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연결 고리 >
스완지에서 훈련을 끝내고 약속 장소로 향한 수용은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닌 사람을 발견하곤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목적지는 맨체스터라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감독님? 여긴 스완지인데요?”
“사람이 목표를 정했다고 꼭 그 길로 바로 가란 법은 없지 않나? 이쪽도 들리고, 저쪽도 들리면서 경유도 해보는 거지. 길은 많으니까.”
“그렇습니까.”
스완지 내에 위치해 있는 한 커피 전문점에서 임종철과 만난 김수용은 일단 악수를 나눈 후 카페 안으로 향했고, 주문한 커피가 준비됐다는 종업원의 말에 두 잔을 양손에 쥐고 빈 자리를 찾았다.
어쩌다 보니 성사된, 예정에는 없던 만남이었지만 수용은 종철이 찾아올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기에 크게 당황한 기색은 아니었다.
유럽을 방문하는 감독들이라면 꼭 그를 만나고 가곤 했으니까.
수용이 건네준 커피를 종철이 받으며 고맙다고 답하며 자리에 앉았고, 종철이 앉는 자리에 맞춰 건너편에 의자를 붙인 수용이 그를 향해 물었다.
“아마 기자들 앞에서 맨체스터라는 단어에 힘을 주신 것은 절 배려해주기 위해서겠죠?”
“음?”
뜬금없이 맨체스터 이야기를 꺼낸 수용을 지켜보며 종철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수용은 커피잔을 탁자 위에 천천히 내려놓으면서 말을 이었다.
“요즘 재혁이가 가장 핫하잖아요? 만약 스완지에 먼저 들린다고 하셨다면 지금쯤 맨체스터에 몰려 있을 한국 기자들이 이곳에 있었겠죠.”
“하하, 그렇겠지. 그런데 그게 왜 배려라고 생각한 거지?”
“일단은 제가 대표팀의 주장이니까요. 그리고 재혁의 포지션도 저와 같은 미드필더. 재혁이 팀에 합류하게 된다면 그에 관한 성장통을 직격으로 맞게 될 건 아마 제가 되겠죠. 오늘 스완지에 오신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닌가요?”
차분한 얼굴로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는 김수용을 가만히 바라보던 종철은 이내 피식 실소를 흘렸다.
어릴 땐 정말 철이 없었던 선수였는데, 어느새 이만큼 성장해 상황을 읽는 눈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그 기특함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터졌고, 종철의 미소를 확인한 수용은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자신의 예상이 틀린 건가?
하지만 그것 말고는 감독님이 딱히 스완지로 올 이유가 없을 텐데?
수용은 연신 고개를 갸웃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고, 종철은 수용의 말에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로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확실히 요즘 축구와 관련된 기사들을 보면 재혁이를 대표팀에 합류 시켜야 하네, 마네, 라는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지. 그만큼 소속팀에서 활약이 뛰어나니까 사람들의 관심도 뜨거운 걸거야.”
“그렇다면 역시 감독님께선···.”
“하지만 선수를 선발하는 건 나야. 그리고 그런 선수들과 호흡을 맞출 건 같은 동료인 대표팀 선수들이고, 또 그들을 이끌 건 주장인 너지.”
“···!”
“내가 맨체스터로 가기 전, 스완지에 들린 이유는 자네를 배려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자네에게 주장이란 직분이 주어졌기 때문이고, 그 책임을 다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라네.”
달칵.
커피잔을 내려놓은 종철이 수용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고,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재혁이 팀에 합류하게 된다면 어떨거 같나? 솔직한 심정을 말해주게. 그러면 후에 참고하도록 하겠네.”
“···그 친구가 저랑 같은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될 걸 알면서도 말입니까?”
“무엇이든 가감없이, 솔직한 심정이나 감상이면 돼. 주장이니까.”
마지막엔 또 한 번의 미소를 보이며 수용에게 답을 한 종철은 내려놓았던 커피 잔을 다시 쥐었고, 수용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잔을 타고 떠오르는 아지랑이가 조금 옅어졌을 때 즈음, 수용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최근 재혁이 몸을 쓰는 방법에 대해 깨우친 것 같지만,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 선수들을 상대로 지난 경기들처럼 몸을 굴린다면 근육이 다 크기 전에 상할 위험이 큽니다. 하물며 그 무대가 국가전이라면 달려드는 선수들의 압박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죠.”
