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57화 (57/225)

< 57. 기대와 호기심 >

“그러니까···.”

2층 창가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 다비드 실바가 재활 훈련을 막 끝내고 바짝 마른 목을 물로 적시면서 말을 계속 했다.

“감독님께서 제가 꼭 오늘 훈련을 지켜봤으면 좋겠다고 하신 거죠?”

“그렇지.”

실바의 말을 받으면서 자신이 마실 물을 준비해 그의 건너편에 앉은 재활 트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라인 훈련을 시작할 땐 꼭 지켜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

“그리고 그 이유는 당연히 지금 저기에 있는 저 친구 때문이겠죠?”

실바가 가리킨 방향에 위치한 선수를 발견한 남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역시 눈치가 빠르네.”

“저렇게 눈이 부시는데, 모를 수가 없죠.”

살며시 미소를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트레이너를 향해 실바도 희미한 미소로 화답한 뒤 말을 이었다.

“저만한 재능을 지닌 선수라면 공을 자기 발밑에 두기 무섭게 빛을 발하는 법이거든요.”

“공을 발밑에 두면 빛을 발한다라. 감독님과 비슷한 말을 하는군.”

“감독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셨는데요?”

“실바, 너랑 비슷한 종류의 선수라고 하셨지. 공을 잡는 순간 경기장 위에서 누구보다 밝게 빛날 선수라고 말야.”

“그건 좀 과한 칭찬이네요.”

“하지만 거짓은 없지. 선수의 실력에 대해 거짓말을 하실 분이 아니라는 건 네가 가장 잘 알잖아?”

트레이너의 말에 작게 웃으면서 뺨을 긁적이던 실바는 다시 한 번 목을 축인 후 훈련장을 내려보면서 입술을 매만졌다.

솔직히 과르디올라 감독이 자신을 높게 평가해주는 것이 고맙긴 했지만, 이따금 부담이 되기도 했기에 쉬이 웃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훈련을 위해 필드 위를 뛰고 있는 저 어린 선수, 최재혁을 보니 왜 과르디올라 감독이 매 순간 그를 볼 때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자신이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단순히 공을 가지고 있을 때만이 아닌,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좋아서 공이 없을 때 더 위협적인 친구야. 물론 그게 눈에 확 띄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다만, 역시 아직 완성된 선수는 아니군.’

상대에게 먼저 실점을 당했다는 부분에서 열이 올랐는지, B팀 선수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이어가면서 공과 공간의 소유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열을 올리자 재혁이 쉬이 버티질 못하고 바닥에 뒹구는 모습을 보면서 실바가 재밌다는 듯이 작게 미소를 떠올렸다.

비록 모자란 부분이 있지만 눈에 보이는 가능성이 더 컸기에 기대감이 가득 실린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바로 다음 플레이에서 보여준 것을 보면서 실바가 눈을 크게 떴다.

공을 받기 무섭게 상대가 거칠게 압박을 가해오자 가벼운 턴으로 빙글 돌아 압박을 벗어나면서 또 한 번 전방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보낸 것이다.

실바는 다른 무엇보다 재혁의 가벼운 터닝에 당한 상대가 야야 투레라는 사실에 실소를 흘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훈련이라 투레가 실제 경기 때처럼 거칠게 다루진 않은 것 같지만, 투레를 상대로 저런 모습을 보여준 것을 보면 저녀석도 배짱이 참 두둑한 친구군요.”

“맞아. 나이에 맞지 않은 구석이 있는 녀석이라고 그랬지. 그래서 과르디올라 감독이 자네에게 부탁을 하나 하고 싶어하더군.”

“제게 부탁이요?”

“실바, 자네가 한 번 저 친구를 맡아보는게 어떻겠냐는 부탁을 말야.”

“!”

“네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재혁에게 알려준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거야. 어린 선수에게 가장 부족한 부분이 바로 경험이니, 그 부분을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다면 앞으로 성장하는데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될테지. 어떤가? 혹시 생각이 있나?”

