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자격의 길 >
투웅, 투웅, 투웅!
공을 마치 발에 붙이고 이동하듯, 짧게 치고 달리면서 드리블을 시작한 메시는 점차 드리블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고, 그 옆을 바짝 쫓던 페르난지뉴는 미간을 구겼다.
분명 공을 가지고 드리블을 하는 쪽은 메시인데, 어째서 자신이 속도에서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수비를 포기할 순 없었으니, 페르난지뉴는 어떻게든 메시의 어깨에 달라붙어 그의 유니폼을 붙잡고 늘어졌지만···.
투욱!
“···크윽!”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치고 달리던 메시가 갑자기 속도를 죽이면서 정반대 편을 향해 방향을 꺾었고, 그 탓에 메시에 바짝 달라 붙어 있던 페르난지뉴는 균형을 잃고 말았다.
공을 옆면만을 건드리면서 회전하는 메시 특유의 턴에 완전히 당하고 만 것이다.
목표를 잃은 페르난지뉴는 순간적으로 메시를 놓쳤고, 그 짧은 틈을 노리고 메시는 방향 전환과 동시에 가속했다.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깔끔하게 페르난지뉴의 압박을 벗겨낸 것이다.
그 장면을 본 중계진, 해설자, 그리고 관객들이 흥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벌써 20미터 넘는 거리를 드리블로 전진한 메시였으나, 그는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의 양옆으로 데울로페우와 수아레즈, 그리고 이니에스타가 공간을 찾아 달리고 있었지만 메시는 꿋꿋하게 스스로 공을 가지고 박스 안으로 진입했고, 슈팅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달라붙는 스톤스는···.
사락!
“!”
아주 미세하게 벌어진 그의 다리 사이를 공략하고 뚫어내면서 순식간에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만들어냈다.
단어 그대로 마법같은 드리블에 홈을 가득 채운 관중들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고, 메시는 그런 관중들의 눈동자에 또렷하게 각인 시켰다.
철썩!
바르셀로나의 10번,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득점과 동시에 얼마되지 않는 원정팬들이 고함을 질렀고, 메시는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가 주먹을 쥐어 보인 후 기뻐하며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런 바르셀로나 선수들과는 비교가 될 정도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한숨을 뱉던가, 애꿎은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다.
특히 패널티킥을 실축판 아구에로는 허탈한 얼굴로 골망에 들어가 있는 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모두의 시선을 외면하려 했다.
지금 이 실점은 자신이 실축을 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테니까.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에 고개를 돌렸던 것이고, 재개된 경기에서 아구에로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다리에 힘을 주어 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한 점을 되찾아 오면 된다.
일단 동점으로 경기의 균형을 맞춘다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런 생각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달렸던 것이었으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기만 했다.
전반 37분, 다시 찾아온 기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케빈!”
파앙!
모처럼 공을 잡게 된 실바가 중앙에서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케빈을 발견하고 패스를 찔러 주었고, 센터 서클에서부터 공을 받게 된 케빈은 그대로 속도를 살려 바르셀로나의 중원을 파고 들었다.
케빈의 앞을 가로막기 위해 이니에스타가 달려들었지만.
투웅!
“···!”
장기인 한 템포 빠른 터치로 가볍게 공을 밀어차며 순식간에 이니에스타의 압박에서 벗어났다.
그 뒤를 커버하기 위해 달려드는 부스케츠가 있었지만 이미 케빈은 어디로 패스를 줄 것인지 마음을 정한 상황.
그는 잔터치로 공을 한 차례 꺾어 부스케츠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낸 뒤 인프론트로 감는 중거리 패스를 찔러 넣었고.
터엉!
그 패스는 정확히 감겨 피케와 움티티 사이를 파고 든 아구에로의 가슴으로 향했다.
케빈의 기가 막힌 패스를 온 신경을 다해 가슴으로 받아낸 아구에로는 트래핑과 동시에 곧장 방향을 틀어 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터치 한 번으로 만들어진 골키퍼와의 일대일 찬스를 바라보며 홈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대에 찬 시선을 아구에로에게 보냈으나.
투웅!
“아아! 왜 거기서 골대를!”
“조금만 더 안쪽으로 감아차지···!”
아구에로가 때린 슈팅은 골망으로 향하지 못 했다.