“흐음, 틀린 말이 아니야.”
“그런 상태에서 부담감이 쌓인다면 오히려 선수 본인에게 대표팀 합류는 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일찍이 어려서부터 혹사를 당해 몸이 망가진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면 아직 재혁을 소집하는 건 이르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팀의 입장에서도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한 뒤 슬쩍 고개를 들어 종철과 눈빛을 교환한 수용이 두 눈을 반짝이며 계속 말했다.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이유의 욕심 때문이라면 개인적으로 재혁의 소집을 반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영해야겠죠. 선수 본인이 어떻게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미래를 이어주기 위한 연결 고리로 재혁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그렇지?”
감독의 질문에 수용은 또렷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년이 지나고 나면 전 더 이상 대표팀에 없을 테니까요.”
“흠. 결국 그쪽으로 마음을 정한 건가. 조금 더 함께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기대는 감사합니다만 이번 월드컵이 제가 태극 마크를 달고 뛰게 될 마지막 국가대표 무대가 될 겁니다. 그래도 떠나기 전···, 저도 한 명쯤은 남기고 싶달까요? 백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그보다 먼저 은퇴를 선언한 선수에 대해 떠올리자 수용은 쓴웃음을 흘리며 커피를 삼켰다.
현역으로 활동할 때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으면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필드 위를 누볐고, 바닥에 몸을 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선수.
숫자로 비교하면 겨우 한 명이 빠진 것과 같았지만, 그때부터 팀의 기간이 흔들린 것을 생각하면서 수용은 입술을 깨물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맡기고 떠나셨는데, 뵐 면목이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마지막 만큼은 제대로 매듭을 짓고 싶었다.
비록 백 선배가 떠나면서 자신에게 했던 말을 모두 지킬 순 없었지만, 적어도 후배에게 의지를 이어주는 일만큼은 똑바로 말이다.
커피잔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가락에 꾹 힘을 주고 있던 수용은 참고 있던 숨을 토해낸 후 애써 커피를 삼켰고, 그런 수용을 가만히 지켜보던 종철은 생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주장의 마음은 잘 알겠네. 커피를 다 마시면 늦기전에 떠나볼까.”
“벌써 가시려고요? 대화는 이걸로 끝인가요?”
“딱히 더 나눌 이야기가 없지 않나?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긴 하지만, 웬만하면 이건 참는 걸로···.”
“궁금하신 게 뭔데요?”
잔을 기울이며 창밖을 살피려던 종철에게 수용이 물었고, 그런 수용을 슬쩍 어깨 너머로 살핀 종철이 작은 미소를 떠올리며 뜸을 들였다.
그러자 수용이 재차 뭐가 궁금한지를 물었고, 종철은 못이기는 척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주장이 아닌, 선수의 입장에서 재혁을 팀을 맞이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주장이 아닌 선수라···. 조건이 그렇다면 말이 또 달라지겠군요.”
감독의 질문에 잠시간 생각에 잠겼던 수용은 괜히 시선을 돌리고 목덜미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런 녀석과 선발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면 누구라도 부담감이 적지 않을 겁니다. 당장 저만해도 녀석과 리그에서 맞부딪친 적이 있었으니···. 그래도 그것보단 낫겠군요.”
“그것보단 낫겠다니?”
“적으로 만나던 것보다는 동료로 만나는 게 낫다는 말이죠.”
“!”
수용의 진심이 담긴 한 마디에 종철은 흥미로운 얼굴로 그를 살폈고, 수용은 계속해서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녀석이랑은 한 번 적으로 만나봤지만 두 번은 만나고 싶지 않더군요. 계속 영국에 남는다면 몇 번이고 더 만나야겠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감상입니다.”
“하하하! 정말 솔직하군. 물론 그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하지만 말야.”
“그렇다고 그런 녀석하고 선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상황을 반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게.”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난 종철은 빈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수용에게 미소와 함께 답했다.
“맨체스터로 향하는 길이 많은 것처럼, 축구에도 많은 길들이 있으니까.”
“···예?”
“자네들은 전력을 다 해서 뛰어주면 돼. 내가 파놓을 길을 따라서 말이지. 커피 잘 마셨네.”
딸랑, 딸랑.
종철이 카페를 떠나면서 출입구에 달아놓은 종이 울었다.
