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81화 (81/225)

< 81. 방파제의 과정 >

“감독님.”

팔짱을 낀 채로 터치 라인에 바짝 붙어 경기장을 노려보고 있던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다가간 미켈 코치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고, 여전히 시선을 경기장에 두고 있는 감독을 향해 계속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너무 큰 변화를 주신 게 아닙니까?”

“너무 큰 변화라니?”

“포지션 말입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음변화가 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한 것에 비해 꽤나 감정이 깃든 목소리로 미켈 코치가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

“같은 4-1-4-1이지만, 이건 성격이 서로 완벽하게 다른 4-1-4-1이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너무 큰 변화를 주게 되면 기대보다는 오히려 걱정이 되는데 말이죠.”

같지만 다른 4-1-4-1.

미켈 코치의 말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시선은 여전히 운동장 위에서 경기를 준비 중인 선수들을 향한 채였다.

그렇게 과르디올라 감독의 대답을 기다리던 미켈 코치는 침묵이 길어지던 탓에 머리를 긁적이며 재차 감독에게 질문을 던지려다가···.

“변화란 것은 필요한 순간에 이루어져야 해.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을 뿐이지.”

과르디올라가 말을 하기 시작한 것에 입술을 닫고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감독은 코치가 궁금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해주기 위해 말을 이었다.

“처음 준비해온 4-1-4-1은 콘테 감독의 첼시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전술이었어. 그건 미켈 코치가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야.”

“경기장을 넓게 사용하려는 첼시 선수들을 가두기 위한 4-1-4-1이었죠.”

“맞아. 우리 선수들이 만드는 작은 삼각형들에 첼시 선수들을 하나씩 가두는 형태지. 실제로 효과는 좋았어. 저 친구가 경기장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야.”

저 친구.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렇게 칭하면서 턱끝으로 첼시의 10번, 아자르를 가리켰고, 미켈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 경기장에서 아자르를 상대해본 적이 있었던 미켈이었기에 그가 품고 있는 존재감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켈 코치의 고갯짓을 확인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목을 가다듬은 후 말을 계속 했다.

“다른 첼시의 선수들은 모두 삼각형 안에 가둬놓고 우리가 억제하는 게 가능했지만, 아자르는 달라. 저 친구는 오히려 역으로 삼각형을 부수고 우리에게 혼란을 주고 있으니까. 그 결과가 지금의 점수겠지. 원래 파동이란 것은 처음 한 번이 중요한 법이니까. 연쇄작용이 이어진 것일 뿐이야. 마치 파도처럼 말이지.”

“···.”

“그러니까 변화를 줄 수 밖에 없었던 거야. 거세지는 파도를 부수려면 방파제가 필요하니까.”

방파제라는 말에 미켈 코치의 눈이 반짝였고, 과르디올라 감독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기존의 4-1-4-1이 경기장을 넓게 사용하는 첼시에 맞춰진 수비적인 전술이라면, 지금 꺼낸 4-1-4-1···, 좀 더 확대해보자면 다이아몬드에 가까운 3-3-3-1은 첼시를 ‘찌르기’ 위한 공격적인 전술인 거지.”

“첼시를 찌른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있는 게 지금 저 꼬마.”

꼬마, 88번, 최재혁.

감독이 지칭하는 선수가 누구인지 바로 이해한 미켈 코치는 감독이 그런 것처럼 시선을 옮겨 뛰기 시작한 재혁을 살펴 보았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다시 팔짱을 고쳤다.

기대가 크다는 듯, 감정을 숨기지 않은 얼굴로 말이다.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의 옆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미켈 코치가 재차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경기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딱히 내가 뭘 할 게 있나?”

미켈 코치의 물음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어깨를 으쓱인 뒤 답했다.

“그 선수의 기량이 거기까지인 것일 뿐이야. 단지 그것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나는 오늘 경기를 통해 그걸 확인하게 되는 것이고, 선수는 오늘 경기를 통해 평가를 받는 것이지. 하지만···.”

말꼬리를 슬쩍 늘인 과르디올라 감독은 동료의 패스를 받고 있는 재혁을 확인하면서 씨익 웃었다.

“내가 제대로 봤다면 저 친구는 여기서 멈출 선수가 아닐 걸?”

