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47화 (47/225)
  • < 47. 겨우 1000만 파운드 >

    “그게 전부가 아닌데요.”

    행정 디렉터의 옆에 앉아서 함께 서류를 확인하고 있던 남성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주급도 현 EPL 선수들의 평균에 맞춰달라고 하고 있어요.”

    “지금 리그 평균 주급이 얼만지 알아? 주당 대략 4만 5천 파운드야! 그걸 아직 프로 데뷔도 제대로 하지 못 한 17살짜리 선수한테 주라고?”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 선수를 영입하려면 어쩔 수 없긴 해요.”

    행정 디렉터가 계속해서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남성이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냥 보이는 조건만 나열하면 1차 심사는커녕 협회에 서류를 올리기 무섭게 바로 잘릴 걸요? 이적 조항들을 하나하나 추가해서 2차 심사를 넣어야 워크 퍼밋이 나올 수준이라···.”

    “그걸 누가 몰라? 망할!”

    남성의 말에 버럭 목소리를 높였던 행정 디렉터는 과르디올라가 작성한 서류를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단의 전체적인 행정과 재정을 관리하는 입장에선 그냥 이대로 분쇄기에 넣고 싶은 서류였지만, 감독이 정식으로 요청한 이상 이사회에 이야기를 하긴 해야 했으니 말이다.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떠난 행정 디렉터는 서류를 팩스로 돌렸고, 머지않아 임원진이 보내는 답변들을 확인하면서 이를 갈았다.

    ‘허용하겠다는 사람이 반, 반대가 반···.’

    결국 과르디올라 감독이 올린 요청은 이사회의를 통해 결정이 되는 것으로 정해졌고, 순식간에 미팅 날짜와 시간이 정해졌다. 이만큼 빠른 속도로 업무가 진행된 것은 현재 리그가 후반기에 막 돌입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흥미로운데요. 일단 과르디올라 감독의 이야기나 한 번 들어봅시다.]

    구단주가 남긴 한 마디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리그가 진행 중이었으니, 당장 돌아오는 21라운드를 치르고 난 후에 이사들은 만나기로 합의했고, 마침내 당일이 되었을 때 간만에 얼굴을 보게 된 이사들은 회의실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다가 과르디올라 감독이 등장하자 다들 입을 닫았다···, 가 하나둘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결국 이번 시즌 우승은 물 건너간 것이죠?”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4점을 잃고 대패라. 이건 치명적이죠.”

    “선수들이 부상으로 시즌 초반부터 이탈하게 된 것은 이해하나, 너무 일찍 경쟁에서 멀어진 게 아닌가 걱정이군요. 선수들의 의욕이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자칫 동기부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다들 전날 있었던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과르디올라 감독을 압박했다.

    구디슨 파크에서 겪게 된 4대0의 패배.

    그것도 평소 문제로 지적 받아왔던 수비 조직력과 골키퍼인 브라보의 실책으로 일어난 실점이라 불만들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 했다.

    시즌이 시작될 때 사용한 이적료에 비해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가 불안하기 그지없었으니, 다들 이번 시즌이 어떻게 끝이 날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사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성, 만수르 구단주는 다른 이사들과 달리 과르디올라의 두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원정을 다녀와서 피곤할 감독에게 벌써부터 그렇게 압박을 넣으시면 어떡합니까? 일단 오늘 모인 회의 주제가 따로 있는 만큼, 주제에서 멀어지는 건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죠.”

    점잖게 주위를 아우른 구단주는 주변이 한결 조용해진 것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이더니 과르디올라 감독을 향해 직접 물었다.

    “그러면 오늘 이 자리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에 관한 이야기를 슬슬 해볼까요? 비유럽 출신에 이제 겨우 17살인 선수를 위해 최소 천만 파운드의 사용을 허용해달라···, 아무리 이적 자금이 남는다고 해도 선수들의 계약을 위해 세워놓은 기준을 무너뜨리면서 까지 이 선수를 영입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과르디올라 감독?”

    과거 재정적 건전성을 위한 규칙인 FFP를 어기면서까지 과도한 투자를 통해 구단을 성장시킨 만수르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단의 부족한 시설과 선수들을 위한 투자, 그리고 스쿼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였을 뿐.