트레이너가 질문을 던진 뒤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던 물잔을 들어 올리면서 실바의 눈치를 살폈고, 실바는 한동안 입술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간 고개를 주억이더니 조심스럽게 트레이너에게 답했다.

“그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군요.”

“힘들 것 같다고?”

“왜냐면 저라고 해서 저 친구에게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거든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니?

트레이너가 고개를 갸웃이며 실바에게 되물으려고 할 때, 실바가 먼저 입을 열어 계속 말했다.

“저런 종류의 선수들은 보통 경기를 직접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입으로 나누는 대화보다는 공으로 나누는 대화가 더 친숙한 거죠.”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제가 그렇거든요.”

“!”

“저랑 비슷한 선수라고 했으니, 그 부분에선 확신할 수 있어요. 재혁이라는 저 친구는 지금 멘토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같이 패스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한 거죠.”

생긋.

말을 끝내면서 실바가 재차 웃었고, 이내 고개를 돌려 필드 위를 열심히 뛰고 있는 재혁을 내려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재촉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같이 필드 위에서 뛰는 그 순간.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요.”

***

훈련장의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매 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다.

재혁이 속해 잇는 A팀은 재혁을 중심으로 짜여진 진영을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B팀의 골문을 노렸고, B팀 선수들도 그에 지지 않기 위해 패스와 공간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쓰면서 만회점을 성공 시키려고 열심히 공을 돌린 것이다.

다만 중요한 상황에서 꼭 한 발 빠르게 반응했던 팀은 재혁이 뛰고 있는 A팀이었고, 90분동안 진행되었던 라인 훈련이 모두 끝이 났을 때에는 6대4라는 최종 점수로 A팀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훈련의 끝을 알리는 휘슬과 함께 수고했다는 말로 선수들을 다독였고, 자리에 앉아 수분을 섭취하면서 감독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선수들은 오늘 훈련은 이것으로 끝이라는 말에 하나둘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까지는 모든 게 매일과 같았다.

오직 한 가지, 씻기 위해 라커룸으로 향하는 선수들이 꼭 한 번씩 잔디에 주저앉아 근육 스트레칭을 해주고 있는 재혁을 살피고 자리를 떠나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평소와 다른 선수들의 반응을 슬쩍 살핀 뒤 입가에 옅은 미소를 걸고서 오피스로 향했고, 그런 감독의 뒤를 쫓아 이동하던 메이슨 코치가 감독의 곁에 다가가 물었다.

“재혁이를 갑자기 1군 훈련에 참가시킨 이유가 있습니까?”

메이슨은 순수하게 과르디올라 감독의 의중을 알 수가 없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쩌면 겨우 한 번 일 수도 있었지만, 그 한 번이 주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코치는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런 코치의 질문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일단 미소로 답한 뒤 사무용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오늘 훈련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운 선수가 누구일 것 같나?”

“흠. 글쎄요. 아무래도 처음으로 1군 선수들과 훈련을 한 재혁이지 않겠습니까?”

“아니. 틀렸어. 아마 오늘 훈련을 통해 배운 게 가장 적은 선수가 오히려 재혁일거야.”

“···?”

“재혁에게 있어서 오늘 훈련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니까. 물론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배운 점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훈련 내용 그 자체를 놓고 본다면 재혁은 특별히 배운 게 거의 없겠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메이슨 코치가 과르디올라 감독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없어 그에게 되물으려다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곤 눈동자를 키웠다.

그러고 보니, 오늘 두 팀으로 나누었던 선수들의 명단을 생각해본다면···.

“자극을 주려고 하셨던 거군요. 투레와 페르난지뉴···, 두 선수들에게 말예요.”

메이슨 코치의 답을 들은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저 그를 향해 미소를 보일 뿐, 더 이상의 설명은 추가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메이슨의 추리는 정확했으니까.

과르디올라 감독은 처음부터 재혁과 다른 팀에서 뛰게 했던 두 미드필더들에게 재혁의 플레이를 보여주기 위해 그런 식으로 팀을 나누었던 것이다.

