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89화 (89/225)
  • < 89. 시작은 기초부터 >

    스르륵, 철컥.

    문이 닫히면서 가벼운 쇳소리가 울렸고, 곧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찾아온 정적은 오래지 않아 또 다른 이의 노크 소리에 의해 깨졌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재혁이 빠져나간 문을 통해 들어온 새로운 인물, 미켈 코치를 환영하며 웃었다.

    “벌써 왔나? 오늘까지는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줬던 거 같은데.”

    “저도 그러고 싶었죠. 문자 마지막에 따로 추신이 적혀 있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털썩.

    감독에게 대꾸하며 그의 건너편에 앉은 미켈은 휴대폰을 꺼내 과르디올라 감독이 보낸 문자를 쭉 읽었다.

    앞의 내용은 그가 언급했던 것처럼 내일까지 쉬고 훈련장으로 복귀하라는 소리였으나, 문제의 추신 부분을 다시금 눈으로 읽으면서 미켈 코치는 한숨을 뱉었다.

    “내일 저를 호출하신 이유가 재혁의 개인 훈련 때문이라니요. 저도 당연히 감독님을 따라 스페인으로 이동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요?”

    “그럴 계획이었지만, 미켈 코치도 알다시피 계획이란건 종종 바뀌기 마련이지 않나?”

    “부분적으로 수정은 되겠지만, 하루만에 모든 게 바뀌진 않죠.”

    연신 감독에게 퉁명스레 대꾸하며 미켈은 턱을 괴었고, 그런 미켈 코치를 바라보며 과르디올라 감독은 웃었다.

    미켈 코치가 다른 구단들을 마다하고 맨체스터 시티로 온 이유를 그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 미켈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바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은 단호하게 감정을 다잡은 후 말했다.

    “종종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그런 일도 생긴다는 점을 미켈 코치도 알아주길 바랄 뿐이야.”

    “···후우.”

    “스페인에서 준비할 자료는 자네를 위해 따로 정리해놓을테니, 오늘 일에 너무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리고 재혁의 개인 훈련이지만 자네도 분명 재밌어 할거야.”

    “제가 재밌어 할 거라고요?”

    한숨을 토해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미켈이 과르디올라 감독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갸웃였고, 감독은 코치를 향해 예의 미소를 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훈련을 통해 재혁에게 확실한 무기를 하나 심어줄 생각이거든.”

    “무기요? 이미 최재혁, 그 꼬마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분석은 모두 끝이 난 게 아니었던가요?”

    “끝이 나긴 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재혁이지 않나? 아직 우린 2주 뒤의 재혁에 대해 알지 못한다구.”

    “!”

    어린 선수가 팀에 합류하면 내부적으로 몇 차례 검증에 들어간다.

    해당되는 사항들은 선수의 특출난 점을 분석해 각 상황에 대입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예측하고, 강점과 약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어떤 식으로 선수를 성장시킬지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혁에 대한 보고서는 바로 며칠 전에 완성되었다.

    그런데 벌써 그 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있었다니.

    미켈은 잠시간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재혁을 아끼는 것은 알겠으나, 무리한 훈련이 선수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재혁의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신체의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키가 계속 크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근육을 붙일 수가 없고, 그러니 자연히 신체 균형을 잡아주는 훈련만 따로 해주고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그런 재혁의 신체 변화에 무리를 주지 않고 진행할 수 있는 훈련이란 것은···.”

    “하나 있지 않나? 특별히 근육을 붙이지 않아도 신체적으로 우위에 있는 선수를 상대로 허를 찌를 수 있는 수가 말야. 미켈 코치가 선수로 뛰던 시절에도 꽤 잘하던 건데 말이지.”

    “설마···.”

    자신의 선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자 미켈은 미간을 그러모았다가 서서히 펴며 되물었다.

    “태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바로 맞췄어. 역시 잘 기억하고 있군.”

