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95화 (95/225)
  • < 95. 관점의 차이 >

    삑!

    “좀 더 빠르게!”

    “패스가 그게 뭐야? 빠르게란 말이 대충 하라는 말이 아니란 걸 잘 알잖아? 다시 한 번 더 정확하게!”

    삑!

    코치가 호각을 불기 무섭게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회복 훈련이 끝나고 진행되는 전술 훈련.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맞춰 진행하는 훈련은 수비하는 측도, 공격을 하는 쪽도, 코치의 지시에 맞춰 평소보다 몸을 바쁘게 움직였고, 그런 선수들의 훈련을 가만히 지켜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혀를 차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게 아니라니까. 몇 번을 더 설명해야겠어? 무작정 패스를 주고 공간을 찾아 달리라는 말이 아니었다고! 다시 한 번 설명할테니까 잘 들어! 특히 레로이!”

    “네, 네!”

    “방금 패스를 주기 전에 있던 위치로 돌아가서 무엇이 잘못 됐나 한 번 생각해 보도록.”

    과르디올라 감독의 호통을 들은 레로이 자네는 입술을 삐죽 내밀곤 고개를 끄덕였고, 선수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모이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공을 가지고 직접 레로이 자네가 있던 자리로 향한 뒤 말을 계속 했다.

    “현재 자기 위치에서 전방으로 달릴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고 해서 공을 무조건 뒤로 돌리고 달리는 건 후방에서 공을 받게 될 선수에게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야.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게 뭐였어? 본인이 선택지를 고른다면 동료에게도 추가적인 선택지를 줄 수 있도록 하라는 거였지?”

    “네···.”

    “그런데 만약 네가 공을 주고 무작정 앞으로 뛰쳐나가봐. 물론 너는 전방으로 향하는 선택지를 찾아 달릴 수 있게 되지만, 만약 그 길이 막히면 패스를 받게 된 동료의 선택지는 어떻게 되지? 내가 위에서 말했던 같은 선택지를 공유하라는 부분에서 바로 오류가 발생하겠지?”

    “으음···.”

    “그렇게 되면 결국 공을 받은 동료는 남은 하나의 선택지를 쫓아 이동하게 되겠고, 최악의 경우 결국 상대에게 길이 읽히게 되겠지. 그러다가 공을 뺏기면?”

    투웅!

    “바로 지금처럼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게 되는 거야. 이해했나?”

    자네가 뛰려고 했던 길을 따라 공을 가지고 이동했던 과르디올라 감독이 몸을 돌리고 공을 길게 넘겼고, 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며 정확하게 수비하는 측의 미드필더에게 연결되었다.

    실제 경기에서 연결 되었다면 분명 치명적인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그런 패스였다.

    이에 자네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하려는 바를 어느 정도는 이해한 듯 했으나, 여전히 의아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어 뺨을 긁적이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감독님은 패스 앤 무브 같은 2대1 패스를 통한 플레이를 절대 하지 말라는 말씀이신 건가요?”

    “그게 아니지!”

    자네의 질문을 듣기 무섭게 과르디올라 감독이 얼굴을 쓸어내리곤 재차 비명을 질렀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말이야!”

    “하지만 2대1 패스를 주고 받을 상황만 만들면···.”

    “그 상황을 만들려고만 하지 말고,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지를 계속 생각하라는 소리야! 후, 일단 공부터 가지고 와 봐! 그럼 다시 한 번 더 설명하면···!”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멈췄던 발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잠시 멈췄던 훈련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훈련은 얼마 지속되지 못하고 또 다시 끊어졌다.

    자네에 이어 이번엔 델프가 실수를 저질러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한 소리를 듣게 된 탓이었다.

    그렇게 실습보다 이론에 대한 강의가 더 길어지고 있는 훈련을 벤치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재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펜을 쥐고 있는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요지는 공간의 활용이라는 거군.’

    자네와 델프는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방황하고 있는 요점을 재혁은 바로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과르디올라 감독이 거듭 강조하고 있는 선택지라는 단어도 재혁은 무리없이 이해하곤 고개를 주억였다.

    아마 선택지는 패스가 향할 수 있는 길이란 말일 터.

    자네가 공간으로 침투하는 움직임과 델프가 시도하려던 오버래핑이 겉보기엔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두 선수가 목표로 향하는 공간의 세로 방향으론 제수스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까. 패스가 연결 된다고 해도 그 다음 플레이가 애매했을 거다.’

    아마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걸 말하려고 했던 것이리라.

