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87화 (87/225)
  • < 87. 차이를 만들 줄 아는 선수 >

    22명의 선수들이 마침내 모두 필드에 올랐고, 주심이 시계를 확인한 뒤 호각을 불었을 때 드디어 멈췄던 후반전의 초침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공을 중심으로 뭉친 선수들은 곧장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며 한 쪽은 승리를 굳히기 위해, 다른 쪽은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발을 움직였고, 그 사이에 섞여 연신 공간을 찾아 움직이던 바르셀로나의 파울리뉴는 자신을 쫓아 움직이고 있는 어린 선수의 얼굴을 슥 확인한 뒤 조그만 목소리로 뇌까렸다.

    “자신에 찬 얼굴이군.”

    실제로 경기에서 균형이 깨진 이유가 이 꼬맹이 때문이었으니.

    당당한 얼굴로 자신을 쫓아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저 얼굴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생각을 끝냄과 동시에 왼쪽 측면을 가파르게 깎아 들어가는 파울리뉴의 입꼬리가 살며시 꺾였고, 그의 움직임을 쫓아 공이 날아들었다.

    파울리뉴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이니에스타가 틈이 보이기 무섭게 침투하는 파울리뉴의 발 앞으로 공을 붙여준 것이다.

    이니에스타의 패스를 쫓아 움직이는 파울리뉴는 다리에 더욱 힘을 붙였고, 공을 건드리기에 앞서 자신의 옆을 바짝 쫓아 달리고 있는 상대를 확인한 뒤 슬그머니 어깨를 밀었다.

    데울로페우가 빠지고 지금 자신이 이 자리에서 뛰는 바로 그 이유.

    상대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피지컬적인 부분에서 압도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재혁과 어깨 싸움을 벌여보니 그의 예상대로 오른쪽 어깨를 타고 전해지는 충격은 한없이 가벼웠다.

    파울리뉴의 미소가 짙어진 것은 그 직후였다.

    ‘모든 게 생각대로!’

    투우웅!

    “···!”

    머릿속으로 판단이 끝나자 파울리뉴는 망설임 없는 동작으로 상체를 크게 흔들어 어깨를 맞댄 상대와 지속적으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어깨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재혁의 얼굴은 점차 굳어갔고, 상대가 서서히 밀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파울리뉴는 드리블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마치 연을 조종하는 것처럼 재혁을 옆구리에 달고서 순식간에 패널티 박스 근처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한 파울리뉴.

    그는 눈앞에 맨시티의 3백이 자리를 잡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파악하기 무섭게 공을 옆으로 돌렸고.

    “흐읍!”

    뻐엉!

    그와 함께 라인을 쫓아 침투 중이던 수아레스가 그의 패스를 받아 곧장 슈팅을 때리면서 공격을 마무리 지었다.

    빠르고 정확하게 구석을 노린 슈팅!

    아마 평범한 골키퍼였다면 뚫렸을지도 모를 슈팅이었지만, 에데르손 골키퍼의 몸을 날리는 펀칭에 수아레스의 슈팅은 길을 잃고 골문에서 멀리 벗어나면서 코너킥이 선언되었고, 동시에 파울리뉴가 혀를 차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런 파울리뉴에게 다가온 부스케츠는 동료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었다.

    “바로 효과가 오는데?”

    “그러기 위해 투입된 거니까. 효과가 없으면 안 되지.”

    “그래, 그렇지. 그래야지.”

    파울리뉴의 짧은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던 부스케츠.

    그는 곧 시선을 옮겨 코너킥을 수비하기 위해 골대에 몸을 기대어 선 어린 선수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상대 팀의 약점이라 생각했던, 알고 보니 올가미가 되어 자신들의 목을 옥죄고 있던 재혁을 말이다.

    효과적인 수비를 위해 다른 팀도 아니고 우리를 상대로 ‘일부러’ 공격 루트를 강제시켰던 녀석.

    부스케츠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꾹 억누른 후 자리를 잡기 위해 천천히 박스 주위를 맴돌며 중얼거렸다.

    ‘45분 동안 속은 걸 생각하면 속이 끓지만···, 후우! 이젠 아니야. 확실히 흐름이 우리 쪽으로 돌아 왔어. 앞으로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부숴주면 돼.’

    “온다!”

    “막아! 일단 막아야 돼!”

    “머리로 떨어지는 거 절대 놓치지마!”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우측에서 코너킥이 올라왔고, 동시에 선수들이 분주히 몸을 부딪쳤다.