    “하지만 여태까지 태클 훈련을 따로 진행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에 미켈은 당황해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훈련을 지도해오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태클에 대한 훈련은 따로 진행했던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클의 중요성을 무시한 게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축구를 구사하기 위한 훈련 일정에 굳이 태클을 넣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재혁에게 태클을 훈련시키겠다니.

    그것도 일반적인 수준이 아닌, 무기가 될 정도로 갈고 닦게 할 생각이라니.

    미켈 코치는 무작정 고개를 끄덕이기에 앞서 다시 한 번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말했다.

    “감독님이 재혁을 아끼고, 경기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활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저도 잘 알겠습니다만, 선수를 팀에 억지로 끼워넣기 위한 훈련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예?”

    “내가 정말 한 선수를 편애해서 그에게 이런 훈련을 지시하는 것 같냐고 물은 거네.”

    두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되묻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물음에 바로 대꾸할 수 없었던 미켈 코치는 순간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그런 코치를 한동안 바라보던 과르디올라는 피식 실소를 흘리더니 뺨을 긁적였다.

    “흠, 다시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매 경기 재혁을 쓰고 싶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니까 말야.”

    “가, 감독님!”

    “하지만 그 감정이 맹목적인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팀에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당황해 자신을 부른 미켈을 향해 과르디올라는 침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굳이 따지고 본다면 재혁이 원하는 자리는 이미 다비드 실바가 차지하고 있어. 그것도 아주 견고하게 말야. 혹여 실바가 빠진다면 투레가 있고, 정 급하면 케빈을 사용할 수도 있지. 각자의 장점을 활용한다면 지금 허리의 핵심이 되어주고 있는 실바가 부상으로 이탈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메꾸는게 가능할 거야.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단순히 실바의 백업으로 활용하는 수준이 아니야.”

    “그렇다면···.”

    “혹시 자네, 실바와 재혁이 함께 뛰었던 경기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나?”

    “실바와 재혁이 함께 뛰었던 경기들이라면···.”

    감독의 질문에 턱을 움켜쥐고 고개를 갸웃이던 미켈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 손을 모은 뒤 답했다.

    “대부분 재혁이 풀백으로 뛰었던 경기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제대로 기억하고 있군.”

    “그야 항상 공부하고 있으니까요.”

    감독이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 것에 미켈은 쑥쓰러운 듯, 뒷목을 긁적였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런 미켈을 향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당시 경기들의 패스 맵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나?”

    “패스 맵···, 이요?”

    “전체적인 패스 맵이 아니어도 좋아. 후방에서 중원, 중원에서 전방으로 향하는 전진 패스들의 길목들이 어땠는지를 한 번 떠올려 보라는 소리야.”

    “전진 패스들이라면···, 아!”

    기억을 더듬던 미켈 코치는 곧바로 탄성을 흘렸고, 미켈 코치의 눈동자가 굳어 있는 것을 확인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생긋 떠올린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떤 식으로든 공은 꼭 그 두 선수를 지나쳐 이동했어. 물론 별 생각없이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거든. 풀백이 아닌, 미드필더로 뛰게 될 재혁과 실바의 연계가 과연 경기장에서 어떤 효과를 낳게 될지, 내 두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진 거야.”

    무어라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잔뜩 굳어 있는 미켈 코치를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은 다 식은 찻잔을 기울이며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 자네가 진행할 훈련은 그 도전의 시작이 될테니 얼마나 재밌겠나? 나는 벌써부터 기대가 되서 잠도 제대로 못 잘 거 같은데, 자네는 어떤가?”

    마치 어린 아이처럼 두눈을 반짝이며 묻는 과르디올라 감독.

    그런 감독을 마주보고서 미켈 코치는 그저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

    ‘흐음, 태클이라.’

    새로운 해가 떠오른 아침.

    재혁은 기숙사에서 준비해준 음식들로 아침을 해결하면서 턱을 쓸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그동안 태클을 시도할 때 깊이 생각하고 시도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흐름이 왔기에 몸을 날렸고, 어떻게든 발끝으로 공을 걷어내기 위해 전력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크게 탈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굳이 2주간 특별 훈련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걸까?’

