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58화 (58/225)
  • < 58. 풀백 최재혁 >

    “이걸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요?”

    최재혁이 풀백으로 출전한 것에 박상철 캐스터가 최장수 해설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졌고, 한동안 두 팀의 선발 멤버들과 진영을 살펴보면 최장수 해설이 신중한 얼굴로 캐스터에게 답했다.

    “일단 두 팀 다 기존에 사용하던 포메이션에서 크게 변화를 주지 않았군요. 변형 3백을 사용하는 맨시티와 4백을 사용하는 맨유. 아무래도 감독들이 원하는 방향이 그 어느 팀들보다 뚜렷하니, 전술적인 부분에선 변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선수들의 상태를 점검하려는 모습은 보이는군요.”

    “선수들의 상태를 점검해요?”

    “프리 시즌의 첫 경기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제 막 팀에 합류한 선수들도 있으니, 그 점을 고려한 것이겠죠.”

    최장수 해설은 그렇게 말하면서 맨시티와 맨유에서 새로이 영입한 선수들에 대해 언급했다.

    일단 맨시티에는 모나코에서 건너온 베르나르두 실바와 지난 시즌까지 벤피카의 선수였던 에데르송 골키퍼가 그 둘이었고, 맨유에선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린 린델뢰프가 바로 핵심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새로이 영입한 선수들이 모두 과르디올라 감독과 무리뉴 감독이 원하는 성향의 선수들인 것을 언급하면서 최장수 해설은 오늘 경기를 지켜보면서 읽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들에 대해 한두 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그런 선수들 사이에서 최재혁 선수가 오늘 풀백으로 출전했다는 것은 어쩌면 실험일 수도 있고, 시험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실험과 시험이요?”

    “아무래도 최재혁 선수가 아직은 많이 어리지 않겠습니까? 몸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포그바나 캐릭, 에레라, 마타 같은 선수들을 상대로 무언가를 보여주긴 힘들겠죠. 그런 생각에서 아마 과르디올라 감독은 최재혁 선수를 오른쪽 풀백에 위치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몸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압박이 비교적 덜한 풀백으로 위치를 뺐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실제로 어린 선수들이 데뷔를 할 때 실제 경기의 분위기를 일단 느끼게 해주기 위해 풀백으로 먼저 데뷔시키는 경우가 몇몇 있었으니까요.”

    리버풀에선 제라드, 바로 지난 시즌에 맨유에서 데뷔를 한 포수 멘사의 경우를 들면서 최장수 해설이 설명을 계속 이어가다가 서서히 재혁에 관해 좀 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이 베르나르두 실바와 다비드 실바를 동시에 출전 시키고, 페르난지뉴를 후방에, 그리고 오른쪽 풀백으로 최재혁 선수를 놓았다는 건 꽤나 큰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고 전 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과르디올라 감독이 추구하는 변형 3백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좌우 측면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겁니다. 매순간 변화 무쌍한 스타일로 상대를 공략해야 하니, 중원의 뎁스를 추가하는 것보다 양측면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를 구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

    최장수 해설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한 박상철 캐스터는 동그랗게 뜬 눈을 껌뻑였고, 최장수 해설은 그런 캐스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추가했다.

    “중앙에 실바. 왼쪽엔 케빈. 오른쪽엔 베르나르두, 그 밑을 최재혁 선수가 받치는 구도가 대충 보이지 않나요? 즉 과르디올라 감독은 최재혁 선수를 풀백으로 사용한 것이 ‘일반적인’ 풀백의 역할을 바란 것이 아니라는 소리죠.”

    “호오···.”

    “물론 여기까진 제 개인적인 해석이었고, 과르디올라 감독의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과르디올라 감독 본인 밖에 없겠지요.”

    슬슬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선수들이 필드에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최장수 해설이 천천히 상황을 정리했고, 박상철 캐스터도 그런 최장수 해설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도 새벽을 함께 해주시는 축구 팬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면서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두 팀의 프리 시즌 첫 경기가···, 드디어 시작합니다!”

