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위기 속의 기회 >
[훈련 중 부상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에요?]
[무슨 소리긴요. 훈련을 받다가 부상을 당했다는 소리죠.]
다비드 실바의 부상 소식에 인터넷은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다비드 실바였다.
케빈과 더불어 현 맨체스터 시티의 기둥이자 에이스라고 일컬어도 부족함이 없는 선수가 부상으로 빠져야 한다는 소식에 기뻐할 팬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다들 바짝 긴장한 채로 이어질 오피셜 소식들을 기다렸고, 마침내 구단에서 발표한 기사를 확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질 못 했다.
부상의 이유는 햄스트링으로 최소 2주 동안의 결장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2주간 결장이 불가피하다니···. 아직 시즌 초반인데 벌써부터 이탈하다니···.]
[그나마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2주간 치러야 할 경기들을 생각하면 이건 좀 심각하지 않나요?]
[당장 다음 경기가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이고, 그 다음 경기가 첼시전인데···. 어째선지 2년 전이 떠오르네요.]
[아, 다른 건 몰라도 리그 우승을 목표로 하려면 첼시는 꼭 잡아야 되는데. 실바 없이 그게 될까요?]
[첼시전만 중요한가요? 챔피언스 리그 예선도 일찍이 본선 진출을 확정 지어야 로테이션이 편해진다고요.]
[안 중요한 경기가 어디있겠어요? 모든 경기에서 이길 생각을 해야 우승을 목표로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상은 너무 뼈아프네요.]
큰 부상이 아니라 안도하는 팬들과 시즌 초반부터 에이스가 부상으로 팀을 이탈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던 팬들, 그 외에도 차라리 박싱데이 때 부상으로 이탈하느니 지금이라도 몸을 조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팬들도 등장하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게시판을 떠돌았다.
모두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서 게시판에 글을 작성했지만, 한 가지 만큼은 다들 공통된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있었다.
과연 누가 다비드 실바의 공백을 메우게 될 것인가, 라는 공통적인 생각을 말이다.
해당 게시글에 가장 먼저 댓글을 단 사람은 커뮤니티 내에서 나름 인지도가 있는 유저였다.
[다비드 실바 선수가 출전 했을 때와 안 했을 때 팀의 경기력 차이를 논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논쟁이 없죠. 팀의 14-15시즌 때 경기력과 15-16시즌 때의 경기력만 비교해봐도 바로 답이 나오니까요. 14-15때도 부상으로 다비드 실바가 이탈 했을 때, 이게 정말 같은 팀이 맞나 싶을 정도 였죠.]
[맞아요. 그때 생각만 하면···.]
[끔찍했죠.]
[다들 기억하고 계시는 군요. 그나마 지금 상황이 그때보다 나아진 것은 과르디올라 감독이 팀에 합류한지 2년 째가 되면서 슬슬 자신이 원하는 팀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진지하고 신중한 문장들로 꽤나 세세히 글을 적던 남성은 잠시간 키보드를 치던 손을 멈추고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 뒤 다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비록 다비드 실바가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케빈을 중앙으로 이동시킨다면 그의 공백을 최소화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케빈이 중앙으로 이동하게 되면 여름에 새로이 영입한 베르나르두 실바가 활약할 공간이 생기면서 이번 부상으로 인한 이탈로 발생할 출혈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겁니다.]
[확실히 이번 여름에 있었던 영입들로 스쿼드의 뎁스가 많이 두꺼워지긴 했으니까요.]
[실바가 그립겠지만, 또 다른 실바를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있어야겠군요.]
모두가 공감할만한 내용으로 댓글을 작성했고,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남성은 잠시간 손을 멈추고 망설이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댓글을 추가했다.
[그리고 단순히 쉬프트를 이용한 포지션 변경만으로 공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의 스쿼드라면 또 다른 방법이 존재하죠.]
[또 다른 방법이요?]
[여름에 영입해온 중원 자원은 베르나르두 실바가 전부가 아니니까요.]
[그 말씀은···.]
[최재혁.]
[···최재혁이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었으나, 맨체스터 시티의 열성 팬이라면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이름을 글자로 적어 올리자 곧 많은 사람들이 눈을 반짝였고, 그런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남성은 계속 댓글을 작성했다.
