인을 넘은 위치가 제법 골대 구석을 향하고 있었다는 점일까.

    철썩이는 소리와 함께 공이 곧 잔디 위로 떨어졌고, 가연은 슬그머니 재혁을 향해 얼굴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땠나요?”

    “정확한 킥이네요. 하지만 골키퍼에게 위협적인 킥이었냐고 물어보신다면···, 바로 아니라고 답해드릴 수 있겠어요.”

    “역시···.”

    “하지만 킥 자세는 좋던데요? 그 점은 매우 긍정적이에요.”

    재혁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하며 박수를 치자 가연의 뺨을 부풀렸다.

    “자세만 좋은 게 뭐가 긍정적이에요? 오히려 전 자세를 바꿀까 생각하고 있었다고요. 좀 더 공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자세로 말예요.”

    “글쎄요. 그 부분에 대해선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데요. 킥에 힘을 실어주는 건 딱히 자세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럼 이번엔 제가 차볼게요.”

    발밑에서 이리저리 굴리던 공을 자리에 세운 재혁이 천천히 공과의 거리를 벌렸고, 공과 골대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위치로 이동했다. 그리고 공을 향해 이동하면서 천천히 호흡을 골랐고···.

    꿀꺽.

    그 모습을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가연이 침을 삼켰다.

    콜롬비아 전에서 두 번의 프리킥을 성공시킨 스페셜 리스트의 킥을 근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는게 아니었으니까.

    최대한 안력을 돋워 과연 재혁이 어떤 식으로 공을 차는지 면밀히 관찰할 생각을 하던 가연은 재혁의 하나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을 확인하고 더욱 눈에 힘을 주었고, 곧 뻐엉! 큰 소리와 함께 날아가기 시작한 공을 확인하곤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엄청난 속도, 그리고 골대를 앞에 두고 크게 떨어지는 궤적은 보통 선수들의 프리킥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어, 엄청나다!’

    골대 구석에 정확히 틀어박힌 공이 바닥에 떨어져 통통 거리는 모습까지도 모두 눈에 담았던 가연은 재혁의 프리킥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파워라는 것을 말이다.

    가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낙하지점을 살피고 있는 재혁에게 다가가 얼른 물었다.

    “최재혁 선수의 킥은 확실히 공에 힘이 실린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겠어요. 역시 제게 부족한 점은 근력이니, 그쪽에 대한 공부를 하는게 좋겠죠?”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방금 제가 보여드린 자세가 어떤 자센지 혹시 못 보신 거에요?”

    “자세요···, 아!”

    재혁의 말에 가연의 두 눈이 뒤늦게 반짝였다.

    재혁이 프리킥을 차기 위해 취했던 자세는 분명···.

    “제가 공을 차는 자세랑 일부러 똑같이 차신 거예요?”

    “바로 알아보실 줄 알았는데, 다른 생각에 빠지셨었나봐요?”

    “그, 그게···.”

    고개를 숙이고 말끝을 흐리는 가연을 보면서 재혁은 생긋 웃어보이며 재차 말했다.

    “공에 힘과 스핀, 그리고 그 외에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한 선행 작업은 얼마나 좋은 자세로 공을 찰 수 있느냐에 달려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가연 선수의 킥 자세는 굉장히 좋은 편이죠. 당장 이가연 선수와 신체 구조가 다른 제가 차도 공이 쭉쭉 뻗어 나가잖아요? 다만 이가연 선수 본인이 그걸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아 알려드리려고 그렇게 찬 거에요.”

    “그렇지만 제가 찬 프리킥은 최재혁 선수의 프리킥하고 너무 다른 걸요.”

    “그건 아마 이 부분하고, 이 부분, 그리고 여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계시기 때문일 거에요.”

    자세를 낮춰 검지로 가연의 오른 다리 부분들을 짚어주며 말한 것에 가연이 눈썹을 모으며 되물었다.

    “발목, 무릎, 그리고···, 마지막은 어디를 가리키신 거에요?”

    “고관절이요.”

    “아, 고관절이었구나.”

    재혁이 마지막에 가리킨 부분이 엉덩이 지근 부위였던 것에 묻기 부끄러웠던 가연은 황급히 머리를 통치곤 고개를 털었다. 그러면서 연신 좋은 생각, 좋은 생각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그런 가연을 바라보며 뺨을 긁적이던 재혁은 가연의 정신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설명을 계속 했다.