    ***

    맨유의 선축으로 시작된 경기는 일단 무난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물론 엄밀히 따진다면 라이벌 구단 간의 더비전이고, 자존심이 걸린 경기였지만, 경기가 진행되는 지역이 미국이고 또 프리 시즌이라는 경기 구성이 과도한 열기보다는 이벤트 성의 밝은 분위기가 경기장 주변을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이 느끼고 있는 현장 분위기였고, 직접 경기장 위에서 공을 주고 받으며 경기를 치르고 있는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그 중에서도 측면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재혁은 공이 이동하는 위치를 따라 계속해서 자리를 바꿔가면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과르디올라 감독이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풀백이지만 풀백이 아닌 움직임.’

    사실 처음 풀백으로 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엔 불만이 있었다.

    가장 자신 있고, 또 뛰고 싶은 포지션은 미드필더였으니까.

    풀백으로 경기를 뛸 준비를 하라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에 잠시 당황했던 재혁은 라커룸을 벗어나는 감독의 뒤를 쫓았고,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자신이 풀백으로 뛰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 달라고 말이다.

    그런 재혁의 질문에 그를 앞에 두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씨익 미소를 보이더니 짧은 한 마디로 답했다.

    [내가 바라는 건 ‘측면에 있는 최재혁’이지, 풀백의 최재혁이 아니다.]

    ‘측면에 있는 최재혁이라.’

    토옹.

    중원을 한 바퀴 돌고 자신의 발밑에 닿은 공을 가뿐하게 컨트롤하면서 재혁이 감독이 한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슬쩍 옆을 살폈다.

    현재 최후방에 위치해 있는 수비수는 스톤스. 그보다 몇 발자국 위에 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오타멘디와 페르난지뉴가 함께 변형 3백을 유지하고 있는게 보였다.

    자신은 그보다 아주 미세하게 위에 위치해 있었지만 크게 차이는 없을 정도. 그리고 그 옆에서 공을 기다리고 있는 선수는 다비드 실바였고, 그의 앞에서 공간을 찾아 이동하고 있는 선수가 베르나르두 실바였다.

    재혁이 공을 가지고 상황을 살피고 있자 맨유의 래쉬포드가 압박을 주기 위해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재혁은 일단 패스를 다비드 실바에게 넘겨주면서 템포를 유지했다.

    재혁의 무난한 패스를 이어 받은 실바가 압박해 들어오는 포그바를 상대로 공과 공간을 지키기 위해 한 차례 몸을 뒤튼 후 왼쪽에서 공을 기다리고 있던 케빈을 향해 패스를 찔러줬고, 케빈은 패스를 받기 무섭게 특유의 묵직한 드리블로 빠르게 전방을 향해 이동하다가 아구에로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슈팅 찬스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부단히 움직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슈팅을 때리기 전 상대 팀의 협력 수비에 공을 뺏기고 말았고, 맨유가 시도하는 역습을 막아내기 위해 입술을 깨물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재혁도 상대가 시도하는 역습을 막아내기 위해 수비 공간을 지키면서 발을 움직이다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 눈을 반짝였다.

    ‘만약 내가 지금 뛰는 위치를 중원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를 떠올리자 차츰 둘, 셋씩 살이 붙기 시작한 가정을 머릿속으로 계속 계산하면서 재혁이 생각을 이어갔고,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내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뗬다.

    지금 자신이 뛰는 위치가 어디든, 결국은 과르디올라 감독이 원하는 바는 확실하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러니까···.

    “재혁!”

    한창 생각을 이어가던 재혁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타멘디가 재혁에게 공을 패스했다.

    빠르게 역습을 시도하던 맨유의 공격을 전매 특허인 몸을 날리는 슬라이딩 태클로 끊어낸 다음 튕겨 나온 공을 재혁에게 보내준 것이다.

    땅볼로 빠른 속도로 굴러오는 공을 가볍게 발 안쪽으로 컨트롤한 재혁은 곧장 몸을 전방으로 돌린 뒤 느릿하게 몸을 움직이더니 한 차례 호흡을 길게 뱉었고, 동시에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선수들의 위치를 머릿속에 침착하게 입력했다.

