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04화 (104/225)

< 104. 필요한 것 >

처음 한 점을 내주고 동점에 역전, 그리고 승부에 쐐기를 박는 득점까지 성공시키면서 맨체스터 시티는 오늘 승점 3점을 확보, 조별 예선을 선두로 통과하는 것을 확정지었고, 그 경기에서 3골을 모두 어시스트한 재혁은 잔디에 주저 앉아 호흡을 골랐다.

다른 선수들처럼 응원을 해준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며 보답이라고 하고 싶었지만, 90분 동안 모든 체력을 소진한 탓에 제대로 서있을 힘도 없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후반 45분에 모든 걸 걸었던 거지만 말이지.’

만약 전반전의 활약으로만 평가했다면 하프 타임이 찾아왔을 때 다른 선수와 교체가 되었어도 할 말이 없었으리라.

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를 믿는다고 했고, 재혁도 그 점을 믿고 오늘 경기를 계획했던 것이다.

결과가 나름 만족스럽게 나온 것에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며 슬슬 몸을 일으키려던 재혁은 누군가 다가온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고, 오늘 경기장에서 몇 번이고 마주쳤던 상대를 말을 건넸다.

“수고하셨어요, 이니에스타 선수.”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 이니에스타였다.

이니에스타는 재혁의 말에 한 차례 쓰게 웃더니 손을 뻗어 그가 일어나는 것을 도운 뒤 말했다.

“결국 올해 너를 세 번 만나 세 번 모두 물을 먹었군. 덕분에 특히 인상 깊은 한 해가 될 것 같다.”

“저 혼자 한 일이 아니잖아요? 팀 대 팀이 맞붙었던 거죠.”

“팀 대 팀이라. 그렇지. 축구는 11명 대 11명이 공을 놓고 경쟁하는 스포츠니까. 그렇게 말을 하니 어째 더 속이 쓰리군.”

재혁이 건넨 말에 바로 수긍한 이니에스타는 눈빛을 바꿔 눈앞에 있는 어린 친구를 자세히 살폈다.

아니, 그냥 어린 친구가 아니었다.

이미 재혁은 나이로 판단할 수 없는, 한 명의 어엿한 프로 선수인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선수가 아닌,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스타의 자질을 타고난 선수 말이다.

‘만약 이 녀석과 함께 뛸 수 있었다면···.’

잠깐이지만 상념에 잠겼던 이니에스타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상일 뿐이지만, 그 상상이 이루어지기 힘든 종류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종류의 선수와는 같이 경기를 뛰고 있지 않던가?

오늘은 비록 결과가 좋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니에스타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맨체스터 시티의 벤치에서 빠져나와 발베르데 감독, 그리고 다른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살핀 후 말했다.

“너를 호주에서 직접 영입한게 과르디올라 감독님이라고 하셨지.”

“잘 알고 계시네요?”

“이젠 네 이야기도 제법 유명해졌거든.”

몇 번이고 신문과 인터넷에서 읽은 적이 있는 재혁의 이야기에 대해 짧게 설명한 이니에스타. 그는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재혁에게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전하며 손을 건넸다.

“배울 게 많은 분이라는 건 같이 지내는 너도 잘 알겠지. 함께 할 수 있을 때 많이 배워둬. 아무리 파고, 또 파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분이니까.”

“경쟁 팀의 선수인데, 그런 식으로 응원해주셔도 괜찮은 거예요?”

재혁의 말에 이니에스타는 피식 실소를 흘린 후 답했다.

“경쟁 상대니까 그런 거야. 오늘은 비록 졌지만, 다음에 만났을 땐 서로 더 높은 곳에서 만나게 될테니까. 그 만남을 기대하기 위해서 말이지. 거기서 이기면 돼.”

“거기서도 전 져줄 생각이 없어요.”

“그래야지. 그래야 프로니까. 그리고 그런 상대를 이겨야 나도 의욕이 나지. 그럼 슬슬 교환할까?”

“교환이요? 아.”

이니에스타가 유니폼 상의를 벗는 것을 확인한 재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것도 벗었고, 그렇게 서로 입고 있던 유니폼을 교환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이니에스타는 재혁과 작별 인사를 나눴고, 멀어지는 이니에스타를 빤히 바라보던 재혁도 슬슬 발을 움직였다.

그렇게 다른 선수들과도 인사를 나눈 뒤 라커룸으로 향하던 재혁은 옆에서 들린 목소리로 또 다시 고개를 옮겼다.

“그 전에 갈 곳이 있어.”

코치가 먼저 갈 곳이 있다는 말에 재혁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곧 그가 가리키는 방향이 어딘지를 확인하고 뺨을 긁었다.

“매스컴하고 인터뷰를 꼭 해야 해요?”

“해야지. 오늘 경기의 주인공은 너니까.”

