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56화 (56/225)
  • < 56. 비슷한 냄새 >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선수들을 한 곳에 불러 모은 과르디올라 감독은 재혁을 자신의 옆에 세우고 선수들에게 그에 대해 소개했다.

    “이번 여름부터 함께 할 선수다. 이미 얼굴과 이름을 아는 선수들이 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제대로 소개하자면···.”

    “최재혁입니다.”

    아주 짧게 자기 이름을 소개한 재혁을 슬쩍 살핀 과르디올라 감독은 작게 웃었다.

    보통의 유스 선수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선수들의 얼굴을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말을 버벅일 친구들이 많았는데, 역시 이 녀석은 달랐던 것이다.

    재혁이 모자람 없이, 과하지 않게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 한 이후, 선수들이 환영의 의미로 박수를 쳐주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체할 것 없이 바로 훈련을 시작했다.

    일단 기본적인 볼 컨트롤과 패스, 그리고 데드볼 상황의 세트 플레이가 이어졌다.

    특별할 것이 없는 몸풀기 훈련이었지만 선수들은 하나같이 눈빛을 빛내며 한 선수를 눈에 담았다.

    ‘최재혁이라.’

    ‘유스 선수로 키우려고 영입한 게 아니었던 건가?’

    ‘그보다 어디서 뛰는 친구지? 미드필더?’

    ‘그럼 일단은 경쟁자군.’

    재혁을 보며 다양한 생각을 이어가는 선수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재혁을 단순한 어린 선수로 보지 않았다.

    자리 하나를 놓고 싸우게 될 경쟁자.

    필요한 선수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쓰고 보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선발론을 모르는 이들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고, 하물며 적은 금액으로 영입한 선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일단 재혁의 실력을 가늠해보기 위해 그가 취하는 행동들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폈고, 재혁의 어떤 부분이 특별한 지를 알아내기 위해 재혁이 공을 잡을 때면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들을 놓고 평가했다.

    ‘트래핑은 그럭저럭 평범한데.’

    ‘기술도 나쁜 건 아니지만 눈에 띄게 빼어난 편은 아니고···.’

    ‘그나마 몸의 균형이 좋은 편인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아직 따로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은데 균형을 유지하는 건 썩 괜찮군.’

    세계 최상위 리그, 그곳에서도 특별한 선수들만 모인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재혁이 공을 컨트롤 하거나 패스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쉼없이 생각을 이어갔지만 후한 점수를 주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몇몇 선수들은 재혁에게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을 찾아내면서 입술을 매만졌다.

    저런 선수라면 이미 맨체스터 시티의 유소년 팀에도 한둘 쯤은 있을 법한 수준인데?

    다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재혁을 주의 깊게 살폈고, 그런 선수들의 모습을 한눈에 지켜보면서 과르디올라 감독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그래. 지금은 분명 대단하지 않은 선수처럼 보이겠지.’

    아니. 단순히 그렇게 생각 하는게 아니라 왜 재혁이 이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되려 지금 재혁의 실력을 보고 만족한다면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선수였으니, 과르디올라 감독은 선수들의 표정을 바로 읽어낸 뒤 미소를 흘렸다.

    저들의 표정이 곧 경악으로 바뀌는 것을 상상해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기본 훈련이 끝나고 수분 섭취를 위한 짧은 휴식을 보낸 선수들을 과르디올라 감독이 필드 위에서 불러내면서 소리쳤다.

    “그럼 이제부터 ‘라인 훈련’을 시작한다. 호명하는 선수들은 코치들이 건네주는 조끼에 맞춰 두 팀으로 나눠지고, 준비된 필드 위에서 기다리면 된다.”

    “하아···, 라인 훈련을 오늘 합니까?”

    “머리 깨지겠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자자. 그만 떠들고 얼른 조끼 입고 이동해, 이동. 너는 A팀이고, 자네는 B팀···.”

    라인 훈련.

    세로로 7줄, 그리고 가로로 7줄이 그어져 있는 특별한 필드 위에서 진행되는 훈련은 지금까지 선수들이 경험한 포메이션 훈련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 훈련이었다.

