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07화 (107/225)
  • < 107. 변수는 통한다 >

    처음 페커맨 감독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선수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다른 곳도 아닌 국제 친선전에서 한 점을 내주고 시작하라니.

    하지만 모두들 이어지는 감독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유리한 상황에서 경기를 조직적으로 이끄는 건 이미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하지만 압박감 속에서 조직력을 유지하는 걸 실패하지 않았나? 친선전이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담금질을 해야 한다.’

    스스로를 위한 담금질.

    본선 무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언급하자 선수들은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팔카오와 함께 센터 서클에 공을 내려놓은 하메스가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입밖으로 토해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경기장을 가득 채운 한국 관중들이 붉은 깃발들 뿐이었고, 귀로는 그들이 외치는 응원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겨내야 한다.

    그런 무언의 의미를 담은 눈빛을 동료들에게 보낸 하메스는 공을 앞으로 살며시 굴렸고, 팔카오가 굴러간 공을 뒤로 차면서 경기가 재개됨을 알렸다.

    팔카오의 패스를 받은 아길라르는 그와 함께 짝을 맞춘 C. 산체스와 짧은 패스를 주고 받았고, 최후방에서 공을 기다리고 있던 사파타에게 공을 건네준 후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방향을 전환해! 빈 곳을 찾아!”

    아길라르의 한 마디에 소유하고 있던 공을 우측면으로 이동시킨 사파타.

    그리고 그 장면을 벤치에서 지켜보던 페커맨 감독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좋아. 나쁘지 않아.”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할 실점 이후의 선수들의 패스워크는 훌륭했다.

    공간을 찾는 것도, 전개할 방향을 찾는 것도 이정도라면 손색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경기를 지켜보던 페커맨 감독은 비록 지금은 지고 있었으나, 오늘 경기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변수만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변수라.’

    필드 위에서 발현될 의외성.

    그에 관한 생각을 시작하자 페커맨 감독은 한 선수를 찾았다.

    콜롬비아의 선수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뛰고 있는 88번.

    현재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도하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소속으로 프리킥으로 선취점을 득점하는데 성공한 최재혁이 바로 그 대상이었다.

    페커맨 감독은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찜찜함에 미간을 살며시 모았다.

    분명 선수들에게 실점 이후 모든 게 시작된다고 이야기는 해두었지만···.

    ‘그 프리킥은 역시 보통 수준이 아니었어.’

    설마 하니 겨우 3분 만에 실점을 할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재혁에 대해 나름 분석을 해보았던 페커맨 감독은 한 차례 헛기침을 뱉으며 목을 가다듬은 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경기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기 위해 전술 지시 지역까지 나아간 것이다.

    그렇게 팔짱을 끼고 선수들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조정하던 감독은 다시 한 번 재혁을 살핀 뒤 읊조렸다.

    “아마 오늘 변수가 생긴다면 저 선수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 변수를 막기 위해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페커맨 감독은 선수들을 향해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소리치며 그들을 다그쳤고, 전개되는 공격 상황을 지켜보며 눈을 빛냈다.

    ***

    ‘이런 공세라니···!’

    오늘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장한 수용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아니, 분명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재혁이 득점을 성공시킨 3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 콜롬비아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되어 자신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최전방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팔카오, 하메스, 콰드라도가 이루는 삼각 편대의 매서움은 어떻게 그들이 남미 예선을 뚫었는 지를 바로 느끼게 해주는 지표가 되어 주고 있었다.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우측 터치라인을 따라 달리던 콰드라도가 가뿐한 드리블로 수비수인 김용구를 간단히 벗겨냈고, 그를 확인한 수용은 이를 악 물고 콰드라도를 향해 달려갔다.

    양 측면이 벌어진 3백의 빈 공간을 메꾸는 것은 후방에 배치된 그가 해야 할 일들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말처럼 성공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콰드라도의 앞을 막았다고 생각한 순간.

    퉁!

    “크윽!”

    수용이 다가오기 무섭게 콰드라도는 공을 그의 반대편으로 한 차례 길게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와 예리한 타이밍에 완벽히 돌파를 허용하고만 수용은 무너지는 밸런스를 간신히 다시 잡은 후 콰드라도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서 두어 발자국은 멀어진 콰드라도는 순식간에 박스 안으로 침투했고, 땅볼 크로스를 찔러 넣었다.

    측면에서 패널티 마크가 그려진 중앙, 일명 ‘프라임 타겟 지역’이라 불리는 장소를 향해서 말이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두가 이건 위험하다, 라고 느낄 때.

