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존재감 >
“득점! 맨체스터 시티에서 선취점을 성공시킵니다! 선취골의 주인공은 브라함 디아즈!”
“골대 구석을 정확하게 노리고 빠른 타이밍에 슈팅을 시도했어요. 유스 경기에서 보여주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스완지의 골문을 갈랐군요. 역시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선수입니다.”
“성인 무대에서 터트린 첫 득점에 기쁜 것인지 함박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습니다. 저런 모습을 보면 어린 선수가 맞는데, 방금 득점 장면은 성인 선수들 못지 않게 침착했죠?”
“골문 앞에서의 침착함. 그게 바로 저 선수의 특징이니까요.”
박상철 캐스터와 최장수 해설.
두 사람은 높아진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재생되는 득점 장면을 함께 지켜보면서 계속 대화를 주고 받았다.
공이 오는 방향을 정확히 예측하고 간결한 터치로 공을 자신의 발앞에 두는 모습과 오른발로 한 차례 공을 밀어낸 뒤 공간을 열기 무섭게 곧장 슈팅을 때려버리는 과감함은 도저히 이번 경기가 성인 무대 첫 출전인 어린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세레머니로 입고 있는 유니폼에 그려진 맨체스터 시티의 엠블럼을 툭툭 건드리며 원정을 찾아온 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는 브라함 디아즈를 찍어주던 카메라 안에 곧 동료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고, 그 사이에 섞여 있는 한 명의 선수를 발견한 최장수 해설은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닫았던 입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브라함 선수의 득점을 어시스트해준 선수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겠죠.”
“이번에 도움을 기록한 선수라면···, 최재혁 선수군요!”
“예. 솔직히 그 순간에, 그리고 그 장소에서 그런 패스를 시도할 선수는 많지 않거든요. 최재혁 선수가 그런 선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되겠죠.”
브라함이 고맙다는 의미로 재혁의 어깨를 툭 건드리고 다시 진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자 박상철 캐스터가 과한 액션을 취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최장수 해설은 흐뭇한 얼굴로 말을 계속 했다.
“분명 골키퍼가 던져준 공을 빠른 속도로 역습으로 이어간 것을 보면 로스 선수의 활약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혼란스러운 틈을 노려 중원에서 홀로 좋은 자리를 잡고 있던 재혁 선수의 위치 선정, 그리고 공을 받기 무섭게 송곳 같은 패스로 스완지 시티의 수비진들 사이를 뚫어 버리는 능력과 과감한 판단력이 없었다면 브라함 선수가 박스 안에서 여유롭게 패스를 건네 받을 수도 없었겠죠.”
“과연! 단순히 한 선수가 잘해서 득점이 터진 것은 아니니까요. 방금 역습은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이 제대로 된 옷을 입고 나왔다는 표현이 옳겠군요.”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완지 시티에선 약간 뼈가 시릴 수도 있겠어요.”
중계 화면이 센터 서클에 놓여 있는 공으로 모이자, 최장수 해설은 경기를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스완지 시티의 선수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면서 말을 이었다.
“분명 경기 내내 흐름은 스완지 시티 쪽에 있었거든요. 김수용 선수를 필두로 모인 선수들의 공세는 당장이라도 경기를 큰 점수 차이로 끝낼 기세였어요. 하지만 필요한 순간에 실속을 챙기지 못한 것이 남은 시간을 힘들게 할 것 같군요.”
“그 말씀은···, 미드필더로 뛰고 있는 김수용 선수가 좀 더 분발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중계자라는 입장에서 최대한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려고 하지만, 한국인 선수들이 뛰고 있는 경기에선 그게 힘들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들을 포함해 현재 중계석에 앉아 있는 그들이 모두 선수들과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를 향한 독설은 자칫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기에 박상철 캐스터의 목소리가 짐짓 조심스러웠던 것인데, 그런 캐스터와 달리 최장수 해설은 담담하지만 또렷한 어조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단순히 분발하는 정도로는 안 됩니다. 절박해야죠. 부상에서 복귀한 뒤 처음 치르는 경기라서 경기력이 아쉬웠다는 말은 프로에게 변명이 아닌 평가가 될 테니까요.”
“!”
“그리고 절박해야 달라지는 겁니다. 지금 김수용 선수에게 필요한 건 변화를 위한 절박함입니다.”
변화를 위한 절박함.
한국에서 데뷔하고,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서서히 잠재력을 펼쳐 보이면서 후에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에까지 입성한 선수에게 ‘변화’를 바라는 최장수 해설의 한 마디를 들은 캐스터는 순간적으로 입이 멎었다.
비록 지난 시즌은 소속 팀에서 경쟁 구도에 밀린 모습을 보인 선수였지만, 한국에서는 다시 없을 미드필더로 칭송 받고 있는 상대를 대상으로 꽤나 냉정한 평가를 내린 탓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좀 시끄러울 거 같은데···.’
당황스러웠던 만큼 표정에서 바로 감정이 드러났고, 입도 순간적으로 움직이길 멈췄던 박상철 캐스터는 그래도 일단 자신이라도 발언을 수습해보기 위해 목을 가다듬고 애써 웃는 얼굴로 다시 한 번 최장수 해설에게 물었다.
“그래도 오늘 경기에서의 활약은 썩 나쁜 편은···.”
“여태까진 나쁘지 않았지만, 실점을 한 순간부터 그런 평가는 의미가 없는 거지요. 결국 축구는 팀 단위로 경쟁하는 스포츠이고, 개인의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팀이 만들어내는 결과니까요.”
“···.”
