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80화 (80/225)
  • < 80. 물결치는 파도 >

    어두운 방 안.

    다만 사각이는 연필 소리와 함께 탁자에 설치된 전등이 흘리는 불빛이 지금 방 안의 시간이 멈춰있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코를 책상에 박고 한창 공부에 집중하고 있던 소녀는 질끈 묶어 놓은 금빛 머리칼처럼 두눈을 빛내며 문제를 풀어 나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한 입을 틀어 막은 뒤 양손을 마구 흔들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잔뜩 흥분한 듯 손을 흔들던 소녀, 케이트는 얼른 손을 뻗어 이어폰과 연결되어 있는 휴대폰을 찾아 손에 쥐었다.

    이렇게까지 케이트가 흥분하고 있었던 이유는···.

    ‘세상에! 벌써 2대0이야?’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 두 팀의 경기 중계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차 때문에 시드니는 현재 새벽이었으나, 한창 시험 준비하고 있었던 케이트였기에 시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문제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재혁이 선발로 나서고 있는 경기였으니까 말이다.

    리플레이를 통해 맨체스터 시티가 득점을 하는 순간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던 케이트는 붉게 상기된 뺨을 감추질 못했다.

    ‘완벽하게 넣었네. 역시 저 플레이는 재혁이가 넣어준 패스가 좋았으니까 가능했던 거겠지. 좋아, 좋아. 잘하고 있네.’

    단순히 왼쪽 측면으로 열어주는 패스만 좋았던 것도 아니다.

    패스를 찌르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쌓아온 플레이가 마침내 빛을 발했던 거니까.

    하나의 플레이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수많은 과정이 함께 한다는 것은 오빠인 안토루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던 이야기였기에 케이트는 재혁의 패스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행복한 미소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집중해라, 집중! 오늘 시험만 어떻게든 잘 넘기면···, 그렇게 되면···.”

    짝!

    재혁 생각에 붉게 물들었던 뺨을 양손으로 찰싹이며 정신을 깨운 케이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밤새 불이 켜져 있던 동생의 방을 확인한 안토루는 트레이닝 가방을 어깨에 걸치면서 쓰게 웃었다.

    “갑자기 영국의 대학이 목표라니.”

    그것도 다른 대학도 아닌, 옥스퍼드나 케임브릿지 같은 명문 중의 명문을 목표로 삼겠다니.

    물론 좋은 대학을 가겠다는 것을 말릴 부모나 가족이 어디있겠냐만은, 갑자기 트리거가 켜진 것처럼 미친듯이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안토루는 괜히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혹시라도 목표로 하던 것을 이루지 못 했을 때의 실망감이 어떤 식으로 동생을 잡아먹을지, 도저히 가늠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지. 나도 어느 정도 알 수는 있겠구나.”

    현관 문을 잠그고 밖으로 빠져나온 안토루는 트레이닝백을 트렁크에 싣고 차에 시동을 걸면서 쓴웃음을 흘렸다.

    언제까지고 변방인 호주의 A리그에만 머물 수는 없다는 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아직 자신의 나이가 넘치게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막 어린 것도 아니었으니.

    ‘어쩌면 주장이 말씀하셨던 대로 이번 시즌이 유럽을 목표로 이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실제로 기록 중인 스텟과 경기력도 나쁜 편이 아니었고, 몇몇 구단들이 눈여겨 보고 있다는 소리도 들었기에 안토루는 기대에 찬 얼굴로 운전을 시작했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중계되는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의 경기를 귀기울여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영국에서 공을 차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후반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오랜만에 올라와보니 어때? 긴장으로 떨고 있는 거 아니지?”

    “떨긴 떨었죠. 벤치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아주 화가 나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요.”

    주장 완장을 착용하고 있는 아스필리쿠에타가 걸어온 농담에 아자르는 냉조를 섞어 대답했고, 그런 아자르를 마주보면서 아스필리쿠에타는 크게 웃었다.

    “그래서 이제 직접 경기장에 올라오게 됐으니, 어떻게 생각해?”

    “뭘요? 경기요? 두 번씩이나 답을 할 이유가 있을까요?”

    지끈, 축구화 끝으로 잔디를 즈려 밟으면서 무릎을 풀었던 아자르가 상체를 세우면서 답했다.

