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59화 (59/225)
  • < 59.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 >

    필드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감독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현재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은 정신이 없었다.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분명 뚫리고 있는 게 아닌데 위험 지역으로 향하는 패스를 계속 허용하고 있어. 대체 이게 뭐야?’

    중원에서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이고 있던 에레라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상대 선수들에게 공간과 드리블을 허용한다던가, 자신들이 패스를 실수해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던 상황은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위험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에레라는 왜 이런 상황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인지, 바로 알아차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최재혁에게서 시작되는 중거리 패스들.

    맨체스터 시티에서 시도한 중거리 패스들은 어째선지 전부 유효했고, 한 번에 열린 기회들을 상대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끝끝내 슈팅까지 시도해 득점을 노렸던 것이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슈팅들이 데 헤아 골키퍼의 손에 걸렸지만, 가랑비라고 무시한다면 결국 흠뻑 젖은 꼴이 되고 말 것이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실점하게 될 위험이 있었다.

    그 점을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재차 명심하고 있던 중, 에레라는 또 한 번 아구에로의 슈팅이 데 헤아의 장갑에 걸리는 것을 발견하고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조그만 틈만 생기면 바로 슈팅을 때려버리니···. 긴장을 풀 수가 없겠어.’

    그러면서 슬쩍 무리뉴 감독이 있는 벤치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라고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 자신만 있는 게 아닐테니 말이다.

    과연 그의 생각처럼 전반전이 반정도 흘렀을 때 무리뉴 감독이 터치 라인에 가까이 다가와 선수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블린트! 너는 좀 더 위 쪽으로 이동하고, 레쉬포드는 상대팀 최후방 수비수와 라인을 맞춰!”

    “네? 그렇게 되면···.”

    “생각은 내가 한다. 상대팀의 오른쪽 풀백이 없다고 생각하고 라인을 극단적으로 올리는 거다.”

    터치라인에서 지침을 내리는 무리뉴 감독의 목소리에 흔들림이 없었고, 그에게 호명 받은 선수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교정에 들어갔다.

    4-2-3-1로 시작했던 맨유의 포지션은 무리뉴의 지침에 따라 보다 공격적으로 바뀌었고, 에레라 또한 변화하는 포지션에 자리를 맞춰야 했기에 무리뉴 감독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위치를 변경하다가 고개를 갸웃였다.

    ‘왼쪽 측면에서 뛰는 선수들에겐 극단적으로 올라갈 것을 주문하시면서 난 백업에 치중하라고?’

    어떻게 보면 앞과 뒤가 다른 두 가지 지침이었기에 혼란이 올 수 있었으나, 에레라는 일단 알겠다고 답한 다음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간략적인 지침 보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면 감독이 원하는 바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경기 중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본인이 직접 경기를 뛰며 시간을 들여 이해하는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에레라는 무리뉴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전방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경기장 중앙과 후방에 영항력을 집중시키기 시작했고, 곧 눈에 보이는 상황을 조금씩 읽어내면서 무리뉴 감독이 어떤 플레이를 원하는 것인지를 어느 정도 가늠해낼 수 있었다.

    당장 상대의 페이스가 진영을 바뀐 뒤로 눈에 띄게 죽은 게 느껴진 것이다.

    레쉬포드가 라인을 굳히고, 블린트가 한 층 높은 곳에서 플레이를 하기 시작하자 맨시티의 우측면에 압박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상대 팀의 측면에서부터 시작되던 플레이가 정적으로 굳어버리면서 흐름이 서서히 맨유 쪽으로 기울었다.

    이 모든 상황의 시작이 된 부분을 에레라가 읽어내면서 웃었다.

    ‘저 오른쪽 풀백을 잠궈버리는 게 답이었구나.’

    풀백이면서 풀백답지 않은 플레이를 일관하고 있는 선수.

    처음엔 그 때문에 팀의 구멍이라고 생각했던 선수가 실상 오늘 경기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에레라가 다시금 무리뉴 감독의 적절했던 상황 파악에 감탄하며 달리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지금 이 상태만 유지한다면 분명 자신들에게 득점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순간 기묘하게 변한 분위기에 에레라의 눈동자에 잠시간 물음표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

    뭐지? 뭐가 바뀐 거지?

    에레라가 살며시 떠오른 긴장감에 침을 삼키면서 두눈을 모았고, 이번에도 재차 공을 자신의 발밑에 두고 있는 상대팀의 오른쪽 풀백, 재혁을 살피면서 호흡을 골랐다.