두 골을 득점한 아구에로가 있는데 자신이 주인공이라니.

재혁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지자, 코치가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Man of the Match로 선정된 거 축하한다. 그럼 가서 얼른 끝내고 와. 옆에서 기다릴테니까.”

***

타박, 타박.

재혁의 유니폼을 손에 쥐고 라커룸으로 돌아온 이니에스타는 곧장 샤워실로 향했고, 머리를 식혀주는 물줄기를 한동안 가만히 맞고 있다가 슬쩍 옆에 있는 인물을 향해 말을 붙였다.

“왜 안 왔어? 말을 붙여보고 싶어하는 눈치더니.”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요.”

이니에스타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한 부스케츠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올렸고, 참고 있던 숨을 토해내며 말을 계속 했다.

“그리고 괜한 질투가 생길 것 같아서요. 나중에 경기에서 이기면 찾아갈 생각입니다.”

“질투라.”

부스케츠가 읊조린 짧은 한 마디에 이니에스타는 깊게 공감했다.

재혁만이 필드 위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함.

그것에 대한 질투를 같은 미드필더라면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니에스타는 그런 부스케츠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론 부정하며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 감정을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굳이 질투까지 할 필요는 없어. 우리가 원하는 건 결국 11명과 11명이 벌이는 시합인 거지, 둘이서 경쟁하는 축구가 아니니까.”

“···그렇겠죠.”

“그러니까 다음에 만나면 그때 제대로 본 때를 보여주자고. 바르셀로나의 11명이 하는 축구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면서 말야.

말을 끝낸 이니에스타는 샴푸를 향해 손을 뻗었고, 한동안 그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부스케츠는 수도를 잠그며 말했다.

“좋은 말씀 고마워요. 오늘도 이렇게 도움만 받는군요.”

“도움을 주는 일이야 주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좋은 말은 글쎄···. 그건 나중에 그 녀석한테 고마웠다고 말하는게 낫겠지.”

“예? 그게 무슨···.”

이니에스타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없었던 부스케츠가 미간을 모았고, 이니에스타는 거품이 일어난 머리를 대충 행구면서 답했다.

“그 말을 해준 게 최재혁, 맨체스터 시티의 그 꼬마거든.”

“···.”

“뭐. 좋은 의미로 이해했다면 다행이지만, 일단은 적에게 조언을 받은 거니까. 기분이 썩 편하진 않겠지?”

끌끌, 이니에스타는 장난기가 가득 어린 미소로 부스케츠를 살폈고, 발을 떼지 못하고 있던 부스케츠는 깊은 한숨을 한 차례 길게 토해낸 뒤 자리를 벗어났다.

“···다음에 만나면 확실히 고마웠다고 답해야겠군요. 물론 경기장에서 말이죠.”

드르륵, 탁.

말을 끝냄과 동시에 빠져나간 부스케츠.

그런 부스케츠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바라보던 이니에스타는 생긋 웃었다.

앞으로 필드에서 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남은 시간도 제법 즐거울 것 같았던 것이다.

***

순식간에 10월이 지나가고 11월이 찾아왔다.

그 말인즉 올해 마지막 A매치 경기들이 찾아온다는 의미.

물론 대륙 내에서 진행되는 몇몇 컵 대회들이 12월에도 있긴 했지만, 공식적인 피파 일정은 이번 11월에 모두 끝이 나는 것이다.

내년에 진행될 월드컵에 진출한 국가들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기간동안 스쿼드를 확실히 정비하기 위해 경기 조율을 서둘렀고,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 한 국가들도 연습 상대가 필요한 국가들에게 호출을 받으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중에는 대한민국의 감독, 임종철도 포함되어 있었다.

직접적으로 경기 일정을 조율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평가전에 소집할 선수들 선발에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신중을 기하던 종철은 마침내 발표할 23인을 확정지었고, 다음 날 진행된 발표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미 카메라를 손에 쥐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잔뜩 모여있는 것을 확인한 종철은 한 차례 목을 가다듬은 후 진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이른 시간부터 많은 분들이 와주셨군요. 그만큼 한국 축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는 이야기겠지요.”

“감독님. 선수들을 선발하실 때 고려하신 점들이 궁금한데, 혹시 답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않은 질문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이번에 신경을 쓴 부분은 ‘필요성’입니다.”

“필요성이요?”

뜻밖의 대답이 나온 것에 몇몇 사람들이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고, 종철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선발한 선수들은 그동안 제가 생각했을 때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뽑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많은 분들이 예상한 것과는 다른 선수들이 많을 수 있을 것 같군요.”

“부족하다고 느끼시던 부분이 어떤 거였습니까?”

“혹시 다른 누군가의 압박 때문에 뽑게 된 선수가 있다는 말씀을 돌려서 표현하신 겁니까?”

“그렇다면 제외된 선수들은···.”

