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75화 (75/225)
  • < 75. 텐백을… >

    상대적인 약팀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축구.

    셀틱은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철저하게 라인을 뒤로 물린 텐백을 꺼내들어 맞선 것이다.

    그에 반해 과르디올라 감독이 꺼내든 전술은 4-1-4-1로 한 명의 볼란치를 제외하면 중원의 모든 선수들과 최대 양쪽 풀백들까지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4백 전술을 꺼내들었다.

    기본적으로 선 수비, 후 역습을 토대로 진행되는 전술이었기에 공격적인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어떻게든 맨체스터 시티의 공세를 한 차례 끊은 뒤 기회를 노리려는 셀틱의 의중을 바로 읽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재치있는 응수였고, 그 전술의 핵심이 되어 경기를 뛰게 된 재혁은 침착한 눈빛으로 상대 진영을 살피며 일단 공을 굴렸다.

    ‘아직 경기 초반이라 그런가. 무작정 발을 뻗는 선수는 아직 없군.’

    셀틱 선수들은 공이 흐르는 방향을 쫓아 이동을 하며 수비를 했지만 공간을 막아서며 공의 이동을 막을 뿐, 적극적으로 공을 뺏으려는 행동은 취하지 않고 있었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였지만 기회만 온다면 언제든 세를 바꿔 기습을 노리려는 모습이라는 표현이 아마 옳으리라. 그리고 그런 재혁의 생각처럼 공이 앞으로 전진할 때면 셀틱 선수들은 공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들어 압박을 넣었고, 압박의 중심에서 공을 컨트롤 하던 케빈이 공을 지켜내기 위해 계속해서 드리블을 하다가 간신히 패스를 연결한 뒤 숨을 토해냈다.

    ‘조직력이 좋아. 이건 쉽게 뚫기 힘들겠어.’

    브렌던 감독은 셀틱에 부임한 이후 다른 무엇보다 그가 원하는 점유율을 토대로 한 축구를 정밀하게 구사하기 위해  조직력을 최우선적으로 끌어올렸다.

    그말인즉, 공격 상황에서의 움직임만이 아닌 수비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조직력도 수준급이라는 의미였고, 견고하게 쌓인 텐백을 상대하게 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하나둘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가지만 뚫어낼 공간이 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최전방을 맡고 있는 아구에로가 상대 수비수들을 제공권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장신의 선수가 아니었으니.

    양쪽 측면을 빠르게 뚫고 이동해도 머리를 노리고 보내는 크로스는 효율적인 공략법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지공을 유지하자니 도통 틈을 만들어낼 수 없었던 탓에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의 패스가 하나둘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투웅!

    “좋아, 빠르게 역습이다!”

    마침내 맨체스터 시티의 허리에서 시작되던 패스 줄기를 끊어낸 셀틱 선수들이 선이 굵은 패스로 맨체스터 시티의 뒷공간을 노리고 역습을 시작했다.

    수비수 비튼에서 미드필더인 브라운으로 이어진 공은 곧장 전방에서 공간을 찾아 뛰고 있는 싱클레어에게 이어졌고, 머리로 날아 오는 공을 각도만 살짝 꺾어 오른쪽 측면에 떨어뜨리면서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던 맥그리거에게 패스를 연결하자 순식간에 맨체스터 시티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답답함에 라인을 최대한 끌어 올렸던 맨체스터 시티의 최후방에는 두 명의 센터백과 페르난지뉴, 세 사람 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수적인 우위를 활용하려는 듯, 맥그리거는 계속해서 드리블을 치면서 패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한 뒤···.

    뻐엉!

    그대로 슈팅을 때렸다.

    속도와 임팩트, 두 가지가 정확하게 실린 슈팅이었다.

    게다가 궤도까지 정확히 골대 구석을 노리고 날아가는 것에 많은 선수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었는데···.

    “흐앗!”

    파앙!

    요란한 괴성과 함께 몸을 날린 에데르손의 주먹에 공의 방향이 크게 꺾이면서 선수들의 얼굴에 떠올랐던 희비가 엇갈렸다.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었고, 흔치 않게 찾아온 기회가 득점으로 연결되지 않아 셀틱의 선수들은 아쉬운 얼굴이 되어 코너킥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공이 완전히 골라인 밖으로 날아간 것을 확인한 케빈은 특히 큰 몸짓으로 속을 쓸어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오늘 경기는 어느 쪽이든 한 골을 먼저 넣는 쪽이 극적으로 유리하겠어.’

