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2017/18 >
재혁을 향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에 사람들이 재혁에 관심을 가졌을 때에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그의 영입을 발표했을 때였고, 당시엔 처음 보는 이름에 대체 뭐하는 선수인지 궁금해서 그에 대해 알아보려는 움직임들이 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두 번의 프리 시즌 경기에서 보여준 재혁의 행보가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일단 표면적인 기록으로만 보아도 2경기 1골 2도움.
게다가 그가 상대했던 두 팀이 같은 연고지에서 활동하는 라이벌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라 리가의 3강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였으니.
아직 여름 이적 시장이 완전히 닫힌 게 아닌 상황인지라 기자들을 포함해 팬들은 다른 구단에서 영입한 선수들과 재혁을 비교해보면서 기대를 높였다.
[일단 비슷한 값으로 올라간 선수들이 누가 있죠?]
[본머스로 간 아단 아케나 에버튼으로 간 마이클 킨이 각각 2천만 파운드에서 2500만 파운드 였죠.]
[그런데 두 사람하고 재혁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긴 힘들죠. 재혁은 잉글랜드 프리미엄이 붙은 게 아니잖아요?]
[게다가 재혁이 나이도 어리고요. 이대로 쭉 영국에 남아준다면 맨체스터 시티는 매번 고민하던 홈 그로운을 키워낼 수 있게 되겠죠.]
나이가 어리다고 댓글을 달았던 사람이 곧 추가 댓글 버튼을 누르고 계속해서 글을 작성했다.
[단순히 어리기만 한 게 아니에요. 이번 두 경기에서 보여준 멀티 포지션에 대한 가능성은 또 무시할 수 없는 거거든요.]
[멀티 포지션이라. 하지만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했을 때 보여준 움직임은 일반적인 풀백의 움직임이 아니었는데요?]
남자의 말에 누군가가 대댓글을 달았고, 남자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잠시간 입술을 매만지더니 자판을 두드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최재혁 선수가 지니고 있는 잠재력이 평범한 것이 아닌 거죠. 이번에 영입한 카일 워커가 기존 풀백의 역할을 해준다면, 재혁은 그와 다른 측면에서 활약할 수 있는 ‘크랙’으로 쓰일 수 있는 선수니까요.]
[측면에서 활약하는 크랙이요?]
[오히려 크랙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면 카일 워커가 좀 더 크랙에 가까운 게 아닙니까? 주력에 기반한 돌파력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건 재혁이 아니라 카일 워커잖아요?]
[크랙이란 단어가 단순히 돌파력이 강한 선수에게 쓰이는 게 아니죠.]
포스팅에 쌓이는 댓글이 계속 늘어나고, 조회수가 올라가고,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커지는 만큼, 글을 작성한 사람도 보다 신중하게,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문자로 적어 늘어놓았다.
[혼자의 힘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선수. 그런 선수를 표현할 때 흔히들 크랙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재혁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은 평범한 선수들과 거리가 있는 선수죠. 일반적으로 풀백으로 활용된다면 오버래핑과 돌파, 측면을 이용한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나가는데, 최재혁 선수는 그와 정반대로 공간을 활용한 플레이와 상대를 끌어 당기는 경기로 운영을 시도하거든요.]
[그 말씀은 현대 풀백들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강점이 아니라 약점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만약 위의 플레이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약점이 되었겠죠. 하지만 맨유를 상대로 보여주었던 경기력을 생각하면 절대로 약점으로 설명될 수 없겠죠? 필드에서 보여준 영향력은 분명 결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짧은 한 마디였지만 그 한 마디로 인해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당시 경기를 재생시키면서 재혁의 활약을 다시금 떠올렸다.
확실히 평범한 현대 풀백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점이 오히려 특징적으로 남아 뇌리에 강하게 기록되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맨유와의 경기,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재혁의 모습에 대해 떠들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재혁 선수는 지금 뭘하고 있나요?]
[그러게요. 시즌 이제 시작했는데, 아직 선발은커녕 벤치 명단에도 없지 않아요?]
[그건···.]
키보드를 두드리던 남성이 잠시간 손을 멈추더니 턱을 긁적였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내려 최근에 그가 찍은 사진들에 담긴 재혁의 모습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원래 완벽한 준비를 위한 기다림의 과정이 긴 법이니까.”