    골키퍼를 제외한 양 팀의 10명의 필드 플레이어들은 총 64개로 나눠진 작은 박스 위에서 연습 경기를 진행하게 되는데, 매 순간마다 최대 2명 이상의 선수들이 같은 라인 내에서 공을 소유하면 안 되는, 과르디올라가 진행하는 특이한 포메이션 유지 훈련인 것이다.

    그나마 중첩된 라인 위에서 뛸 수 있게 허용하는 경우도 수비수와 공격수 같이 중간에 허리 층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경우 뿐이었으니. 중원에서 누구보다 공을 많이 만지고, 운반해야 할 미드필더들은 끊임없이 주위를 둘러보아야 해서 골치가 아픈 훈련을 하필 오늘 진행하다는 것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재혁을 찾았다.

    라인 훈련은 처음 경험하는 것인지 과르디올라 감독이 직접 재혁에게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다들 쯧쯧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필 견학을 온 첫 날부터 경험을 하게 된 훈련이 라인 훈련이라니.

    ‘저 녀석 오늘 집에 갈 때 울겠군.’

    ‘라인이 겹치면 바로 불같이 소리를 지르는 감독님이신데, 제대로 90분을 뛸 수 있을 지도 걱정이야.’

    ‘에휴. 그런데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일단 내 위치부터 확인하고···.’

    그렇게 선수들이 하나둘 자리에 서서 자신의 위치와 동료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을 때, 재혁도 과르디올라 감독의 설명을 모두 듣고 필드 위로 올라왔고, 다른 선수들이 그러는 것처럼 주변을 슬쩍 살피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그런 자신감이 깃든 고갯짓이었다.

    그런 재혁의 행동을 육안으로 확인한 케빈 데 브루위너의 눈썹이 살며시 모였다.

    그는 센터 서클 아래에 서서 자신의 뒤편에 위치한 재혁의 얼굴을 살피더니 입술을 모았다.

    ‘···분명 라인 훈련을 처음 할 때도 저런 표정을 지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였더라, 생각에 빠져 입꼬리에 주름을 끌어 올리던 케빈이 계속 생각에 잠겨있다가 과르디올라 감독이 골키퍼들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고, 훈련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에 맞춰 발을 움직였다.

    지금은 다른 잡념에 빠질 때가 아니라 훈련에 온전히 모든 집중력을 쏟아내야 할 때였으니까.

    그만큼 지금 소화하게 될 훈련이 평범한 훈련이 아니라는 소리였고, 과연 그의 생각처럼 상대 팀의 선축으로 시작된 훈련은 시작한지 3분이 채 되지않아 혼란에 빠졌다.

    “투레! 계속해서 움직여줘야 다른 동료가 라인을 따라 움직일 수 있잖아? 네가 그렇게 계속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 동료가 힘들다고!”

    “스털링! 생각을 하면서 움직여, 생각을 하면서! 무작정 라인을 타고 올라가버리면 뒤 따라갈 동료들은 어떡하라고?”

    “B팀 공격수들! 떨어져, 떨어져! 공격수들끼리 같은 공간에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슈팅도 같이 때릴 생각이야?”

    “오타멘디! 수비수라고 계속 같은 곳에 있으면 안 돼! 네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중원에 있는 선수들이 자리를 못 잡잖아?”

    과르디올라 감독을 포함해 터치 라인 바깥에 서있는 코치들은 선수들의 어긋난 위치를 잡아주기 위해 쉬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고, 훈련을 진행하랴, 스태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선수들은 자신들이 지금 축구를 하는 것인지 뜀뛰기를 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정신 없이 필드 위를 뛰어 다녀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공의 위치까지 파악해야 했으니, 다들 죽을 것 같은 얼굴이 되어 평소보다 빠르게 차오르는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케빈 또한 동료들과 중첩된 라인 위에서 머물지 않기 위해 쉼없이 새로운 공간을 찾아 뛰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생각보다 훈련을 소화하는데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 의아해했고, 곧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어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와 함께 A팀 허리를 맡고 있는 최재혁.

    자신의 뒤를 받쳐주고 있는 저 어린 친구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재혁의 움직임을 지긋이 살피던 케빈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눈을 부릅 떴다.

    ‘···팀이 필요한 위치에 맞춰서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잖아?!’