    목적없이 돈을 사용하는 것에 누구보다 경계하고 있는 만수르 구단주는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적절한 설명을 부탁했고, 과르디올라는 그런 구단주와 이사들의 눈빛을 바로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목소리를 냈다.

    “무엇보다 제가 이 선수를 원하기 때문이죠.”

    “그런 개인적인 감정에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운 계약 기준입니다. 단순히 원하기 때문이라는 감정적인 이유로는 승낙이 힘듭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해드리죠. 지금 ‘겨우’ 천만 파운드로 이 선수를 영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모드리치, 토니 크로스, 바르셀로나의 이니에스타와 지금은 뮌헨에 있는 사비 알론소. 그 외에 여러 선수들을 과연 천만 파운드에 사올 수 있습니까?”

    “?!”

    “첼시가 캉테를 3200만 파운드에 영입했죠. 현 시즌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미드필더가 3200만 파운드로 이적했는데, 그의 3분의 1인 가격으로 그만한 선수를 데려오는 게 과연 무리인 선택입니까?”

    과르디올라의 높아진 목소리에 다들 당황하고 있을 때, 오직 구단주인 만수르 만큼은 미소를 보이며 그를 바라보다가 넌지시 입술을 뗐다.

    “이미 우리 유소년 팀에도 충분히 좋은 선수들이 차고 넘치게 있습니다. 그런데도 꼭 그 선수가 아니면 안되는 겁니까?”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죠. 명가를 세우고 싶다고.”

    만수르의 말에 곧장 대답한 과르디올라는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분명 맨시티는 좋은 터를 가졌습니다. 재료들도 좋고, 도구들도 좋죠.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기초 공사가 끝났을 뿐입니다. 제대로 된 골조를 토대로 짓지 않는다면 외장에선 티가 나지 않을 지 몰라도, 내장 공사에서 분명 일이 터집니다.”

    “···.”

    “겉보기라는 화려함에 속아 ‘진짜’를 놓치면 분명 후회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지금이야 겨우’ 천만 파운드인 겁니다.”

    과르디올라가 말을 끝내고 입술을 닫자 장내가 조용해졌고, 모두가 주변의 눈치를, 그리도 만수르의 안색을 살폈다.

    결정의 시간이 온 것이다.

    함께 찾아온 침묵이 무겁게 공기를 짓눌렀는데.

    “후후.”

    만수르의 입가에서 터진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그 미소의 의미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모르는 이는 없었고, 과르디올라 또한 만수르를 따라 웃으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가장 큰 산을 하나 넘은 것이다.

    과연 과르디올라의 예상대로 곧 투표가 진행됐고, 만장일치로 이번 계약에 예외를 두기로 했다.

    과르디올라가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회의장을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만수르가 넌지시 손을 올리더니 떠나려는 과르디올라의 발길을 붙잡고 물었다.

    “그런데 천만 파운드를 어떻게 사용하실 생각이었죠?”

    “아직 유소년 계약으로 묶여 있는 선수라 구단 측과 소속된 아카데미, 그리고 협회 측에는 이적료 항목으로 지불하고 남는 금액은 주급에 사용해 리그 기준에 맞추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빠듯하게 사용할 계획을 하고 계셨습니까?”

    “가능한 수준에서 끝을 내려고 했을 뿐입니다.”

    “가능한 수준이라.”

    만수르가 과르디올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적절하게만 사용하면 2차 심사에서 통과할 수 있을 수준이긴 했다. 다만···.

    “가뿐히 넘을 수 있는 허들을 굳이 고생하면서 넘을 필요는 없지요.”

    “예?”

    “2천만 파운드.”

    만수르가 검지와 중지를 들어 과르디올라에게 내보이면서 말했다.

    “총 2천만 파운드를 사용한다면 무리 없이 영입해 올 수 있겠죠. 혹시 모를 상황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테고요.”

    “구단주, 아직 어린 선수에요! 2천만 파운드면 차라리···.”

    “방금 과르디올라 감독이 한 말을 제대로 못 들으셨습니까?”