BBC의 스포츠 관련 취재를 맡고 있는 기자는 최근 취재차 다녀온 맨체스터 시티의 트레이닝 룸에서 찍은 사진의 가장 뒤편에서 웨이트에 집중하고 있는 재혁의 모습을 눈에 담으면서 자연히 지어진 미소를 검지로 매만졌다.
몸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경기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되겠고, 아마 그때가 온다면···.
“과연 어떤 1년은 보내게 될지, 기대 되는군.”
끌끌, 혼잣말과 함께 고개를 작게 저었던 기자는 인터넷을 닫고 멈췄던 기사 정리를 다시 시작했다.
***
“쟤가 진짜 맨체스터 시티 선수야?”
“그렇다고 하던데···.”
“그런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서로 모여 앉아 수군거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곳엔 혼자 앉아서 조용히 점심을 먹고 있는 재혁이 있었고, 전학생이 낯선 학생들은 여전히 자신들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면서 고개를 갸웃였다.
“왜 쟤는 진학반에서 수업을 들어?”
“유소년 경기들을 뛰러 다니지도 않잖아?”
“진짜 선수가 맞긴 한 걸까?”
구단에 속한 유소년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게 특이한 일은 아니었지만, 대학을 목적으로 모이는 진학반에 속해 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다들 신기한 얼굴로 재혁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세인트 비드에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그런 재혁을 볼 때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고, 그건 같은 맨체스터 시티 소속의 유소년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올해로 17살. 재혁과 같은 나이에 유소년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기대주, 자메인 로스가 연신 샐러드를 씹어 삼키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재혁에게 다가갔다.
“너 진짜 우리 구단 선수 맞지?”
자메인 로스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린 재혁은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슬쩍 옆에 내려두고 있던 맨체스터 시티의 로고가 박힌 가방을 들어보였고, 다시 눈앞에 놓여 있는 점심을 처리하기 위해 포크를 놀렸다.
재혁이 말없이 다시 점심을 먹기 시작한 것을 본 로스가 눈썹을 꿈틀거린 뒤 재차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왜 우리랑 훈련을 안 해?”
“훈련?”
“아카데미 훈련 말야.”
당당한 목소리로 답을 한 로스는 허리춤에 손을 걸치고 계속 말했다.
“방과후에 따로 모여서 훈련을 하는데, 난 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그런게 있었어?”
처음 듣는 이야기에 재혁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고, 그런 재혁을 향해 로스가 계속 말을 이었다.
“정규 훈련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카데미에 소속된 친구들은 모두 나와서 같이 공을 찬다구. 그래서야 호흡도 맞출 수 있고, 서로 친하게 지낼 수도 있잖아? 넌 그렇게 생각 안 해?”
“그거 필수야?”
“필수는 아니지만 유소년 아카데미에 속한 선수들이라면 꼭 하는 전통 같은 거지! 너도 우리랑 같은 맨체스터 시티의 유소년 선수라면 시간 날 때 같이 하자.”
느닷없는 로즈의 한 마디에 재혁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두 눈을 껌뻑였다.
이 친구는 내가 1군에 소속되어 같이 훈련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건가?
일단 재혁은 계속해서 샐러드를 씹었고, 로즈는 대답이 없는 재혁을 향해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 아빠도 축구 선수였거든. 그러다 보니 내게 꼭 해주시던 말이 있었어. 축구는 혼자하는 거지만, 혼자하는 게 아니라고. 그걸 생각하면 따로 모여서 훈련을 하는 게 꼭 나쁜 것 같지는 않아.”
“···.”
“그러니까 정규 훈련 끝났다고 혼자 다니지 말고, 기회가 되면···.”
드르르륵!
한창 로스가 말을 이어가던 중 둘 사이에 놓여 있던 재혁의 휴대폰이 갑자기 몸을 떨었고, 로스의 말도 거기서 끊어졌다.
재혁은 슬쩍 고개를 들어 로스의 얼굴을 살폈고, 로스는 떠들던 입을 다물고 전화를 받아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은 재혁은 수신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건 상대와 몇 마디를 나누었다.
길지 않았던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재혁이 휴대폰을 내려놓으면서 로즈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말 고마워. 거기서 애들끼리 모여서 따로 훈련을 하는 거겠지?”
“응? 어. 공은 자주 만질수록 좋은 거니까.”
갑작스런 재혁의 말에 잠시 당황했던 로스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재혁에게 보다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고, 그런 로스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재혁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한 번 가보겠다고 답했다.