    대체 어떻게···, 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케빈은 동료가 보낸 공을 받기 위해 발을 뻗었고, 간신히 공을 자신의 발밑에 두고 나서 상체를 전방으로 틀었다. 다만 그 동작이 약간 뻣뻣했기에 과르디올라 감독의 호통은 피할 수 없었다.

    “케빈! 정신 차려! 공간이 열리고 닫히는 건 0.5초의 차이라고!”

    “아, 알고 있습니다!”

    “그럼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 움직여!”

    과르디올라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이자 케빈은 재차 큰 목소리로 답했고, 곧장 공을 가지고 이동하면서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지금 그가 패스를 줄 수 있는 방향에서 공을 받을 수 있는 선수는···.

    ‘하나도 없어.’

    두 명의 공격수들은 패스를 받기엔 이미 위치가 엇갈려버렸고, 측면을 달리고 있는 선수는 자기 라인을 망각하고 뛰고 있었다. 아마 저곳에 패스를 찔러준다면 또 한 번 감독에게 한 소리를 단단히 듣게 되리라.

    그렇다면···.

    일단 드리블을 하던 공을 멈춰 세운 케빈은 위치를 45도 정도 옆으로 튼 후, 그의 옆에서 공간을 찾아 움직이던 동료를 향해 패스를 건넸다. 그러면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과연 상대가 어떤 행동을 보일지 기다렸다.

    비록 지금 자신의 위치에선 세 선수들의 위치가 어긋나 있지만, 지금 공을 받게 될 선수, 재혁의 위치에서라면···.

    ‘아마 충분히 볼 수 있을 테지? 너를 중심으로 열리는 선택지들이 말야!’

    “···.”

    모든 것들이 이어질 ‘길’이 있었다.

    케빈은 과연 재혁이 그 길을 볼 수 있을지 기대하며 패스를 건넸고, 케빈이 보내주는 공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던 재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일단 패스를 기다렸다.

    천천히, 느리지만 확실히 자신의 오른 발을 향해 굴러오는 공을 끝까지 눈동자에 담아두고 있던 재혁은 공이 자신의 발이 닿을 만한 위치에 도착하자.

    뻐엉!

    망설임 없이 찼다.

    정확히 인프론트에 걸린 중거리 패스.

    재혁의 논스톱 패스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선수들은 처음엔 재혁이 당황해서 일단 공을 질러낸 것이라고 보고 있었으나, 그의 패스가 정확하게 최전방에 위치해 있던 아구에로에게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다들 놀란 얼굴이 되었다.

    저것은 그냥 무작정 차낸 패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동료 선수들이 활동하는 공간과 라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보낸 패스인 것이다.

    다른 누구보다 재혁의 패스를 직접 받게 된 아구에로가 제일 놀랐으나, 일단 침착하게 공을 바닥에 떨어뜨린 다음 그의 오른쪽 측면을 따라 달리고 있던 스털링을 향해 짧은 패스를 찔러주었다.

    어긋났던 조각들이 재혁의 패스 한 번으로 모두 짜맞추어졌고, A팀의 공격에 생기가 돋아난 것이다.

    스털링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으려던 클리시를 가뿐하게 넘은 후 박스 안으로 침투하기 무섭게 컷백을 시도했고, 스털링의 발을 떠난 공은 박스 측면에서 대각선을 가르며 아크로 향하다가 스털링과 함께 움직이고 있던 케빈의 발등에 정확하게 걸렸다.

    그 이후 케빈의 전매특허와 같은 정확한 슈팅이 이어진 것은 모두가 예상한 수순이었고, 케빈의 발등을 떠난 공은 골키퍼가 손 댈 수 없는 골대 왼쪽 상단에 꽂히면서 A팀의 득점을 알렸다.

    그런 A팀의 득점 과정을 모두 지켜본 과르디올라 감독은 흐뭇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고, 골을 성공 시킨 케빈은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이동하다가 잊고 있던 기억의 한 조각을 뒤늦게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진행하는 라인 훈련에서 홀로 웃었던 동료 선수.

    “그래. 그건 다비드 실바였어.”

    지금은 자리에 없는 다비드 실바.

    재혁은 그와 비슷한 냄새를 풍겼던 것이다.

    < 56. 비슷한 냄새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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