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66화 (66/225)

< 66. 전술에 맞춘다 >

2년 전 프리미어 리그에 최초로 승격한 이후, 어떻게든 살아남아 잔류에 성공했던 첫 시즌에 비해 9위라는 나름 성공적인 두 번째 시즌을 보낸 본머스는 EPL에서 가장 재정규모가 작은 구단이지만 이번 시즌을 위해 적지 않은 자본을 투자 했다.

일단 필요하다면 어디서든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이는 젊은 선수 나단 아케를 첼시에서 2000만 파운드에 데려온 것을 시작으로 아스미르 베고비치를 1000만 파운드에, 그리고 노장이지만 검증된 공격수 저메인 데포와 코너 마호니를 자유 계약으로 들여온 것을 통해 절대 이번 시즌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고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처럼 앞서 치른 3경기에서 1승 1무 1패로 지난 시즌에 비해 무난하게 스타트를 끊었고, 그 덕에 미리 경기장에 도착해 노래를 부르며 열기를 뜨겁게 달구는 관중들은 하나같이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그런 관중들과 물기가 남아 있는 필드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경기장 정비에 여념이 없는 스태프들을 쭉 훑어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원정석 벤치에 앉아 마지막까지 선수단 정비에 온 집중을 쏟아내고 있었다.

코치들을 불러 선수들의 몸상태를 세밀하게 확인하고, 몇몇 선수들은 따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오늘 경기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흘러나가길 기대하면서 마지막으로 오늘 그가 꾸려온 18명의 선수들의 이름들이 적인 명단을 소리없이 눈으로 읽어내려갔다.

선발로 뽑힌 11명, 벤치에서 시작하게 될 7명의 선수들.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적혀 있는 선수의 이름을 슬쩍 검지로 밑줄을 그었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옆에 다가온 코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다들 몸상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단순히 경기를 뛸 수 있는 정도인건가, 아니면 컨디션 관리에 무리가 없는 모습이란 건가?”

“그건···.”

“이런. 내가 잠시 흥분했군.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서 말야. 미안하네.”

코치에게 빠르게 사과를 건넨 과르디올라 감독이 굳은 얼굴로 오늘 본머스에서 대기 시킨 선발 명단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선발에 쏟아 놓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또렷하게 보이는 선발 명단이다.

수비에선 젊은 나단 아케, 공격에선 노련한 저메인 데포를 중심으로 지난 시즌 매섭게 활약한 조슈아 킹까지.

부상으로 빠져 있는 선수를 제외하면 이번 시즌 베스트 멤버를 가동한 본머스를 살피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연신 짧은 수염을 쓸었고, 그런 감독에게 코치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선수들 모두가 컨디션 관리에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메디컬 팀도 오케이 사인을 보낸 것을 보면 다비드 실바도 괜찮은 듯 합니다.”

“그렇군. 고마워.”

“혹시 또 필요하신 게 있습니까?”

코치의 말에 고개를 가로 저으려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한동안 생각에 잠긴 뒤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다들 이변이 일어난다면 아마 오늘일 거라고 그랬지?”

“그건 남 이야기를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도 일단은 전문가라고 불리고 있으니까 말야. 무조건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맨체스터 시티의 3연승이 끊어진다면 본머스에 의해 끊어질 확률이 클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방송국 스튜디오와 기사들을 통해 전해진 것이 내심 불쾌했던 과르디올라 감독이었으나, 꼭 틀린 소리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과르디올라 감독도 에버튼보다 본머스와의 경기가 더 신경 쓰였던 것이다.

공간을 활용해 경기 자체를 지배하는 것을 즐기는 자신과 달리 본머스는 약세에 있는 위치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공격을 성공시키는 축구를 추구해왔고, 최근에는 필요하다면 뒷문을 걸어 잠그는 식의 축구로 무승부까지 거두는 법을 깨우친 본머스였고, 그런 곳에 추가된 저메인 데포라는 선수는 분명 변수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 선수였으니.

아마 본머스 측이 원하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오늘 경기는 마음처럼 쉽게 진행되진 않을 터였다.

짧게 다듬은 구렛나루를 긁으며 이마에 주름을 짓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내려는 목적으로 잠시간 눈을 감고 숨을 뱉었다.

그러다가 슬쩍 감고 있던 눈을 떠 경기장에서 조깅을 하고 있는 한 선수를 눈동자에 담은 뒤 고개를 주억였다.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하지만 이번에 영입한 어린 선수, 최재혁.

프리 시즌엔 몇 차례 출전했지만 정규 시즌엔 아직 한 차례도 등장하지 못 했던 선수를 보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이 작게 웃었다.

‘그래. 굳이 변수라는 건 약팀에만 적용될 사항이 아니지.”

