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83화 (83/225)
  • < 83. 증명의 자리 >

    언제나처럼 활기로 가득한 중앙 시장.

    상인들은 물건을 팔며 환한 미소를 입에 걸었고, 손님들은 넉넉한 인심에 덩달아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런 상점가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분식점을 지키고 있는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붉게 물든 떡들을 접시에 담아 손님들에게 전해주며 웃었다.

    “일부러 많이 줬응게, 남기지 말구 다 먹어야혀. 알것지?”

    “물론이죠!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라구요!”

    “우와, 진짜 많다! 이게 정말 2인분이에요? 이따가 집에 갈 때 1인분 싸가야겠다.”

    두 남성은 접시 위에 푸짐하게 쌓인 떡볶이를 보며 군침을 흘리다가 서둘러 포크를 움직였다.

    과연 인심처럼 맛도 넉넉했기에 둘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쉼없이 떡볶이를 입에 넣다가 어느 정도 포만감이 차오르자 물을 한 모금 삼킨 뒤 끊어졌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진짜 볼 거 많지 않냐? 요즘 경기 있는 날이면 밤에 잠을 못 잔다니까.”

    “좀 자라. 시험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쯧쯧.”

    “그러는 지는. 경기 분석하는 것처럼 과제를 연구했어 봐라. 교수님이 무슨 말을 했겠냐.”

    “시끄러 임마. 떡볶이나 입에 넣어. 계속 떠들면 내가 다 먹는다.”

    결국 또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던 둘은 떡볶이 몇 점을 더 씹어 삼킨 뒤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근데 결국 또 선발로 안 나오네. 폼 좋던데.”

    “우움, 누구?”

    친구가 입에 포크를 물고 묻는 것에 건너편 남성은 고개를 작게 젓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너도 알잖아.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는 최재혁.”

    “아, 걔.”

    “맨시티 팬은 아니지만 눈이 가서 계속 지켜봤는데. 첼시 전에서 경기를 뛰고 난 이후로 또 쭉 벤치에만 이름을 올리더라고.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친구의 말에 ‘알지, 알지’라는 말을 반복하던 남성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사실 첼시 전에서 선발로 뽑힐 거란 걸 누가 예상 했었냐? 물론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지만 약점도 있다는 게 확실했잖아?”

    “중앙에서 캉테랑 부딪칠 때면 힘을 제대로 못 쓰긴 했지.”

    “나름 깨끗하게 플레이하는 캉테랑 만나서 그 정도였는데, 스토크 시티랑 경기를 할 때 그 친구를 뽑아서 썼어봐라. 스토크 시티에 누가 있는지 잊고 있는 건 아니지?”

    “아. 찰리 아담.”

    “그래 인마. 자칫 했따간 찰장군님한테 바로 참교육 당한다.”

    “흠. 확실히 그건 좀 무섭긴 하네.”

    국내 팬들에게 찰장군이라 불리는 찰리 아담.

    구력이 쌓일 수록 신기하게도 격투 이력도 같이 쌓이는 선수에 대해 언급하자 둘은 동시에 몸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여라도 아직 어린 선수가 거친 플레이에 몸을 다쳤다면···, 이라는 상상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어깨가 움츠려든 것이다.

    물론 장난스럽게 나눈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스토크 시티의 거친 플레이를 상대로 재혁의 플레이가 빛을 발하지 못할 수 있었으니, 두 사람은 과르디올라 감독이 재혁을 선발로 뽑지 않은 것을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고 이야기하며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기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둘은 계속해서 재혁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그의 기술, 스타일, 그리고 잠재력과 장래까지 기대하면서 과연 어떤 선수로 성장하게 될지, 기대된다는 투로 말이다.

    그렇게 둘이 재혁의 이야기로 정신이 없을 때.

    “할머니, 저 왔어요.”

    “오. 딱 맞춰왔구마. 마침 잘 왔어야. 안 그래도 부족한게 있었는디···.”

    “그럴 줄 알고 바로 온 거죠. 재료실 안 쪽으로 넣어 드릴까요?”

    “나야 그라주면 고맙지.”

    할머니께 살가운 인사를 건네면서 재료상이 등장했다.

    이미 수 년간 얼굴을 알고 지낸 터라 반갑게 재료상을 맞이한 할머니는 연신 재료상의 등을 토닥이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고, 손수레로 짐을 모두 옮겨 놓은 뒤 재료상이 기지개를 켜며 할머니를 향해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요즘 손자가 잘 나가던데요?”

    “그랴? 나는 통 소식을 알 수가 없어. 손녀가 인터넷인지, 인라방군지를 켜면 알 수 있다고 하는디···. 나는 까막눈에 멍텅구리라···.”

