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48화 (48/225)

< 48. FFA컵 결승전 >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소식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순간 폭발적으로 변했다.

다른 무엇보다 2천만 파운드라는 금액에 사람들은 놀라면서 무서운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2천만 파운드?! 이거 실화입니까?]

[17살짜리 선수한테 2천만 파운드를 질렀다고요? 와, 찌라시 아님? 만수르 돈 진짜 막쓰네.]

[루머가 아니라 오피셜이에요. 맨체스터 시티 홈페이지에 벌써 올라왔어요. 이제 유니폼피셜만 남았음.]

[놀리토가 얼마로 이적했죠? 놀리토보다 가격이 쎄네 ㅋㅋㅋㅋㅋ.]

[그보다 대체 어쩌다가 이적이 성사된 거죠? 최재혁 선수하고 맨시티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나요?]

하나같이 이적 소식이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개중에서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맨체스터 시티를 응원하는 팬들 중 몇몇이 나서서 자신들이 알아온 정보들을 커뮤니티에 털어놓기 시작했다.

[맨시티 팬페이지 ‘블루문’에 가보니까 과르디올라 감독이 1월 경에 호주에서 최재혁 선수가 뛰는 모습을 관람하던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더라고요. 아마 그때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듯 한데요?]

[최재혁 선수의 몸관리를 위해 시즌 중 맨시티에서 호주로 코치를 파견하기도 했었다네요. 지금까지는 단순한 스카우터 파견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스카우터가 아니라 최재혁 선수의 담당 코치였군요.]

[아무리 그래도 아직 어린 선순데, 거기에 2천만 파운드를 ㄷㄷ···.]

[영입 비용부터 코치 지원까지. 역시 맨시티가 화끈하네요.]

[시즌 중에 미드필더들이 부상으로 나가고, 말썽 일으켰을 때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지금 다시 들어보니 뼈가 있는데요? ‘기대하고 있는 변화가 머지않아 찾아올 거다’라니. 이거 혹시 제가 확대 해석하는 건가요?]

[확대 해석은 아닌 듯 하네요. 후반기 막바지에 투레가 갑자기 순한 양이 된 걸 보면···. 팀 내부에선 뭔가 돌던 게 아니었을까요?]

[다들 너무 흥분하고 계신데, 현실을 좀 직시해야 하지 않습니까? 야야 투레가 최재혁의 영입 소식을 듣고 순해졌다는 건 너무 나간 거 같은데요? ㅋㅋㅋㅋ.]

기분 좋은 상상, 그리고 기대에 찬 이야기를 한창 떠들고 있던 중 몇몇 사람들이 서서히 목소리를 높였다.

갑작스러웠던 소식 때문에 잠시간 잊고 있었던 것.

최재혁은 아직 많이 어린 선수라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근육과 뼈대의 성장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어 몸도 완성되지 않았고, 전성기에 가까워지려면 아직도 몇 년의 성장이 더 필요한 선수인데, 팬들의 반응도, 그리고 맨시티에서도 너무 성급하게 일을 진행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들의 말 또한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과르디올라’라는 감독의 이름 값이 주는 믿음을 기억하며 재혁의 맨체스터 시티 입성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 ‘필요했으니 샀겠지’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팬들은 내년부터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할 재혁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한국 팬들의 입장에서 나눈 이야기였고.

[재혁이 맨체스터 시티로 간다네요.]

[결국 오피셜이 떴군요.]

[하아···. 진짜 간만에 터진 제대로 된 선수였는데···.]

시드니 FC의 팬페이지 ‘블루즈’는 초상집처럼 우울한 기운이 깃들더니 빠져나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유소년 계약에 아카데미 출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적응도 잘하고 활약도 괜찮게 해주고 있으니. 혹시라도 내년부턴 정식 계약을 맺어 1군에 합류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팬들은 재혁의 이적 소식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맨체스터 시티로 향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더니 희망적인 글을 작성하며 재혁의 미래를 응원해주기 시작했다.

[사실 다른 A리그 팀으로 가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게다가 EPL로 가는 직행이니. 국내 리그에도 분명 좋은 영향을 끼칠 거예요.]

