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96화 (96/225)
  • < 96. 목표 의식 >

    뚜벅, 뚜벅.

    훈련이 끝난 선수들이 얼음 샤워를 하거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과 탈의실로 향한 것과 달리, 재혁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뒤를 쫓아 복도를 걷고 있었다.

    둘은 사무용으로 쓰이는 건물에 도착한 뒤 엘레베이터에 올랐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사무실이 위치한 층의 버튼을 누른 후 유리 벽에 기대어 섰다.

    재혁도 감독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후 조용히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고, 고개를 들어 숫자가 변하기 시작한 전자 기판을 살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면서 흘리는 기계음만이 머물던 곳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이 입을 열었다.

    “궁금하지 않나?”

    “뭐가요?”

    “내가 그동안 왜 그런 지시들을 했는지 말야.”

    슬쩍 고개를 돌려 과르디올라 감독을 마주본 재혁은 눈에 들어오는 감독의 얼굴을 살피곤 뺨을 긁적였다.

    참 솔직한 사람이었다.

    질문을 던져놓고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입가에 떠오른 미소며 눈웃음을 전혀 숨기지 못하고 자신에게 물은 것이다.

    재혁은 얼굴에 올렸던 손을 내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당연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러시진 않으셨겠죠. 그래서 제 나름대로 생각을 좀 해봤어요.”

    “호오. 어떤 생각을?”

    “일단 당연히 제가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과제들을 내주셨던 거겠죠. 그래야 경기에 출전시킬 수 있고, 또 이길 수 있을테니까요. 과정보다 결과로 답해야 하는게 프로 경기들인데, 단순히 발전을 목표로 출전시킨다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잖아요?”

    “하하. 그리고 다른 건? 다른 생각은 또 없었나?”

    재혁의 대답이 퍽 재밌었는지 과르디올라 감독이 웃음을 터트렸고, 어느덧 원하는 층에 도착한 둘은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면서도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두 번째도 첫 번째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제가 부족한 부분은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피지컬적인 부분들. 그에 대한 경쟁력을 성장시키기 위해 태클과 같은 훈련들을 따로 배정하신 거겠죠.”

    “좋아, 좋아. 자, 그러면 내가 오늘 너만 따로 훈련을 제외 시킨 이유는 뭘까?”

    계속해서 재혁에게 물은 과르디올라는 기대에 찬 시선으로 재혁을 바라보았고, 재혁은 그런 감독을 향해 간단히 대답했다.

    “공간이란 개념에 대한 또 다른 해석. 공간이란 단순히 공격을 전개하는 부분에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수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제게 알려주시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

    “일단 태클이라는 개념을 익히게 했으니, 이제 그 태클을 어떻게 사용하고, 언제 사용할 지를 알려주시기 위해서였겠죠. 그래서 오늘 경기를 뛰기보다는 지켜보게 하신 거예요. 그리고 그 선생님 역할을 해준 게 페르난지뉴 선수.”

    말을 끝내며 슬쩍 과르디올라 감독의 눈빛을 살핀 재혁은 끊었던 한 마디를 조심스레 이어 붙였다.

    “아마 저는 그를 대신해 로테이션으로 기용되는 상황에 대비한 훈련들을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법 그럴듯 해. 반 분···, 아니. 그 이상이야. 역시 기대했던 대로 너는 머리가 더 특출난 타입이야.”

    도착한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재혁을 안내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자신의 책상 의자에 걸터 앉으면서 반대편을 가리켰고, 재혁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슬쩍 턱을 괴고 말했다.

    “하지만 마지막에서 조금 어긋났군. 난 너를 페르난지뉴의 백업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아. 내 머릿속에 너와 페르난지뉴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거든.”

    “그러면···?”

    재혁이 말끝을 흐리며 되묻는 것에 과르디올라 감독이 생긋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던 재혁은 마른 침을 삼켰고, 긴장으로 젖어가는 재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감독이 뒷말을 이었다.

    “페르난지뉴는 분명 훌륭한 선수야. 공격에서도, 수비에서도 재능이 넘치는 선수지. 패스며 필요할 때 시도하는 슈팅, 드리블과 볼컨트롤···. 어느것 하나 모자라지가 않아. 헤딩이 비교적 약하다는 점을 빼면 거의 완벽에 가장 가까운 미드필더지. 하지만 나는 네가 페르난지뉴처럼 되길 바라는 게 아니야.”

    “···?”