    혹여 자네의 패스를 받은 선수가 후방에서 그것을 확인한 후 공을 돌리려고 한다면 이미 죽은 하나의 선택지 외엔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단 하나 밖에 남질 않으니까.

    다만 지켜보는 재혁이야 경기장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어 쉬이 파악할 수 있었지만, 아마 필드 위에서 직접 몸을 움직이고 있는 자네와 델프는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터였다.

    저 모든 판단을 최대 1초, 혹은 그보다 짧은 시간 내에 내리고 행동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되면 될 때까지 해야 하는 게 프로 선수.

    감독의 지시에 맞춰 다시 한 번 재개되는 훈련을 빤히 내려보던 재혁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왜 나보고 오늘 훈련을 아예 쉬라고 하셨을까?’

    솔직한 말로 아무리 근육이 피로하다고 할 지라도 진행할 수 있는 훈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밸런스를 단련한다던가, 간단한 볼터치 정도는 오히려 근육 회복에 도움을 주는 종류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과르디올라 감독은 오직 회복 훈련만 진행시킨 후 쉬라고 했다.

    그게 단순히 쉬라는 의미로 들리지 않았던 탓에 일단 재혁은 훈련장까지 따라온 것이나···.

    ‘아직까진 그 의미를 잘 모르겠어.’

    재혁이 턱을 괴던 손을 거두고 머리를 긁적였다.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처럼 그의 몸도 한 곳에 가만히 있질 못한 것이다.

    하지만 시선만큼은 확실히 훈련장에 고정시키고 감독이 하는 행동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눈에 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과르디올라 감독이 훈련을 진행하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벤치에 앉아있는 재혁을 살핀 뒤 누군가를 향해 손짓을 보냈다.

    “페르난지뉴!”

    “네.”

    “잠깐 이리로 와보겠나?”

    감독의 부름을 받은 페르난지뉴가 짧게 답하고 감독을 향해 다가갔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페르난지뉴의 귓가로 몇 마디를 속삭였다.

    그렇게 감독이 건넨 몇 마디를 속으로 되뇌던 페르난지뉴는 슬쩍 고개를 돌려 감독이 그런 것처럼 재혁을 짧게 살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나눈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재혁은 여전히 뚱한 얼굴로 연습장을 내려보았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한 데 모았다.

    “그럼 지금부턴 공수 전환 훈련을 진행하겠다. 앞서 나눈 대로 조끼를 나눠입도록! 청색 조끼 팀이 먼저 공격이다. 해가 떠있을 때 집에 가고 싶으면 얼른 얼른 움직여!”

    “예!”

    “다 나눠졌으면 바로 시작!”

    삐익!

    휘슬 소리와 함께 잠시간 멈췄던 선수들의 발이 다시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훈련을 진행하는 그의 성격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기에 다들 진지한 얼굴로 훈련에 임했고, 특히 수비 진영에 머물고 있는 페르난지뉴의 기세는 마치 실제 경기를 치르는 선수처럼 온 신경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페르난지뉴를 유심히 살피게 된 재혁은 침을 삼키곤 입을 모았다.

    ‘감독님께서 따로 지시하신 사항이 있는 건가?’

    아무리 실전을 대비한 공수 훈련이라고 할 지라도 지금 페르난지뉴가 보여주는 플레이는 일반적인 훈련에서 보여주기엔 꽤나 터프했다.

    페르난지뉴와 부딪치게 된 몇몇 선수들이 그런 페르난지뉴를 향해 불만을 표시했지만, 페르난지뉴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저 손을 내밀어 넘어진 선수를 일으켜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더 지속 됐을까.

    투웅!

    공격 진영에 있던 다비드 실바가 날카로운 땅볼 패스를 찔렀다.

    수비 측의 왼쪽 풀백 뒷공간을 노리고 감겨 들어가는, 마치 선으로 그린 듯한 예술적인 패스였다.

    그런 패스를 따라 우측 윙인 스털링이 라인을 따라 달려들었고, 공을 건드리기 무섭게 패널티 박스를 목표로 방향을 꺾었다.

    패스에 이어 선보이는 완벽한 아웃-인 드라이브.

    ‘이건 위험하겠는데···, 아.’

    해당 장면을 지켜보던 재혁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완벽하게 넘어가버린 풀백의 뒤편을 커버하기 위해 페르난지뉴가 전력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아마 저 속도라면···.

    ‘그대로 몸을 날리는 태클로 끊어낼 수 있겠다.’

    아직 스털링이 공을 가지고 박스 안으로 침투한 것이 아니었으니, 태클만 잘 성공시킨다면 어떻게든 수비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페르난지뉴의 태클을 기대하던 재혁은···.