골키퍼의 장갑을 벗어나 날아간 공은 그대로 골대를 때리고 멀리 튕겨 나간 것이다.
완벽한 찬스가 또 한 번 무산 된 것에 팬들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조금만 안쪽에 맞았더라면 확실한 득점 코스였을 것인데.
관중들은 오늘만 벌써 두 번째 기회를 날려버린 아구에로를 지켜보며 참담한 심정을 숨기지 못했고, 아구에로 본인도 부담감과 함께 쌓인 스트레스가 엄청났는지 평소와 달리 거칠게 잔디를 짓밟으며 감정을 표출했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이 났고 라커룸에 모여 앉은 선수들을 바라보며 과르디올라 감독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감독이 조용하니 선수들도 그를 따라 침묵한 채로 목만 축이는 상황이 이어졌고, 팔짱을 낀 채로 선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지켜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이 뒷목을 긁적이더니 퉁명스레 말했다.
“지금 우리가 90분을 전부 끝내고 온 건가? 어떻게 된 게 경기에 대해 떠드는 선수가 한 명도 없는 거지?”
“···.”
“조별 예선을 어떻게든 통과했다는 걸로 만족한 건가? 정신차려! 최고가 목표라면 매 경기를 이길 생각을 해야지,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면 안되는 거라고! 일단 스톤스, 오타멘디! 가장 시끄럽게 떠들어줘야 할 너희들이 제일 조용하잖아!”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지목을 당한 두 선수는 몸을 움찔거린 뒤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감독은 그 뒤로도 선수들을 한 명씩 지목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게 실바와 케빈, 그리고 페르난지뉴를 포함한 미드필더들도 한 소리를 들었고, 좌우 풀백을 맡게 된 델프와 워커도 좀 더 적극적으로 공세에 참여할 것을 주문한 후 과르디올라 감독은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우승이 목표라는 뜻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가서 후반전엔 우리가 왜 우승을 목표로 하는지, 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줘라.”
“예!”
“후반전도 일단은 이대로 나간다. 하지만 내가 지시했던 세부 사항들을 잊지 말 것. 그럼 계속 지켜보겠다.”
말을 끝낸 과르디올라 감독이 먼저 자리를 떠났고, 주장인 실바도 선수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한 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구에로는 홀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슬그머니 얼굴을 들었고, 선수들이 빠져나간 통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벤치에 앉아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찾아가 물었다.
“왜 저에 대해선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신 겁니까?”
과르디올라 감독이 벤치에 등을 받치고 있던 상체를 슬쩍 기울여 아구에로를 찾았고, 감독과 눈을 마주친 아구에로가 계속 말했다.
“패널티 킥을 실축하지 않았더라면, 케빈이 만들어준 찬스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분명 지금 스코어는 2대1로 저희가 앞서고 있었겠죠. 그런데 왜 저에 대해선···.”
“지금 그 이유가 나왔지 않나.”
“예?”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을 말야. 괜히 내 입만 아프면 서로 손해이지 않나?”
“···!”
아구에로의 눈동자가 반짝였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슬쩍 미소를 보인 후 아구에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우리의 10번이다. 오늘 난 너를 교체해줄 생각이 없어. 앞으로 남은 45분 동안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도록. 그럼 이제 필드로 돌아가봐. 주심도 올라가는 군.”
감독의 말에 무어라 더 말을 해보려 했던 아구에로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 후 센터 서클을 향해 달려나갔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런 아구에로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리고 재혁, 너도 같은 이유로 이곳에 온 거냐?”
방금까지 아구에로가 서있던 자리에 나타난 재혁을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이 물었고, 재혁은 쓰게 웃으며 이마를 긁적였다.
“전반전 내내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활약이 미미했잖아요? 혹시 저를 위해 따로 준비하신 한 마디가 없나 해서 와봤죠.”
“바보같은···.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티났어요?”
“···.”
살짝 턱끝을 기울이며 되묻는 것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할 말을 잃었고, 짧게 미소를 흘려보이던 재혁이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후반전에 전술을 바꿀 생각이 없으시다는 말씀은, 제 위치는 여전히 그대로라는 의미겠죠?”
“위치만 그대로가 아니야. 내가 너를 보는 시선도 그대로지.”
“···?”
“임종철 감독과 함께 있었을 때, 내가 했던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나?”
