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85화 (85/225)
  • < 85. 빨려들었다 >

    그리고 부스케츠의 패스를 보며 재혁과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선수, 데울로페우의 입가에도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드디어 왔구나!’

    발등으로 가뿐하게 공을 받아냄과 동시에 라인을 따라 달리며 박스를 향해 대각선으로 드리블을 시작한 데울로페우.

    재혁이 그를 황급히 쫓으며 뒤를 밟았지만 이미 속도를 붙인 그에게 있어서 재혁의 압박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실제로 오늘 맨체스터 시티의 대인 압박은 지역 압박에 비해 상당히 허술한 편이었으니.

    데울로페우는 흐렸지만 의미가 확실한 실소를 흘리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이런 ‘구멍’을 선발로 뽑아 쓸 정도로 날 우습게 보지 말라고!’

    투웅, 투웅!

    이를 악 물고 곧장 박스 안을 향해 침투를 시작한 데울로페우는 여전히 자신의 뒤만 쫓고 있는 재혁을 곁눈으로 살핀 후 눈앞을 노려보았다.

    풀백인 재혁은 가뿐하게 넘을 수 있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그 뒤에 이루어진 콤파니-스톤스-오타멘디의 3백은 드리블만으로 쉬이 뚫어낼 수 없는 벽이었던 탓이다.

    아마 이대로 저들과 부딪친다면 깨지는 것은 십중십 자신일 것이리라.

    하지만 데울로페우 본인 또한 그와 함께 달리고 있는 다른 동료들이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서 오른 발바닥으로 공을 멈췄고, 그대로 멈춘 공의 밑둥을 왼쪽 발로 깎아 차면서 패널티 박스를 가르는 패스를 반대편으로 보냈다.

    그러자 데울로페우의 패스를 보며 바르셀로나의 다른 선수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메시와 수아레즈, 그리고 둘이 침투하면서 생긴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라키티치가 그들이었다.

    특히 수아레즈는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머리를 가져다 대기 위해 높게 떠올랐다가···.

    “···칫!”

    그와 함께 몸을 날렸던 콤파니의 방해로 공을 그대로 흘려보내야만 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이라면 간담이 서늘했을 장면이었지만, 누캄프를 가득 채운 홈 팬들은 아쉬움에 탄식을 흘린 장면이었고, 그건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수아레즈가 패스를 보내주었던 데울로페우를 향해 엄지를 치켜 세우며 싱긋 미소를 보였고, 다른 선수들도 다음에 더 좋은 기회를 만들자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렇게 흐름이 완전히 바르셀로나 쪽에 기울어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며 맨체스터 시티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좋아. 흐름이 좋아.”

    정작 벤치에 앉아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 과르디올라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으음···?”

    중계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해설자는 눈썹을 꼬며 고개를 갸웃였다.

    그런 해설자를 이상하게 여긴 캐스터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해설자는 잠시간 경기가 진행되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보이는 상황은 바르셀로나가 경기를 압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이건 좀 이상하군요.”

    “무엇이 말인가요?”

    “패스가 연결되는 고리 말입니다.”

    “패스의 고리요?”

    “예.”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해설자가 건넨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던 캐스터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로 그를 향해 재차 물었고, 해설자는 그런 캐스터를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경기를 압도하고는 있지만, 바르셀로나다운 플레이가 이어지고 있진 않고 있어요.”

    “압도하지만 플레이가 이어지지 않다니. 그 말씀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 아닌가요? 경기를 압도하고 있다면 바르셀로나가 경기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중원을 ‘생략’하고 있으니까요.”

    “중원을···, 생략한다고요?”

    되묻는 캐스터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해설자가 말을 이었다.

    “지금도 이니에스타 선수가 찔러주는 패스를 보시죠. 물론 공은 정확하게 우측면을 노리고 날아갔고, 수아레즈 선수에게도 확실히 연결이 됐지만, 이게 과연 바르셀로나가 ‘압도’ 중인 경기 상황에서 나올 만한 그림이었을까요?”

    “···아!”

    해설자의 말을 듣고 조금이나마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한 캐스터가 조그맣게 탄성을 흘렸고, 그런 캐스터를 향해 해설자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었다.