    마침 레쉬포드가 적절하게 그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으니, 일단은 한 템포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아니, 분명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던 에레라였으나···.

    투웅, 퉁!

    “!”

    레쉬포드를 사이에 두고 짧은 패스를 주고 받는 것으로 가볍게 그를 벗겨내는 재혁의 움직임을 확인한 에레라의 두 눈이 급격하게 커졌다.

    무리뉴가 대응한 것에 맞춰 재혁의 플레이 스타일도 변화한 것이다.

    ‘이제는 직접 공간을 찾아 보려고 하고 있어?’

    여태까지는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동료를 향해 패스를 찔러주기만 하던 녀석이 이젠 직접 몸을 움직여 공간을 만들어 함께 움직이고 있는 동료를 찾으려 분주히 고개를 돌려 좌우를 살피고 있었고, 그 변화가 단순히 일시적인 변화가 아님을 바로 알아본 에레라가 긴장으로 얼굴을 굳혔다가 침착하게 숨을 뱉었다.

    ‘그래봐야 이제 ‘정상적인’ 풀백의 움직임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일 뿐이야.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면···?!’

    단편적으로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지를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에레라의 동공이 얼었다.

    레쉬포드에 이어 블린트까지 패스 두어 번에 바보가 되어 버린 장면을 똑똑히 목격한 것이다.

    짧은 패스를 통해 압박을 풀어내는 것까지는 물론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계속 드리블을 하겠다고?!’

    레쉬포드에 이어 블린트까지 뚫어낸 재혁이 공을 멈추지 않고 계속 드리블을 치면서 앞으로 이동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 재혁이 이동하는 길목을 향해 달려가면서 에레라가 입술을 씹었고, 어렵지 않게 그의 앞을 막아서면서 잔뜩 굳은 얼굴로 재혁을 노려보았다.

    앞의 두 선수들은 공격에 치중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뚫린 것이지만, 자신은 어림없다는 듯, 재혁이 어떠한 행동을 취할 지를 진득하게 기다리면서 허리에 실은 무게 중심을 천천히 뒤로 몰았다.

    2대1 패스든, 드리블 돌파든, 무엇이든 꼭 막아···.

    투웅!

    “···!”

    양다리를 교차로 세워놓고 어떤 식으로든 반응하겠다고 자리에 서있던 에레라의 얼굴이 굳었다.

    기습적으로 시도한 재혁의 아웃프론트 킥에 공이 크게 회전하면서 경기장 안쪽을 파고 든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지금 저 위치에서 나올만한 플레이는 얼리 크로스, 계속 되는 측면 돌파, 혹은 언더래핑을 시도하는 동료와의 연계였을 텐데.

    재혁은 그 어떤 선택지에도 속하지 않은 자신만의 패스를 시도했고, 그의 발을 떠난 공은 반대 측면에서 타이밍에 맞춰 라인 부수기를 시도하고 있던 케빈의 앞에 뚝 떨어졌다.

    중앙 수비수와 측면 수비수, 그 사이를 파고든 정확한 패스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대부분의 선수들은 놀란 얼굴이었으나, 케빈은 마치 처음부터 재혁의 패스가 자신에게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침착한 얼굴로 공을 컨트롤 한 후, 빠른 속도로 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데 헤아 골키퍼가 이번에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듯, 양팔을 넓게 벌리면서 슈팅 각을 줄이면서 달려들었으나···.

    ***

    “케빈 데 브루위너! 정확하게 골대 구석을 노려차면서 데 헤아 골키퍼를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슈팅을 때리는 순간 골을 직감했어요! 주먹을 불끈 쥐고 경기장 주변을 뛰다가 어시스트를 준 최재혁 선수의 머리를 격하게 쓸어내는 군요. 참 보기 좋은 장면입니다.”

    “사실 그보다 더 보기 좋았던 장면은 최재혁 선수가 도움을 만들어내는 장면이죠. 다시 한 번 보실까요?”

    박상철 캐스터와 최장수 해설은 골 셀레브레이션 이후 이어지는 리플레이를 같이 지켜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반복했다.

    “레쉬포드 선수를 침착하게 벗겨내고, 이후 블린트 선수의 압박도 동료 선수들과의 패싱 플레이로 완벽하게 벗어났죠?”

    “하지만 대단한 건 이 다음이죠. 실바 선수가 돌려준 패스를 받기 무섭게 반대 측면에서 침투 중이던 케빈 데 브루위너 선수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패스를 찔러 줬어요.”

    “사실 저는 너무 기습적인 패스였던 지라 당황했거든요.”