    “에이. 재혁이를 그렇게 키우셨는데. 멍텅구리가 무슨 소리세요?”

    “···?”

    재혁이라는 이름이 재료상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두 남성의 눈썹이 한 차례 흔들렸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난 번에는 첼시라는 팀을 상대로 멋지게 골도 넣었다니까요? 크으, 손주가 참 대단한 선수가 되어 가고 있어요.”

    “···!”

    그 뒤로도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는 중년인과 할머니.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남성들은 떡볶이를 향해 뻗던 포크를 멈추고 두눈을 크게 떴고,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바, 방금 저거···, 분명 최재혁 선수에 관한 이야기지?”

    “그, 그렇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잠깐만. 조금만 조용히 해봐. 조금만 더 들어보고···.”

    둘은 신중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춘 뒤 중년인과 할머니가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고, 곧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호, 혹시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게 최재혁 선수에 관한 이야기가 맞아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할머니와 재료상.

    그 와중에 그나마 정신을 차린 재료상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답했다.

    “어, 예. 맞는데요. 지금 영국에 있는 그 선수가 여기 계신 할머님 손자에요.”

    “소, 손자요? 진짜로요?”

    “그럼 가짜 손자도 있다요? 내가 고녀석 이불에 오줌 지릴 때부터 업어 키웠는디.”

    “와아! 저 최재혁 선수 팬이에요! 지난 번에 첼시랑 붙었을 때 보여준 플레이를 보고 완전 반해버렸다니까요!”

    “뺀? 그게 뭐다요? 볼펜은 뭔지 아는디···.”

    처음 듣는 단어에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이자 재료상이 팬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었고, 그 뜻이 재혁을 좋아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것을 확인하고 할머니의 눈이 또 한 차례 커졌다.

    다른 무엇보다 손자를 좋아해준다는데, 과연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렇게 둘이 떠들던 대화에 또 다른 두 사람이 끼어들자 분식집은 곧 시장바닥보다 더 시끌시끌해졌다.

    평소 재혁이 어떻게 경기를 뛰는지 잘 알지 못하는 할머니는 연신 남성들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고, 두 남성들은 축구 팬으로서 지니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쉽게 풀어 할머니에게 설명했다.

    그런 두 사람의 말을 들은 할머니는 주름진 손을 모은 뒤 방긋 웃었다.

    “그러니께 내 손자 녀석이 멀리서 잘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그거라?”

    “그냥 잘한 게 아니라 엄청 잘했어요.사람들은 벌써 대한민국의 미래다, 뭐다라면서 시끄럽다니까요?”

    “하이고, 그 강아지가 미래라니 남사시럽게···.”

    “이럴 땐 자랑스러워 하셔야죠.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재혁이 이야긴데 말예요.”

    “학교 다닐때 상이라곤 개근상만 줄창 받던 녀석인디···.”

    중년인과 두 남성과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겹겹이 층을 쌓은 할머니의 눈가에 서서히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고, 손등으로 눈물을 찍었다.

    그런 할머니의 행동에 셋이 놀라 허둥거리자 할머니는 애써 손을 내저은 뒤 미소가 깃든 얼굴로 말했다.

    “별 거 아녀. 강아지를 못 본지 너무 오래 돼가지구···.”

    “할머니···.”

    “그래도 잘 하고 있다니께 다행이네. 다행이야···.”

    비록 얼굴을 보진 못하지만 이렇게 주위 사람들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게 어디인가?

    할머니는 그것에 감사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슬쩍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국과 영국, 거진 지구 반대편에 있을 손자이지만 그가 보고 있는 하늘도 자신이 보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하늘님···. 제 손자 녀석 좀 잘 보살펴 주십시요. 늙은이가 이러코롬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며칠이 더 흘렀다.

    할머니가 멀리서 바라보던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던 재혁은 창밖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전경을 확인하며 굳은 얼굴로 읊조렸다.

    “이곳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름답게 꾸며진 도시 전경을 한 눈에 담아보던 재혁은 저 멀리 위치한 누캄프를 향해 시선을 준 뒤 씨익 웃었다.

    “안녕, 이기러 왔다.”

    ***

    비록 예선이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어느 때보다 더 뜨거웠다.

    아니,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과르디올라 감독과 바르셀로나 구단, 둘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누구보다 확실하게 느끼고 있을 바르셀로나의 감독, 에르네스토 발바르데는 자신의 앞에 놓인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댄 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홈이든, 원정이든. 어떤 경기에서든 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상대가 누가 되었든 똑같습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맨체스터 시티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길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작지만 또렷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한 발바르데 감독은 이후 생수로 목을 축였고, 이어지는 기자의 질문을 듣기 위해 기다렸다.