***

“후욱···!”

공을 컨트롤함과 동시에 숨을 토해낸 재혁이 천천히 호흡을 고르면서 재빨리 턴 동작을 취했다.

공과 함께 재혁의 시선이 첼시의 골문을 향하자 곧장 첼시 수비수들의 거센 압박이 들어왔고, 공을 겨우 한두 번 건드릴 수밖에 없었던 재혁은 어쩔 수 없이 몸을 틀어야만 했다.

확실히 전방으로 올라오니 느껴지는 압박의 강도가 전과 달랐던 것이다.

루이스와 아스필리쿠에타, 그리고 루디거까지.

그들이 왜 지금 첼시의 3백을 맡고 있는 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재혁은 공이 케빈을 통해 좌우 측면으로 넓게 벌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설명을 듣긴 했지만 역시 쉽진 않네.’

포메이션을 바꾸면서 재혁이 맡아야 할 역할도 바뀌었다.

이전까진 왼쪽으로 약간 처진 중앙 미드필더로 케빈과 함께 서로 양축을 담당하면 되었지만, 전보다 높은 위치에서 플레이 하게 된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게 되면서 케빈과 세로대형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 역할이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힌 것처럼 어색했지만, 재혁은 애써 상념을 털어내듯 고개를 좌우로 흔든 뒤 숨을 삼켰다.

바로 적응하려니 쉽진 않았지만···.

‘서서히 느낌이 오고 있어.’

감각은 점차 깨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왜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를 2선에 내려 놓았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상대 3백에게 당하는 견제가 강해지긴 했지만, 다른 ‘한 선수’에게 받는 압박이 현저하게 약해진 것이다.

첼시의 7번, 은골로 캉테.

더 이상 지독할 정도로 그의 뒤를 추격하던 캉테와 몸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되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캉테의 압박은 오롯이 케빈에게만 향하된 것이다.

그것이 일자대형에서 세로대형으로 포메이션을 변경하면서 이루어진 가장 큰 변화였고, 그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바로 파악한 재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캉테가 자리에서 사라지면서 그가 상대해야 할 선수들은 첼시의 3백이었지만.

‘비록 상대 수비수들의 압박이 강하긴 하지만, 더 이상 내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 그리고 그 말인즉···.’

아주 작지만 ‘완벽한 공간’이 자신에게 주어진다는 소리.

생각의 정리가 끝나자 재혁이 멈추고 있던 발에 힘을 주기 시작했고, 그런 재혁의 행동을 발견한 케빈이 눈을 빛냈다. 그리고 스털링에게 받은 패스를 그대로 재혁에게 연결해주었다.

케빈의 패스를 받기 무섭게 재혁이 다시 한 번 몸을 돌렸고, 곧 그의 눈앞으로 한 선수가 달려드는 것이 들어왔다.

파브레가스였다.

캉테와 함께 짝을 맞추고 있는 파브레가스는 비교적 낮은 위치에 포진해 있었고, 그런 탓에 누구보다 먼저 재혁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을 통해 재혁은 완벽한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파브레가스의 뒤에 위치해 있는 공간을 말이다.

‘뚫는다···!’

공을 앞으로 밀면서 이동을 시작한 재혁이 드리블에 속도를 붙이자 파브레가스도 재혁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눈썹을 모았고, 곧 두 사람이 필드 위에서 부딪쳤다.

파브레가스의 입술 사이로 잇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그 직후였다.

‘이 자식···, 뭐야?!’

한 번 재혁과 충돌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은 ‘단단함’이었다.

신체가 단단하다던가, 드리블이 묵직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낮은 무게 중심을 통해 전해지는 단단함이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두어 차례 어깨를 부딪쳤을 뿐이거늘.

예상 외로 쉬이 재혁의 드리블을 쉬이 멈출 수 없다는 사실에 파브레가스는 일단 압박을 느슨하게 풀었다.

‘혼자서 무리하는 것보단 역시 협력 수비로 막는 게 좋겠어. 이대로 조금 더 끌어 당긴다면 루디거나 알론소가 다가오겠지.’

그러면 그 틈을 노려 공을 빼앗으면 되리라.