    “그건 아마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을까요?”

    박상철 캐스터가 너스레를 떠는 것에 최장수 해설이 이해한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풀백으로 출전한 최재혁 선수의 플레이가 아무래도 일반적인 풀백의 플레이와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속도를 살린다거나, 침투에 힘을 실은 플레이가 아닌···, 플레이메이커 성향에 더 근접한 느낌이 있죠.”

    “플레이메이커요? 그렇다면 과르디올라 감독은 풀백으로 출전한 최재혁 선수를 플레이메이커로 기용하고 있다는 건가요?”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만, 전부 맞는 건 아닙니다. 그저 최재혁 선수가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그렇게 도드라져 보이는 거죠.”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라는 선수상.

    그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면서 과거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르셀로나에서 기용했던 선수들의 이름을 한두 명씩 나열하기 시작한 최장수 해설은 셀레브레이션 이후 자기 자리를 찾아 이동하고 있는 재혁을 눈동자에 담으면서 말했다.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플레이메이커가 되어주길 바라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이상향. 포지션이 어디든, 어떤 위치에 있든, 주체적으로 공격을 이끌어가길 바라는 과르디올라 감독인데, 어쩌면 최재혁 선수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그런 감독의 꿈을 이루게 해줄 첫 번째 선수가 되어줄 지도 모르겠군요.”

    ***

    전반전이 끝나고 라커룸으로 들어온 선수들에게 음료와 타올을 코치들이 나누어주는 것처럼 과르디올라 감독은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경기를 지켜보는 동안 작성했던 메모를 토대로 열변을 토했다.

    “스털링! 오늘 무슨 생각으로 경기를 뛰고 있는 건지 나에게 설명해줄 수 있겠나? 경기 운영에 전혀 관여를 못하고 있잖아? 대체 뭐가 문제야?”

    “그게···.”

    “전술판을 다시 한 번 잘 봐.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공간이 바뀌는데, 그걸 계속 염두에 두지 않으면 결국 박스까지 가지 못 한다고.”

    지고 있는 경기도 만족스럽다면 웃는 얼굴로 선수들을 대하지만, 아무리 점수에서 이기고 있다고 한들, 경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르디올라 감독은 경기력이 부족한 선수를 붙잡고 선수가 이해할 때까지 교육했고, 오늘은 그 제물로 스털링이 붙잡힌 것이다.

    그렇게 몇 분간 이어지는 교육 시간 뒤, 스털링이 반쯤 울상이 된 얼굴이 알겠다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켜보겠다고 답한 다음 자리를 이동했다.

    다비드 실바, 베르나르두 실바, 그리고 케빈 데 브루위너.

    전반전에 뛰었던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한창 대화를 나누던 과르디올라 감독은 마지막으로 구석에 앉아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있던 재혁을 살폈고, 그의 곁에 다가가 물었다.

    “직접 뛰어보니까 어때?”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기대가 반, 그리고 걱정이 반이었던 과르디올라의 눈빛은 이제 기쁨이라는 감정만 담겨 빛을 내고 있었고, 그런 감독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한 재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간단히 답했다.

    “나쁘지 않네요.”

    “여유는 여전하군. 하지만 몸은 솔직한 것 같은데?”

    재혁의 말에 턱으로 그의 다리를 가리키며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했고, 재혁이 슬쩍 고개를 내려 자신의 다리를 살폈다.

    45분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또 상대 선수들과 부딪치느라 누적된 근육의 피로가 휴식 시간을 갖게 되자 옅게 떨기 시작한 것이다.

    중앙 미드필더로 뛸 때에 비해 ‘비교적’ 압박이 덜한 것이지, 그 압박의 강도가 지금까지 그가 경험한 경기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으니.

    재혁은 과르디올라가 그런 것처럼 파르르 떨고 있는 자신의 다리를 잠시간 내려보더니 뺨을 긁적였다.

    “그러게요. 아직 거짓말은 서툴러서.”

    “큭큭, 웃기는군. 얼굴 색 하나 안 변하고 그런 말을 해놓고 말야. 아무튼 고생했어. 그럼 후반전엔 교체하는 걸로 하지.”

    “10분 정도는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직 본 시즌은 시작도 안 했어. 벌써부터 무리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원하는 그림은 이미 전반전에 다 봤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재혁의 어깨를 토닥이고 수분이나 충분히 섭취하라고 말을 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멀어지기 전, 재혁에게 한 마디를 더 남긴 후 라커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후반전엔 네가 그림을 보도록 해 봐.”

    < 59.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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