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98화 (98/225)
  • < 98. 축복이다 >

    “신이 축복을 내리고 있을 정도라니. 그 표현은 조금 과한 게 아닌가요?”

    “하하,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네빌의 말에 캐스터가 농담을 섞어 되물었으나, 네빌은 여전한 미소를 떠올린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고, 이어지는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 상황을 중계하기 시작했다.

    델레바쉬루에게 이어진 공이 순식간에 포든에게 향했고, 포든은 브라함에게 패스를 찔러준 뒤 침투할 공간을 찾아 또 다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중앙을 뚫어내는 패스들의 연속에 울버햄턴 선수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브라함이 수비수를 등지고 지키고 있던 공을 왼쪽 측면을 향해 뛰고 있는 디로선에게 이어주자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이 환호성을 쏟아냈다.

    “그렇지! 역시 선수들은 어려도 맨시티는 맨시티야! 저 공격 전개를 보라고. 성인 선수들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잖아?”

    “디로선! 오오, 크로스까지 올렸어! 공은···.”

    “브라함의 헤더! 아, 저게 옆으로 빠지네!”

    “조금만 더 안쪽으로 향했으면 바로 득점이었는데! 크으. 아깝다, 아까워!”

    성공적으로 슈팅까지 가져간 선수들을 향해 관중들은 박수로 플레이를 칭찬했다.

    울버햄턴이 비록 2부 리그에에 속한 챔피언십 리그에서 뛰고 있는 팀이었지만, 그래도 성인 팀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아니. 경기 내용적으로 압도하고 있는 선수들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팀을 지도하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벤치에 앉아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은 조용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만,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을 바라보고 있는 유소년 코치는 불안한 얼굴로 그의 곁에 다가가 물었다.

    “저, 감독님···. 혹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인가?”

    “평소와 달리 너무 조용하셔서 말이죠.”

    코치의 걱정대로 였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선수들을 다그치며 열정적으로 작전을 지시하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평소와 달리 너무도 편하게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 코치는 어색했던 것이다.

    그게 혹 자신이 관리하는 유소년 선수들의 플레이가 만족스럽지 않아 그런 것이라 걱정스러웠던 코치는 말꼬리를 흐리며 조심스레 물었고, 그런 코치를 향해 감독은 멍하니 그의 말을 귀담아 듣다가···.

    “하핫. 설마. 선수들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벤치가 아니라 직접 경기장 위를 뛰고 있겠지.”

    “그, 그렇겠죠?”

    “그렇겠죠는 또 뭔가? 설마 내가 진짜 경기장 위로 올라갔으려고? 어디까지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농담과 함께 짧게 실소를 흘린 과르디올라는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문제가 있으면 자신이 직접 행동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말이다.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에 짧게 안도했던 코치는 연이어 떠오르는 궁금증을 물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왜 그렇게 조용하신 겁니까?”

    “아 그건, 유심히 지켜봐야 할 친구가 있어서.”

    “유심히 지켜보신다고요?”

    대체 누굴 지켜본다는 말일까?

    감독의 말을 바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코치가 다시 한 번 되물었고, 그런 코치를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은 턱끝으로 대상을 가리켰다.

    그 끝에 닿아 있는 선수를 확인한 코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재혁 선수를 말씀하신 겁니까?”

    “그렇지.”

    “최재혁 선수를 지켜보신다니···. 저 선수는 이미 검증이 끝난 게 아니었습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1군 엔트리에서 비정기적이긴 하나 선발로 뛰기까지 한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아직도 지켜보고 있다니.

    코치는 의아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물었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코치의 질문에 오른손을 들어 반대쪽 뺨을 긁적인 뒤 답했다.

    “끝나긴 했었지. 두 번···, 아니. 세 번 정도는 확인해봤을 거야. 개인적으로 알아본 횟수까지 포함하면 다섯 번은 되겠군.”

    “그런데 왜 또···?”

    “뒤멜 코치. 만약 자네는 지켜보는 선수가 지켜볼 때마다 매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할건가?”

    “지켜볼 때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고요? 그건 마치···.”

    “그래. 코치의 예상대로일 거야.”

    혹여 자신의 예상이 틀릴까 말끝을 흐리고 있는 코치를 대신해 고개를 끄덕인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을 이었다.

    “난 아직도 저 친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어. 매 순간 끝을 모르고 성장하고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오늘도 이렇게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거야. 과연 오늘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련지, 기대하면서 말이지.”

    “···!”