    공은 빠르게 굴러 팔카오의 오른발에 닿았고, 공의 각도만 살짝 틀어내는 슈팅으로 골문을 노린 팔카오의 슈팅은···.

    파앙!

    “칫, 막혔나.”

    김종건 골키퍼가 몸을 날리는 펀칭으로 간신히 골라인 바깥으로 걷어낼 수 있었다.

    한국을 응원하는 입장이라면 모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을 순간.

    특히 팀을 지도하고 있는 임종철 감독은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서서 선수들을 향해 독려의 목소리를 냈다.

    “정신차려! 다시 흐름을 가져오는게 중요해! 공을 일단 완벽히 소유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임종철 감독의 속에서도 스멀스멀 불안감이 꽃피어 오르고 있었고, 그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뻐엉!

    강하게 찬 코너킥이 길게 넘어와 먼 골 포스트 방향 쪽으로 깎아져 내려왔고, 그 공을 향해 여러 선수들이 몸을 던졌는데, 그 중에 공을 머리에 건드릴 수 있었던 것은 콜롬비아의 수비수, 사파타였던 것이다.

    터엉!

    마치 내려찍듯, 공중에서 공의 방향을 강하게 꺾은 사파타는 잔디 위로 떨어지면서도 끝까지 공의 진행 방향을 노려보았고, 팔카오의 슈팅을 선방했던 김종건 골키퍼가 뒤늦게 공을 향해 몸을 던졌으나 이번 만큼은 실점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든 장면을 전술 지시 지역에서 지켜보았던 임종철 감독이 하늘을 쳐다보며 안타까움이 가득 깃든 한숨을 토해냈다.

    이른 시간에 득점을 성공해놓고 그걸 결국 지켜내지 못하다니.

    상황이 이렇게 흐른다면 선제골을 너무 빨리 터트린 게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게 되리라.

    과연 그의 생각처럼 선수들의 어깨가 눈에 띄게 쳐지기 시작했다.

    특히 사파타와의 헤딩 경합에서 완전히 패배한 센터백 조한성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고, 주장인 수용도 선수들을 향해 기운 내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귀기울여 듣고 있는 선수가 없었다.

    오직 한 명.

    “흐음.”

    재혁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실점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재혁은 하이파이브를 주고 받으면서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가고 있는 콜롬비아 선수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술을 끌었다.

    ‘처음부터 저럴 목적이었던 건가.’

    패널티 아크 우측면에서 너무도 어이없게 프리킥을 내준 것도 의심스러웠지만, 골키퍼가 벽이 세워진 방향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것도 평범한 골키퍼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초보적인 실수였다.

    하물며 오스피나 골키퍼라면 그와 같은 영국 리그, 아스날에 소속된 골키퍼가 아니던가.

    물론 장점인 반사신경을 믿고 한 행동이라면 따로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갔군.’

    스코어는 이제 1-1로 균형을 맞춘 상황.

    전반전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가량.

    센터 서클에 최주성과 함께 올라온 재혁은 잠시간 생각에 잠기더니 주성에게 말을 붙였다.

    “주성이형. 제게 생각이 하나 있는데요.”

    “어, 무슨 생각?”

    공에 발을 올리고 경기를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던 주성은 대뜸 재혁이 말을 걸자 고개를 돌리며 물었고, 그런 주성을 향해 재혁은 머릿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천천히 늘어놓았다.

    “기회가 오면 바로 슈팅을 때릴래요? 상황이 어떻든, 일단 슈팅에 중점을 두시라는 말이에요.”

    “···슈팅에 중점을 두라고?”

    재혁의 말에 주성의 말꼬리가 높게 올라갔다.

    현재 K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주성은 직접적인 플레이보단 연계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스타일의 공격수였고, 그걸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었기에 재혁의 말에 자연히 고개를 갸웃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포스트 플레이를 포함한 공간 창출에는 능했지만 찬스를 만들고 직접 골문을 노리는 슈팅 능력은 다른 선수들에 부족하다는 점을 재혁이 모르고 있지 않을 텐데?

    재혁에게 어떤 이유 때문에 슈팅을 때리라는지 물어보려던 주성은 주심이 휘슬을 분 탓에 더 길게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없었고, 일단 공을 앞으로 굴린 후 전방을 향해 움직이며 고민을 계속 했다.

    공은 재혁을 거쳐 수용과 고정철의 사이를 옮겨 다녔고, 곧 왼쪽 측면 공격수로 출장한 신형민의 발을 향했다.

