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63화 (63/225)
  • < 63. 3, 2, 1 >

    꿀꺽.

    순간적으로 재혁과 눈이 마주쳤던 모드리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고개를 작게 털었을 때 재혁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멀어져 있었고, 모드리치는 자신이 느낀 감각을 상기하면서 미간을 구겼다.

    ‘내가 저 꼬마를 보고 긴장했다고? 아니, 그 전에···.’

    “···내 공을 뺐었어?”

    기습적인 태클.

    분명 제쳤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재혁은 발을 날려 공을 낚아챈 것이다.

    당황했던 것도 잠시였고, 모드리치의 가슴 속에서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뺏겼던 공은 맨시티의 측면에 머물다가 다시 재혁에게 돌아간 상황.

    복수할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것에 모드리치는 잔뜩 굳은 얼굴로 재혁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두눈을 모았다.

    ‘자, 어떡할거냐?’

    지금까지 계속 비슷한 패스와 패턴들을 반복하던 재혁이다.

    사실 그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들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창조적인 패스도, 앞으로 전진하는 패스도 결국은 지금 눈앞에 있는 자신을 뚫어내야 시도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결과적으로 매번 첫 번째 관문도 뚫어내지 못하고 번번히 공을 옆으로 흘리거나 뒤로 돌리기를 반복하고 있던 재혁이었고, 모드리치는 이번 또한 무난히 막아낼 것이라 예상하면서 그 이후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옆으로 흘리면 바로 압박에 힘을 싣는다. 공이 중앙을 다시 경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맨시티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드니까. 뒤로 돌리면 라인을 다른 선수들과 함께 올리면서 숨 쉴 틈을 빼앗고···.’

    “···!”

    생각을 이어가던 중 모드리치의 눈에 재혁이 마침내 공을 움직이는 것이 들어왔고, 그의 선택이 지금까지 모드리치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선택인 것을 확인하고 눈가에 주름을 잡았다.

    ‘드리블이라고?’

    오른 발등으로 가볍게 공을 건드리며 전진하기 시작하는 재혁은 자신을 상대로 드리블을 시도하려 하고 있던 것이다.

    모드리치는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다.

    태클을 한 번 성공시키더니 이제 완전히 겁을 상실한 것인가? 아니면 드리블에 대한 자신감인가?

    복잡한 감정이 일었던 것은 한 순간이었고, 눈동자에 빛을 담은 모드리치는 자신을 향해 전진해오는 재혁을 빤히 바라보면서 숨을 모았다.

    상대가 무엇을 하려하든, 자신은 진지하게 상대해줄 뿐이다.

    일단 반복적으로 오른발을 사용하는 모습을 확인한 모드리치가 재혁의 방향을 확인하면서 양발의 위치를 바꿨다.

    저 자세에서 가속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웃프론트를 이용한 드리블 뿐이었으니, 모드리치는 자신의 가슴을 왼쪽을 향해서, 그리고 중심을 왼발로 이동시킨 후 언제든 재혁의 방향 전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앞으로 세 걸음, 두 걸음···, 그리고 둘 사이의 거리가 한 보 정도 남았을 때.

    스슥!

    모드리치가 상체만 슬쩍 움직이는 페인팅을 시도했다.

    하체는 여전히 중심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으면서 상체만 간단히 움직이는 페인팅.

    혹여 공격자가 속는다면 당황해 압박에서 도망치려는 모션을 취할 것이고, 그 틈을 노린다면 무난히 공을 뺏는 것도 가능하리라.

    슬쩍 허리를 숙였다가 다시 뒤로 빼 자세를 되찾은 모드리치는 얇게 뜬 눈으로 재혁의 이어질 행동을 기다렸고.

    ‘속았다!’

    재혁이 황급히 공을 그의 좌측면으로 치고 달리는 모습을 확인하고 속으로 미소를 떠올렸다.

    급격히 각도를 꺾어 드리블을 치고 가는 것만 보아도 단단히 겁을 먹은 게 분명했고, 도망치는 방향을 확인했으니 지금부턴 ‘토끼 사냥’의 시작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드리블을 치고 가는 방향을 읽히다니. 너무 안일했어.’