    “이가연 선수는 분명 좋은 자세, 그리고 제법 괜찮은 바디 밸런스를 갖고 계세요. 꾸준히 훈련을 해왔다는 증거겠죠. 하지만 문제라면 습관화 된 훈련이 킥을 찰 때도 계속 나온다는 점이에요.”

    “습관화 된 훈련이란게 대체 무슨···.”

    “드리블과 패스를 시도할 때 유연함은 그냥 나오는게 아니겠죠? 그만큼 관절을 부드럽게 사용하시니까 가능한 걸 거에요. 근데 그걸 킥을 찰 때도 똑같이 사용한다는 게 문제에요.”

    “···!”

    순간 가연의 얼굴에 느낌표가 떠올랐고, 재혁은 가연에 대한 평을 계속해서 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분명 신체 구조라던가, 근육의 발달이 다르긴 하지만, 같은 축구 선수라면 꾸준히 발달 시킨 근육의 부위는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을 얼마큼 활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었고, 재혁은 슬쩍 허리를 숙이고 가연의 무릎과 발등 부분을 찔러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근육은 확실히 잘 다져졌어요. 자세를 교정한다거나, 따로 특별히 훈련할 부분은 다른 게 아니라 활용에 달린 문제였던 거에요.”

    “그러면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할까요?”

    “먼저 공을 찰 때 발목을 고정시키는 연습을 해보도록 할까요? 그 다음엔 무릎, 그리고 그 다음엔 고관절을 사용한 킥까지 연습하는 거에요. 여기서 핵심은 그동안 습관처럼 관절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걸 막고, 근육을 확실히 뭉쳐서 힘을 실어 공을 찬다는 생각을 하면서 킥을 연습해야 해요. 할 수 있겠어요?”

    재혁의 물음에 가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겠냐는 선택지는 사실 그녀에게 없었으니까.

    “무조건 할 거에요.”

    얼굴 선이 얇아 언뜻 보면 축구 선수보단 모델에 더 가까워 보이는 외모를 지닌 가연이었으나, 독기가 잔뜩 서린 독종의 눈빛과 함께 답하면서 그녀의 가슴에 가까운 것은 태극마크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키면서 재혁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

    처음엔 짧은 패스를 주고 받으며 패스에 힘을 실어 차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점차 거리를 벌렸고, 어느 정도 공에 힘이 실리는 걸 확인한 재혁은 슬슬 프리킥을 차볼 준비를 하라고 했다.

    벌써? 라고 가연이 되물었고, 재혁은 그런 가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센스가 좋아서 그런지 금방 감을 잡은 것 같던데요? 이젠 직접 차보는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자신이 없는데···.”

    “자신을 가져요 누나.”

    이제는 제법 편해졌는지 서로를 누나, 동생이라 부르면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재혁은 통, 가벼운 패스를 가연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데드볼을 차기 전까지 경기장은 모든 게 멈춘 상태에요. 선수며, 관중이며, 심판까지 공을 차는 사람의 발끝만 바라보면서 언제 움직일까, 고민에 빠지는 순간이죠. 그런 모든 상황을 자신이 컨트롤 한다는 생각을 하면 제법 재밌지 않아요?”

    “너 나이치곤 생각이 되게 심오하구나.”

    “요지는 자신감을 가지란 소리였어요.”

    자신감이라는 재혁의 말에 가연의 두 눈동자가 다시금 빛을 품었다.

    사실 최근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실력보다 외모를 꾸미는데 신경을 쓴다는 사람들의 품평에 이골이 날 정도였으니까.

    살면서 화장품이라곤 선크림 외엔 발라본 적이 없는 가연은 평소 그런 비평에 콧방귀를 뀌었지만, 최근 전적이 좋지 않으니 자연히 어깨가 움츠려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재혁에게 조언을 듣고 자세를 교정하다보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본연의 모습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짧은 심호흡, 이후 가연은 자세를 다잡았고, 천천히 공을 향해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매 스텝에 힘을 가득 실었고, 왼발의 디딤발을 길게 뻗은 뒤 커다란 백스윙과 함께 오른 발등을 정확히 공의 중앙에 맞추는데 성공한 가연의 발끝을 떠난 공이 순간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날았다.

    ***

    “고오오올! 이가연 선수의 득점으로 여자 대표팀이 캐나다를 상대로 한 점 앞서 나갑니다!”