    온갖 미사여구로 칭찬을 해놓고 마지막엔 그 선수처럼 되길 바라는 게 아니라니.

    감독의 말에 고개가 기울여진 재혁은 살며시 미간을 모았고, 그런 재혁을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했다.

    “페르난지뉴 수준에서 멈추는 게 아닌,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미드필더. 그런 선수로 너를 키우는 게 내 목표다. 거의 완벽하다는 말로는 부족해. 방금 설명했던 것처럼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은 이제 특별하지 않으니까. 거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완벽해야 해.”

    “!”

    “정상이라 불리는 선수들 위에 군림하는 최정상 선수. 내가 너를 데리고 목표로 하는 곳은 바로 그곳이다. 물론 이미 그곳에 닿아 있는 선수들도 있지만···, 나는 너 또한 그곳을 목표로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멍한 얼굴로 과르디올라 감독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게 된 재혁은 그저 침묵을 지키며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말들을 조용히 듣고 있을 뿐이었고, 과르디올라는 그런 재혁을 향해 더욱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가 목표로 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재혁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감독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재혁은···.

    피식.

    미소를 띤 얼굴로 과르디올라 감독을 바라보며 말했다.

    “호주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하셨던 말씀과 비슷한 말씀을 해주시네요.”

    “응?”

    “그때 감독님은 저를 누구보다 제대로 사용하실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죠. 그러니까 꼭 맨체스터 시티로 와달라는 말과 함께 말예요.”

    재혁의 말을 들은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재혁을 따라 피식 실소를 흘렸고, 그런 감독을 향해 재혁은 계속해서 말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도 저에 대해 확신이 없었어요. 과연 내가 바로 빅 리그로 가서 얼마큼이나 통할 수 있을까. 확신보다는 의심이 더 컸죠. 하지만 지금은 감독님의 말씀처럼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하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져요.”

    “···.”

    “그리고 그런 감독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분명 믿을만한 이야기겠죠.”

    “그 말은···.”

    끄덕.

    재혁이 과르디올라가 되묻는 것에 곧장 고개를 끄덕였고, 재혁의 고갯짓을 확인한 과르디올라의 입가에 서서히 밝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최근 이어진 자신의 요구 때문에 재혁이 훈련에 반감을 갖게 되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이었는데, 그건 단순한 기우인 것 같아 안도한 것이다.

    다만 재혁도 어느 정도 불만은 있었기에 머리를 긁적이며 재차 말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조금이라도 설명을 붙여주시는 편이 이해가 편할 것 같아요. 솔직히 오늘 일은 공부가 아니라 거진 추리를 하는 느낌이었거든요.”

    “하하. 그 부분은 미안하게 됐군. 다른 선수들에 비해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보니 말야.”

    “재미라고 하시니 생각났는데, 만약 제가 오늘 안 오고 정말 쉬었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어요?”

    “설마. 혹시 오늘 정말 쉬려고 했었나?”

    “아뇨. 어디까지나 만약을 물은 건데···.”

    머리를 긁적이며 물은 질문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어깨를 으쓱이며 단순하게 답했다.

    “그럴리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 사실 화를 내면서 찾아올 줄 알았는데, 얌전히 벤치에 앉는 걸 보고 조금 안도했지.”

    “···.”

    화를 내야 했나.

    재혁이 할 말을 잃은 얼굴로 목덜미를 긁적이자 과르디올라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봐야 하는데. 뭘 마시겠나? 곧 밤이니 카페인이 없는 허브차 종류가 아무래도 좋을 것 같지?”

    “응? 이것 때문에 절 부르신 게 아니었어요?”

    재혁의 놀란 목소리에 과르디올라는 ‘가정 방문을 하는 교사도 아니고, 설마 그런 이유로 불렀겠냐?’라고 답하면서 재혁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고, 곧 또 다시 손을 움직여 수납장을 뒤적였다.

    곧 서류철을 하나 꺼내든 과르디올라 감독은 찻잔 옆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어디까지나 본 목적은 이거 때문이야.”

    “이건···.”

    “3일 뒤에 있을 리그컵 16강 상대, 울버햄턴에 대한 리포트지.”

    “!”

    리그컵 16강.

    감독의 입에서 대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재혁은 곧장 흥미를 보였고, 그런 재혁의 눈빛을 마주하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생긋 웃었다.

    “다행히 관심이 없는 것 같진 않군. 리그 스케쥴 때문에 컵 대회는 별로 관심이 없어 할 줄 알았더니 말야.”