    “보통 바르셀로나가 경기를 압도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풀리는 것은 중원. 그렇게 된다면 중원에서 미드필더들끼리 주고 받는 패스의 횟수가 많아지고, 흔들리기 시작한 상대의 빈틈을 노리면서 패스 줄기가 점차 전방으로 향하게 됩니다. 하나씩 계단을 밟듯이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마치 껑충이면서 서두를 생략하고 있는 것 같죠.”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분명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은 기회는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요? 중원에서 전방으로 공은 확실히 이어지고 있는데···.”

    “바로 그게 문제인 겁니다.”

    캐스터의 말을 중간에 자른 해설자가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말했다.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공격을 온전히 최전방에서 뛰고 있는 세 명에게만 의지하고 있다는 의미이니까요.”

    “!”

    “마치 지난 시즌, 선수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었던 엔리케 감독의 바르셀로나처럼 말이죠.”

    엔리케 감독의 바르셀로나.

    분명 부임 첫 해에는 트레블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으나, 점차 흐려지는 존재감에 마지막엔 컵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끝으로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되었던 감독의 이름이었다.

    그 당시 그를 향했던 비판들 중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전술보단 네이마르, 메시, 그리고 수아레즈라는 공격수 3인방에게 모든 짐을 짊어지게 했다는 것이었고, 실제로 당시의 바르셀로나는 플레이를 만들기보다 빠른 패스로 공을 공격수들에게 넘기기 일쑤였던 것이다.

    마치 오늘,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하고 있는 바르셀로나처럼 말이다.

    그 점을 뒤늦게 깨닫자 캐스터가 눈동자를 떨었고···.

    “이건···, 당했군.”

    현재 바르셀로나의 감독을 맡고 있는 발베르데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렇게 이미 떠나간 사람들의 그림자를 지우려고 노력을 했거늘.

    ‘너무 시간이 짧았어.’

    결국 선수들은 ‘편해지는 순간’이 오자 짧은 시간 동안 훈련하던 것을 잊고 과거의 흐름에 몸을 맡겨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그냥 찾아온 게 아니었다.

    지금 상대팀 벤치에 앉아있는 과르디올라 감독.

    저 사람의 술수일 터다.

    쯧, 혀를 찬 발바스데 감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경기장을 노려보며 숨을 모았다.

    비록 상대가 원하는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직 경기는 여전히 자신들의 손 위에 있었다.

    그 증거로 쉼없이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상대의 취약한 부분인 우측 풀백을 확실하게 노려서 말이다.

    지금도 뒤를 생각하지 않고 올라온 케빈의 후방과 오른쪽 풀백, 그 사이에 열린 공간을 뚫고 나간 후 비어있는 공간을 향해 패스를 찔러주는데 성공했으니, 이대로 부족한 점만 보충해서 계속 공격을 한다면···.

    ‘···잠깐, 뒤를 생각하지 않고 올라온 데 브루위너라고? 그리고 그 옆에 라인을 맞추고 있는 건 D. 실바와 전방의 제수스의 삼각 편대···?’

    “아, 안 돼! 지금 그 패스를 찔러 넣어 버리면···!”

    당황한 발바스데 감독의 머릿속으로 순간적으로 이어질 상황이 머릿속으로 그려졌고, 황급히 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치려 했으나, 그런 발바스데 감독과 달리 침착하고 냉정한 얼굴로 날아오는 공을 눈동자에 담아두던 재혁은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외마디를 읊조렸다.

    드디어 왔다, 라는 작은 한 마디를 말이다.

    그런 재혁의 읊조림을 들은 데울로페우의 미간이 좁아졌다.

    ‘오긴 뭐가 와? 온다면 너의 패배가 가까워진 거겠지!’

    자신만만한 상념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재혁의 한 마디는 곧 흐려졌고, 떨어지는 공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데울로페우는 트래핑을 준비했다.

    이번 플레이는 반드시 공을 골대 안에 집어 넣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물론.

    터엉!

    “···!”

    어디까지나 공이 그의 발에 닿아야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공을 기다리고 있던 데울로페우보다 먼저 몸을 날린 오타멘디는 헤딩으로 바르셀로나의 패스를 끊었고, 갑자기 공의 방향이 꺾인 탓에 주변에 있던 선수들은 모두 발을 멈추고 공의 위치부터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다.

    다만 한 선수는 다른 이들과 달리 마치 공이 처음부터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가 가뿐하게 떨어지는 공을 자신의 발밑에 두었다.

