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92화 (92/225)
  • < 92. 이기는 축구 >

    “맨체스터 시티, 번리의 골망을 흔들면서 한 점 앞서 나갑니다! 골대 구석을 노리는 제수스의 정확한 슈팅이 마침내 차이를 만들었군요.”

    “번리의 입장에선 눈물이 날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이슨 감독도 당황했는지 어이없어 하고 있죠?”

    제수스의 득점을 확인하기 무섭게 캐스터와 해설자의 입이 바빠졌고, 둘은 득점 장면을 다시 한 번 돌려 보면서 계속 탄성을 흘렸다.

    “그럴만도 하죠. 역습을 노리고 있던 팀이 오히려 역습을 당해버렸으니 말입니다. 아,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아필드 선수.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네요.”

    “아필드 선수에게 향하던 공이 끊어지고 그걸 바로 사네 선수에게 이어준 게 주효 했어요. 덕분에 사네 선수도 마음먹은 대로 크로스를 올리 수 있었고, 노마크 찬스를 맞이하게 된 제수스 선수는 여유있게 구석을 노리고 공을 밀어넣은 거죠.”

    “경기 초반의 분위기는 분명 번리 쪽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네빌 해설자님?”

    캐스터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물은 것에 해설자 역인 네빌은 신중한 얼굴로 답했다.

    “실점을 기점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순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팀의 색깔을 더욱 견고히 나타낼 필요가 있으니까요.”

    “팀의 색깔이라면···.”

    “어떻게든 공을 상대 필드 쪽에 우겨넣어 끊임 없이 쟁탈전을 벌이는 번리식 축구를 말하는 거죠. 지금까지 번리가 해 온 축구가 거칠고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 또한 이기기 위한 축구니까요. 지고 싶지 않다면 자신을 잃어선 안 됩니다.”

    네빌 해설의 말대로였다.

    첼시를 이기고 토트넘과 리버풀을 상대로 비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 때문이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팀의 특색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을 번리의 선수들도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 당황은 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서로를 다잡았다.

    이번 실점을 계기로 되려 결속을 단단히 다지려는 모습이었다.

    이미 이들에겐 ‘경험’이 있었으니까.

    “아직 끝나려면 60분도 더 남았어.”

    “다시 천천히 쌓아가면 돼. 기회는 분명 다시 온다. 그걸 놓치지 말자고.”

    “그래. 다시 한 번 기합 넣고! 아필드,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계속 뛰는 거야!”

    부상으로 빠지게 된 히튼을 대신해 주장 완장을 팔에 두르고 있던 벤 미가 소리치자 선수들이 그에 맞춰 목소리를 모았고, 자신감을 잃었던 아필드도 어느 정도 생기를 되찾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동료들의 말처럼 아직 경기가 시작되고 30분도 채 흐르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후반전을 포함해 무려 60분 이상이 남아 있었으니.

    ‘집중하자, 집중. 기회가 왔을 때 정작 집중력을 잃어 살리지 못 한다면 그거야 말로 처참한 꼴이니까.’

    아필드가 각오를 다지면서 두눈을 반짝였고, 곧 센터 서클에 놓인 공을 앞으로 굴리면서 경기를 재개시켰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경기에서 번리 선수들은 지고 있기 때문에 전보다 한 발자국 더 뛰려고 굵은 땀을 흘렸고, 그것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상대 진영에 머물고 있는 아필드도 마찬가지였다.

    끊임 없이 맨시티 선수들과 부딪치고, 또 공을 위해 싸웠다.

    그러자 정말 그들의 생각대로 조금씩 기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코크의 입가에도 서서히 미소가 맺히기 시작했다.

    ‘이제 곧이다···!’

    번리 선수들이 양 측면에 위치해 있는 브레디와 구드문드손을 최대한 활용해 필드를 넓게 이용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개인 전술론 상대를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가능한 많은 선수들이 플레이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오래 가면 갈수록 선수들에게 한 가지 부담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바로 체력과 활동량이었다.