    “항상 이기는 게 목푭니다. 필드 위로 올라왔는데, 다른 누구에게 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간단히 대꾸한 뒤 아자르는 등을 돌렸고, 멀어지는 아자르를 바라보던 아스필리쿠에타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서 고개를 주억였다.

    바로 저 승부욕이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이 말이다.

    단순히 분노로 열을 쏟아내는 것도 아니었고, 냉정하다 못해 차갑게 식어버린 열정도 아닌, 팀원들의 활력을 북돋아줄 수 있을 정도의 승부욕.

    게다가 다른 선수도 아닌 ‘10번’이 필드에 올라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여러 선수들이 서서히 눈동자에 빛을 되찾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아스필리쿠에타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사실 본인도 아자르가 투입되었다는 것에 전과 상반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건 주장이 할 수 없는, 한 팀의 에이스만이 가지고 있는 자격이었다.

    ‘적어도 이대로 무너지진 않겠지.’

    45분만에 2대0.

    하지만 경기가 끝나려면 아직 45분이 더 남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아스필리쿠에타가 동료들을 향해 박수를 치며 포기하지말라며 고함을 내질렀고, 그와 동시에 주심이 호각을 불며 후반전의 시작을 알렸다.

    맨체스터 시티의 공으로 시작된 경기는 일단 전반전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공을 일단 한 차례 뒤로 물린 맨시티는 재혁과 케빈, 그리고 페르난지뉴라는 중원의 삼각 편대를 이용해 틈을 노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을 돌렸고, 기회가 날 때마다 전진 패스를 시도하며 최전방에 위치한 아구에로에게 공을 연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전처럼 쉽게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첼시의 중원을 지키고 있는 캉테의 움직임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캉테의 압박을 전면에서 상대하고 있는 재혁의 행동 반경이 눈에 띌 정도로 크게 줄었다.

    ‘마음 놓고, 전력을 다해 압박하고 있어.’

    공이 있는 곳엔 항상 캉테가 있었고, 캉테라는 벽을 맨체스터 시티는 전처럼 쉽사리 뚫어내기 힘들었다.

    비단 캉테뿐만이 아니었다.

    좌우 풀백으로 높은 위치에서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던 알론소와 모지스도 전보다 한 걸음 더 달리면서 맨체스터 시티를 압박했다.

    그들이 원하는 목적은 단 하나.

    맨체스터 시티의 공을 뺏어서···.

    ‘반드시 아자르에게 연결해준다. 그렇게만 한다면 분명 아자르가 뭔가를 보여줄거야.’

    “모지스! 뒤엔 내가 있으니까 백업은 걱정하지마!”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 전개가 왼쪽으로 치우쳐지자 아스필라쿠에타가 소리쳤고, 그의 앞에서 공을 쫓고 있던 모지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 후 어깨를 집어넣었다.

    분명 전반전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과정이 달랐던 만큼, 결과도 확실히 달랐다.

    모지스와 어깨 싸움을 벌이던 베르나르두 실바의 표정이 굳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빼앗긴다···!’

    전반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의 강한 압박.

    망설임이 사라진 몸놀림으로 공을 노리고 들어오는 모지스의 수비가 제법 매서웠기에 실바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공을 뒤로 돌려야만 했고, 그 틈을 첼시는 놓치지 않았다.

    패스가 이어질 길목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캉테가 몸을 날려 실바의 패스를 잘라낸 것이다.

    캉테의 발등에 걸렸던 공은 한 차례 크게 튕겼고, 캉테와 함께 짝을 맞추고 있던 파브레가스의 발밑에 떨어졌다.

    완벽한 턴오버.

    전반전에는 볼 수 없었던 효과적인 수비에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당황했고, 첼시의 선수들은 망설임을 버리고 자신들의 축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파브레가스는 일단 최전방에서 내려와있던 모라타에게 공을 찔러주었고, 파브레가스의 패스를 받은 모라타는 수비수와 등을 진 채로 왼쪽 측면을 향해 공을 흘렸다.

    데굴데굴 굴러간 공은···.

    “드디어 왔다.”

    후반전에 투입된 첼시의 10번, 에덴 아자르의 발끝에 마침내 닿았다.