[프리 시즌에서 풀백으로 데뷔를 했고, 교체 선수로도 경기가 끝날 때 즈음에나 간간히 투입이 되고 있는 선수지만 사실 최재혁 선수의 본래 포지션은 미드필더입니다. 그것도 실바처럼 창의적인 패스가 가능한 선수죠. 맨체스터 시티로 오기 전, 호주에서 활약하던 모습을 한 번 찾아 보신다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창의적인 패스를 하는 선수라. 하지만 그 선수는 아직 많이 어리지 않던가요? 이제 겨우 18살 정도인 걸로 알고 있는데···.]
[18살이면 아직 피지컬도 완성되지 않았을 나이네요.]
[그런 선수가 다비드 실바를 대체할 수 있을 거라니. 이건 에드님의 말씀이라고 하셔도 조금은 과한 기대가 아닐지···.]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리그컵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이 최재혁 선수를 기용하던 방식을 떠올려본다면 말이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간 생각을 정리했던 남성을 이번엔 쉬지 않고 계속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비록 당시 경기에서 스완지 시티에서도 부상에서 막 복귀한 선수들을 위시로 1.5분에서 2군 사이의 선수들로 선수진을 구성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가감없이 보여준 선수가 바로 최재혁 선수였으니까요. 이번 다비드 실바의 선수진 이탈은 최재혁 선수에게 있어서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될 겁니다. 같은 팀에 속한 동료이기 이전에, 두 선수는 일단 같은 포지션을 두고 경쟁을 하던 선수들이니까 말예요.]
[호오, 과연···.]
[확실히 리그컵 경기에서 보여줬던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선수긴 했죠.]
[적어도 이번 시즌에선 한 선수의 이탈로 인해 경기력이 크게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에드라는 유저의 말에 기대를, 혹은 그래도 해결되지 않은 걱정이 담긴 의견들을 사람들은 줄줄이 이어 달아 놓았고, 해당 글에 달린 리포스팅 댓글의 수는 순식간에 수백을 넘었다.
비록 생각은 모두 달랐지만 적어도 한 가지, 과연 과르디올라 감독이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할 지에 대한 기대감은 모두가 은연 중 품고 있었고···.
“미켈.”
“예.”
“나중에 이것 좀 처리해주겠나?”
“이건···.”
과르디올라 감독이 내민 서류를 확인한 미켈 코치가 살며시 모인 미간을 긁적였고, 그런 미켈 코치를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재혁이의 다른 건 다 좋은데, 고등학생이란 점이 정말 귀찮지 않나? 경기에 데리고 갈 때마다 서류를 제출해야 하니 말야. 내일모레 스코틀랜드로 출발해야 하니, 최대한 빨리 부탁하네.”
***
[내가 그래서 말야···.]
휴대폰 스피커로 흘러 나오는 동생 재희가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가만히 들으면서 재혁이 옅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 열다섯으로 이제 중학교 3학년.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올라가게 될 동생 재희와 나누는 전화 통화 시간은 재혁이 즐기는 얼마 되지 않는 취미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과 공부가 몸과 머리를 피곤하게 했지만, 동생과 밝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눌 때면 피로가 싹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재희가 전해주는 소식을 들으면서 재혁은 동기부여를 다질 수 있었다.
그렇게 30여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동생과 떠들던 재혁은 할머니에 대한 소식을 물었다.
“혹시 요즘도 시장 나가셔?”
[아, 그거? 집에만 계시면 심심하시다고 마실 정도로 나가시지.]
“진짜 마실 정도인 거지? 혹시라도 무리하시는 거면 네가 못하게 막아.”
[알고 있어, 알고 있어.]
재혁의 계약금과 매 주 지급되는 주급이면 이제 편하게 생활하셔도 될 것인데.
할머니는 여전히 시장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혹시라도 그게 몸에 무리가 될까 걱정이었던 재혁은 동생과 통화를 할 때면 매번 그 부분에 대해 물었고, 재희는 별 일 없다는 듯이 그런 재혁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내저어주었다.
그 점이 오히려 걱정이었지만, 딱히 확인할 길이 없었던 재혁은 알겠다며 뺨만 긁적일 뿐이었고, 재혁의 아쉬운 목소리를 확인한 재희가 애써 높은 목소리로 재혁에게 말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시장에 나갈 때가 정말 좋다고 하셨어! 거기에 가면 항상 오빠 소식을 알려주는 상인 분들이 계시니까!]