    “아 물론 그렇다고해서 다른 선수들을 보지 않고 있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게. 오늘 경기하는 모습을 보니 과연 선수들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해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군. 앞으로도 계속 고생해주게.”

    “아···, 감사합니다.”

    감독의 갑작스런 칭찬에 코치가 당황했으나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고맙다는 말로 화답했다. 그리고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러는 것처럼 뒤멜 코치도 자리에 앉아 신중한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과연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처럼 선수들은 자신들보다 경험이 많은 울버햄턴 선수들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점유율도 대등했고, 패스와 슈팅 숫자에선 오히려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으니. 이만하면 내용적인 측면에선 흠잡을 구석이 없는 경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기력의 바탕이 되어 주고 있는 선수, 재혁의 움직임을 빤히 관찰하면서 뒤멜 코치는 침을 삼켰다.

    ‘확실히 저 친구···, 맨체스터에 오기 전과 비교하면 많이 바뀌긴 했어.’

    재혁이 호주에서 활약하던 영상을 뒤멜 코치도 본 적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겨우 반 년 사이 재혁이 몇 단계 이상의 성장을 더 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 성장이 아직도 멈춘 게 아니라니.

    꿀꺽.

    자신도 모르게 또 한 번 침을 삼키며 목울대를 움직인 뒤멜 코치가 슬금슬금 머릿속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턱을 쓸어내렸다.

    ‘어쩌면···, 어쩌면 정말 이 멤버로 리그 컵을 우승할지도···.’

    파앙!

    그리고 그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이 또 다시 시작됐다.

    ***

    ‘아까부터 계속 막히네.’

    중원에서 흐름을 읽어보려던 재혁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분명 분위기는 자신들 쪽에 있었으나 꼭 결정적인 순간에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이번에도 좌우 측면을 흔든 뒤 박스 안쪽까지 공을 보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브라함의 슈팅을 상대 수비수들이 육탄 방어로 막아내면서 공은 골대가 아닌 코너 플래그 쪽으로 향하고 말았고, 상황은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코너킥을 준비하기 위해 포든이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재혁이 슬쩍 전광판을 살피곤 입술을 말았다.

    ‘전반전이 끝나기까지 5분.’

    대략 두어 플레이 정도가 더 나올 수 있는 시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5분.

    재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올라올 코너킥이 중요하다.’

    동료 선수들이 머리에 맞추지 못한다면 바로 상대 선수들이 역습을 시도할 것이리라.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재혁이 슬쩍 동료 선수들의 상태를 살핀 뒤 턱끝에 흐른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쳤다.

    ‘다들 많이 지친 것 같은데. 아마 이번에 역습을 허용하게 된다면 꽤나 치명적이겠어.’

    이제 겨우 18세가 된 선수들 중 성인 무대를 준비하고 있던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됐겠는가.

    최전방의 브라함 디아즈라던가, 그를 받쳐주고 있는 포든, 혹은 우측 풀백인 자메인 로스 정도만이 90분 경기를 어떻게든 소화할 체력을 기른 듯 했기에 재혁의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울버햄턴 선수들이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기에 당연하게도 맨시티의 선수들은 최대한 라인을 올려 압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이런 순간 속도를 중점으로 한 역습은 치명적이게 작용할 수 있었다.

    재혁은 잠시간 고민에 빠진 얼굴로 진영을 둘러보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움직였고, 그에 맞춰 포든이 왼발로 공을 강하게 감아 코너킥을 올렸다.

    원만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공이 박스 안으로 향하자 선수들이 뒤엉켰다.

    어떻게든 공격을 성공시키려는 선수들과 그런 상대를 막아내기 위한 선수들이 사이에서 치열한 몸싸움과 자리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공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떨어지는 공에 머리를 댈 수 있었던 것은···.

    터엉!

    “됐어! 라인 올려!”

    울버햄턴의 주장이자 센터백, 배스였다.

    머리를 쓰는 기술 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배스는 머리에 맞은 공이 곧장 박스 밖으로 빠져나가 오른쪽 윙백인 도허티에게 이어지는 것을 확인하곤 미소지었다.

    ‘이걸로 됐다!’

    어떻게든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인내하길 40분.

    어린 선수들이 기술은 좋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체력적인 부분에서 약점을 노출하기 시작한 것을 은연 중 느끼고 있었기에 배스의 얼굴엔 기대감이 서렸다.