    곧장 재혁의 옆에 달라붙은 모드리치는 재혁이 오른발로 최대한 공을 감싸며 이동하는 것을 노려보면서 슬그머니 어깨를 밀었다.

    그러자 바로 감각이 느껴졌고, 상대가 겁을 먹고 움찔거리는 근육의 움직임까지도 또렷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재혁이 드리블의 속도를 늦추는 것을 확인하면서 모드리치는 한 발 먼저 재혁이 이동하는 방향의 앞을 가로 막은 뒤 오른발을 앞으로 꺼냈다.

    ‘자, 이제 어떡할 거냐?’

    다시 한 번 앞을 막혔으니 재혁은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 드리블을 칠 것인가, 혹은 다시 패스를 돌릴 것인가. 그리고 그 두 가지 선택들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이번엔 반드시 막힐 것이다.

    앞으로 꺼내 놓은 오른발이 곧장 재혁의 움직임을 쫓아 이동할테니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입가에 자연히 떠오르는 미소는 숨길 수 없었던 모드리치는 얼른 재혁의 발이 움직이길 기다렸고, 마침내 그의 오른발이 공을 건드렸을 때···.

    ‘···뒤로 빼는 움직임!’

    재혁이 공을 뒤로 빼는 드래깅을 확인하기 무섭게 곧장 오른발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모드리치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역시 아직 어린 선수다.

    앞이 막히니 뒤로 도망가는 선택 밖에 떠올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재혁은 아직 성장이 더 필요한···.

    스륵, 퉁!

    “?!”

    공을 쫓아 발을 뻗던 모드리치의 눈동자에 순간 물음표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분명 공을 확인하고 행동을 취했던 것인데, 공이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던 탓이다. 그리고 사라졌던 공을 다시 찾았을 때에는···.

    “뭣?!”

    자신이 뻗은 오른발을 지나치고 비어있는 그의 우측면을 타고 유유히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드리치는 헛바람을 삼키며 재혁의 몸이 공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것을 확인하고 부릅 뜬 눈과 함께 입술을 깨물었다.

    드래깅 앤 턴.

    앞을 가로 막는 상대를 뚫어낼 때 시도하는 가장 ‘기초적인’ 드리블 기술.

    재혁은 자신을 상대로 기본기를 반복하는 드리블로 돌파를 시도했던 것이고, 자신은 그에 완벽히 속아버린 것이다.

    재혁이 지나치는 것을 지켜보던 모드리치는 황급히 앞으로 뻗던 오른발을 지면에 박고 힘을 준 뒤 재혁이 이동하는 방향을 뒤늦게 쫓았다.

    잠깐 당황했지만 아직 재혁을 막기에 늦지 않았다.

    자신은 아직 완벽히 제쳐진 게 아니었으니까.

    분명 시도는 좋았지만 중심을 완벽하게 잃은 것이 아니었으니, 지금이라도 방향을 돌린 다음 몸을 날린다면 적어도 드리블을 치고 나가는 재혁의 공간을 빼앗는 것은 가능할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간 모드리치는 몸의 제어가 완벽히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몸을 날렸다.

    정확히 공의 옆면을 노리는 태클이었고, 최소한 재혁이 드리블을 치면서 이동하는 방향 정도는 꺾어낼 수 있는 태클이었다, 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

    공이 허공에 떠올라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치는 현실을 보지 못했더라면 말이다.

    모드리치가 태클하는 것을 정확히 예측하고 공의 밑둥을 깎아 차 태클을 시도하는 모드리치의 몸만 가볍게 넘기는 완벽한 재혁의 볼 컨트롤에 모드리치는 완벽히 속아 넘어갔고, 그제야 모드리치는 재혁의 근육이 떨었던 것이 ‘겁을 먹었기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흥분감.

    상대를 돌파할 생각에 옅게 흥분하고 근육을 떨었던 것이다.

    ‘이자식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챠르륵!