다비드 실바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았으나, 재혁이라면 충분히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란 계산 하에 이루어진 콜업이었고, 그런 감독의 생각은 오늘 훈련 내용을 생각하면 확실히 적중했던 것이다.

아마 일반적인 훈련이었다면 투레와 페르난지뉴에게 밀려 빛을 못 보았을 재혁이었지만, 라인 훈련은 분명 일반적인 훈련과 다른 종류의 훈련이었고, 피지컬보다는 공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라인의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재혁의 모습을 보며 오늘 그를 상대했던 두 사람은 분명 느낀 것이 있을 것이리라.

‘거기에 추가로···.’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과르디올라 감독이 눈에 들어오는 두 사람을 살펴보면서 턱을 쓸어내렸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던가.

아무래도 그가 예상했던 선수들 외에도 오늘 훈련을 통해 적지않은 영향을 받은 선수가 또 한 명 있는 듯 했다.

***

“정확히 네가 몇 살이지?”

“17···, 내년에 생일이 지나면 18살이 되겠네요.”

“아직 10대라···.”

재혁의 나이를 들은 케빈은 잠시간 얼이 빠진 얼굴이 되더니 실없이 웃었다.

자신도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아 성장한 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녀석은 차원이 다른 존재였으니까.

재혁과 같은 나이에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리기 위해 생각에 잠겼던 케빈은 곧 고개를 작게 저은 뒤 재혁에게 재차 말을 붙였다.

“나도 너랑 비슷한 나이에 1군에 데뷔하긴 했지. 하지만 솔직히 데뷔라기 보다는 경험을 쌓으라는 측면에서 1군에 합류시켜준 경향이 더 컸어. 실질적으로 경기를 뛰기 시작한 건 20살 때부터 였으니까.”

“그 말씀은 저도 그때까지 경험을 쌓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의미인가요?”

“아니. 너는 달라. 내게 필요했던 경험과 네게 필요한 경험은 종류가 다른 거거든.”

종류가 다른 경험?

케빈의 말에 잠시 재혁이 고개를 갸웃였으나, 케빈은 그런 재혁을 향해 손을 쭉 뻗으면서 밝게 웃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정식으로 맨체스터 시티에 속한 선수가 되는 거지?”

“이미 계약서에 사인은 했어요. 싫어도 그렇게 되는 거죠.”

“큭큭. 아마 싫어하게 되진 않을 거다. 우리 구단이 생각보다 나쁘진 않거든.”

“맨시티 정도 되는 곳을 나쁘지 않다고 하실 정도면, 좋은 곳은 대체 어느 정도의 구단이에요?”

한결 가벼워진 케빈의 말에 재혁도 미소와 함께 가벼운 농담으로 케빈에게 답하면서 그가 건넨 손을 마주 잡았고, 이내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헤어졌다.

케빈은 기대감을, 그리고 재혁은 호기심을 가지고 헤어진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시즌과 여름이 끝이 나고 마침내 찾아온 새로운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7월 프리 시즌 캠프에서였다.

미국, 휴스턴에서 진행되는 프리시즌 투어 2017의 첫 경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토트넘을 차례로 상대하게 되는 일정에서 첫 경기인 맨유와의 시합 당일, 선발로 뛰게 될 선수들이 발표된 것을 언론에서 일제히 보도했고,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재혁을 발견한 한국 미디어들은 하나같이 속보라며 인터넷에 기사를 올려놓기 시작했다.

아직은 유망주일 것이며, 경기에서 뛰기 위해서는 좀 더 성장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재혁의 선발을 예상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에 다들 과르디올라 감독이 내린 판단이 놀랍다는 게 주된 반응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욱 크게 놀란 것은 따로 있었으니···.

[최재혁 선수가 원래 풀백이었나요?]

모두가 미드필더라고 알고 있었던 재혁이 오른쪽 풀백으로 경기를 뛰게 된 탓이었다.

< 57. 기대와 호기심 > 끝

ⓒ 권주호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