    수비를 하려는 선수들은 어떻게든 공을 걷어내기 위해, 득점을 성공시키려는 선수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을 자신들의 소유로 놓기 위해 상대 팀의 견제와 압박을 이겨내면서 있는 힘껏 공을 향해 몸을 날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먼저 공에 손을 가져다 댄 것은 골키퍼였던 에데르손이었고, 가까스로 공을 박스 바깥으로 밀어내는데 성공하면서 일단 한 템포 쉬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떨어지는 공을 소유한 것은 이번에도 바르셀로나.

    한 번 찾아온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바르셀로나는 연달아 찾아온 기회를 놓칠 정도로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다.

    중앙에서 일단 상대의 공을 멈춰 세우기 위해 달려들던 페르난지뉴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뚜, 뚫린다!’

    터엉, 텅!

    순식간에 이루어진 2대1 패스.

    중간에 끼어있는 사람을 바보로 보이게 만드는 패스를 통한 탈압박에 페르난지뉴의 발이 얼어버렸고, 손쉽게 중앙을 파는데 성공한 라키티치는 재빨리 공을 전방으로 밀어주면서 지금까지 공을 제대로 만지지 못하고 있던 선수에게 패스를 연결해주었다.

    목표는 바르셀로나의 10번.

    “메시!”

    “메시다! 드디어 메시가 공을 잡았어!”

    리오넬 메시였다.

    온 더 볼 상황에서 누구보다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스스로 공간을 파고드는 플레이를 즐기는 메시였기에 원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전반전 동안 거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적절한 순간에 그에게 공이 연결되면서 그동안 숨기고 있던 존재감을 알린 것이다.

    해당 장면을 눈에 담은 누캄프의 9만여 관중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모아 소리를 내질렀고, 메시는 그런 관중들에게 자신이 부리는 마법같은 드리블로 화답하기 시작했다.

    먼저 빠른 타이밍에 공을 끊어내려는 듯 짧은 태클을 날린 멘디의 발길질을 왼발에 있던 공을 오른발로 붙이는 것으로 깔끔하게 피해낸 뒤 그대로 공의 속도를 살려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멘디를 뚫어내기 무섭게 뒤이어 등장한 콤파니를 상대로도 메시는 밀리지 않고 집요한 드리블을 통해 박스 안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콤파니의 머릿속이 후회라는 감정으로 뒤범벅 된 것은 메시의 발끝에 놓여 있던 공이···.

    토옹!

    가벼운 소리를 내며 허공에 떠올랐다가 바닥에 뚝 떨어진 것을 확인한 직후였다.

    설마, 라는 생각으로 뒤를 쫓던 선수들은 탄식을,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깃털처럼 날아 가볍게 골망에 걸리는 공을 확인하기 무섭게 목청이 터질 정도로 큰 소리를 내지르며 메시의 동점골에 환호했다.

    “캬! 역시 메시다!”

    “우리의 10번!”

    “그렇지, 이대로 그냥 질 수는 없지! 이제 이대로 역전까지 가자고!”

    와아아···!

    애타게 기다렸던 득점이었던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팬들 앞에 뭉친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간략하게 세레모니를 끝마치고 공을 가지고 센터 서클을 향해 뛰었다.

    이제 골문이 열렸으니 역전까지 쉬지 않고 달리겠다는 의지를 또렷하게 관철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런 바르셀로나 선수들과 크게 비교될 정도로 침울해진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숨을 토해냈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뚫려버린 스스로를 자책하며 연신 박수를 쳐대는 것이 척 보기에도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고, 파울리뉴는 그런 맨시티 선수들의 표정을 하나 하나 살피면서 만족스럽게 웃다가···.

    ‘···뭐야? 저녀석.’

    다른 선수들과 달리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재혁을 발견하고 눈썹을 찌푸렸다.

    팀이 위기라고 느끼고 있는 순간에서 홀로 웃고 있다니.

    ‘제정신인가?’

    도저히 이해 못할 불쾌한 감정에 파울리뉴는 인상을 구기고 시선을 돌리려다가 재혁과 눈이 마주쳤고, 시선을 타고 넘어오는 감정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파울리뉴는 순간 가빠진 숨을 골라내면서 자신의 안으로 타고 들어온 재혁의 감정을 상기해내곤 입술을 떨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저 자식···. 지금 상황을 재밌어 하고 있어?”

    재혁은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기고 있던 경기가 동점으로 따라잡혔음에도,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전술에 몸을 맡기고 있었음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여유를 확인하기 무섭게 파울리뉴는 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이 경기는 어차피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경기였다.

    그렇다면 그 다음 목표로는···.

    ‘네 얼굴에서 그 건방진 웃음이 사라지게 만들어주마.’

    “파울리뉴, 준비하고 있어?”