    끝끝내 재혁이 컨트롤하는 공을 건드릴 수 없었던 모드리치는 결국 거친 소리와 함께 잔디 위를 굴렀고, 그렇게 모드리치를 넘어선 재혁은 계속해서 공을 가지고 드리블을 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무도 막아서지 않는 넓은 공간.

    그곳에서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있을 때···.

    투웅!

    완벽히 열린 찬스에서 재혁이 패스를 찔렀다.

    이전과 달리 정확하고 곧은 선을 밟으며 이동하던 공은···.

    ‘드디어 왔구나!’

    수비수 사이에서 공간을 향해 내달리고 있던 케빈의 발에 마침내 닿았고, 설마하니 이런 패스가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을 상대로 거침없이 돌진하면서 그대로 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그 결과는···.

    ***

    “동점골! 맨체스터 시티에서 뒤지고 있던 한 점을 만회하면서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케빈 데 브루위너 선수의 정확한 슛에 나바스 선수, 그대로 잔디 위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이런 슛에는 반응할 수가 없죠. 손을 뻗을 새도 없이 골이 골망 안으로 들어가버렸거든요.”

    “어시스트를 해준 재혁 선수를 향해 달려가는 케빈 선수.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듯, 거칠게 최재혁 선수의 머리칼을 쓸어주네요.”

    “사실 이번 골은 최재혁 선수가 전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해설자가 연신 흥분이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를 높이자, 캐스터 또한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단독 드리블로 모드리치를 완벽하게 제치고, 열린 공간에서 자신을 향해 선수들이 하나둘 거리를 좁힐 때, 그 좁은 틈 사이로 패스를 성공시킨 것까지.

    만약 재혁의 능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다면 지금 케빈의 득점이 성공했을 수 없었을 테니, 중계진들은 득점 과정이 담긴 리플레이를 확인하면서 쉼없이 재혁의 플레이를 칭찬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대에 찬 얼굴로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어리기도 하고, 아직 성장이 필요한 선수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하고 있는 선수였군요. 괜히 과르디올라 감독이 다비드 실바 선수를 대신해 출전 시킨 게 아니었습니다.”

    “사실 경기를 읽는 눈은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했던 경기에서도 빛을 발했었죠. 측면에서 플레이메이커로 돋보일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맨체스터 시티에서 사용한 2천만 파운드는 단순히 미래만을 위한 돈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자원을 단순히 나이를 이유로 시즌 동안 벤치, 혹은 2군에서 놀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죠.”

    그 뒤로 몇 분간 더 재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공이 다시 센터 서클에 놓여지고 경기가 재개될 기미가 보이자 말을 줄이면서 이어질 경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카메라가 한 사람을 화면에 담아주면서 가라앉았던 흥을 다시 끓어올렸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레알 마드리드의 7번.

    그가 벤치에서 빠져나와 몸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쉬고 있던 근육들을 긴장시켜주면서 가볍게 호흡을 고르고 있던 호날두는 옆에 다가온 피지컬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몇 분 정도 남았죠?”

    “끝나기 까지는 15분. 몸을 풀고 필드에 올라간다면 피치에서 네가 활약할 시간은 10분 정도겠군.”

    “10분이라.”

    쭉 뻗은 팔로 등근육을 자극하고, 목을 양옆으로 가볍게 풀어준 호날두가 씨익 웃었다.

    “그정도면 나쁘지 않군요. 적어도 재미는 즐겨볼 수 있겠어요.”

    ***

    “오, 오오! 정말 호날두다! 호날두가 들어오고 있어!”

    “와아아! 기다렸어요!”

    “CR7! CR7!”

    호날두의 등장에 관중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일어나 환호성을 내질렀고, 그런 관객들에게 답례하듯이 박수를 치며 필드에 들어선 호날두는 주위를 둘러보며 가벼운 발놀림을 선보였다.

    그렇게 천천히 자신의 위치를 찾아 이동하더니···.

    “공 좀 재밌게 차더라?”

    재혁의 옆을 지나치면서 호날두는 그에게 짧은 한 마디를 던졌다.

    < 63. 3, 2, 1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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