    맨시티의 선수들은 어떻게든 진영을 유지하기 위해 라인은 맞추고 있지만 압박의 강도가 전과 같지 않았고, 공이 흐르고 있는 상황을 쫓지 못하고 발걸음이 쳐지는 선수들도 하나둘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역습을 통해 득점하는 것까지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리라.

    그런 기대를 품으며 도허티가 공을 몰고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던 배스는···.

    “···?!”

    갑자기 등장한 한 선수를 발견하고 숨을 삼켰다.

    그도 알고 있는 선수였다.

    몇 번이고 서로 부딪쳤고, 또 그의 발밑에 있던 공을 빼앗은 선수였으니까.

    맨체스터 시티의 88번, 최재혁.

    녀석이 도허티의 앞을 가로막기 위해 달려들고 있던 것이다.

    그런 재혁을 발견한 배스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어째서 네가 거기서 나오는 거냐?!’

    분명 도허티가 공을 받았던 자리는 터치 라인에 발꿈치를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측면으로 크게 빠진 자리였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중앙에서 전체적인 길목을 막고 있던 재혁이 커버하기엔 분명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걸 달려서 커버하고, 또 도허티의 앞을 막아선다고?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터엉!

    “공까지 뺏었어?!”

    재혁이 달려드는 것을 뒤늦게 파악한 도허티는 재혁의 짧은 태클에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드리블로 빠져나가려고 마음 먹었던 방향을 재혁에게 읽힌 것이 화근이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턴오버.

    겨우 몇 초 사이에 상황은 반전되고, 이제 바빠진 것은 울버햄턴 쪽이 되었다.

    특히 역습을 위해 라인을 올릴 것을 지시했던 배스는 황급히 방향을 틀며 라인을 재정리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파앙!

    동료를 노리고 패스를 찔러주는 재혁의 행동이 더 빨랐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울버햄턴의 수비 라인은 오프사이드에서 동료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있었기에 재혁은 가장 골대와 가까이 위치해 있던 포든에게 패스를 찔러주었고, 뜻밖에 재혁의 패스를 받게 된 포든은 순간 당황했으나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드리블을 시작했다.

    “젠장!”

    그런 포든의 옆으로 울버햄턴의 수비수 베넷이 잇소리를 내며 몸을 날리는 태클을 시도했지만 이미 포든이 지나친 애꿎은 잔디만을 훑을 뿐이었고, 박스 안 패널티 마크에서 골키퍼와의 일대일 찬스를 맞이한 포든은···.

    철썩!

    “아자!”

    침착하게 골대 빈 구석을 노리고 공을 밀어 넣으면서 득점을 성공시켰다.

    동시에 전반전의 끝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방금까지 지쳐있던 선수들은 골을 넣은 포든에게 달려들어 기쁨을 나눴고, 도움을 기록한 재혁까지도 부둥켜 안으며 소리를 질렀다.

    “좋았어! 이대로 결승까지, 꼭 웸블리를 목표로 하자고!”

    “그 전에 8강도 남았고, 준결승도 있다고.”

    “알고 있어! 어디까지나 목표잖아? 목표는 크게 가져가야지! 가자, 런던으로!”

    서로 어깨를 걸치고 하프 타임을 위해 라커룸으로 향하는 선수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지친 기색을 모두 털어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잔디 위를 걷고 있었고, 그런 선수들의 뒷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재혁은 쓰게 웃었다.

    ‘역습을 수비하기 위해 돌아올 체력이 문제인 것 같다면, 그 상황 자체를 막는 게 답이겠지. 하지만 저 모습들을 보니 또 크게 무리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터벅, 터벅.

    라커룸으로 향하는 터널에 오르면서 재혁이 슬쩍 상대편을 살핀 뒤 고개를 돌렸다.

    “일단 16강은 통과다.”

    의심이 아닌 승리에 대한 확신.

    그 익숙한 감각을 오랜 만에 떠올린 재혁은 눈동자를 빛냈다.

    이런 경기력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어떤 무대에서든 활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말이다.

    그리고 그런 재혁의 자신감은 그가 예상했던 대로 울버햄턴 전을 승리로 장식하면서 확고해졌고, 결과가 나오면서 여러 인물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 첫 번째 인물이 현재 대한민국의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는 임종철이었다.

    “임종철 감독님! 영국으로 갑작스레 출장을 결정하게 된 이유가 뭡니까?”

    “혹시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가는 곳은···.”

    공항에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종철은 선글라스를 낀 채로 간단히 대꾸한 뒤 출국 심사를 받기 위해 움직였다.

    “맨체스터. 이유는 당연히 우리나라 선수를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 98. 축복이다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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