    그것이 과르디올라 감독이 원하는 ‘측면에 위치한 최재혁’의 시작이었으니까.

    슬쩍 훑는 것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재혁이 슬슬 공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재혁의 앞으로 래쉬포드가 또 한 번 다가왔다.

    전방에서 부터 시작하는 압박에 충실한 수비였다.

    어디까지나 공이 앞으로 이동하려는 길목을 막는, 교과서적인 수비 말이다.

    그런 래쉬포드를 앞에 둔 재혁은 일단 한 번 공을 멈춰 세웠고, 슬쩍 눈치를 본 다음···.

    뻐엉!

    “?!”

    망설임 없이 그대로 공을 길게 차 넘겼다.

    재혁의 갑작스러운 높은 패스에 필드 위에 선 선수들, 그리고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무리뉴 감독까지 모두들 의아해했으나, 재혁을 측면에 배치시켰던 과르디올라 감독 만큼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재혁이 시도한 패스를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 패스로 이번 경기는 완성이다.”

    ***

    “저 패스는 뭐야?”

    턱을 괴고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던 무리뉴 감독이 재혁의 패스를 보고 처음 뱉은 한 마디였다.

    특별한 의도가 담기지 않은, 순수하게 재혁이 시도한 패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 자연히 나온 한 마디였고,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수석 코치도 동의한다는 듯 눈썹을 모으면서 말했다.

    “미드필더로 알고 있었는데 풀백으로 출전한 것을 보고 풀백으로 따로 보직 변경 훈련을 시킨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군요.”

    “정상적인 풀백의 플레이는 아니지.”

    “정상적인 풀백이라면 저곳에서 저런 패스를 시도하진 않으니까요.”

    우측면에서 중앙 왼쪽면에 위치한 케빈에게 바로 향하는 패스.

    아마 평범한 풀백이었다면 중앙을 거치고 같은 측면에서 활동하는 베르나르두 실바가 공을 소유하는 틈을 노려 오버래핑, 혹은 뒤를 받쳐주는 플레이로 팀 전술에 보다 효율적으로 참여를 했을 것이다.

    그래야 풀백의 움직임에 맞춰 다른 선수들이 공간을 이용해 파고들 틈을 만들어낼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어찌보면 간단한,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 풀백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한 플레이를 기대했던 무리뉴 감독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재혁의 기행에 눈썹을 모았다가···.

    “···?”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 한쪽 눈썹 끝을 조심스레 말아 올렸고, 짧게 자란 콧수염을 매만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처음엔 이상한 패스. 두 번째로 봤을 땐 무리한 시도, 세 번째에 또 한 번 전방으로 길게 공을 연결 했을 때에는 나름 용감한 선택으로 보였던 패스였는데, 지금 또 한 차례 이어진 재혁의 패스가 전방으로 바로 향하면서 맨시티의 공격이 쉬지 않고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무리뉴 감독은 무언가 잘못 되어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본능이 알려주는 감각이 무엇인지,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무리뉴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까지 재혁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얼굴 표정은 완전히 사라지고, 어이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고개를 돌려 건너편 벤치에 앉아 경기장을 지켜보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을 향해 눈빛을 보내더니 실소를 피식 흘렸다.

    “과연 축구 변태군.”

    현대 풀백이 아닌 변형 풀백을 이용해 측면에 플레이메이커를 두는 독특한 쉬프트.

    지금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3백을 시도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무리뉴 감독은 어이가 없어 웃었으나, 그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황당한 감정을 숨기지 못 했다.

    그런 도전까지야 물론 시범 경기니 충분히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18살짜리 선수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평가전을 치르겠다는 건가? 우리가 우숩게 보인 건지, 저녀석이 대단한 놈인지 알 수가 없군.”

    지금 자신들이 이제 겨우 커리어를 시작한 꼬맹이의 시험 대상이 되었다는 것에 무리뉴 감독은 어처구니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 58. 풀백 최재혁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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