    “?!”

    자신의 생각과 달리 페르난지뉴가 몸을 날리지 않은 것에 당황했다.

    분명 저기선 태클로 플레이를 끊을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페르난지뉴는 한 차례 각을 좁혔을 뿐, 섣불리 발을 뻗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 왜? 라는 의문이 재혁의 머릿속에 떠오를 때 즈음.

    터엉!

    “아.”

    스털링의 발밑에 있던 공이 하늘 위로 높게 떠올랐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스톤스가 드리블을 하는 스털링을 막아내고 공을 걷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스털링은 공을 잃은 것에 참고 있던 숨을 토해내며 땅을 찼고, 스톤스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면서 페르난지뉴의 어깨를 툭 치곤 지나쳤다. 페르난지뉴는 그런 스톤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곤 스로잉을 준비 중인 상대 팀 선수들에 맞춰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모두 지켜보던 재혁은 미간을 모았다.

    ‘뭐지? 뭘까···.’

    단순히 자신과 다른 판단을 통해 수비를 해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무언가 달랐다.

    페르난지뉴의 수비 선택에선 그가 느끼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재혁은 자세를 고쳐 앉았고, 이어지는 플레이들을 좀 더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아마 이건 분명···.

    ‘감독님이 페르난지뉴에게만 따로 말을 전한 이유. 그게 지금 플레이에서 묻어나오는 걸거야.’

    오늘 자신이 훈련에 참여하지 않고 지켜보게 된 그 이유가 바로 오늘 페르난지뉴의 플레이를 통해 설명이 되는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재혁의 표정이 변했다.

    더 이상 강제로 원치 않는 수업에 참석하게 된 학생의 뚱한 얼굴이 아닌, 학습에 대한 기대와 재미를 머금고 있는 얼굴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재혁의 얼굴을 힐끗 확인한 과르디올라 감독이 작은 미소를 떠올렸다.

    대강 보기에도 재혁도 어느 정도 감을 잠은 듯 했으니,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오늘이 지나면 드디어 완성될 지도 모르겠군. 미드필더의 교본이 말이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미소를 떠올리던 과르디올라 감독이 다시 시선을 훈련장으로 돌렸고, 공격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스로잉 이후, 공을 한 차례 뒤로 돌리게 된 공격 측은 다시 한 번 실바를 통해 공간을 뚫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케빈의 패스를 이어 받은 실바의 눈동자가 한 차례 반짝였고.

    토옹!

    가벼운 패스가 그의 발끝을 떠나 뻗어나갔다.

    우측이 아닌, 이번엔 그 반대 편을 노리고 뿌린 패스였다.

    이번 패스에도 수비 측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고, 터치 라인에 발꿈치를 붙이고 있던 자네가 패스를 이어 받은 뒤 공을 달고서 다리에 속도를 붙였다.

    그렇게 필드 안쪽을 노리고 드리블을 시작하자, 이번에도 페르난지뉴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차분하게 달려오는 자네의 모습을 한 눈에 담아두고 있던 페르난지뉴.

    그런 페르난지뉴를 지켜보면서 재혁은 과연 어떤 수비를 보여줄지, 기대하며 입술을 씹었고···.

    촤르륵, 터엉!

    “크윽!”

    이번엔 몸을 날리는 슬라이딩 태클로 플레이를 끊어내는 모습을 발견하곤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미소를 떠올렸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언제 페르난지뉴가 태클을 시도하고, 또 언제 각을 좁히는지. 그 차이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공간의 활용이란 건 공격하는 측에서만 사용하는 게 아니었던 거야. 수비를 위한 공간. 어떤 선택지를 판단하는지, 그 기준점이 되는 공간이 분명 있다!’

    그동안 꽉 막혀있던 생각에 물꼬가 트이자 재혁은 쉴 새 없이 필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한 장, 그에 이어 다른 쪽까지 빽빽하게 채워놓고 있는 재혁.

    그런 재혁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과르디올라 감독이 호각을 불며 소리쳤다.

    “그럼 오늘 훈련은 여기서 끝이다. 미켈 코치가 마무리를 진행해주고, 다들 씻고 난 후 식사하는 거 잊지 말고···.”

    코치와 선수들을 지목하며 말을 이어가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슬쩍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 벤치를 지키고 있는 재혁을 향해 말했다.

    “재혁은 돌아가기 전에 사무실에 잠깐 들렸다 가게. 그럼 모두 해산.”

    < 95. 관점의 차이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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