거기까지 계산을 끝냈던 파브레가스는 슬쩍 주변을 살피다가···.

“?!”

눈에 들어오는 상황에 당황했다.

그리고 첼시의 동료들도 당황해 숨을 삼켰다.

“거, 거기서 왜···?”

“공간을 그냥 열어주는 거야?!”

말 그대로였다.

재혁을 안쪽으로 유도해 협력 수비로 잡으려던 파브레가스의 의도는 다른 선수들이 보기에 재혁에게 그냥 공간을 열어주는 것과 같아 보였던 것이다.

같지만 다른 4-1-4-1.

그 차이를 바로 파악하지 못했던 첼시의 선수들은 너무도 쉽게 재혁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고 말았고, 그 실책은 곧장 재혁의 스루 패스로 이어졌다.

한 쪽 어깨로는 루이스를 달고, 반대쪽 팔로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고 있던 아구에로를 향한 정확한 스루패스였다.

루이스의 방해가 있었지만 재혁의 패스가 워낙 좋았기에 무리 없이 공을 이어 받은 아구에로는 한 차례 공을 밀면서 박스 안으로 침투한 뒤.

뻐엉!

체중을 실어 강력한 슈팅을 때렸다.

모두의 시선이 허공을 가르기 시작한 공에 모인 것은 그 직후였다.

빠른 속도로 날아 정확히 골대 우측 구석을 노리고 이동하던 슈팅.

아마 그냥 내버려둔다면 그대로 골망을 가를 기세였던 슈팅은···.

“흐읍!”

터엉!

첼시 입장에선 다행히도 쿠르투아의 손에 걸려 각도가 크게 틀어지는 슈팅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안도하고 있을 때.

한 선수는 플레이가 거기서 끝이 나지 않았음을 알리며 공을 향해 달려나갔고, 공중에서 다이빙으로 공을 쳐냈던 쿠르투아 골키퍼는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확인하고 비명을 질렀다.

“저거 막아!”

파앙!

짧았던 비명.

허나 그보다 반응이 더 빨랐던 것은 재혁의 발이었다.

떨어지는 공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이 그대로 슈팅을 때려버린 것이다.

다시 한 번 경기장에 위치한 사람들의 시선이 공에 모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 결과가 달랐다.

재혁이 때린 슈팅이 그대로 그물망에 한 차례 걸린 뒤 골라인 안쪽에서 데굴데굴 구른 탓이었다.

당연하게도 이어지는 사람들의 반응도 전과 달랐다.

쿠르투아의 선방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관중들은 탄식을,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아온 원정 팬들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함성을 터트린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을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한 중계진들도 마이크를 부여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재혁 선수! 선제골에 이어 추가 골을 기록합니다!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데뷔 골로 끝내지 않고 멀티 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의 움직임이 너무 좋았어요. 최재혁 선수의 결정력도 대단했지만 골을 넣기까지 이어지던 과정이 더 돋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과정이 더 돋보였다고요?”

“과르디올라 감독이 전술적인 변화를 취하기 무섭게 그에 맞춰 선수들의 움직임이 변화했거든요. 그 시작은 역시 최재혁 선수의 포지션이 바뀐 순간부터겠죠.”

해설자가 처음부터 재혁을 지칭하면서 말을 시작하자 캐스터는 계속해서 설명을 부탁했고, 영상 속에서 득점 상황이 다시 한 번 비춰지는 것을 전자 펜으로 가리키면서 해설자가 말을 계속 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선수들을 넓게 포진시켰던 4-1-4-1를 마치 날카로운 창처럼 중원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는 4-1-4-1로 바꿨습니다. 그 결과, 재혁 선수의 위치가 기존보다 높은 곳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고전하던 캉테 선수의 압박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는 결과로 이어졌죠.”

“그게 과정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요?”

“당연히 상관이 있죠.”

캐스터의 질문에 해설자는 짧은 미소로 대답했다.

“전방으로 향하는 모든 패스의 줄기를 최재혁 선수가 맡게 되었다는 의미니까요. 그리고 그 과정을 맡고 있는 선수가 바로 최재혁 선수라른 말이니, 상관이 없을 수가 없겠지요?”

< 81. 방파제의 과정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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