    실점으로 흥분한 탓인지 공을 길게 끌며 상대 수비수를 앞에 두고 연신 돌파할 구석을 찾아보던 신형민은 결국 틈을 찾지 못하고 재혁에게 공을 넘겨주었고, 형민에게서 공을 넘겨 받은 재혁은 천천히 주변 상황을 견제하며 전방으로 이동했다.

    그런 재혁을 노려보는 콜롬비아 선수들은 전과 달리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재혁만큼은 만만히 볼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미드필더인 아길라르 또한 공을 가지고 이동하는 재혁의 앞을 가로 막았지만 섣불리 달려들진 않았다.

    ‘언제든 위협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놈이다. 일단은 안정적으로 견제하는 게 우선이야.’

    그렇게 재혁과 일정 거리를 쭉 유지하며 재혁의 발밑에서 구르고 있는 공을 노려보던 아길라르는···.

    툭, 툭!

    “!”

    공의 양옆을 건드리며 상체를 흔드는 재혁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눈동자를 모았다.

    드디어 움직일 생각인가?

    어떤 선택을 내릴 거냐? 드리블? 패스? 아니면···.

    ‘직접 슈팅?!’

    재혁의 오른발이 뒤로 크게 올라가는 것을 발견한 아길라르는 설마, 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으나 입술을 깨물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벌어질 위험이 있다면 그걸 막아야 하는게 자신들의 임무였으니까.

    안일하게 대응하다가 실점을 하느니, 차라리 과하게 반응하는게 옳으리라.

    그런 생각과 함께 재혁을 향해 달려들던 아길라르는···.

    사락!

    ‘슛 페인팅!’

    재혁의 행동이 사실은 슈팅이 아니라 페인트 모션이라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황급히 자세를 낮췄다.

    다행히 재혁을 완벽히 놓치진 않은 상황인지라 어렵지 않게 그의 앞을 막을 수 있었다.

    아니,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퉁!

    “!”

    재혁이 가뿐한 터치 한 번으로 슈팅 각도를 여는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 했다면 말이다.

    무게 중심은 낮췄지만 방향을 읽혀 멀어지는 재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길라르.

    그는 늦게라도 공을 향해 발을 뻗었으나···.

    ‘망할! 당했···!’

    뻐엉!

    그의 발이 향한 곳에 더 이상 공은 없었다.

    발등으로 정확히 공을 때리고 후속 동작을 취하고 있는 재혁의 발을 제외하곤 말이다.

    다만 골대와 재혁이 슈팅을 때린 위치는 제법 거리가 있었기에 아길라르는 잔디에서 서둘러 몸을 일으키며 오스피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속도가 꽤 빠르고 정확한 중거리 슛이었으나.

    파앙!

    ‘그렇지! 오스피나 너라면 막을 줄 알았다!’

    오스피나가 양손을 뻗어 공을 펀칭해내며 선방에 성공했다.

    한국 측에선 안타까움에 젖은 탄식이, 콜롬비아 측에선 안도의 한숨이 자연히 흘러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직 플레이가 완전히 끝난게 아님을 알아차린 선수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발을 움직였다.

    “리바운드가 떨어진다! 막아!”

    “어떻게든 잡아! 일단 우리 공으로 계속 소유해야 해!”

    수비하려는 콜롬비아 선수들은 어떻게든 공에 머리를 맞추기 위해, 한국 선수들은 지금의 흐름을 놓치지 않게 공을 소유하려 들었고, 그런 공을 발밑에 놓을 수 있었던 것은···.

    퉁!

    ‘자, 잡았다!’

    한국의 공격수, 최주성이었다.

    공이 낙하할 지점으로 누구보다 먼저 이동해 가슴으로 공을 트래핑 한 후, 발밑에 공을 놓기 무섭게 압박해 들어오는 상대 수비수를 등 진 주성은 이를 악 물고 어떻게든 압박에서 버텨내며 공을 지키다가 눈에 들어오는 선수를 발견하고 그에게 패스를 연결해주었다.

    방금 슈팅을 시도 했던 재혁이었다.

    그제야 압박이 느슨해진 것을 느꼈던 주성은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감각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그 감각이 누구에게서 오는 것인지를 확인한 주성은 마치 홀린 것처럼 멈췄던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대 센터백 두 명 사이를 파고드는 기습적인 라인 브레이킹을 시도한 것이다.

    그런 주성의 움직임을 순간적으로 놓쳤던 콜롬비아의 센터백들은 당황한 얼굴로 서둘러 발을 움직여 속도를 냈다.

    라인 브레이킹 시도와 동시에 이루어진 재혁의 원터치 로빙 패스가 기가 막히게 연결된 탓이었다.