    만수르의 갑작스런 선언에 다른 이사들 중 몇몇이 놀라 목소리를 높이자, 만수르가 장내를 훑으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가의 대들보가 되어줄 선수입니다. 2천만 파운드에 미래를 사오는 거라면 헐값인 거죠. 그럼 모쪼록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목소리는 분명 잔잔했으나, 은근한 잔향이 남아있는 만수르의 한 마디를 끝으로 회의가 끝이 났고, 회의실을 빠져나온 과르디올라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

    인터넷에 여러 소식들이 돌았다.

    물론 선수들의 재계약과 이적에 관한 소식들이 대부분이었고, 믿을 수 있는 이야기들보다는 믿기 힘든 소식들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확정이 난 오피셜보다는 팬들의 희망 사항들이 깃든 이야깃거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아, 진짜 다음에는 구단 클래스에 맞는 특급 공격수 한 명 좀 데리고 왔으면 하네요. 링크는 많은데 확정된 선수는 하나도 없는 듯. ㅠㅠ.]

    [님 어디 팬인데요?]

    [아스날이요.]

    [ㅋㅋㅋㅋㅋ 과학도셨네.]

    [님은 어디 팬인데 절 보고 비웃어요. ㅡㅡ. 첼시임?]

    [맨유요···.]

    [ㅋㅋㅋㅋㅋ 맨유는 6위가 딱!]

    여느날과 같은 해외 축구 커뮤니티.

    팬들은 인사를 대신해 서로의 약점을 건드리며 놀다가 곧 진지한 축구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시즌이 막바지에 다가온 만큼, 각자 느낀 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결국 첼시가 우승하겠네요.]

    [첼시가 지금 무섭죠. 파훼될 법하면 전술을 바꾸고, 비벼볼만 하면 또 변하고.]

    [이건 거의 무패 포스임. 다만 과연 다음 시즌도 이럴 수 있을까요? 솔직히 첼시의 가장 큰 적은 보드진이라서···. 위에서 너무 팀을 휘두르려고 함.]

    [그래도 토튼햄이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스쿼드 뎁스에서 밀려서 결국 마지막에 힘이 빠질듯. ㅠㅠ. 선우민 선수 이번에 우승컵 들어보나 했더니···. 쩝. 다음을 기약해야 할듯.]

    [과연 다음 시즌은 어떻게 될까요?]

    [그건 이적 소식들을 보면 대강 구도가 나오죠. 일단 지금까지 확정된 소식들을 둘러 보자면···.]

    자연스럽게 확정된 이적 소식들과 한창 떠오르고 있는 이슈들로 화제가 넘어가면서 그에 관해 이야기를 한창 나누던 사람들은 일단 한숨부터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벵거 감독은 또 어린 선수들 간보고 있죠? 이러다가 U-20팀 감독 자리까지 노리게 생겼죠?]

    [한창 우승 경쟁 중인데 왜 이렇게 팀에 잡음이 많냐. 첼시 팬하기 참 힘든 듯.]

    [그래도 우린 다행이네. 수비수 영입···. 좋았다···. 제발 실점만 좀 반으로 줄여보자.]

    각자 응원하는 팀의 소식들을 주로 훑으며 부디 다음 시즌엔 보다 좋은 순위를 기록할 수 있기를, 그런 기원을 하면서 소식을 나누고 있었는데···.

    [어?]

    한 유저가 물음표가 가득 담긴 글을 하나 게시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거 짜리시일까요?]

    [왜요? 뭔데요?]

    [맨체스터 시티에서 선수 한 명을 영입하는데 합의했다고 하는데요···.]

    글을 작성하는 동안에도 자신이 적는 내용에 확신이 없었는지, 말꼬리가 계속해서 늘어지던 유저가 마침내 글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게 호주에 있는 최재혁 선수라네요?]

    [최재혁 선수요?]

    [최재혁? 그게 누구임?]

    [아, 혹시 그 선수 아니에요? 최근에 U-21팀 소집한다고 했을 때 불렀던 그 선수. 이름이 맞는 거 같은데?]

    [네. 맞아요. 그 선수.]

    [그 선수 아직 어린데? 그런데 맨시티에서 영입을 했다고요? 유소년으로 엮어간 게 아니고요?]

    [아뇨. 완전 영입이에요.]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다는 둥,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유저는 기사 원문을 긁어서 가지고 와 보여주면서 말했다.

    [그것도 2천만 파운드를 사용한 영입인데요? 이거 뭔가요?]

    < 47. 겨우 1000만 파운드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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