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45화 (45/225)
  • < 45. 첫만남 >

    “이상한 일이요?”

    “재혁, 네가 준 패스를 받는 순간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졌어. 마치 이런 식으로 몸을 움직이라는 것처럼 말야.”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안토루는 자신이 하는 말을 납득할 수 없었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리송한 얼굴로 말을 이었고, 그런 안토루를 옆에 두고서 재혁은 가볍게 미소를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안토루의 몸이 공에 자연스럽게 반응한 게 아닐까요? 안토루는 공이 왼발로 오면 트래핑을 하기 위해 공을 멈추는 습관이 있거든요.”

    “···나한테 그런 습관이 있어?”

    재혁의 입을 통해 처음 듣는 이야기에 안토루가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고, 재혁은 그런 안토루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공을 바로 발에 붙여주면 공을 멈춰버릴 테니까. 조금 뒤쪽으로 보내면 트래핑을 하면서 자연히 몸을 돌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랬더니 정말 그렇게 움직이시면서 선취골을 넣더라고요.”

    “···.”

    “두 번째랑 세 번째도 비슷한 거였는데. 안토루는 가슴으로 트래핑을 하면 꼭 논스톱으로 슈팅을 시도하려고 하더라고요. 슈팅 타이밍이 빠르니까, 그 점을 기억해서 일부러 그때 패스는 높게 줬던 거고···.”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재혁이 득점 상황에 대한 설명을 계속 이어주자, 안토루는 더 이상 커질 수 없다는 듯, 부릅떠진 눈으로 재혁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허탈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작게 저었다.

    이 꼬마는 단순히 기술만 좋았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집중력, 그리고 분석력과 응용력.

    어쩌면 재혁은 축구라는 운동 자체를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지. 단순히 이해한다고 그걸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수들이 몇이나 있겠어?’

    들으면 들을수록 소름이 돋는 재혁의 설명을 멍하니 듣고 있던 중, 안토루는 속에서 올라오는 색다른 감정을 느끼곤 양손으로 상체를 감싸 안으면서 재혁에게 말했다.

    “너···, 축구를 해서 다행이다.”

    “왜요?”

    갑작스레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 안토르를 향해 재혁이 되물었고, 안토루는 그런 재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마 축구가 아니었으면 넌 스토커로 대성했을 거야. 나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니. 이거 정말 걱정이네. 혹시라도 여자 친구 생기면 연애는 그렇게 하지 마라. 그러다가 혹시라도 여자가 먼저 질려버리면···.”

    “어디까지나 경기에서 쓸 수 있는 정보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뿐이거든요?”

    안토루의 실없는 소리에 재혁이 버럭 목소리를 높였고, 그런 재혁을 보면서 안토루는 또 한 번 크게 웃으면서 재혁의 등을 토닥였다.

    그런 안토루의 장난과 손길이 썩 기분 나쁘진 않았기에 재혁도 안토루를 따라 웃었다.

    사실 안토루만큼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저 안토루가 좀 더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웠을 뿐이다.

    ‘계속 같이 축구를 한다면 분명 좋은 파트너가 될 거 같은데.’

    먼저 샤워를 하겠다며 라커룸에서 짐을 챙겨 이동하는 안토루의 뒷모습을 보면서 재혁이 쓴웃음을 베어 물었다.

    아쉽지만 서로 프로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언제고 헤어질 날이 오겠지.

    안토루에 이어 재혁도 갈아입을 옷과 수건들을 챙겨들고 샤워실로 향하려다가 휴대폰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

    샤워를 빠르게 끝내고, 감독과 동료들에게 다음에 보겠다며 먼저 자리를 빠져나온 재혁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익숙한 자동차가 한 대 서서 재혁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보조석에 앉은 재혁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로니 단장에게 아리송한 얼굴로 물었다.

    “갑자기 데리러 오시겠다니, 무슨 일 있어요?”

    “저녁 약속이 잡혔거든.”

    “저녁 약속이요? 그게 저랑 상관이 있어요? 전 기숙사에서 주는 밥이면 충분한데.”

    실제로 균형 잡힌 식단이 나왔기에 기숙사 밥에 별 불만이 없었던 재혁이었으나, 로니는 천천히 엑셀을 밟으면서 작게 웃었다.

    “사실 세 달 전에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게 오늘 저녁 약속이랑 상관이 있는 건가요?”

    “그렇지. 그 사람이 만든 자리거든.”

    “···?”

    로니 단장이 하는 말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재혁이 미간을 모으자, 로니가 계속 설명을 이었다.

    “그 사람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스카우터야. 나랑도 꽤 인연이 있는 친구지. 아무튼 세 달 전, 네가 한국에서 독일과 치렀던 친선전이 끝났을 때 바로 나를 찾아왔었다. 그리고 너에 대해 묻고, 또 네가 뛰던 경기 영상들을 몇 개 챙겨갔지.”

    “그런 걸 막 줘도 돼요?”

    “목적이 불순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스카우터에게 넘기는 영상들은 주로 ‘마케팅’에 쓴다고 생각하면 돼. 선수에 대한 분석 위주라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장점’들을 극대화 시킨 영상들이니까 말이지.”

    흐음, 재혁이 로니의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로니는 재혁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대화를 이었다.

    “실제로 그 영상들을 토대로 어느 감독에게 너에 대해 소개를 해준 모양이더구나. 그리고 그 감독도 네가 퍽 마음에 들었는지 오늘 저녁 자리에서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던 거다.”

    “이 시기에 저를 만나러 호주까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 1월이면 후반기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그럼에도 너를 만나러 지금 호주를 찾아온 것을 보면 네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야.”

