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77화 (77/225)
  • < 77. 내기 >

    별들이 집합하는 곳, 챔피언스 리그.

    다른 리그도 아닌 챔피언스 리그의 조별 예선이었던 만큼, 경기들이 끝나기 무섭게 결과들을 수집한 기사들이 인터넷에 빠르게 게시되었고, 조회수는 순식간에 수 백, 수 천, 그리고 수 만에 이르렀다.

    독자층이 전세계 축구팬들을 타겟으로 놓고 있었기에 게시되는 기사들의 숫자들도 많았지만, 읽는 사람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던 것인데.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기사들이 몇 개 있었으니···.

    [맨체스터 시티, 셀틱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 운영을 선보이며 원정에서 승리! 본선 토너먼트 진출 청신호!]

    [과르디올라 감독, “전술적인 승리에 만족. 다음 경기도 자신있다.”]

    [셀틱의 브렌던 감독, “어쩔 수 없었던 패배.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어야 한다.”]

    [벌써 6점. 맨체스터 시티,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조별 예선 단독 선두!]

    전부 최재혁이 소속되어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관한 내용들이었다.

    사실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감독도 아니고 펩 과르디올라라는 세계적인 명장이 이번 시즌 대대적으로 리빌딩을 한 팀이었고, 같은 조에 속해 있는 다른 팀은 스페인 2강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였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과르디올라 감독과 바르셀로나 사이에 이어진 유대감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은 이후에 이어질 두 구단간의 경기를 기다리며 기대에 찬 댓글들을 달았다.

    하지만 그런 세계적인 흐름에 한국 또한 적지 않은 기대를 보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재혁, 첫 선발 무대에서 8점을 기록! 카일 워커와 함께 팀내 최대 평점!]

    [맨시티의 전설, 눈이 밝아지는 플레이었다며 재혁을 극찬!]

    [‘아직 많이 부족하다.’ 겸손한 재혁, 겸손하지 않은 플레이로 팀의 승리를 견인. 선발 경쟁에 청신호?]

    18살의 나이로 맨체스터 시티에 입단, 이적 첫 시즌부터 챔피언스 리그에서 선발로 등장해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최재혁 때문이었다.

    덕분에 맨체스터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오기만 하면 댓글들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갔다.

    [이거 미친 거 아닌가요? 다비드 실바의 공백을 한국 선수가 메꾸다니. 솔직히 실바가 부상으로 결장한다고 했을 땐 걱정이 많았는데 이젠 기대뿐이네요. 다음 경기에도 선발로 나오려나요?]

    [저도 그래요. 사실 맨체스터 시티 팬은 아닌데, 경기를 보고 나니까 팬이 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어린 선수가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어휴.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네요.]

    [공간을 이해하는 모습만 보고 소름 돋을 게 아니죠. 그 어린 선수가 케빈이며, 아구에로···.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기죽지 않는 모습이 더 대단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선수들을 장기 말로 사용하려고 패스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고 전 그게 챔스 데뷔하는 선수라곤 생각도 못 했음요. ㄷㄷㄷ.]

    밤을 새워 경기를 지켜보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믿기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댓글을 달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발로 뽑힐 때만 해도 실수만 하지 않았으면, 이라는 생각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재혁은 뒤집었다.

    실수만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그들의 머릿속에 남긴 것이다..

    전반전에 선취골을 성공시킨 케빈이나, 추가점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은 제수스를 칭찬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경기를 전부 지켜보았던 많은 전문가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그 날 누구보다 밝게 빛나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최재혁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재혁을 보며 칭찬만 할 수는 없었다.

    당장 맨체스터 시티와 리그 경기를 앞둔 첼시의 감독, 콘테가 두꺼운 눈썹을 찌푸리며 재혁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최재혁? 그게 누군가. 혹시 맨체스터 시티의 88번을 말하는 건가? 그는 아직 어린 선수다. 그리고 이제 겨우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그런 선수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는 것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묻는 것은 어떤 감독에게도 실례가 되는 질문일 것이다.”

    실바의 공백, 그리고 그런 실바를 대신해 만점짜리 활약을 펼친 재혁에 대한 코멘트를 기대했던 기자는 순간 당황한 듯 벙찐 얼굴로 펜대를 굴렸고, 콘테 감독은 머리를 긁적인 뒤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2천만 파운드를 썼다는 소식은 알고 있다. 아무래도 세상이 미쳐버린게 아닌가 싶다. 과거 2천만 파운드면 선수단 구성원들 중 절반을 바꿀 정도의 금액이다. 그런데 검증도 되지 않은 18살 선수에게 2천만 파운드라니. 캉테가 3200만 파운드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선 안된다.”

    허허허.