[그렇긴 하죠. 시드니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뛰는 재혁이를 상상하느니 차라리 앞으로 축구를 끊고 말죠. 유럽으로 가서 다행입니다.]

[최재혁 선수의 첫 프로 커리어의 시작을 함께 했다는 그 의미가 중요한 거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선수로 활약할 수 있게 응원이나 해줍시다.]

[네, 그래야죠. 그런데···. 최재혁 선수가 영국으로 떠나는 시기가 정확히 언젠가요?]

***

“엊그제 보낸 메디컬 테스트 리포트도 합격이라는 소식이다. 워크 퍼밋만 나온다면 돌아오는 여름, 프리 시즌이 시작되는 7월부터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하게 될거다.”

재혁이 앉아 있는 사무실로 로니 단장이 들어오면서 말했고, 마침내 모든 게 결정됐다는 소리에 재혁이 얕게 숨을 뱉은 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꿈 아니죠?”

“이제 막 시작된 현실이지. 앞으로 계약과 관련된 일은 내가 아닌, 네 에이전트와 상담해야 할거다.”

“로니 단장님께서 계속 제 에이전트를 해주시면 참 좋을 텐데 말예요.”

맨체스터로 떠나야 하니, 시드니에 남게 될 로니와의 작별이 아쉬워 농담을 섞어 말한 재혁을 슬쩍 살펴본 로니는 피식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모든 사람에겐 그에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 법이야. 너는 선수로, 나는 아카데미의 단장으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답게 헤어질 수 있는 법이지.”

짧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한 마디에 재혁이 잠시간 눈을 감고 고개를 주억이더니 살며시 고개를 들어 로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웃기는 군. 난 어디까지나···.”

“로니 단장님은 제게 대부같은 분입니다.”

“!”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한 재혁의 말에 거짓이 없었다.

실제로 로니와 함께 지낸 4년간 그에게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을 배우면서 지냈으니까.

물론 차범수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로니 단장이 자신을 대할 때 매 순간 진심이었음을 재혁은 누구보다 뜨겁게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기회가 될 때 진심을 담아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이다.

다만 그런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재혁을 상대하는 것이 낯설었는지, 로니는 콧등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슬쩍 고개를 돌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답했다.

“내게 정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면, 네가 지금 잊지 말아야 할 건 다른 게 아니라 ‘아직은’ 아카데미에 속한 선수라는 거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물론 제대로 이해하고 있죠.”

로니의 말을 중간에 끊고 목소리를 낸 재혁이 생긋, 밝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내일 뛰게 될 FFA컵 결승, 반드시 우승으로 마무리 지을 겁니다.”

***

“지금까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침내 멜버른에서 진행되는 FFA컵의 결승전! 진행을 맡게 된 저는 스콧이고, 해설에는 언제나처럼 페트릴로와 키노보, 두 분이 함께 해주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페트릴로입니다. 오늘 날씨가 좋군요.”

“그러게요. 선수들이 뛰기 정말 좋은 날씨인 것 같아서 저도 기분이 좋네요.”

결승전을 중계하기 위해 중계석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은 시작부터 경쾌한 목소리로 흥을 돋구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호주에서 가장 큰 토너먼트 대회의 결승전이었으니, 축구를 사랑하는 그들로서는 흥이 나지 않을 래야 안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경기장 상태와 함께 스타디움의 객석을 빈틈없이 채워주고 있는 관객들을 둘러보며 현장 분위기를 설명하던 세 사람은 곧 결승전에 진출한 양 팀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참 재밌는 일이에요. 멜버른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멜버른 시티 FC가 결승까지 진출하다니요. 결승전을 홈에서 치르는 느낌일 터라 아무래도 멜버른 시티 FC의 입장에서는 한결 마음 편한 결승전이 될 것 같죠?”

“오히려 우승이라는 부담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지요. 사실 멜버른 시티 FC의 결승 진출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으니까요. 이번 시즌, 다른 누구도 아닌 팀 케이힐의 영입에 성공하면서 ‘목표는 우승’이라고 시즌 시작 전부터 한껏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까?”