필요하다면 이쪽에서도 손을 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박수를 쳐 선수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았다.

***

본머스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고, 전체적인 경기의 흐름을 지켜보던 본머스의 에디 하우 감독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좋아, 좋아. 나쁘지 않아.”

점유율은 크게 밀리고 있지만 간간히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에디 감독은 일단 큰 걱정은 덜은 표정이었다.

축구란 수비를 단단히해 무승부는 거둘 수 있겠지만 결국 이기기 위해선 득점이 필요한 운동이니까.

하물며 실점을 해도 득점을 성공해야 승부에 균형을 맞출 수 있었으니.

비교적 위험한 장면들이 자주 연출되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는 선수들의 움직임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현재 최전방에 머물며 눈을 빛내고 있는 데포를 확인하면서 에디 감독은 벤치에 엉덩이를 붙이고 가만히 턱을 괴었다.

공격수로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꾸준한 자기 관리와 완숙한 경기 운영으로 피치 위에서 자신의 능력을 100% 보여주는 선수인 데포를 향한 에디 감독의 믿음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아니, 신뢰 그 이상의 기대를 눈빛에 담아 보내고 있었다.

‘분명 기회는 온다.’

그러기 위한 영입이었고, 그러기 위한 전술이다.

그리고 기회가 온다면 데포는 자신이 왜 지금 경기장 위에서 뛰고 있는 지를 확실히 증명해줄 것이다.

아이브와 킹, 그리고 프레이저와 같은 선수들로 2선은 확실히 구축할 수 있었지만, 매번 부상으로 빠지는 꼭지점을 데포에게 맡겼고, 실제로 프리 시즌 기간 동안 데포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 지를 증명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쏟아낸 것이다.

절대 질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말이다.

에디 감독은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이 쉼없이 양 측면과 중앙을 뚫기 위해 쉼없이 두드리는 것을 침착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다가 왼쪽 측면에서 나단 아케가 스털링의 공격을 끊어내고 공을 뺏어내는데 성공한 것을 발견하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왔다!”

프리 시즌 동안 준비했던 뒷공간을 노리는 빠른 역습.

오늘까지 꾸준히 쌓아온 연습의 결과를 마침내 선보일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단은 마치 에디 감독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재빨리 드리블을 시작하며 왼쪽 측면을 따라 이동했고, 그를 따라 본머스의 미드필더들이 반응했다.

4-2-3-1로 중앙에 모여있던 선수들이 순식간에 흩어진 것이 그 시작이었다.

공간을 촘촘하게 메우고 있던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 사이로 본머스의 선수들이 스며들었고, 나단은 그런 동료들의 움직임을 끝까지 확인하면서 공을 가지고 이동하다가···.

촤륵!

“···!”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던 맨시티의 선수 한 명을 또 한 번 가뿐한 드리블로 제치는데 성공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눈썹이 꿈틀 거린 것은 바로 그 직후였고, 측면에서 돌파를 성공한 나단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패스를 뿌렸다.

그의 패스를 이어받은 것은 중앙에 위치해 있던 해리 아터였다.

토옹, 가벼운 볼터치로 공을 자신의 발밑에 둔 아터는 재빨리 압박해 들어오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를 몸싸움으로 물리친 뒤, 공이 멈추지 않도록 또 한 번 굴렸고, 그의 파트너인 서먼은 아터가 보내준 공을 그대로 논스톱 패스로 프레이저에게 이어주었다.

왼쪽 측면, 중앙, 그리고 다시 왼쪽 측면으로 큰 삼각형을 이룬 패스는 맨체스터 시티의 진영을 한 차례 붕괴시켰고···.

뻐엉!

서먼의 패스를 받은 프레이저는 공을 컨트롤하기 무섭게 얼리 크로스를 올려 다시 한 번 공을 중앙으로 보냈다.

너무 이른 크로스였기에 아직 패널티 박스 안에는 본머스 선수가 아무도 없는 상황인지라 다들 의아해 했으나, 공이 향하는 장소에서 두 다리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두눈으로 공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선수가 있는 것을 발견한 본머스의 팬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데포!”

“가라! 한 방 쏴 줘라!”

“우와아아!”

홈 팬들의 함성이 공과 함께 데포를 향했고, 데포는 날아오는 공을 향해 오른발을 쭉 뻗으며 논스톱 발리 슈팅을 시도했다.

발등에 정확히 공이 얹히면서 곧 시원한 소리가 울렸고, 힘이 제대로 실린 공은···.

철썩!

“들어갔다아!”

“크으, 시원하다! 역시 데포야!”

마치 송곳처럼 골망을 찢을 듯이 날아가 박히면서 본머스에 선취점을 안겨주었다.