    조직적인 수비, 두 줄 수비라는 단어들 뒤에 숨어 있는 번리의 또 다른 정체성인 왕성한 활동량은 좁혔다고 생각하면 벌써 벌어져 있었고, 측면까지 넓게 벌렸던 선수들은 또 언제 왔는지 중앙을 찾아 움직이면서 쉼없이 상대 선수들에게 움직일 것을 강요한 것이다.

    게다가 이런 움직임을 쫓아야 할 중앙 미드필더 둘이 바로 노쇠화가 한창 진행 중인 투레와 부상에서 복귀해 폼이 아직 올라오지 못한 귄도간이었으니.

    다이슨 감독 또한 코크와 비슷한 미소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과르디올라 감독.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본 게 아닙니까? 아무리 A매치 때문에 로테이션을 돌리려고 했다곤 하지만···, 그러다가 당하는 거라구요.”

    파앙!

    “저렇게 말입니다.”

    다이슨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크의 발끝에 머물던 공이 필드를 깊숙히 찌르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지치기 시작한 투레와 귄도간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면서 생긴 빈틈을 노린 정확한 패스였다.

    패스를 허용하자 두 사람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공이 이번에는 정확히 아필드에게 향한 것을 확인한 코크는 마침내 기쁨의 미소를 떠올랐다.

    이번엔 됐다.

    그런 생각을 하며 코크는 아필드가 공을 받는 타이밍에 맞춰 따라 뛰기 시작했고, 아필드는 공을 받기 무섭게 곧장 최전방에서 공간을 찾아 달리는 크리스 우드를 노리고 스루 패스를 찔렀다.

    이 모든 상황이 2초도 되지 않는 순간 내에 이루어지자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크게 당황했다.

    특히 크리스 우드의 마크를 맡아야 했던 망갈라는 순간적으로 마크맨을 놓친 것에 얼굴을 붉히며 다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그도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늦는다···!’

    크리스 우드가 공을 잡고 박스 안으로 침투한 후 슈팅을 때리는 동작이 자신의 뒤를 쫓는 것보다 빠를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망갈라는 계속해서 달렸고, 우드의 앞을 막아서는 선수를 발견하곤 환히 웃었다.

    센트백 파트너인 스톤스가 그의 공백을 커버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일단 직접 슈팅 각은 막았.···’

    “헉!”

    우드의 정면에 서기 무섭게 잔발을 굴리던 스톤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분명 한 번 더 공을 치고 달리는 드리블을 할 것이라 예상 했던 것인데, 우드는 그 상황에서 드리블을 선택하지 않고 곧장 패스를 찌른 것이다.

    그것도 그냥 열린 곳이 아닌 스톤스 본인이 움직이면서 생기게 된 뒷공간을 노린 날카로운 패스였고, 그곳으론 처음에 아필드에게 패스를 주었던 코크가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평소 공격적인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하지만, 시즌 중 한두 번쯤은 기회를 노려 달려들었던 코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 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고, 부드러운 볼터치로 슈팅을 때리기 좋은 위치로 공을 이동시키며 숨을 참았다.

    그의 눈에 브라보 골키퍼가 슈팅 각을 좁히게 달려드는 게 보였으나, 브라보의 후속 동작이 느렸기에 이미 거리는 충분히 확보한 상황.

    ‘이건 완벽한 기회다.’

    코크가 고개를 내려 자신의 디딤발 옆으로 구르고 있는 공을 살피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발등으로 공을 때리면서 고개를 올려 슈팅 궤적을 쫓아 시선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 했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발이 그의 슈팅을 막지 않았다면 말이다.

    퍼억!

    “뭣?!”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슈팅의 궤도가 크게 꺾이면서 공이 골라인 밖으로 나가버리고 만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번리 선수들은 헛바람을 삼키며 당황스러워 했고, 맨시티의 선수들은···.

    “재혁!”

    “잘 끊었다! 덕분에 한 골 벌었네.”

    “후우, 다음부턴 조심하세요. 아직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경기라고요.”

