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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다리가 망가진 이후로 축구에 대해 모든 관심을 끊었고, 현재도 공부를 위해 따로 참고하는 구단들만 있을 뿐. 특별히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구단은 없었기에 재혁은 어렵지 않게 과르디올라의 질문에 바로 고개를 저으며 답할 수 있었다.
“글쎄요. 아직은···.”
“다행이군. 맨체스터 시티가 혁이 좋아하는 구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라는 소리니까 말이지.”
“···.”
벌써 혁이라는 애칭까지 생긴 건가.
재혁이 습관처럼 이마를 긁적이다가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대해 과르디올라에게 물었다.
“혹시라도 제가 선호하는 구단이 있어서 그 구단의 연락을 기다리려고 했다면 어떡하려고 그런 정보들을 술술 이야기 해주시는 건가요?”
“자신이 있으니까.”
“자신이요?”
“나라면 다른 감독들과 달리 너를 제대로 사용할 자신이 있으니까.”
“!”
단어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재혁을 똑바로 마주한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다른 감독들은 기껏해야 자네의 능력에 5할···, 많아야 8할 정도만 쓸 수 있겠지만 나는 달라. 나랑 함께 한다면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어. 어쩌면 아직도 잠들어 있는 재능까지 깨워줄 수 있을 지도 모르지.”
“그걸 어떻게 확신하실 수 있는 거죠?”
과르디올라의 눈빛에 맞서 재혁도 지지 않을 정도로 두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고, 그런 재혁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으면서 과르디올라는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곧 무릎 위에 얹을 보를 테이블 위에 올리더니 그것을 축구장의 모양처럼 직사각형으로 접어 둘 사이에 내려놓았다.
포크를 손에 쥔 과르디올라가 직사각형 모양의 보를 가리키면서 재혁에게 물었다.
“재혁. 네가 생각했을 때 축구장에 지역이 몇 개나 있는 것 같지?”
“크게 나눈다면 후방, 중원, 그리고 전방 정도가 아닌가요?”
“그런 교과서적인 대답을 원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
“그냥 네가 평소에 느끼는 생각을 그대로 내게 이야기 해주면 돼.”
일단 말해봐라.
과르디올라의 그런 시선을 느끼면서 재혁은 잠시간 침묵했고, 곧 포크를 손에 쥐고 천천히 직사각형의 보 위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크게 본다면 아까 말했던 세 가지 지역이 존재하겠죠. 하지만 거기서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후방과 중원 사이에 존재하는 지역과 중원과 전방을 이어주는 ‘링커’들이 활동하는 아주 작은 조각 같은 지역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맞아. 그 부분을 이해할 수 있어야 기본적인 진영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는 거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축구장을 골대와 골대가 존재하는 필드를 기준으로 나누었을 때 이야기죠.”
“호오? 계속 말해보겠나?”
“양쪽 코너에서 패널티 박스 바깥부분까지. 기존의 평범한 지역들이 아닌 측면이라는 개념을 무시한다면 축구는 단순한 패턴을 반복하는 스포츠가 되었을 겁니다. 물론 측면에만 의지한다면 그 또한 단순하겠지만 말예요.”
재혁이 직사각형의 끝에서 안쪽에 두 개의 선을 추가로 그으며 측면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과르디올라가 미소를 보였다.
역시 이 녀석이 이해하고 있는 축구는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축구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저것도 완전한 설명은 아니야.’
측면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까지만 해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축구장에 존재하는 ‘지역’과 ‘공간’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과르디올라가 목을 가다듬으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할 때···.
“그런데 이런 개념을 이해하고 있어도, 경기장에 올라가면 결국 한 가지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더라고요.”
“···한 가지 생각?”
재혁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과르디올라가 목소리 끝을 올리며 되물었고, 재혁은 그런 과르디올라를 향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지역에 대한 이해는 경기장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포지션에 맞춘 개별적인 기준을 적용시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예요.”
“!”
“예를 들자면 공격수로 뛰어야 할 선수와 수비수로 뛰어야 할 선수가 있어야 할 지역이 분명히 다르니, 같은 개념을 적용시킬 수 없겠죠. 미드필더도 마찬가지겠고요. 거기서 좀 더 포지션에 따른 활동 공간들을 세분화 시킨다면···.”
재혁의 말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는 과르디올라의 표정이 한 차례 굳더니 이내 서서히 밝아졌다.
혹시 어디서 배운 건가?
아니면 누군가가 가르쳐준 것인가?
아니.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재능’이 보통 평범한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과르디올라는 재혁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곧 흥분한 목소리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양손으로 온갖 제스쳐를 사용해가며 재혁이 하는 말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맞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 말이야. 2선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그 뒤로 3선. 라인에 대한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요즘 전술에서 11명의 선수들을 같은 카테고리에 집어넣어 사용할 수는 없는 거지. 같은 포지션이라고 할지라도 사용하는 공간이 다르니까!”
“맞는 말씀이시네요.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자면 선수가 뛰는 포지션뿐만이 아니라 습관과 주로 사용하는 발까지 생각해서···.”
“하지만 너무 깊게 들어가면 곤란해. 그러다가 결국 중요한 부분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생기거든. 그럴 땐···.”