    아직 앳티를 모두 벗지 못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 최재혁이었다.

    동시에 양팀 선수들의 희비가 갈렸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미소를,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은 당황해하며 황급히 수비를 위해 몸을 튼 것이다.

    하지만 공이 올 것을 예측하고 있었던 재혁은 바르셀로나 선수들보다 더 빨리 행동을 취할 수 있었고, 공을 몰면서 드리블을 시작했다.

    그런 재혁의 앞을 가로 막은 것은 조르디 알바였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재혁의 발밑에 구르는 공을 노려보면서 알바가 안도의 숨을 토했다.

    ‘공격에 힘을 실어주려고 라인을 올리던 게 불행 중 다행이다. 턴 오버를 당해도 일단 1차 방어는 할 수 있었으니, 이대로 일단 공이 갈 길만 막으면···?!’

    아니, 토할 뻔 했다.

    지금 재혁의 발을 떠나는 공을 자신이 막을 수 있었다면 말이다.

    허나 허공을 깎아가며 날아가는 로빙 패스는 그의 발과 머리를 매몰차게 외면하고 있었고.

    “역시 패스 하나는 기가 막힌다니까.”

    사뿐히 한 선수의 발밑에 떨어졌다.

    턴 오버가 일어나기 전부터 케빈 데 브루위너와 제수스와 편대를 이루고 있던 다비드 실바, 바로 그의 발밑에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기대했던 역습이 시작 됐다.

    실바는 드리블을 치고 달리다가 케빈과 2대1 패스를 빠르게 주고 받았고,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공을 살짝 건드려 각도만 꺾어서 뒤로 흘렸다.

    아마 정상적으로 수비 라인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바르셀로나라면 절대 놓치지 않았을 패스였지만, 이미 알바가 자리를 떠나면서 균열이 일어났던 라인이었고, 그 라인 틈새로 빠지는 패스를 놓치지 않고 달려든 제수스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위치에서 때리기 좋게 구르고 있는 공을 향해 힘껏 발을 뻗었다.

    곧 파앙, 짧지만 강렬한 소리가 경기장을 덮었다.

    동시에 공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고, 골키퍼가 뻗는 장갑을 피해 정확하게 골대 구석에 빨려 들어갔다.

    그물망에 걸렸던 공은 곧 운동력을 잃고 바닥을 구르며 힘을 잃었으나···.

    “우와아아!”

    “미, 미친 역습이다! 세상에, 방금 저 역습은 대체 뭐야?”

    경기를 지켜보던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은 목청에 한껏 힘을 실어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다른 곳도 아닌 누캄프.

    그곳에서 선제 골을 터트리면서 경기를 앞서 나갈 줄은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경기를 중계하고 있던 캐스터와 해설자도 마찬가지였고, 두 사람은 세레모니 이후에 다시 재생되는 리플레이를 함께 지켜보면서 정확히 15초만에 역습을 성공 시킨 맨체스터 시티의 플레이를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칭찬했다.

    “이걸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누캄프에서 바르셀로나가 먼저 실점을 하고 맙니다! 경기는 이제 1대0! 맨시티가 앞서 나갑니다!”

    “맨시티의 역습이 너무도 빠르고 정확했어요. 단 4번의 패스. 그 4번의 패스로 바르셀로나의 심장에 공격을 성공시켰으니까 말이죠.”

    “과르디올라 감독, 경기 전 인터뷰에서 준비한 수가 있었다고 했었는데, 그게 이 역습을 말했던 걸까요? 확실히 매서운 공격이었습니다. 자신에 차 있을 만한 역습이었어요.”

    “아뇨. 그가 말했던 한 수는 단순히 역습을 말하던 게 아니었을 겁니다.”

    “예? 그게 역습이 아니었을 거라고요?”

    해설자의 말에 캐스터가 무슨 의미냐는 듯, 동그랗게 눈을 뜨며 되물었고, 해설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검지를 뻗어 한 선수를 가리켰다.

    “아마 그가 의미했던 한 수는 이 선수의 위치를 놓고 말했던 것일 겁니다.”

    “이 선수라면···?”

    캐스터가 검지를 쫓아 시선을 옮겼고, 그의 손끝에 닿아 있는 선수를 확인하며 두눈을 껌뻑였다.

    “최재혁 선수 말씀이십니까?”

    < 85. 빨려들었다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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