    슬라이딩으로 간신히 슈팅을 끊어낸 재혁의 머리칼을 거칠게 헝클면서 기뻐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중계자와 해설자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큰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최재혁 선수, 위기 상황에서 몸을 날리는 슬라이딩으로 슛을 막아냈습니다! 이건 거의 한 골을 막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대단하군요. 공격도, 수비도 아주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건 완전히 골이다, 라고 생각하고 반쯤 함성을 지를 준비를 하던 번리 팬들이 엉거주춤 다시 자리에 앉는 모습이 보이네요. 많이 아쉬울 겁니다.”

    “경기는 번리의 코너킥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코너킥을 준비하기 위해 이동하는 번리 선수의 어깨가 늘어져 보이는 건 제 착각일까요?”

    캐스터가 한 말을 들은 네빌 해설은 선수의 어깨가 늘어져 보이는 게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저런 상황에 있었더라도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테니까.

    그렇게 번리의 선수가 코너 플래그로 향하는 동안 네빌은 얼른 개인용 모니터를 향해 손을 뻗어 플레이를 뒤로 돌렸다.

    다른 무엇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바삐 손을 놀리던 네빌은 한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허.”

    짧게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또 다시 손을 움직여 실시간으로 선수들의 기록이 저장되는 데이터 베이스를 뒤지다가 쓰게 웃으며 경기장에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과 재혁을 살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2주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것이냐, 라는 작은 혼잣말을 말이다.

    그러는 사이 번리의 코너킥이 높게 올라왔고, 브라보 골키퍼의 손에 공이 걸리면서 번리의 공격이 끝이 났다.

    브라보는 공을 잡기 무섭게 오른쪽 측면을 따라 달리고 있는 다닐루를 향해 공을 던져주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코너킥을 막아내고 맨체스터 시티도 곧바로 반격에 나섭니다! 그 앞을 번리의 워드 선수가 막아서면서 일단 공을 돌리는 맨체스터 시티! 네빌 해설께선 남은 시간동안 경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

    “글쎄요.”

    캐스터의 질문에 아주 짧은 시간 뜸을 들였던 네빌은 얼마되지 않는 수염을 쓸어내며 답했다.

    “지금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번리는 힘겨운 경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혹시 아까 말씀하신 이기는 축구에 대한 이야긴가요?”

    “아뇨. 이건 제가 방금 알아차린 겁니다만, 혹시 오늘 최재혁 선수의 태클 성공이 몇 번째인지 아십니까?”

    “최재혁 선수의 태클 성공이요?”

    질문은 던졌는데 답이 아닌 도리어 질문이 날아든 것에 캐스터가 당황해 되물었고, 네빌은 경기를 계속 지켜보면서 답했다.

    “벌써 7번 입니다. 아직 전반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7번의 태클을 성공시킨 겁니다.”

    “···!”

    “그런데 더 놀라운 게 뭔지 아십니까?”

    캐스터가 답을 못하고 눈만 껌뻑이고 있는 것에 네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말했다.

    “오늘 시도한 태클의 횟수가 총 7번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태클 성공률이 백 퍼센트라는 소리죠.”

    “배, 백 퍼센트요?!”

    “그리고 지금 또 한 번 성공 시키면서 8번이 되었군요.”

    중원에서 공을 빼앗기면서 하마터면 역습으로 이어질 뻔한 플레이를 또 한 번 태클로 막아낸 재혁.

    네빌은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대수롭지 않게 뱉은 말이었지만.

    [오늘 최재혁 진짜 미쳤다!]

    [이거 완전 메켈렐레의 전신 아닙니까?! 태클 성공이 벌써 8번 째래요!]

    [태클만 쩌는 게 아니에요. 바로 전방으로 이어주는 패스도 보세요! 살림꾼도 이런 살림꾼이 없어요.]

    [뭐죠? 혹시 경기장에 재혁이가 두 명인가요? 언제 또 저기에 가서 태클을 날리고 있데요? 와, 활동량 돌았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팬들, 특히 한국에 있는 팬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고···.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거야?!”

    재혁을 상대하고 있는 다이슨 감독은 그의 태클에 플레이가 또 잘리는 것을 확인하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비명을 질렀다.

    < 92. 이기는 축구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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