에피타이저가 나오고, 곧 음식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화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떠드는 재혁과 과르디올라, 그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로니는 고기를 썰어 입에 넣으면서 옆에 앉아 있는 길로스를 향해 물었다.
“이 정도였나?”
“뭐가?”
“과르디올라 감독.”
달그락, 달그락. 입에 넣었던 고기를 씹어 삼킨 후 다음 한 점을 위해 포크와 나이프를 놀리던 로니가 눈짓으로 아직까지도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 보는 선수에게 너무 많은 걸 알려주는 거 아닌가? 이건 선수와 감독이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거의 선생과 학생 수준인데?”
“선생과 학생이라고? 큭큭.”
로니의 말에 길로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리더니 손을 휘휘 내저었고, 이내 고개를 좌우로 작게 저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내가 보기엔 오히려 어린 아이 두 명이 신이 나 떠드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로니가 길로스를 바라보자, 길로스는 주문한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머금은 뒤 말을 이었다.
“네가 생각하기에 과르디올라 감독과 축구 이야기를 ‘제대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 거 같아?”
“···!”
“뮌헨에선 겨우 필립 람정도 되는 선수만이 과르디올라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어. 지금 그가 있는 맨시티에선 다비드 실바가 아마 유일하겠지. 그만큼 과르디올라 감독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손에 꼽을 정도라는 거야.”
필립 람과 다비드 실바.
어디에 내놓아도 빛이 날 세계 수준의 선수들의 이름이 거론된 것에 로니 단장이 잠시간 숨이 멎었는데, 그런 로니 단장에게 길로스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과르디올라 감독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저 최재혁이라는 아이도 절대로 평범하지 않아. 아마 저 친구도 그동안 분출하지 못하고 속에서 쌓였던 게 지금 과르디올라 감독을 만나 터지고 있는 거겠지.”
“···.”
“흠. 네가 가르쳤다고 들었는데, 지금 최재혁이 머릿속에 담고 있는 전술론까지도 네 손이 닿은 건가?”
길로스의 질문에 로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재혁을 가르친 것은 어디까지나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발기술들과 신체 단련이었으니까.
지금 그의 머릿속에 담겨 있는 지식은 온전히 재혁이 홀로 공부를 한 바탕으로 습득하게 된 지식인 것이다.
‘매일 밤마다 잠은 안자고 뭘 저렇게 공부하나 싶었더니···.’
아마 따로 시간을 내 공부를 했겠지.
이따금 너무 늦은 시간까지 재혁의 방에 불이 켜져 있어서 컨디션을 관리하라며 얼른 잠을 자라고 소리쳤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도 분명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정말 지독할 정도로 축구 하나만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놈이었어.’
로니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놈을 봤다며 피식 실소를 흘리더니 다음 고기를 입에 넣어 씹었고, 길로스도 일단은 조용히 식사를 끝마치기 위해 포크를 움직였다.
어차피 이 자리를 원했던 것은 과르디올라 감독이었으니. 지금은 그가 특별히 나설 일도 없었으니까.
다만 그 뒤로 계속해서 재혁과 이야기를 나누던 과르디올라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짙어지는 흥분감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녀석은 원석이다.’
재혁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재혁이 머릿속에 담고 있는 축구에 대한 지식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습득한 지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스승이라던가, 혹은 다른 이의 도움도 없이 이만한 수준까지 홀로 오를 수 있었다니.
‘지금까지 만난 선수들 중, 이만한 재능을 타고난 선수가 있었던가?’
여태까지의 선수 경력과 감독 생활을 모두 걸고서 과르디올라는 단연코 없었다고 단정할 수 있었다. 왜냐면 지금 재혁이 보여주는 재능은 단순히 타고난 것을 넘어, 일정한 노력을 대가로 얻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재혁의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에 한 번 경악하고, 노력에 감탄하며, 만약 재혁을 자신이 지도할 수 있다면, 이라는 상상을 하면서 과르디올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재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혁. 맨체스터 시티로 올 생각이 없나?”
“저야 그럴 수만 있다면 영광이겠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생각은 할 필요 없어. 혁이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말이지.”
단호한 어조로 재혁의 말을 중간에 끊은 과르디올라 감독이 씨익 하얀 이를 드러내 웃어보이면서 말했다.
“어떤 문제든, 우리가 해결해버리면 그만이니까. 어떤가, 나와 함께 맨체스터로 가겠나?”
과르디올라가 쭉 뻗은 손을 가만히 내려 보던 재혁은 고민에 빠졌으나, 그 고민의 끝이 무엇인지는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고개를 작게 끄덕인 뒤 과르디올라가 내민 손을 붙잡으며 그와 악수를 나눴다.
그렇게 재혁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과르디올라는 후반기를 준비하게 앞서, 한 장의 서류를 작성해 이사진에 올렸다.
과르디올라의 서류를 가장 먼저 확인한 행정 디렉터가 잠시간 자신이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지를 의심하며 몇 번이고 다시 읽기를 반복하다가 비명을 질렀다.
“17살짜리 선수를 영입하는데 1000만 파운드를 쓰게 해달라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 46. 1000만 파운드 <여기까지 무료연재였습니다.>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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