    “완벽한 프리킥이었습니다! 콜롬비아 전의 최재혁 선수가 생각나는 바로 그런 프리킥 말이에요!”

    “남자와 여자 대표팀, 둘 다 데드볼 상황에서 득점을 만들어 내네요.”

    “캐나다 선수들, 미국과 지난 친선전에서 비겼을 정도로 최근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고 있는데, 이가연 선수 프리킥엔 꼼짝도 못하고 맙니다. 크게 흥분한 모습이죠?”

    “경기가 다시 재개됩니다만, 이미 흐름을 완벽히 가져온 한국, 추가 시간까지 무난히 점수를 지켜내면서 승리합니다! 남자 대표팀에 이어 여자 대표팀도 친선전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내년 월드컵에서 여자 대표팀도 충분히 기대할만한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네요.”

    90분의 경기를 모두 지켜본 중계진들의 칭찬이 끝없이 이어졌다.

    6-0이라는 대패 이후 어떤 식으로 분위기를 바꿔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것이라 했었는데, 그 분위기를 승리라는 결과로 완벽하게 반전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오늘 MVP로 선정된 이가연에 대한 칭찬을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 놓았다.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선수였지만 그동안 외모에 실력이 가려져 있던 이가연.

    그 덕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 팬층이 특히 두꺼운 선수였지만, 그녀를 향한 비평은 특별히 더 날이 서있던 것에 다들 안타까워했는데. 오늘 경기로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주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특징인 활동력을 바탕으로 경기장 전역을 누볐고, 이따금 날카로운 패스로 공격의 시발점이 되어주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프리킥.

    전담 키커로 나선 이후 여러 번의 프리킥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다가 오늘 경기를 통해 마침내 결실을 맺는데 성공한 것이다.

    가연은 승리라는 달콤함과 함께 다가온 동료들의 축하를 받다가 마이크를 가지고 다가온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

    “이가연 선수. MVP로 선정된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경기에서 특히 빛을 발하셨던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경기가 막 끝난 탓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붉게 상기된 뺨을 쓸어내리는 이가연은 귓가로 들리는 많은 함성 소리에 밝게 웃었다.

    그녀를 응원해주는 팬들, 가족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에 힘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경기장에서 가장 멀지만, 경기를 전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재혁을 찾으면서 가연이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특별한 분에게 특훈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오늘 프리킥도 그 분 덕이 컸다고 봅니다.”

    “코치님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스탭 코치님께 훈련을 받은 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동생 코치님 덕이죠.”

    “동생 코치요?”

    “네. 덕분에 골도 넣었으니, 나중에 고기라도 사야겠어요.”

    “고기가 메뉴면 일인분 정도로는 안 끝낼 건데.”

    가연의 인터뷰를 높은 곳에서 지켜보던 재혁이 생긋 미소를 흘린 뒤 천천히 등을 돌렸다.

    지난 밤, 가연과 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하고 오늘 오전과 오후 훈련을 소화한 뒤 특별한 스케쥴이 없어 경기까지 보러왔던 것이다.

    다행히 훈련의 성과가 결과로 이어진 것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을 수 있었던 재혁은 본인도 작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기에 미소를 띤 얼굴로 관중석을 빠져나가면서 기숙사로 향했다.

    그리고 서랍장에 넣어 두었던 노트를 꺼내 펼쳤다.

    일기부터 시작해서 전술 노트, 그리고 훈련 일지에 관한 내용들로 빽빽한 노트를 쭉 넘기던 재혁은 지난 밤에 작성한 내용을 눈으로 살피며 고개를 주억였다.

    ‘여자 축구 선수들은 신체 구조상 부상을 당하기 쉽다. 하지만 가연 누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량이 엄청난데 비해 지금까지 타박상을 제외한 부상을 당한 적이 거의 없어.’

    신체 내구성.

    재혁은 그 기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연의 플레이에서 어느 정도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걸 확실히 자신의 재산으로 만들 수 있다면···.

    ‘시즌 중 중간에 이탈하는 일이 없게 되겠지?’

    “좋아, 그럼 오늘까지 확인한 것만 메모로 남기고 자자. 내일 경기를 생각하면 일찍 자야지.”

    한국에서 진행되는 두 번째 친선 경기.

    콜롬비아에 이어 상대하게 될 세르비아와의 경기를 기대하면서 재혁은 잠에 들었다.

    < 112. 관계의 내구성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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