    어떻게 해서든 지키려고 하는 쪽이나, 어떻게 해서든 한 점을 추가해서 상대의 수비벽에 균열을 만들어야 하는 쪽이나. 결국 승부를 가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딱 한 점이었다.

    그 점을 케빈이 재차 상기하면서 코너킥을 수비하기 위해 사람을 쫓아 이동하다가 자신처럼 박스 안까지 내려온 재혁을 발견하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쟨 괜찮으려나?’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게 된다면 그 누구보다 답답한 사람들이 바로 중원에서 활동하는 미드필더들이다.

    수비를 해야 할 때와 공격을 해야 할 때, 그 누구보다 많은 움직임을 가져가야 할 선수들이 바로 미드필더들이기 때문이다.

    뛰기는 누구보다 많이 뛰지만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지 않다면 어느 누구라도 감정에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 변화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 한 쪽이 대부분 패배하기 마련이다.

    케빈은 혹시라도 재혁이 그런 의미에서 현재 상황에 초조해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이고, 그의 얼굴을 통해 감정을 읽어보려 했는데···.

    “···?”

    예상 밖으로 너무도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재혁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단순히 평온한 정도가 아니었다.

    저게 지금···.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가 보여주는 얼굴이라고?’

    “케빈! 공온다! 정신차려!”

    “아, 알고 있어!”

    “박스 안으로 떨어진다! 마크 놓치지 마!”

    재혁을 넋놓고 쳐다보고 있자 스톤스가 케빈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고, 케빈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 코너킥을 준비하고 있던 셀틱 선수를 노려보았다.

    공은 과연 스톤스가 소리친 것처럼 박스 안으로 정확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회전이 제대로 걸려, 누군가의 머리에 맞기라도 한다면 분명 무시할 수 없을 헤딩이 될 것처럼 보였던 공은 다행히도 어느 누구보다 먼저 뛰어오른 오타멘디의 머리에 걸렸고, 공은 날아오던 속도 그대로 박스 바깥으로 날아갔다.

    수비에 집중하고 있던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일제히 발을 움직인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빠르게 간다!”

    세트 피스를 때문에 셀틱 선수들이 자리를 벗어난 순간을 노리려는 듯, 자신의 발밑에 떨어진 공을 페르난지뉴가 컨트롤하면서 소리쳤고, 다른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도 그런 페르난지뉴의 외침에 동의하는지 하나같이 전력을 다해 다리를 움직였다.

    케빈도 그런 동료들 사이에 뒤섞여 붉게 달아오른 뺨을 크게 부풀리면서 달렸는데.

    “?!”

    그런 상황에서 여유가 흐르다 못해 넘치게 행동하고 있는 재혁을 발견하고 케빈이 이를 갈았다.

    패스와 패스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어야 할 선수가 다른 선수들보다 오히려 뒤떨어진 곳에서 올라오고 있다니.

    ‘이래서야 애써 찾아온 기회가 날아가겠어!’

    어쩔 수 없다.

    안타깝지만 이번 플레이에서 재혁은 제외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리라.

    페르난지뉴의 패스를 이어 받은 케빈은 패스의 속도를 죽이지 않고 가뿐한 턴으로 공을 이어 받은 뒤 계속해서 드리블을 치고 중앙을 파고 들었다.

    상대 선수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속도를 붙인 터라 이전보다 압박이 비교적 약한 상황.

    이정도라면 해볼만 하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케빈은 거침없이 더욱 속도를 붙이고 상대 진영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면서 두눈을 빛냈다.

    ‘정면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그리고 그 뒤에 하나···!’

    최고 속도로 달리면서도 초 단위로 바뀌는 주변 상황을 재빨리 머릿속으로 정리를 끝낸 케빈.

    그는 자신의 앞을 가로 막는 선수 한 명을 그대로 제쳐버리고, 뒤이어 쫓아오는 선수의 압박까지 벗겨낸 다음 그와 함께 발을 맞춰 움직이다가 상대 수비수들 사이로 라인을 부수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아구에로의 발밑으로 땅볼 패스를 붙여주었다.

    이 패스가 연결만 된다면 확실한 득점 찬스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그의 생각처럼 아구에로는 가뿐한 터치 한 번으로 골키퍼와 1:1 상황을 만들어냈고, 오른발로 구르는 공을 정확하게 때리면서 골대 구석을 노리는 강한 슈팅을 시도했다.

    파앙, 시원한 소리와 함께 쭉 뻗어나가는 공을 본 케빈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저건 못 막는다.