    그런 감독을 향해 가장 앞에 앉아 있던 기자가 손을 든 뒤 물었다.

    “하지만 팀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단 핵심이었던 네이마르가 갑자기 이적을 하면서 그 공백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지 않습니까?”

    또 저 질문인가.

    발바르데 감독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으나, 감독은 들어올린 오른손으로 슬쩍 이마를 쓸어 내리는 것으로 표정을 감춘 후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네이마르를 보내야만 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죠. 그 탓에 깊이를 잃었다는 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르셀로나입니다. 장사가 아닌 축구를 하는 곳이죠. 잃어버린 옵션을 대신할 다른 옵션은 이미 준비해두었습니다.”

    “장사가 아닌 축구를 한다···, 그 발언은···.”

    “굳이 어느 구단을 가리켜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기자를 향해 어깨를 으쓱인 감독이 여전한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선수로 축구를 하지 않습니다. 축구를 위해 지금 선수들이 있는 거죠. 그 점이 다른 구단들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군요.”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사진을 찍던 기자들이 연거푸 손을 들어올리며 추가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발바르데 감독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경기 전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며 회견장을 떠났다.

    그렇게 아쉬운 얼굴로 자리를 벗어난 발바르데 감독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기자들의 시선이 움직인 곳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과의 회견장이었다.

    슬그머니 자리를 옮긴 기자들은 과르디올라 감독도 슬슬 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른 손을 들었고, 마지막 질문을 받을 준비를 하던 과르디올라 감독이 손을 뻗어 그를 가리켰다.

    기자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목을 받기 무섭게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며 물었다.

    “헤스티안 스포츠의 호베르탕입니다. 과르디올라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해서 한 번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방금 회견이 끝이 난 발바르데 감독님의 발언 중 하나인데요. 바르셀로나는 장사가 아닌 축구를 하는 구단이라고 했는데, 맨체스터 시티는 어느 쪽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한 때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이셨으나, 이제는 이 자리를 떠난 분이시니···. 아무래도 그런 분의 생각이 궁금해져서 말입니다.”

    자신을 스포츠 신문사의 기자라고 소개한 남성은 질문을 끝낸 뒤 웃으며 자리에 앉았고, 그런 기자를 똑바로 마주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하.”

    피식, 실소를 흘렸다.

    감독이 남긴 실소의 의미를 순간 파악할 수 없었던 기자들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올랐으나, 과르디올라 감독은 재차 헛웃음을 흘린 다음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면서 서서히 입술을 뗐다.

    “부임한지 반 년도 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발바르데 감독은 벌써 완성시킨 것 같군요. 나도 흉내만 조금 낼 수 있었던 걸 말입니다.”

    “완성을 시켜요···? 그게 무슨···?”

    “바르셀로나가 지향하는 완성된 축구. 모두가 하는 축구를 말이죠.”

    “모두가 하는···, 축구요?”

    “그건 무슨 의미입니까, 과르디올라 감독님?”

    이해하기 힘든 말을 꺼낸 과르디올라 감독을 향해 기자들은 재차 질문을 던졌고, 그런 기자들을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은 예의 미소를 흘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글쎄요. 지금 이 자리에서 확실히 답을 해드리긴 힘들 것 같군요. 하지만 적어도 하나만큼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의 바르셀로나가 누구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

    “결국 지금 그가 사용하고 있는 건 제가 바르셀로나에 남겨놓은 유산. 적어도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드르륵.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를 냈고, 옷가지를 챙겨든 과르디올라 감독은 자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기자들을 향해 한 마디를 남긴 후 미련없이 회견장을 떠났다.

    “그 이상가는 축구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아닌 내가 될테니까 말입니다. 오늘 경기는 그것을 증명하는 첫 단추가 될 겁니다.”

    “감독님! 감독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그 증명이라는 게···!”

    철컥!

    자리를 빠져나가는 감독을 향해 기자들이 연이어 질문을 던졌으나 감독은 답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문을 닫고 회견장을 빠져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남겨진 기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계속 이야기를 떠들었다.

    과연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한 증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궁금증은 머지 않아 발표된 선발 명단을 통해 해결되었다.

    정확히는···.

    “재혁이가 선발로 나온다고?”

    “응, 오빠! 그런데 조금 의아한 점이 있긴 한데···.”

    “의아한 점?”

    “응.”

    거실에 앉아 TV를 통해 중계를 지켜보고 있던 케이트가 되묻는 안토루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TV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녀의 손끝에 닿아 있는 이름,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했던 ‘증명’인 재혁의 위치가···.

    “왜 오른쪽 풀백에 있는 거야?”

    < 83. 증명의 자리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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