과르디올라 감독이 물은 것에 잠시 눈썹을 모았던 재혁은 금방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곤 아, 라는 탄성을 흘렸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런 재혁을 똑바로 마주보며 여전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훌륭한 선수임을 증명하는 길은 결국 트로피의 유무다. 나는 네게 트로피로 가는 길을 약속했지만, 그 길을 걷는 건 너임을 명심하라는 말. 다행히 잊진 않고 있었나 보군.”
“그 자리에서 감독님께서 제게 해주신 유일한 말이었으니까요. 잊을 수 없죠.”
“그래. 그 말대로 나는 네게 계속해서 길을 보여줄 거다.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은 너일테고···.”
넌지시 말꼬리를 늘리던 과르디올라 감독이 턱을 괴었고, 잔잔한 눈빛으로 재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경기는 그 길을 과연 네가 어디까지 걸을 수 있나, 보여주는 경기가 되겠지. 그러니까 너도 남은 45분간 맘껏 뛰어 봐.”
“후후, 알겠어요.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거였어요.”
“···그 말?”
“마음껏 뛰어보라는 바로 그 말이요.”
“!”
툭툭, 축구화 끈을 다 묶은 후 자리에서 일어난 재혁이 신발코로 잔디를 깎았고, 천천히 필드를 향해 걷기 시작하면서 재차 중얼거렸다.
“오늘 경기를 뒤집으려면 45분이 모두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
“겨우 한 점 앞서나가는 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
선수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한 발베르데 감독은 불끈 쥔 주먹처럼 두 눈을 뜨겁게 불태우며 말했다.
“최소 2점! 캄프누에서 진 복수를 하려면 이곳에서 우린 완전한 승리를 목표로 한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
“예!”
“좋았어. 후반전도 우리 흐름대로 가보자!”
일장연설을 끝마친 발베르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수들의 기운을 북돋았고, 라커룸을 빠져나가는 선수들 한 명, 한 명과 손을 마주쳤다.
그렇게 메시의 순서가 오자 특별히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해주고 있다. 무겁겠지만, 네가 우리의 별인 것을 어쩌겠냐.”
“저도 아직 쉬고 싶은 맘이 없습니다. 갚을 건 갚아야죠.”
씨익, 발베르데와 비슷한 미소를 떠올렸던 메시는 그렇게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고, 필드로 빠져나오면서 보이는 풍경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가득찬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이 바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하나같이 아쉬움에, 하지만 희망을 품은 얼굴로 끊임없이 팀을 위한 응원곡을 부르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메시는 쓰게 웃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겨야 한다. 캄프누에선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린 메시는 맨체스터 시티 쪽 벤치에 앉아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확인하고 슬슬 표정을 굳혔다.
‘저 분 앞에서 경기를 대충 뛸 순 없으니까.’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그를 도와준 최고의 감독.
지금은 비록 적이지만, 적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것을 속으로 다짐하면서 메시가 필드 위에 섰고, 다가온 동료들과 손을 마주치며 서로의 기운을 북돋았다.
그렇게 경기에 모든 선수들이 올라온 것을 확인한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호오. 저 녀석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군.”
시작과 동시에 전력으로 달려드는 선수 한 명을 발견하고 메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늘색 유니폼에 88번을 달고 있는 최재혁.
그가 지금 자신의 발밑에 있는 공을 노리고 달려오고 있던 것이다.
과연 이걸 네가 뺏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과 동시에 공을 뒤로 빼내 부스케츠에게 넘겨주었던 메시의 얼굴이 순간 굳고 말았다.
‘저, 저걸 계속 따라간다고?!’
재혁은 자신의 발밑에 공이 없자 그대로 자신을 지나쳐 공이 향하고 있는 부스케츠를 향해 달려든 것이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한 스프린트에 메시는 한 번 놀랐고···.
“오오, 재혁이가 붙는다!”
“세상에, 공이 굴러가는 속도를 그대로 쫓아간거야?!”
“그냥 쫓는 게 아니야, 저 속도로 부딪치면···!”
쿠웅!
‘따라잡았다···!’
‘이걸 따라잡았다고?!’
공을 받음과 동시에 어깨를 부딪치면서 들어오는 재혁의 압박에 부스케츠와 메시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 102. 자격의 길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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