“내 소식을?”
[고깃집 아저씨랑 분식집 사장님이 축구 광팬이라서 오빠 소식에 대해 들으면 항상 할머니께 말씀해주시거든! 아무래도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잘 안보시잖아?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 사람들 입을 통해 오빠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다고 얼마나 좋아하신다구. 그러니까 너무 걱정만 하지마.]
“그러면 다행인데···.”
[어허. 걱정은 그만 하라니까. 그나저나 오빠 이야기나 좀 들어보자.]
나이를 좀 먹었다고 이제 나름 목소리까지 깔면서 말을 할 줄 알게 된 동생의 말에 재혁이 고개를 갸웃이며 물었다.
“내 이야기? 무슨 이야기?”
[오빤 여자친구 소식 없어?]
“···뭔 친구?”
[여자친구! 해외에선 운동 잘하는 남자가 인기라며? 오빠는 게다가 프로 선수니까, 예쁜 언니들이 막 연락처를 준다거나···.]
“그런 거 없거든. 애초에 관심도 없고.”
[뭐? 관심이 없어? 오빠 혹시···.]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그러는 너야 말로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거지?”
공부에 욕심이 있는 동생이 고등학교는 보다 좋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하던 것을 기억하며 재혁이 물었고, 재희는 재혁의 질문에 짧게 웃으면서 당당하게 지난 시험에서도 전교 순위권을 유지했다며 자랑스럽게 답했다.
그런 동생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을 수 있었던 재혁은 이어지는 동생의 한 마디에 순간 표정이 굳었다.
[그런데 요즘따라 자꾸 애들이 편지를 준단 말야.]
“···편지? 무슨 편지?”
[고백 편지. 지난 주에도 두 통이나 받았어.]
“···.”
[하나는 운동하는 애고, 다른 하나는 평범한 애였는데. 둘 다 내가···.]
이어지는 동생의 목소리는 한 귀를 통해 들어왔다가 다른 쪽 귀를 통해 빠져나갔다.
친동생이고, 아직 중학생이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재희의 외모가 지니고 있는 잠재력은 재혁이 보기에도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아니, 과거의 생에서 이미 한 차례 성장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고, 그의 눈에는 어느 연예인들과 비교해도 재희는 절대 모자람이 없었으니···.
동생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지만 재혁은 동생의 이야기는 대충 흘려보내고 깊게 호흡을 삼키고 내쉰 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응? 에이. 난 공부 해야 돼. 연애할 시간 같은 거 없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주는 거지.]
재희의 답에 재혁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뱉었고, 그런 재혁을 향해 재희는 오빠도 여자 조심하라며 한 마디 했다.
중3짜리가 어디서 그런 건 또 배웠는지 재혁이 어이가 없어 묻자,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을 재희가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재혁은 바로 손을 내젓고 할머니께 안부나 전해달라고 말을 끊은 뒤 통화를 끝냈다.
그렇게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문 틀에 어깨를 걸친 재혁이 슬쩍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호주에서 보던 것과 다르지만 어쩐지 비슷한 별빛들을 눈에 담으면서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콧등을 긁적였다.
같이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들으면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던 케이트.
영국으로 온 이후로 안토루를 통해 몇 차례 소식을 듣긴 했지만 직접 연락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호주를 떠날 때도 따로 만나 고맙다고 말을 전할 순간도 놓치지 않았던가.
‘나중에 이메일이라도 보내볼까. 아, 무슨 푼수같은 생각이냐? 정신차려라, 최재혁.’
다시 한 번 주어진 삶.
이번 삶에선 다른 무엇보다 축구에 모든 것을 걸기로 마음 먹어 놓고 이런 생각을 품다니.
애써 고개를 도리질 친 재혁은 이내 몸을 일으키고 책상에 앉은 후, 달력을 확인한 다음 책을 펼쳤다.
붉은색 마커로 표시되어 있는 날짜.
셀틱과의 경기를 위해 스코틀랜드로 향하려면 미리 해두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 뒤로 몇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재혁의 방의 불이 마침내 꺼졌고, 며칠 뒤 재혁은 원정 선수단에 포함되어 스코틀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73. 위기 속의 기회 > 끝
ⓒ 권주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