재혁이 긍정적인 답을 들려주자 로스의 얼굴이 순간 활짝 펴지면서 순수한 미소를 입가에 뗬다.
“진짜? 우리가 모이는 시간이랑 장소가 어디냐면···.”
“그런데 그 전에.”
밝은 얼굴로 재혁에게 설명을 해주려던 로스의 입을 막은 재혁이 이제 비어 있는 런치 박스를 치운 뒤 가방을 어깨에 걸치면서 물었다.
“클럽 활동으로 결석계 제출하려면 어디로 가야 돼?”
“클럽 활동으로 결석계? 그거 주임 선생님한테 찾아가서 이야기 해야 되는데. 그건 갑자기 왜?”
보통 구단 활동으로 유소년 팀 스케쥴이 있으면 맨체스터 시티 아카데미에서 대부분의 일을 처리 해주기에 따로 클럽 활동을 이유로 결석계를 제출했던 적이 없었던 로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혁에 물었고, 재혁은 그런 로스에게 휴대폰에 날아온 문자를 보여주면서 답했다.
“아무래도 내일 모레 학교에 못 올 거 같아서.”
“내일 모레···?”
잠시간 미간을 모아 생각에 잠겼던 로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스케쥴 상으로는 내일 모레 학교에 못 올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재혁의 휴대폰에 적혀 있는 문자를 확인한 로스는 눈을 크게 뜨면서 재혁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린 뒤 놀란 포정으로 목소리를 떨면서 되물었다.
“이, 이거···, 진짜야?”
“응.”
다만 그런 로스에 비해 재혁은 담담하면서 침착한 어조로 그에게 답해주었다.
“본머스 원정 경기 명단에 포함될 예정이라. 아무래도 그 날은 학교에 못 올 거 같거든.”
***
한국은 해가 진 늦은 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스튜디오에 자리를 잡고 앉은 두 사람은 중계를 시작할 준비를 하면서 서로의 큐 시트를 확인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마른 목을 축인 둘은 카메라에 붉은 빛이 들어오자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드디어 최재혁 선수가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날이 왔군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죠. 가장 중요한 시즌 첫 경기, 그리고 방심할 수 없는 에버튼과의 두 번째 경기 이후, 오늘 본머스와의 경기는 비록 원정 경기지만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 경기니까 말예요. 그 덕에 최재혁 선수도 원정 명단에 포함될 수 있었겠죠.”
고대하고 기다리던 재혁의 이름을 마침내 선수 명단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설자와 캐스터는 기대에 찬 얼굴을 숨기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경기, 과연 어떻게 진행될 거라고 보십니까?”
“본머스에서 시즌 준비를 위해 적지 않은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맨체스터 시티도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거든요.”
시즌이 시작된 이후, 두 경기를 차례로 승리로 기록하면서 순탄한 흐름으로 시즌을 시작한 맨체스터 시티.
아마 시즌 초반에 최고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덕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오늘 본머스 전을 기회로 삼아 재혁의 이름을 처음으로 명단에 실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다만 선발이 아니라 교체 명단인 것을 이야기하면서 둘은 아쉽다는 듯 눈앞에 놓인 전술표를 툭툭 건드렸다.
“아마 지금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전술에 변화를 주긴 힘들었겠지요.”
“에버튼까지 압도적인 모습으로 잡아냈으니까요. 특히 다비드 실바 선수는 이번에 다시 한 번 자신이 왜 팀의 핵심인지를 실력으로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이 확실히 존재하긴 합니다. 아직 시즌의 극초반이고, 전술이 효율적으로 먹히는 게 사실이나, 너무 변화 없이 고정적인 전술과 선발 명단이 바로 지금 맨체스터 시티의 아쉬운 부분이거든요.”
기껏해야 실바와 중원을 지배할 파트너라던가, 수비수들 간의 포지션 변화에 그쳤던 로테이션을 해설자가 지적하면서 펜을 굴리자, 캐스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경기가 기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 에버튼 전과 비교했을 때 11명의 선수들 중 같은 선수가 딱 4명 뿐이에요.”
“아구에로, 다비드 실바, 콤파니, 그리고 에데르송. 각 포지션 별로 핵심이라 일컬 수 있는 선수들만 남고 모두가 바뀌었죠.”
“맞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둘은 곧 시선을 내려 서브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재혁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말했다.
“언제 출장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최재혁 선수도 이번 기회에 활약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시작되는 경기 화면에 맞춰 의자를 고쳐 앉았다.
< 65. 2017/18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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