종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자들이 제각기 손을 들며 목소리를 냈고, 이런 혼란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종철은 이마를 긁적인 뒤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길어져봐야 논란만 생길 것 같으니 이만 선수 명단을 발표하겠습니다. 골키퍼가 3명, 수비수가 8명, 미드필더가 10명, 그리고 공격수가 2명입니다. 먼저 골키퍼에선 고베에서 뛰고 있는 김종건 선수, 오사카의 이종현 선수 그리고 대구의 정현우 선수이고, 이어서 수비수들은···.”

임종철 감독의 말이 이어지기 무섭게 기자들의 손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수비수, 미드필더, 마지막으로 공격수까지 모두 발표한 임종철 감독.

그런 감독의 말을 조용히 받아적고 있던 기자들은 명단을 뒤늦게 확인한 뒤 놀라 소리쳤다.

“자, 잠깐만요. 임종철 감독님! 미드필더에 포함되어 있는 이 선수를 정말 선발하실 생각이십니까?”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야 당연히 최재혁 선수에 대한 이야기죠! 아직 겨우 18살, 내년에 19살이 될 어린 선수입니다! 이 선수를 뽑는 건 감독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셨던 필요성에 반하는 선수가 아닙니까?”

“월드컵이 바로 내년입니다. 겨우 반 년이 남았어요. 그런데 아직 어린 선수를 뽑아 테스트 해보시겠다는 겁니까?”

“최근 운이 좋아 세계적인 선수들 사이에서 조금 활약을 했다지만, 겨우 그런 이유로 태극 마크를 맡기기엔···!”

시작됐군.

종철은 이마를 매만지며 아무도 듣지 못 할 정도로 조그맣게 한숨을 토해냈다.

결국 국가대표 감독이란 이런 자리다.

어떤 선택을 취하더라도 누군가는 그를 향해 손가락을 뻗는, 그런 자리 말이다.

게다가···.

‘협회에서 뽑으라 일러준 명단에 포함된 선수들을 단 한 명도 뽑지 않았으니. 당연한 수순이었지.’

아마 지금 저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기자들 중 반 이상은 협회에 속한 인물들에게 무언가를 주워먹고 저러고 있는 것이리라.

지금 그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로부터 말이다.

만약 이번에 이어질 친선 2연전의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여론전이 열릴 것이고, 최악의 경우···.

상념을 이어가던 종철이 순간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쓰게 웃었다.

자신이 왜 이 독이 든 성배를 취하겠다고 마음 먹었던가?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종철은 곧 정신을 차렸고, 끝없이 질문을 이어놓고 있는 기자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그럼 묻겠습니다. 해당되는 선수가 현재 최고 리그들 중 하나인 영국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팀에 속해 있고, 꾸준히 출장을 보장받고 있는 선수인데, 저를 보고 그 선수를 뽑지 말라는 겁니까? 겨우 나이 때문에?”

“그래봐야 최재혁 선수가 정기적으로 출장한 건 중요도가 떨어지는 리그 컵 위주였습니다!”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도 있죠.”

“그건 아직 조별 예선에 불과한···!”

“그럼 다시 한 번 묻죠. 그 조별 예선에 속한 바르셀로나를 두 번이나, 아니. 친선 경기들까지 포함해 세 번이나 무너뜨린 선수가 누구죠?”

“···!”

“이번 선수 선발에 불만이 많다는 건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두 경기가 모두 끝이 난다면, 그때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군요.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 입니다. 감사합니다.”

“어어, 임종철 감독님!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그 말씀은 이번 친선 경기들의 결과가 좋지 않다면 사임까지···!”

“베스트 11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기자들의 목소리를 끝내 무시하면서 회장을 빠져나간 종철.

그런 종철의 모습은 온라인 생중계를 타고 전국으로 퍼졌고···.

[시원했다! 감독이라면 저런 배짱이 있어야지!]

[전 오히려 보기 불편할 정도로 건방진데요? 무슨 자신감이래?]

[상대가 콜롬비아랑 세르비아에요. 이거 완전 명예로운 사임감인데요? 현 피파 랭킹 5위인 콜롬비아와 나름 유럽에서 죽창도 여러 번 꽂은 전적이 있는 세르비아가 상대라고요. 이번엔 임종철 감독 사직서에 죽창을 꽂겠네요.]

[그래도 결과는 지켜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전 오히려 오늘 일 때문에 경기들이 더욱 기대되네요. 오랜만에 직관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온라인 상에서도 논란의 중심이 되어 한동안 커뮤니티들을 시끌시끌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소집일이 다가왔고, 한 손에는 여권, 다른 손에는 캐리어를 끌면서 인천 공항에 도착한 재혁이 입국 절차를 끝내고 공항 밖으로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향한 플래쉬들이 사정없이 터지기 시작했다.

< 104. 필요한 것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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