    코멘트 말미에 캉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은 뒤 어깨를 으쓱이며 평소 자주 흘리는 실소를 기자들에게 보여준 콘테 감독은 ‘참 믿기 힘들다’라는 말을 연신 반복하며 고개를 계속해서 가로저었고, 그런 콘테 감독의 말을 기록하던 기자들 중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그럼 이번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 앞서 특별히 준비한 게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경기에 나서기 전까지 준비할 수 있는 과정들은 결국 정해진 것들을 반복하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경기 당일, 필드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고, 그 순간에 맞춰 준비한 것들 중 효과적인 것을 꺼내 펼쳐보이는 것이다.”

    “···.”

    “그럼 더 이상 다른 질문은 없다고 생각해도 괜찮겠나?”

    장내에 침묵이 흘렀고, 콘테 감독은 ‘땡큐’라는 말을 끝으로 경기장에서 뵙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기자들도 하나둘 자리를 정리했고, 이어질 다음 회견을 위해 수첩을 훑었다.

    이후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회장에 퍼졌고 익숙한 얼굴의 남성, 과르디올라 감독이 여유가 깃든 미소와 함께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자리에 앉았다.

    먼저 물을 한 모금 삼키는 것으로 입술을 축인 과르디올라 감독이 질문을 듣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오늘 과연 저에 대한 질문이 더 많을까요, 최재혁 선수에 관한 질문이 더 많을까요? 저랑 내기하실 분 있습니까?”

    “예?”

    “요즘은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가 아니라, 최재혁의 맨체스터 시티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니까요. 이거, 어떤 질문들을 받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군요.”

    양손을 모아 턱을 괴고 앉은 과르디올라의 말에 기자들은 순간 웃음을 터트렸고, 장난기가 스며든 손짓으로 반대쪽 뺨을 한 차례 쓸어내린 과르디올라 감독은 손을 번쩍 든 한 기자를 발견하고 그를 지목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목을 받은 기자는 밝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과르디올라 감독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겠네요. 최재혁 선수에 관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혹시 이번 첼시전에서 최재혁 선수를 선발로 출장시킬 생각이 있으십니까?”

    “질문 고맙습니다. 벌써부터 1대0이군요.”

    양손으로 각각 1과 0을 만들어낸 과르디올라 감독의 행동에 기자들이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렸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웃음이 조금 잦아든 것을 확인한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꺼내놓았다.

    “어떤 것이든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구상에 최재혁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그 이유가 혹시 다비드 실바 선수가 부상으로 선수단을 이탈한 것 때문입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잡고 이어지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짐짓 신중한 얼굴로 대답을 이어갔다.

    “다비드 실바 선수가 부상으로 빠진 탓에 그 시기가 빨리 찾아온 감은 있지만, 최재혁 선수는 처음 영입했을 때부터 이번 시즌에 사용할 목적으로 영입한 선수입니다. 무려 2천만 파운드를 주고 영입한 선수인데, 쓰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어린 선수라는 의견도 있고, 불투명한 선수를 위해 과한 금액을 투자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콘테 감독의 말씀을 인용하신 거군요. 크게 틀린 의견은 아니라고 봅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로 알아맞추자 질문을 던졌던 기자가 뺨을 붉혔으나,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내 씨익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하지만 역시 다 맞는 말씀은 아니지요. 선수란 결국 무대에 올라야 검증을 받을 수 있는 것이고,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값어치의 선수라는 것을 증명해낼 수 있는 거겠죠.”

    “그 말씀은···.”

    “영입을 할 땐 2천만 파운드라는 가격표가 붙었었지만, 그 가격표가 과연 이번 시즌이 끝났을 때 얼마가 되어 있을까요? 전 적어도 5배는 불어나지 않을까, 라고 예상하는데 말이죠?”

    “5배라면···, 1, 1억 파운드···!”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웅성거리는 기자들을 향해 다른 질문이 있으면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과르디올라 감독이 또 한 번 물을 한 모금 머금었고,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러 기자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중 한 사람을 지목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턱을 괴고 기자의 질문을 기다렸고, 기자는 목을 가다듬고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물었다.

    “혹시 이번 첼시전을 위해 특별히 준비 중인 게 있습니까?”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밝히기엔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매번 같은 모습을 보여드리진 않을 거란 겁니다. 상대가 매 라운드마다 달라지는데, 매번 같은 전술을 고집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호오.”

    “그럼 또 다른 질문은 없습니까?”

    “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말입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노트를 작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남성이 손을 번쩍 들며 입을 열었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와 눈을 마주치며 계속 말해보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은 뺨을 긁적이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물었다.