    “저는 가능한 많은 경기를 뛰고 싶어요. 훈련도 도움이 되지만 역시 가장 많이 배우는 장소는 실전을 치르는 필드 위니까요.”

    “몸은 괜찮을 것 같고?”

    “3일이면 충분해요.”

    “후후, 그러면 다행이군.”

    재혁의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과르디올라 감독은 둘 사이에 내려놓은 서류철을 펼치며 말했다.

    “오늘은 너와 울버햄턴을 상대로 떠올릴 수 있는 전략전 선택, 그리고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재혁, 너와 할 계획이었거든.”

    “!”

    “물론 네가 피곤하다면 먼저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밤새 떠들 게 될까요?”

    자신의 말을 자르고 묻는 재혁의 얼굴을 확인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채를 띠며 대답했다.

    “컨디션을 생각해서 아무리 늦어도 밤 10시 전엔 끝낼 거야.”

    “그러면 적어도 저녁은 이곳에서 해결해야겠군요.”

    “그래야겠지.”

    “밥은 그럼 사주시는 건가요?”

    “구단 카드로 긁을 거야. 그러려고 사무실에 남는 거니까.”

    순간 눈이 마주친 두 사람.

    둘은 다른 무엇보다 저녁으로 먹게 될 음식에 대한 합의를 끝낸 후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3일 뒤에 있게 될 리그 컵 경기 전날까지 정기적으로 이어진 저녁 자리는 비로소 경기 날이 찾아오자 끝이 났고, 맨체스터 시티의 홈 경기로 진행되는 당일 경기를 준비하던 중계진은 스튜디오에 도착한 정보를 확인하고 허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중에서도 캐스터인 남성은 당황한 목소리로 서류를 전달해준 스태프에게 물었다.

    “어이, 이거 진짜야? 농담 아니야?”

    “농담이라뇨. 누가 공식 문서로 농담을 해요? 분명 구단 측이 보내준 선발 명단이 맞아요.”

    “이게 공식 선발 라인업이라고?”

    “그렇다니까요.”

    캐스터의 질문에 재차 퉁명스레 답을 한 스태프는 다른 준비로 바쁘다며 자리를 떠났고, 데스크에 남은 캐스터는 허허, 헛웃음을 흘리더니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16강이라고. 그런데···, 전부 10대 선수들로 꾸려서 나오다니. 과르디올라 감독, 리그 컵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이건 대놓고 우승이 목적이 아니라는···.”

    “글쎄요. 아예 마음을 비운 건 또 아닌 것 같은데요?”

    “응? 네빌 해설, 그게 무슨 말이야?”

    “선발 명단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세요.”

    고개를 비죽 내밀고 자신을 향해 되묻는 캐스터를 향해 네빌은 선발 명단을 슬쩍 들이밀며 말했다.

    “최재혁, 그 친구가 또 나왔잖아요? 아무런 욕심이 없는 감독이라면 아끼는 선수를 3일만 쉬게 하고 경기를 또 뛰게 하겠어요? 이건 확고한 의지를 표현인 거죠.”

    “확고한 의지라니. 뭘?”

    “우승 커리어.”

    전혀 예상하지 못 한 단어가 네빌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캐스터가 놀라 눈썹을 모았고, 네빌은 그런 캐스터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어린 선수에게 ‘스스로의 능력’으로 우승 커리어를 쌓게 하겠다는 의지 말이죠. 물론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 과르디올라 감독의 목적이 성공하게 된다면···.”

    말을 잠시 멈추고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신 네빌이 짧게 자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을 끝맺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향후 최소 10년간 선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아주 무서운 팀이 될 겁니다. 그래요, 마치··· 퍼거슨 감독이 지휘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퍼거슨의 맨유라니···, 그건 좀···.”

    표현이 과하지 않았나, 라고 말을 하려던 캐스터는 이내 입술을 멈추고 눈을 껌뻑였다.

    생각해 보니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선수가 바로 그 퍼거슨의 지도를 받던 선수가 아니던가?

    쩝 소리를 내며 머리를 벅벅 긁던 캐스터는 이내 고개를 털어내곤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 굳이 지금 머리가 빠져라 고민할 거 없이 경기가 시작되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그렇게 중계 준비가 끝이난 스튜디오 카메라에 붉은 빛이 들어왔고, 필드 위에 서있는 선수들을 순서대로 비추면서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 96. 목표 의식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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