    ‘미, 미친! 거기서 저런 패스라니···!’

    필드 위에서 펼쳐지는 의외성.

    그 변수가 만들어진 것에 콜롬비아 선수들은 하나같이 놀라 주성의 뒤를 쫓았고, 재혁의 패스를 이어 받은 주성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재혁의 한 마디를 떠올리고 두 눈을 빛냈다.

    ‘기회가 오면 슈팅을···!’

    아직 패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재혁의 슈팅을 펀칭으로 쳐냈던 오스피나 골키퍼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거라면 노려볼만하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주성은 드리블 속도를 한 차례 조정한 후 슈팅을 때리기 위해 오른발을 길게 뻗었다···, 가.

    촤르륵, 투쾅!

    “크악!”

    삐이이익!

    옆에서 날아온 콜롬비아 선수의 태클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카드를 각오하고 아길라르가 몸을 날려 플레이를 끊어낸 것이다.

    결정적인 찬스가 파울로 끊어지자 한국 관중석들이 가득찬 객석에선 야유가 쏟아졌고, 주심이 꺼내든 카드가 붉은 색이 아닌 노란 색인 것을 확인하자 더욱 큰 소리로 불만을 표시했다.

    “저건 당연히 퇴장감이지!”

    “완벽한 한 골 찬스였다고!”

    “우우, 심판 좀 제대로 봐라!”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든, 이미 카드까지 정리가 끝난 상황.

    콜롬비아 선수들은 서둘러 수비에 가담하기 위해 진영으로 내려왔고, 오스피나 골키퍼는 수비벽에 세워진 선수들을 향해 지시를 내리며 위치를 조정했다.

    그에 맞춰 한국 선수들도 하나둘 그 사이에 스며들며 공격을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고, 태클 때문에 자리에 주저 앉아 있던 주성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면서 다가온 재혁을 향해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슈팅 동작이 조금만 빨랐어도 어떻게든 됐을 텐데 말야. 미안하다.”

    진심으로 면목이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난 주성은 천천히 발을 옮겨 공격 라인에 가담했고, 그런 주성을 빤히 바라보던 재혁은 작게 웃으면서 읊조렸다.

    “괜찮아요. 이게 딱 제가 원하던 구도였거든요.”

    패널티 아크 우측, 골대까지의 거리는 대략 18미터.

    수비벽에 세워진 선수는 다섯 명. 그리고 골키퍼의 자리는···.

    ‘확실히 전과 다르게 제대로 자리 잡고 있군.’

    모든 상황을 눈으로 확인한 재혁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짙어졌다.

    이것으로 모든게 확실해졌다.

    콜롬비아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선취점을 빼앗기는 상황은 아마 저들이 의도했던 상황이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과연 이것도 예상했을까?’

    짧게 호흡을 고른 후 천천히 공이 놓여 있는 곳을 향해 발을 옮기던 재혁은 왼발을 뻗어 디딤발을 길게 디뎠고, 오른발을 휘둘러 정확히 공의 중심이 되는 자리에 발등을 얹었다.

    곧 축구공과 발등의 임팩트가 맞닿으면서 파앙, 짧고 강한 공기 소리가 축구장에 울렸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소리는···.

    파슷, 철썩!

    “와아아아!”

    빠르고 강하게 휘어 들어간 슈팅이 골문 왼쪽 구석에 정확히 박히면서 골망을 흔드는 소리였다.

    오스피나 골키퍼는 궤도를 읽고 손을 뻗었으나 장갑 끝을 훑고 골망 안으로 빨려들어간 슈팅이 너무도 빨랐기에 실점을 하고도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고, 콜롬비아 선수들도 하나같이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골대 안을 구르고 있는 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이 컸던 것은···.

    “···역시 저 놈이 변수였나.”

    콜롬비아의 페커맨 감독이었다.

    처음 흐름을 빼앗기는 건 의식하고 있었으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흐름을 되찾은 후 이걸 또 뺏기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그는 불편한 얼굴로 주름진 이마를 긁적이며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눈을 감고 고민에 빠져 있었고, 그런 페커맨 감독을 슬쩍 훔쳐본 재혁은 자신에 찬 얼굴로 한 차례 미소를 흘려보인 후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뇌까렸다.

    “세계에서도···, 통한다···!”

    작은 한 마디.

    하지만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그 한마디를 뇌까리면서 재혁은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2-1.

    한국의 리드라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유지하면서 전반전이 끝이 났다.

    < 107. 변수는 통한다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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