“이대로 후반전까지 끝이 난다면, 오늘 복귀전은 최악의 경기로 기록 될 수도 있습니다.”
‘대, 대체 왜 이러시는 거야?’
옳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김수용 선수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아도 인터넷 상에서 현재 어떤 글들이 올라오고 있을지 예상이 되었던 상철은 답답함에 말을 잇지 못했는데, 그런 그를 구원해준 것은 주심의 휘슬 소리였다.
한 골을 먹었다는 사실에 얼굴에 독기를 품은 스완지 시티의 아브라함과 아위유가 공을 굴리면서 멈췄던 경기를 재개한 것이다.
그에 맞춰 상철도 애써 마이크를 붙잡고 다시 시작된 경기 상황을 설명하면서 목소리를 높였고, 최장수 해설도 그런 캐스터의 말에 맞춰 흐름에 맞는 상황 설명을 덧붙였다.
다만 앞서 진행되었던 전반전과 크게 다른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스완지 시티에선 계속해서 압박을 넣고, 맨체스터 시티는 밀리는 형국에 맞춰 선 수비 이후 중원을 가로 지르는 빠른 역습을 시도할 뿐이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이 모두 흘렀고, 주심은 하프 타임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을 지켜보던 캐스터와 해설자도 후반전에 다시 뵙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화면에서 사라졌다.
***
왁자지껄,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었던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잔뜩 흥분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전반전을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끝낸 것을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몇몇 선수들은 평소와 다르게 크게 들떠 있었다.
재혁에게 패스를 주었던 로스와 재혁에게 패스를 받아 득점을 성공 시킨 브라함이 그 둘이었다.
“내 패스가 완전 쩔었지?”
“내 마무리가 더 좋았거든!”
하프 타임에 돌입하기 무섭게 재혁에게 달려온 두 사람은 계속해서 재혁에게 말을 붙이면서 누구의 플레이가 더 좋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바랬던 것이다.
평소 훈련을 할 때라던가, 학교에서는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척 행동을 하는 두 사람이었는데.
역시 애는 애구나, 라는 생각을 입안에서 조물거린 재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둘에게 답했다.
“누가 더 잘했는 지가 뭐가 중요해? 둘 중 한 명이라도 이 자리에 없었다면 골이 안 됐을 텐데.”
“맞아. 누가 더 잘했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지. 둘 다 잘 했다는 것이 중요한 거야.”
“어? 감독님?”
“셋이 이렇게 모여서 떠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나이는 속이지 않은 것 같군.”
슬쩍 재혁의 얼굴을 살피면서 건넨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에 재혁은 순간 속이 따가웠으나, 애써 미간 사이를 긁적였고, 그런 재혁을 포함해 여전히 동그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선수를 향해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을 계속 했다.
“그리고 전술적인 움직임도 충분히 효율적이었고 말야. 후반전도 이 상태를 유지하면 되겠어.”
“예? 후반전도 이 상태를 유지하라고요?”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완벽하게 밀리고 있던 구도였는데요?
로스와 브라함은 당장이라도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후반전도 이런 식이면 위험할 것 같다고 대꾸하고 싶었으나.
“그렇죠? 제 생각도 그래요.”
“?!”
그보다 먼저 재혁이 목소리를 낸 탓에 두 사람은 벙찐 얼굴로 재혁을 향해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다만 과르디올라 감독은 재혁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생긋 웃어보인 다음 라커룸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났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두 사람이 재혁을 향해 따지듯이 물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전반전 내내 우리가 밀렸었잖아?”
“후반전도 이런 식이면 결국 실점할 상황이 찾아올 건 우리라고! 아무리 바보라도 그건 알겠다! 당장 감독님께···.”
“경기를 모두 지켜보신 감독님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 건데, 설마 그걸 우리보다 모르시려고?”
“!”
“그리고 전술 지침이라면 훈련 때부터 지겹게 들었잖아?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그 전날도 말야.”
“지침을 우리가···, 지겹게 들었다고···?”
재혁이 하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를 향해 되묻는 두 친구들을 향해 재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전술이란 선수 하나하나가 경기에서 매 순간 자신이 위치한 포지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정확히 알고 있을 때 전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훈련에서 반복 된다.”
“···!”
“이 말씀을 직접 하신 분이 바로 과르디올라 감독님. 감독님이 없는 말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건 너희들이 더 잘 알잖아? 그러니까 후반전도 확실히 기합넣고 들어가자고.”
툭툭!
재혁은 아직까지 아리송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로스와 브라함의 등을 토닥였고, 두 사람은 뚱한 모습이었으나 이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라커룸을 향해 재혁과 같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께 걷다가 잠시 발을 멈짓인 재혁은 두 사람에게 화장실을 좀 다녀오겠다고 말을 한 다음 자리를 벗어났다.
멀어지는 재혁에게 얼른 돌아오라는 말을 끝으로 먼저 라커룸으로 향한 둘은 이내 재혁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김수용 선수, 맞으시죠? 왜 거기 혼자 서 계세요?”
“!”
재혁은 복도 뒤편, 그림자 밑에 숨어 있던 수용을 알아보고 그에게 말을 붙였다.
설마 재혁이 말을 걸어올지는 예상하고 있지 못 했는지, 수용이 짐짓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고개를 털어내며 답했다.
“경기장에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이 이쪽이라.”
“아. 그런데 왜 숨어 계셨어요?”
“딱히 숨어 있지는···.”
“아뇨. 지금 이 자리 이야기가 아니라.”
말이 길어지려는 듯, 입술을 살짝 깨무는 수용의 말을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른 재혁이 어깨를 그의 두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경기장에서 말예요.”
< 71. 존재감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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