    설명을 이어가던 중 한 레스토랑 앞에 멈춰서면서 로니가 도착했다고 말했고, 슬쩍 레스토랑의 외관을 살핀 재혁은 뺨을 긁적였다.

    시드니에서 몇 년을 살면서 지금 두 사람이 들어가려는 레스토랑이 얼마나 비싼 곳인지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혁은 로니의 뒤를 쫓으면서 누군지 몰라도 돈이 많은가 보네, 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로니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로니가 돌아오기를 로비에서 기다렸다.

    아니, 기다리려고 했다.

    “경기를 뛴 선수는 소모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한두 시간 이내에 식사를 해주는 게 몸에 좋아. 로니 단장이 오기 전에 우리끼리 먼저 테이블로 향하는 게 어떻겠나?”

    “···?!”

    옆에서 들린 목소리를 쫓아 재혁이 고개를 돌렸고, 눈에 들어오는 사람을 발견하고 재혁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분명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진짜가 맞는지, 의구심이 가득하다는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는데, 상대방은 그런 재혁에게 씨익 미소를 보이며 손을 내밀어 자신을 소개했다.

    “조세프 과르디올라, 라고 한다. 친해지고 싶다면 그냥 펩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저, 저는 최재혁이라고 합니다.”

    “이미 이름은 수십 번을 읽어서 외우고 있지. 특별한 애칭 같은 건 없는 건가?”

    현실감이 없는 인물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묻는 것에 재혁은 얼떨떨한 얼굴로 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딱히···.”

    “그거 아쉬운데. 원래 친해지려면 서로 별명을 불러주는 게 빠르지 않나?”

    “한국에는 애칭을 따로 부르는 문화가 없거든요.”

    “그런가? 맨유에서 뛰던 선수는 지 Ji라는 애칭이 있던 거 같은데.”

    “그거야 선수들이 따로 붙여준 거죠.”

    길로스와 과르디올라가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에도 재혁은 멍하니 두 눈만 껌뻑이고 있었고, 화장실을 다녀온 로니 단장이 세 사람에게 합류하면서 목소리를 냈다.

    “응? 벌써 만난 건가?”

    “로, 로니 단장님. 그러면 제게 관심이 있다던 감독님이···.”

    재혁이 말끝을 흐리는 것을 바로 들은 과르디올라가 로니 단장이 답하기 전에 먼저 재혁을 향해 다시 한 번 자신을 소개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최재혁 선수가 우리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까지 온 거야. 어떤가, 우리랑 한 번 이야기 정도는 나눠볼법 하지 않나?”

    빙긋, 콧수염과 함께 입술이 초승달을 그리는 과르디올라의 미소를 마주한 재혁은 침을 꿀꺽 삼킨 다음 고개를 끄덕이며 과르디올라의 손을 맞잡았다.

    악수를 나눈 뒤 네 사람은 곧장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과르디올라는 웨이터에게 바로 음식을 주문했다. 다만 평범하게 준비된 코스 요리를 주문하는 게 아닌, 깐깐하게 재료들부터 시작해서 요리 방법까지 하나하나를 따져가면서 주문한 것이다.

    처음에는 본인이 먹을 거라 저렇게 꼼꼼하게 준비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위한 음식인 것을 알게 된 재혁이 놀라 눈을 크게 떴고, 모두의 주문을 받은 웨이터가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과르디올라가 놀라고 있는 재혁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에너지를 크게 소모한 시합 이후 먹게 되는 식사는 그 어떤 식사들 보다 중요하지. 언뜻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본래 모든 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거니까. 음식도, 신체도, 그리고 축구도 말이지.”

    물이 든 잔을 손에 쥐고 한 모금을 삼킨 과르디올라가 말을 끝내며 웃었고, 재혁도 그를 따라 물로 입술을 적신 뒤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무엇 때문에 말이지?”

    “벌써 어디서 저를 찾을 줄은 몰랐거든요.”

    재혁의 솔직한 한 마디에 과르디올라가 미소를 보이며 웃더니 재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나?”

    “따지고 본다면 아직 제가 선수로서 실적을 낸 게 없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과르디올라 감독님이, 맨체스터 시티에서 저를 찾아왔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요.”

    “아마 내가 시작일 거야.”

    재혁이 먹먹한 목소리로 말한 것에 과르디올라는 곧장 고개를 끄덕인 뒤 말을 이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구단의 감독들도 최재혁이라는 선수에 대해 하나둘 인지하기 시작했으니까 말야. 최재혁 선수 본인은 모르겠지만, 독일과의 친선전에서 보여준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거든.”

    “정말로요?”

    “당장 독일에선 뮌헨과 레버쿠젠이 냄새를 맡았고, 영국에서도 아스날과 사우스햄튼이 조사를 보냈다고 들었어. 그리고 아스날이 알고 있다면 당연히 스페인에 있는 구단들도 몇몇 호기심을 보이려고 하겠지. 이 세계가 겉에서 보기엔 커보여도, 실상은 굉장히 좁은 곳이거든.”

    손에 쥔 잔을 찰랑이면서 대화를 이어가던 과르디올라가 슬쩍 재혁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리고 아직 실적을 내지 못 했다곤 했지만, 실적이 없어도 실력이 좋은 선수를 찾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지. 다른 이들이 모르는 숨겨진 보석을 찾는 일. 단어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 아닌가?

    “!”

    “그런데 말야, 혹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단이 있나?”

    입가에 미소가 짙어진 과르디올라가 던진 질문에 재혁은 뺨을 긁적이며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 45. 첫만남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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