    양팀 선수들의 시선이 아자르에게 몰린 것은 그 직후였고, 아자르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듯 곧장 드리블을 시작했다.

    두어 번의 터치만에 최고 속도를 내기 시작한 아자르의 앞을 먼저 가로 막은 것은 스털링이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 아자르에게 기세등등하게 다가선 스털링은 곧장 다리를 뻗었다.

    ‘일단 속도만 죽이면 된다! 속도만 한 번 죽이면···.’

    투웅!

    “!”

    앞을 막았다고 느낀 순간 아자르가 선보인 한 번의 터치.

    그 한 번의 터치에 스털링은 무력하게 벗겨져 버렸고, 스털링의 압박에서 벗어난 아자르는 드리블에 더욱 속도를 붙이며 필드 위를 내달렸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발등으로 공을 칠 때마다 패널티 박스와 점차 가까워졌고,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수와의 거리도 점차 좁아졌다.

    스털링 다음에 등장한 것은 우측 풀백, 다닐루였다.

    이 이상의 드리블은 허용할 수 없다는 듯이 아자르에게 바짝 달라붙었던 다닐루는 아자르의 양발의 움직임과 함께 공이 이동하는 방향을 계속해서 확인했다.

    틈이 보이면 그대로 태클을 시도해 그의 플레이를 끊어내겠다는 의지가 가득 실린 눈빛을 번득이던 다닐루의 눈에 곧 아자르가 공에 왼발을 가져가는 것이 들어왔고···.

    ‘크로스!’

    아자르의 이어질 행동을 읽어내고 곧장 발을 쭉 뻗어 공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걸로 일단 한 번은 막았다.

    그런 생각이 다닐루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사악.

    “?!”

    공은 그의 생각과 달리 허공을 가르는게 아닌, 잔디 위를 부드럽게 굴렀다.

    킥 페인팅.

    아자르의 왼발은 공을 차는 게 아니라 그의 오른발을 향해 공을 밀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고, 이에 완벽하게 속은 다닐루는 옆을 뚫고 멀어지는 아자르를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두 명을 제치고 패널티 박스 아크에 다다른 아자르는.

    뻐엉!

    망설임없이 그대로 슈팅을 때렸다.

    왼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든 후, 오타멘디가 슈팅각을 좁히기도 전에 시도한 빠른 슈팅.

    슈팅 자체는 강하진 않지만 골대 구석을 정확히 노린 슈팅이었고, 에데르손은 하필이면 오타멘디가 가리고 있던 각도에 굴러오는 공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바람에 몸을 날릴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는···.

    출렁!

    “···.”

    당연하게도 득점으로 이어졌다.

    단어 그대로 아자르는 등장과 함께 필드 위에서 ‘마법’을 부린 것이다.

    그 마법에 매료된 팬들은 미칠듯이 고함을 내질렀고, 첼시의 선수들도 양팔을 크게 벌리고 아자를 향해 달려나갔다.

    다만 아자르는 동료들의 손길을 애써 걷어낸 뒤 골대 안에서 구르고 있는 공을 가지고 바로 센터 서클로 향했다.

    이제 겨우 한 점을 만회했을 뿐.

    기뻐하긴 일렀던 것이다.

    그렇게 침착하게 냉정을 유지하던 아자르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크악!”

    삐이익!

    경기가 재개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아 드리블을 치며 달리던 중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뒹군 것이다.

    패널티 박스를 타고 안쪽으로 파고 들던 중 다닐루가 황급히 아자르의 앞을 막으려다가 그만 공이 아닌 그의 발을 걸고 말았고, 다닐루에게 발이 걸린 아자르는 그대로 바닥을 뒹굴면서 비명을 흘린 것이다.

    심판은 그 모습을 확인하게 무섭게 호각을 불면서 마크를 찍었고 곧장 패널티 킥이 선언됐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심판에게 달려가 항의했으나 이미 호각이 불린 상황이었기에 판정을 돌릴 방법은 없었고, 결국 그대로 아자르에게 또 한 골을 허용하면서 순식간에 동점까지 따라잡히고 말았다.

    겨우 10분.

    주어진 시간 중 겨우 10분을 활용해 아자르는 마법을 부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홈 팀인 첼시는 순식간에 기세를 올렸고, 원정 팀인 맨체스터 시티는 참담한 심정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장 주장인 콤파니의 외침에도 선수들이 반응하지 못하고 크게 흔들리고 있었으니.