    그런 생각에 떠오른 미소였고, 과연 그의 생각처럼 셀틱의 고든 골키퍼가 뻗은 장갑을 피하고서 아구에로의 슈팅은 시원하게 뻗어나가다가···.

    터엉!

    “!”

    골대를 맞고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

    방금까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공을 바라보던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이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흘린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얼마나 강했는지 골대가 진동하고 있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케빈도 아쉬움에 입술을 깨물었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도리질 친 후 공을 쫓아 몸을 움직였다.

    ‘아직 끝난게 아니야!’

    비록 슈팅이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지만, 아직 셀틱 선수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아 수비가 견고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 떨어지는 저 공만 다시 소유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한 번 더 기회를 노려볼만 한 상황이었고, 케빈의 눈에 맨체스터 시티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가 떨어지는 공을 가뿐하게 컨트롤 하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88번, 최재혁이었다.

    덕분에 흐름이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공세를 취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떠올렸던 케빈이 환히 웃으며 발을 움직이려다가.

    투웅.

    “?!”

    공을 앞이 아닌 뒤로 보내는 재혁을 발견하고 충격에 두눈을 부릅떴다.

    이런 상황에서 공을 갑자기 뒤로 돌리다니?

    “뭐하는 거야? 앞에 있는 공간을 사용해야지!”

    “···.”

    “거기서 뒤로 공을 돌려버리면···!”

    재혁을 향해 소리치다가 말문이 막혀버린 케빈.

    공이 뒤로 돌아간 그 짧은 순간 동안 셀틱 선수들이 모두 진영으로 돌아와 10명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수비벽을 다시금 구축한 것을 발견하고 더 이상 무어라 말을 이을 수 없었던 것이다.

    충격에 할 말을 잃은 것은 케빈만이 아니었다.

    재혁의 패스를 받은 페르난지뉴도, 전방에서 공이 오길 기다리던 아구에로도, 자네도, 제수스도···.

    ‘역시 아직은 부족한 건가.’

    모두가 머릿속으로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하물며 셀틱의 브렌던 감독도 이번에 재혁이 공을 뒤로 물려준 덕에 진영을 정비할 시간을 벌었다며 기쁜 듯이 입꼬리를 말아올리고 있었는데.

    “···?”

    순간적으로 그의 표정이 굳었다.

    이질적인 무언가가 그의 가슴을 쿡 찌른 것이다.

    무어라 콕 짚어 말할 수 없는 불쾌함.

    그런 감각이 계속해서 속을 긁고 있는 것에 브렌던 감독이 눈썹을 찌푸렸고, 브렌던 감독을 제외하고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것을 확인한 재혁이 슬쩍 자리를 이동했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주변에 위치한 선수들과 패스를 주고 받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재혁의 행동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지켜보다가···.

    “어···?”

    “뭐, 뭐야?”

    하나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두눈을 모았다.

    빠르지도, 하지만 느리지도 않은 평범한 속도의 움직임.

    그런 움직임을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움직이던 재혁의 위치가 점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중앙 선을 넘어 파이널 써드에 근접한 자리까지 이동한 것이다.

    아니, 단순히 이동한 것만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이 이렇게 쏠릴 리 없었다.

    중계석에 앉아 맨체스터 시티와 셀틱의 경기를 중계하고 있던 박상철 캐스터가 크게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내질렀다.

    “맨체스터 시티의 최재혁 선수! 중앙에서 모든 선수들과 패스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잔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약진! 사방을 셀틱 선수들에게 둘러 쌓였음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만, 자칫 실수하면 바로 공을 빼앗길 장소거든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지금 최재혁 선수는 단순히 패스를 교환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박상철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장수 해설이 곧바로 입을 열었고, 한껏 진지한 얼굴로 입술을 모은 최장수 해설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뒤 설명을 이었다.

    “최재혁 선수는 빌드업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빌드업을 준비해요?”

    “단 한 번.”

    슬쩍 검지를 들어올린 최장수 해설이 말했다.

    “단 한 번 찾아올 기회를 만들기 위한 빌드업을 준비 중인 겁니다.”

    “···?”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조금 더 설명을 해달라고 물어보려던 박상철 캐스터의 두 눈이 이어지는 상황을 발견하고 크게 떠졌다.

    “최, 최재혁 선수! 갑작스럽게 높게 뜬 패스를 보냈습니다! 오른쪽 구석을 노리고 날아간 패스를···.”

    “워커! 카일 워커 선수가 받았습니다!”

    < 75. 텐백을…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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