휴대폰 앱으로 택시를 미리 알아봤던 것인지 곧장 다가온 차를 타고 종철은 떠났고, 커피 잔을 돌려 놓은 후 자동차로 향한 수용은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기에 앞서 생각에 잠겼다.
“최재혁···.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처음 그를 만났던 기억과 함께 그에게 들었던 한 마디를 떠올리면서 수용은 손을 움직여 기어를 옮겼고, 엑셀을 밟으며 작게 웃었다.
벌써 세계 무대로 올라온 꼬마 동료의 겁을 모르는 건방짐이 과연 어디까지 통할지, 기대된다는 듯이 말이다.
***
“임종철 감독님.”
“크, 최재혁! 그새 또 컸냐? 아주 볼 때마다 계속 커지고 있어?”
스완지에서 이번엔 바로 맨체스터 온 종철은 재혁을 발견하자 기쁜 얼굴로 그를 향해 달려갔고, 아무리 컸다지만 아직 덩치가 종철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던 재혁은 뒷걸음질을 치며 쓰게 웃었다.
“그러는 감독님도 너무 크신 거 아니에요? 이 뱃살은 분명 몇 년전까지만 해도 없던 거 같은데요.”
“인마, 이런 건 러브 핸들이라고 해서 원만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꼭 필요한 거야. 너도 은퇴하면 꼭 하나 키워라. 안 그러면 피곤해져. 여러모로 말이지.”
“필수는 아닌 거죠? 고려만 해볼게요.”
“큭큭, 그래. 그런데 갑자기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겠다니. 원래는 약속한 식당에서 보기로 한 거 아니었나?”
“그게 감독님께 여쭤봐야 할 게 조금 생겨서요.”
같이 택시를 타기 위해 이동하면서 재혁이 종철의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 나란히 걸었고, 옆을 걷는 재혁이 물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에 종철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묻는다니, 뭘?”
“혹시 오늘 저녁 자리에 한 사람이 더 껴도 괜찮은지 말예요.”
“한 사람이 더? 한 사람을 더 누구를?”
예상 밖의 이야기에 종철이 재차 되물었고, 택시에 몸을 실으면서 재혁은 담담히 답했다.
“과르디올라 감독님이요.”
“풉, 뭐? 과르디올라 감독? 그 사람이 왜?”
“저를 발견한 감독님에 대해 궁금하다나. 불편하다면 부담 갖지 말고 거절해도 괜찮다고 했어요. 아무튼 가능하면 함께 해도 되냐고 물었는데···, 전적으로 감독님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하셨으니, 선택은 감독님의 자유예요. 아, 기사님. 이쪽으로 가주세요.”
상황을 모두 설명한 재혁은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주었고, 멈췄던 택시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종철은 이마 긁적이더니 슬쩍 재혁을 곁눈질로 살피며 물었다.
“다른 게 목적은 아니겠지?”
“다른 거 뭐요?”
“너를 대표팀에 합류시켜서 화가 났다던가···.”
“설마요. 오히려 과르디올라 감독님은 다른 부분에서 화를 내던데요? 왜 이렇게 늦게 소집하냐면서 말예요.”
“흐음, 그래?”
적어도 악의는 없다는 소리군.
조그만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린 종철을 옆에서 지켜보며 재혁은 쓰게 웃을 뿐이었고, 그런 재혁의 시선을 느낀 종철은 애써 헛기침을 뱉으면서 재혁에게 말했다.
“식사는 사람이 많을 수록 즐거운 법이니, 그럼 같이 만나도록 할까? 잠깐, 그렇게 되면 시간을 따로 미뤄야 하나?”
“시간은 괜찮을 걸요. 레스토랑 위치가 훈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거든요. 그럼 과르디올라 감독님께 알겠다고 문자 보낼게요.”
“그래. 흐음, 과르디올라 감독이라···.”
세계적인 명장이라 불리는 과르디올라 감독.
그런 감독과 어째서인지 함께 저녁 자리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낯선 기분이 들었던 종철은 얼마뒤 레스토랑에서 과르디올라를 실물로 보게 되자 자신이 한 가지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연결 고리가 재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당신이 재혁을 처음 발견한 임종철 감독님이시군요!”
과르디올라 감독은 레스토랑에 들어오기 무섭게 주변을 살피더니 어렵지않게 재혁을 발견했고, 그의 옆에 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는 종철에게 다가가더니 기쁜 목소리로 말을 붙이며 손을 건넸다.
“과르디올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99. 연결 고리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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