    재혁은 마지막 남은 샐러드를 포크에 찍어 입에 넣은 후 오물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훈련보다는 차라리 경기를 더 뛰고 싶었는데.

    A매치 기간동안 몇몇 선수들이 따로 모여 연습 경기를 치른다는 이야기를 넘어 넘어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재혁은 아쉬움으로 입맛을 다셨다.

    물론 훈련을 통해 태클을 잘하게 된다면, 그것도 나쁠 것은 없겠지만, 과연 어느 정도 수준까지 달라질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머리가 복잡했던 것이다.

    그래도 일단 하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잘만 된다면 선발로 뽑아준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으니까. 더 이상의 고민은 무의미하리라.

    “슬슬 출발할까.”

    재혁은 빈 식판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어깨에 걸친 뒤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30분 정도를 소요해 도착한 훈련장은 평소와 달리 매우 조용했다.

    구단에 속한 선수들 중 5할 이상이 국가대표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실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이곳에 남아 훈련을 해야 했으니.

    재혁은 짐을 풀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코치가 오기를 기다렸고, 곧 훈련 도구들을 가지고 등장한 미켈 코치를 발견하곤 그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미켈 코치님.”

    “좋은 아침. 몸상태는 괜찮겠지?”

    축구공을 포함해 다른 도구들을 잔디 위에 내려놓으며 물은 말에 재혁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충분히 회복 됐어요. 경기를 뛰어도 무리가 없을 걸요?”

    “그래? 다행이군. 굳이 봐주면서 훈련할 필요가 없겠어.”

    “···.”

    몸상태가 더 없이 좋다는 건 사실 훈련보다 연습 경기를 뛰고 싶다는 표현이었으나, 미켈은 그런 재혁의 의도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듯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꾸한 후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괜찮겠냐고 묻는 코치의 말에 재혁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고, 미켈 코치는 공을 만지기에 앞서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태클이 무엇인지는 선수은 네가 당연히 모를 리 없겠지만, 그래도 수준을 알기 위해서 한 번 물어봐야겠군. 재혁, 네가 알고 있는 태클의 종류는 총 몇 개지?”

    “음. 서서하는 태클과 슬라이딩하면서 시도하는 태클. 두 가지 종류가 아닌가요?”

    “크게 나눈다면 틀린 건 아니야. 실제로 서서하거나, 몸을 날리면서 하거나, 태클을 시도할 때 취할 수 있는 자세는 두 가지 뿐이니까. 하지만 내가 구분하고 있는 태클의 종류는 그것보다 많아.”

    “두 가지보다 많다고요?”

    재혁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물은 것에 미켈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단순히 행동이라는 부분에서 나눈다면 재혁, 네가 나눈 것처럼 두 가지겠지. 하지만 상대의 발밑에 있는 공을 뺏는다는 정의로 구분을 한다면 과연 태클의 가짓수는 몇 개가 될까?”

    “···!”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축구를 토대로 구분했을 때, 나는 태클에 최소 다섯 가지 이상의 종류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있어. 자, 이제 정의를 새로 구분했으니 다시 한 번 물어볼까? 재혁, 네가 생각했을 때 태클의 종류는 총 몇 가지지?”

    “으음···.”

    다시 한 번 재혁에게 물으면서 미켈 코치는 발밑에 두고 있던 공을 천천히 재혁을 향해 굴렸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생각에 잠긴 재혁은 쉬이 답을 떠올리지 못하고 아랫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그렇게 미켈 코치가 굴린 공이 자신의 발에 닿을 때까지도 답을 내놓지 못했던 재혁은 침울한 얼굴로 미켈 코치를 올려 보았고, 그런 재혁을 내려보면서 미켈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조금은 마음에 드는 얼굴을 하는군. 그럼 훈련은 기초부터 시작하겠다.”

    < 89. 시작은 기초부터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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