수비 라인과 골키퍼, 둘의 라인 관리가 타이트 했던 만큼, 그 뒤쪽인 골대와의 공간이 크게 비어있는 틈을 노린 데포의 감각적인 슈팅이 제대로 먹힌 것이다.

데포는 득점을 확인하기 무섭게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치켜 든 뒤 코너 플래그로 달려가 관중들에게 고함을 내질렀고, 동료 선수들과 관중들은 그런 데포를 향해 미친듯한 환호로 보답하면서 그의 골을 반가워했다.

다만 상대 팀인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그 모습을 못마땅한 얼굴로 지켜보다가 애꿎은 잔디만 짓이겼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런 선수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옆에 앉아 있는 코치에게 슬쩍 귓속말을 전했다.

“후반전엔 재혁이를 준비 시켜야겠어.”

“예? 이제 겨우 1골이지 않습니까? 경기 내용은 아직까지 충분히 저희가 압도적인···.”

“지난 시즌, 경기 내용만 보고 있다가 놓친 경기들이 몇 개인지 기억하고 있나?”

“···.”

“이번 시즌의 목표는 단 하나야. 리그 우승. 그걸 생각하면 변화가 필요할 땐 바로 변화를 주어야겠지.”

코치의 말에 단호한 어조로 대꾸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슬쩍 벤치에서 일어난 뒤 경기장을 살펴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오늘의 본머스’라면 재혁이가 활약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기도 하고 말이지. 굳이 사용할 수 있는 패를 숨기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말야.”

빙긋.

옅게 웃어보인 과르디올라 감독은 트레이닝복을 벗기 시작한 재혁을 한 차례 눈에 담은 뒤 다시 경기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

“이렇게 전반전이 끝이 나는 군요. 1대0으로 본머스가 한 점 앞서 나갑니다.”

“데포 선수. 클래스는 세월에 녹슬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또 한 번 보여주는 멋진 슈팅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머스의 전술적인 움직임도 눈에 띄었죠?”

라커룸으로 돌아가고 있는 선수들을 보여주던 화면에 득점 장면이 떠올랐고, 캐스터가 데포에 대해 언급하자 해설자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그의 말을 받았다.

“과르디올라의 맨체스터 시티의 강점이자 약점을 정확히 찌른 전개였습니다. 중앙에서 측면으로 빠지는 움직임, 그리고 단단한 후방에 비해 느슨한 최후방을 노린 슈팅까지. 에디 감독이 오늘 경기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는 것이 바로 느껴지는 장면이었죠.”

“확실히 데포 선수의 슈팅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만, 그를 위한 과정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경기 전 인터뷰에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에디 감독의 한 수가 바로 이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탓에 맨체스터 시티는 결국 전반전이 끝날 때 즈음엔 본 모습을 잃어버리고 말았군요.”

타이트한 경기 운영과 뒤를 쉽사리 내주지 않는 11명의 선수들의 움직임이 강점인 맨체스터 시티.

하지만 실점을 한 이후 크게 흔들린 모습을 지속적으로 노출한 것이다.

일단 아직은 어린 골키퍼인 에데르손의 과감함이 실점하기 전에 비해 많이 사라진 듯 했고, 후방과 골키퍼와의 라인 관리가 허술해지자 후방 빌드업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후방이 무너지니 중원을 통해 공격이 전개되지 않기 시작했고, 자연히 점유율도 줄어들면서 마지막엔 50:50에 가까운 수치까지 떨어졌다.

해설자는 전반전에 맨체스터 시티가 보여준 아쉬운 장면들을 계속해서 언급하면서 탁자를 두드렸다.

“지금까지 새로 보강된 선수들의 활약이 나쁘지 않았지만, 오늘처럼 선취점을 빼앗기면서 흐름을 잃으니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쉽군요. 에데르손 골키퍼가 지난 3경기에서 클린 시트를 기록한 것을 보면 오늘 모습은 특히 아쉬워요.”

“팀 전원이 빌드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축구론이 지금같은 상황에선 오히려 독이 되는 군요.”

“최소한 후방 빌드업만 어떻게 해준다면 분명 후반전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데요. 아, 떠드는 사이 벌써 후반전이 시작될 준비가 끝이 났군요. 선수들이 하나둘 필드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본머스의 선수들은 서로 손을 맞부딪치면서 의기투합을 하고 있고,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다들 단단히 각오한 얼굴로 돌아오는데···, 어?”

한창 선수들의 얼굴을 살펴보던 캐스터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의아함을 남겼고, 그런 캐스터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던 해설자를 향해 캐스터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후반전에 선수 교체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선수 교체요?”

“네!”

아직까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해설자가 다시 되묻자, 캐스터가 들뜬 목소리로 말을 계속 했다.

“88번, 최재혁 선수가 다른 선수들과 함께 필드 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 66. 전술에 맞춘다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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