“사실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았던 영입이었죠. 케이힐 선수의 나이가 벌써 37이니까요. 다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것을 첫 시즌부터 맹활약하면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순식간에 불식시켰죠. 총 25경기 출전에 12골. 분당 득점률로 따지면 또 리그에서 상위권이에요. 회춘 모드가 무엇인지 아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죠.”

멜버른 시티 FC의 팀 케이힐.

한 때 에버튼에서 활약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그리고 호주에서는 살아있는 전설로 회자되고 있는 선수가 다시 호주로 돌아왔을 때, 많은 이들이 기뻐했으나 또 한 편으로는 걱정을 했다.

말년에 와서 혹시라도 좋지 못한 모습으로 커리어를 자국에서 끝내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애초부터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케이힐은 첫 시즌부터 매섭게 골 폭풍을 몰아치며 증명했고, 또 팀을 FFA컵 결승에 안착시키면서 축구를 향한 자신의 열정은 아직도 뜨겁게 불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아무래도 본국인 호주에서 열리는 대회이고, 또 케이힐이 출전하는 만큼, 캐스터와 해설들은 한동안 케이힐 이야기를 멈출 수 없었는데, 남은 시간을 뒤늦게 확인한 스콧 캐스터가 서둘러 상대팀인 시드니 FC의 소개를 시작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큐시트를 넘겼다.

“그러면 멜버른 시티 FC에 맞서 결승전에 올라온 시드니 FC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상황이 또 재밌죠?”

“사실 결승까지 올라오리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던 팀은 바로 이쪽이죠.”

“실제로 리그에서 순위도 중위권을 유지하면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컵대회에는 바로 그 선수, 최재혁 선수가 스쿼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최재혁.

이제 겨우 17살로 어리디 어린 선수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중계석에 자리한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는지 허탈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웃더니 말을 이었다.

“어린 유망주들이 잘 커주길 바라는 희망은 누구든 다 똑같겠지만···.”

“이 선수를 과연 유망주라고 불러야 할까요?”

키노보 해설이 지금 그의 두 눈으로 똑똑히 읽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기가 힘든 재혁의 스텟이 적힌 정보지를 소리내 읽으면서 말을 계속 했다.

“컵 대회에 총 6경기 출전, 1골 8도움. 그런데 단순히 공격 포인트만 볼 게 아니라 경기당 평균 키 패스 시도가 6회에요.”

“지금 기록 중인 8도움도 분명 높지만, 공격수들이 만들어진 기회를 모두 성공시켰다면 지금쯤 두 자릿수 도움을 기록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거기에 기본적인 패스 성공률도 무시할 수 없죠. 현재 출전한 선수들 중 가장 높은 성공률인 92%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출전 시간도 결코 적지 않은데 말예요.”

“이러니 과르디올라 감독이 반할 수 밖에 없었겠지요.”

재혁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젠 빼놓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과르디올라 감독과 맨체스터 시티. 그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 세 사람은 하나가 되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페트릴로 해설이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곤 생긋 웃었다.

“그런데 참 재밌군요. 최재혁 선수의 맨체스터 시티행 이적이 확정되었는데, 호주에서 치르게 될 마지막 경기가 같은 ‘시티 풋볼 그룹’에 속한 맬버른 시티 FC와의 경기네요.”

“어,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재작년 맬버른 FC가 시티 그룹에 인수되면서 맨체스터 시티와 같은 모 회사를 경영진에 두게 되었죠?”

“현재 시티 풋볼 그룹에 속한 선수들과 미래의 시티 풋볼 그룹에 들어갈 선수와의 경쟁 구도, 그리고 전 EPL 선수와 미래의 EPL 선수간의 경쟁구도가 이렇게 만들어지나요? 하하. 과연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다른 건 몰라도 하나 만큼은 확실하죠.”

스콧 캐스터와 페트릴로 해설, 두 사람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키노보 해설이 자못 진지한 목소리로 경기장에 올라서는 선수들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아마 오늘 진행될 결승전은 지금까지 치러졌던 여느 결승전들과는 분명 다를 거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 48. FFA컵 결승전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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