    “어, 어. 물론이지.”

    맨체스터 시티가 경기를 재개하기 무섭게 강하게 압박을 넣을 준비를 하고 있던 부스케츠가 멍하니 재혁을 노려보고 있던 파울리뉴를 깨웠고, 동료의 말에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파울리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센터 서클 위에 놓여 있는 공을 노려보았다.

    저 공이 잔디 위를 구르는 바로 그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전력으로 달려드리라.

    파울리뉴는 신경을 바짝 곤두 세우고 주심의 휘슬을 기다렸고, 날카롭게 울린 휘슬 소리에 맞춰 맨시티의 선수들이 공을 돌리기 무섭게 잔디를 거칠게 밟아가며 공을 향해 돌진했다.

    제수스에서 다비드 실바, 그리고 페르난지뉴를 통해 내려갔던 공이 곧 우측에 머물고 있던 재혁에게 구르기 시작했고, 파울리뉴의 입술이 비릿하게 꺾인 것은 그 다음이었다.

    ‘여기서 잡는다!’

    공이 굴러가는 속도와 현재 자신과의 거리를 보아, 분명 재혁이 공을 잡는 그 순간에 자신이 재혁의 앞을 막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녀석을 막아내는 법은 이미 터득했으니까.

    파울리뉴의 눈동자에 재혁이 오른 발등으로 공을 가볍게 건드리는게 들어왔고, 파울리뉴는 그와 동시에 어깨를 거칠게 밀어넣었다.

    곧 쿠웅, 평소보다 크게 울리는 충격음이 귓가에 퍼졌고, 파울리뉴는 바닥을 뒹굴고 있을 재혁을 기대하며 고개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

    당혹감에 눈동자가 커졌다.

    분명 저놈은 지금쯤 공과 함께 바닥을 구르고 있어야 했는데···.

    ‘버텼어?!’

    마치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는 듯이, 평온한 얼굴로 공을 컨트롤하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것인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을 껌뻑이던 파울리뉴는 바로 숨을 참고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재혁은 그가 정신을 차릴 시간을 주지 않고 멈췄던 공을 다시 이끌고 드리블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라인을 따라 달리려는 것처럼 우측으로 한 차례 크게 기울어진 재혁의 상체 움직임을 읽어낸 파울리뉴는 오른발을 뻗어 재혁이 이동하려는 길목을 막아서다가 황급히 뒤로 걸음을 물렸다.

    척추를 중심으로 분명 몸의 균형이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었지만 하체가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아 그게 페인팅인 것을 미리 간파하고 얼른 수비 자세를 정자세로 고친 것이다.

    과연 재혁은 파울리뉴가 예상했던 대로 기울였던 상체를 도로 회수하고 있었고, 확실히 막았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를 띄우던 파울리뉴는···.

    “···?!”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표정을 굳혔다.

    분명 상체는 돌아왔지만, 그의 발밑에 가장 중요한 것.

    공이 없었던 것이다.

    “설마 아까 페인팅 모션 중에 발등으로 패스를···!”

    파악은 늦었지만 파울리뉴의 이어지는 행동은 재빨랐다.

    공이 없는 재혁에게서 등을 돌리고 패스를 받은 케빈을 쫓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할. 놈한테 이런 식으로 뚫려버리면 전반전과 똑같은 상황이잖아?’

    전반전에 실점을 할 때도 이것과 비슷했다.

    우측에서 한 번에 열리는 패스를 뿌리고, 그 패스를 토대로 라인을 끌어 올렸던 수비수들의 뒷공간을 노리는 플레이.

    그 중심에는 득점 루트까지 단번에 뚫어내는 다비드 실바와 케빈이 있었고, 라인을 타고 이동하면서 언제든 득점권 안으로 침투하기 위해 달리고 있는 베르나르두 실바와 제수스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골문을 위협하고 있었다.

    파울리뉴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연신 공을 쫓아 달렸다.

    혹시라도 전반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지만 이번엔 자신이 필드에 있었으니 반드시 막아보이겠다는 의지를 또렷하게 표출해보이면서 말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지 패스를 이어 받은 케빈이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 들었고, 다비드 실바도 그런 케빈과 라인을 맞춰 중원에 머물고 있었다.

    ‘이렇다면 충분히 가둘 수 있어. 공이 중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계속 막아내면 된다···!’

    어떤 식으로 수비를 해야 할지 정해지자 파울리뉴의 발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어차피 상대가 시도할 패스가 뻔하다면, 자신은 뻔한 수비로 대응하면 되는 거니까.