    “선수단이 도착할 때 계속 살펴보았는데, 최재혁 선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혹시 최재혁 선수는 이번 첼시전 명단에서 제외된 겁니까?”

    남성의 질문에 갑자기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전혀 생각치 못 했던 부분에 대한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원정 경기인데 선수가 따라오지 않았다면 당연히 명단에서 제외된 것이었으니.

    지금까지 과르디올라 감독이 회견장에서 했던 말은 모두 심리전이 되는 것이다.

    기자들이 놀란 얼굴로 하나둘 펜을 고쳐 쥐기 시작했고, 그런 기자들을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은 짧게 웃었다.

    “여러분들이 잊고 계신 게 있군요. 최재혁 선수는 직업이 두 개이지 않습니까?”

    “직업이···, 두 개요?”

    “축구선수라는 직업과 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는 직업.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중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 가지 직업의 경중을 나눌 수 없죠.”

    “!”

    “최재혁 선수는 오전에 시험만 치른 후 합류할 예정입니다. 사진은 그때 찍으시면 되겠군요. 자 그러면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도 괜찮겠습니까? 다른 질문들에 대한 답은 경기장에서 보여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군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향해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면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라시아스’라는 말을 끝으로 회장을 벗어났다.

    남겨진 사람들은 결국 감독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정보들을 정리해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경기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발표된 선발 명단을 확인한 후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이게 이렇게 되는군.”

    최재혁의 이름이 당당하게 선발 명단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외 언론이 앞다투어 해당 정보를 토대로 프리뷰를 짜기 시작했을 때.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한국에서도 흥분한 사람들이 잔뜩 등장했다.

    [첼시전, 최재혁 선발! 위치는 역시 미드필더!]

    [셀틱과 경기를 치를 때 후반전에 교체로 뺐던 이유가 있었네요. 오늘 경기를 위해서 미리 빼줬던 게 맞았음!]

    [야식 미리 시켜두길 잘했네요. 크으, 첼시를 상대로 과연 얼마나 활약할지 벌써 기대 되네요.]

    [첼시 팬인데 이럴 땐 누굴 응원해야 하나요? ㅠㅠ. 하아, 팀은 이겼으면 좋겠는데 최재혁 선수도 적당히 활약했으면 좋겠네요.]

    [한국인이라면 제발 맨시티 응원합시다. 최재혁 힘내라! 딱 세 골만 넣자!]

    맨시티의 팬, 첼시의 팬, 다른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까지.

    재혁이 필드에서 뛰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다들 얼른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마침내 경기가 시작될 때 즈음, 선수들이 하나둘 필드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오, 고딩. 늦지 않고 도착했네?”

    “시험은 어땠어? 낙제는 면하고 졸업은 할 수 있겠지?”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고등학교를 졸업 못 하면 큰일이지. 암, 큰일이야.”

    뒤늦게 유니폼을 착용하고 등장한 재혁을 선수들이 맞이해주며 큰소리로 웃었다.

    이제는 꽤 친해진 선수들이 적지 않았기에 재혁도 선수들의 장난에 맞서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마 제가 이번 학기 성적표에서 받게 될 A가 여기 계신 분들이 평생 받았을 A보다 많을 걸요?”

    “···.”

    “아, 팩트가 너무 묵직했나요? 농담이었는데. 그러면 B까지 포함시키면 다를까요?”

    가벼운 농담조의 말투가 계속 이어졌지만 저 말이 결코 농담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몇 선수들은 굳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고,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재혁이 애써 웃으면서 선수들을 향해 계속 말했다.

    “알겠어요. 그러면 제가 대신 다른 걸 약속해 드릴게요.”

    “다른 거? 다른 거 뭐?”

    재혁과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제수스가 목소리를 내 묻자, 재혁이 그를 향해 생긋 웃으며 말했다.

    “평생 받았을 A보다 더 많은 킬패스를 제가 선물로 찔러 드릴게요. 이거면 어때요?”

    “뭐? 야, 아무리 지난 경기에서 활약을 했어도 지나친 자신감은 자만이···.”

    “자만이 아니에요.”

    케빈이 재혁을 향해 당부의 목소리로 생각을 전하려고 했으나, 재혁은 케빈의 말을 자르고 그를 향해 고개를 가로 저은 뒤 웃는 얼굴로 답했다.

    “믿음이죠.”

    “···믿음?”

    “제 실력, 감독님의 전술, 그리고 함께 뛰는 사람들을 모두 믿을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소리란 거에요.”

    “!”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늘 몇 대 몇으로 이길 거 같아요? 제 생각엔···.”

    말을 끊고 슬그머니 턱끝을 쓰다듬던 재혁이 선수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최소 5대0으로 이기지 않을까요?”

    < 77. 내기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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