    ‘이건 좀 위험하겠는데···.’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주위를 둘러보던 재혁이 혀를 찬 뒤 살짝 구겨진 미간을 긁적였다.

    이대로 경기를 계속 진행하다간 역전에 이어 추가 실점까지 이어질 위험이 다분해 보였던 것이다.

    내가 무어라 목소리를 내어야 할까, 라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품고 있을 때즈음.

    “정신차려!”

    그보다 먼저 벤치에서 큰 목소리가 터져나와 선수들의 고막을 때렸다.

    자켓 외투를 거칠게 벗어 던지고 셔츠 소매를 잔뜩 접어 올린 과르디올라 감독의 목소리였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선수들을 노려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또 한 번 소리쳤다.

    “이미 잃어버린 점수는 잊어버려!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겠다는 승부욕까지는 버리지 마라!”

    “···.”

    “상대의 플레이가 좋았을 뿐이야. 하지만 우리는 더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러니까 포지션에 변화를 주겠다. 가장 먼저 재혁.”

    선수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가장 먼저 잠시간 짬을 내 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있던 재혁을 향해 말했다.

    “네 위치를 바꿔야겠다.”

    “제 위치를요? 제가 뭘 잘못 했나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고개를 갸웃이는 재혁을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은 곧장 고개를 가로저은 뒤 답했다.

    “이기기 위해서 바꾸는 거다.”

    ***

    “좋아, 이 흐름만 놓치지 말고 쭉 이어가자고!”

    순식간에 동점까지 쫓아간 것에 첼시 선수들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서로를 향해 주먹을 움켜쥐고 화이팅을 외쳤고, 추격의 일등공신 역할을 한 아자르도 한층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골랐다.

    방금까진 쫓아가는 입장이었지만 이젠 달라졌다.

    상대를 뛰어 넘고, 이제 도망칠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아니, 도망치는 게 아니다.

    상대를 잡아먹는 것이다.

    수비를 모두 갈갈이 조각내고, 찢어발겨 만찬의 제물로 삼으리라.

    슬쩍 손을 올려 턱끝으로 떨어지는 땀을 손등으로 훔친 아자르가 씨익 웃었다.

    그는 방금까지 팀을 위기에 몰아넣었던 선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2천만 파운드의 천재라더니. 결국 녀석도 그저 그런 ‘재능’들 중 하나였군.’

    맨체스터 시티의 88번.

    아직 어려서 확신하기엔 일렀지만, 적어도 한 가지 만큼은 확실했다.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는 몰라도, 폭풍우에 흔들리는 방주의 선장이 되기엔 아직 어리다는 것이 말이다.

    그렇게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이 센터 서클에 모여 경기를 재개하려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아자르는 긴장으로 굳었던 어깨를 풀어주며 흩어졌던 집중력을 서서히 끌어모았다. 그리고 작은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자아, 어디 한 번 전력을 다해 발버둥 쳐봐라.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사냥감은 결국 사냥 당할 놈들을 칭하는 단어이니까 말이지.’

    비릿하다 못해 싸늘한 눈빛으로 맨체스터 시티의 진영을 노려보던 아자르.

    그는 주심이 휘슬을 불면서 경기를 재개할 것을 알리기 무섭게 발에 힘을 주었고, 전력을 다해 공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앞으로 한 점만 더 성공시킨다면 역전이 가능한 순간이 찾아왔으니, 더욱 힘을 낸 것이다.

    그렇게 중앙선을 막 넘어서려던 아자르는···.

    “···?!”

    눈에 들어오는 선수를 확인하고 눈썹을 꼬았다.

    무언가 이상했다.

    잠시간 발을 멈춘 아자르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 88번의 위치가 원래 저 곳이었나?”

    재혁의 위치가 달라져 있었다.

    방금까지 중앙 미드필더, 그것도 빌드업에 관여하기 위해 페르난지뉴와 비슷한 라인을 유지하고 있었던 녀석이···.

    “2선···. 최전방 바로 밑까지 올라온 건가?”

    공격수라고 불러도 될 위치에서 공을 굴리고 있었다.

    < 80. 물결치는 파도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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