    이니에스타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공과 함께 몸을 비트는 케빈에게 파울리뉴까지 달려들었고, 두 선수의 압박을 쉽사리 풀어낼 수 없었던 케빈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다비드 실바에게 공을 넘긴 후 공간을 찾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할 때까지만 해도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은 자신들의 수비가 효과적으로 통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만약 케빈에게 공을 넘겨 받은 다비드 실바가···.

    토옹.

    “?!”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 한 공간을 향해 패스를 뿌려주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중원에서 실바와 맞붙던 부스케츠, 그리고 왼쪽 풀백 알바의 키를 가뿐히 넘기는 다비드 실바의 로빙 패스를 보면서 대체 저 패스가 누구를 향한 것인가, 라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동시에 떠올리던 선수들은···.

    사락.

    “!”

    부드러운 볼터치로 패스를 받는 선수를 확인하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동시에 소리쳤다.

    “맨시티의 꼬마?!”

    “저 자식이 언제 저기까지 올라간거야?”

    “아니 그전에···.”

    그리고 그런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처럼, 감독인 발베르데도 충격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짜 풀백이···, 아니었던 거냐?”

    중원에서 같은 숫자, 그리고 같은 공간을 두고 싸운다면 맨체스터 시티는 십중십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과르디올라 감독도 그 점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재혁을 측면에 배치함으로써 공간 싸움을 최대한 넓게 가지고 갔던 것이고, 재혁의 역할도 분명 그것에 계속 머무를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거늘.

    우측면 깊숙히 침투한 재혁을 확인한 선수들은 서둘러 새로이 수비 라인을 짜기 시작했고, 그런 상대의 움직임을 눈에 담으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늦었어. 이미 공간은 생겨버렸거든.”

    과르디올라 감독이 원하는 공간.

    재혁이 뛸 수 있고, 공을 받을 수 있고, 그리고 패스를 시도할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된 공간이 너무도 넓게 그의 눈앞에 있었으니. 미소가 그려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면 저 공간이 생겼다는 의미는 재혁이 원하는 곳 어디로든 공을 보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고, 그 말인즉.

    뻐엉!

    재혁이 올리는 크로스를 보고 침투 중이던 선수들이 즉각 반응 할 수 있는 공간이 함께 생겨났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제수스와 케빈, 그리고 베르나르두 실바.

    세 선수는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침투하면서 재혁이 올린 크로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만약 저 공이 자신들이 있는 위치를 향해 떨어진다면 언제든 머리나 발을 가져다댈 각오를 다진 얼굴이었다. 그리고 허공에서 순간 꺾이는 크로스의 궤도를 확인한 선수들 중···.

    ‘이건 내 거다!’

    가브리엘 제수스가 두눈을 반짝였다.

    그와 동시에 움티티와 피케의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서 제수스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고, 떨어지는 공을 정확히 이마에 맞추는 슬라이딩 헤딩 시킨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소리를 질렀다.

    “아자아!”

    삐이익!

    2대1.

    수세에 몰렸다고 생각을 한 순간 맨체스터 시티는 다시 또 한 점을 도망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 한 점은 단순히 도망가는 한 점이 아니었다.

    한 곳에 모여 득점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선수들을 빤히 바라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진하게 떠오른 미소를 숨기지 않으면서 슬쩍 고개를 돌려 발베르데 감독을 향해 혼자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더 준비한 게 없다면 오늘 경기는 이걸로 끝이야, 발베르데.”

    ***

    “준비 단계에서부터 패배한 경기였습니다. 오늘 경기의 패인은 선수들이 아닌, 바로 제 자신에게 있습니다.”

    경기 후 준비된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발베르데 감독은 오늘 패배한 원인이 무엇 때문인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짧막하게 답했다.

    다른 감독도 아닌, 과르디올라 감독과의 대결이었기 때문에 자칫 과잉 될 수 있었던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현명한 한 마디였고, 기자들도 그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준비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오늘 경기의 MOM으로 가브리엘 제수스 선수가 뽑혔는데요, 발베르데 감독님의 말씀은 오늘 경기에 차이를 만든 것이 바로 제수스 선수라는 말씀이신가요?”

    “제수스 선수도 분명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아마 오늘, 그는 본인이 품고 있는 재능을 필드 위에서 완벽하게 펼쳐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하지만 역시 오늘 맨체스터 시티에는 있었고, 바르셀로나에는 없었던 차이를 만든 선수는···.”

    잠시간 말꼬리를 늘리며 뺨을 쓸어내린 발베르데 감독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맨시티의 88번, 최재혁 선수였죠. 만약 제게 MOM을 뽑을 권한을 준다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 선수를 찍었을 겁니다.”

    < 87. 차이를 만들 줄 아는 선수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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