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42화 (42/225)

< 42. 최재혁 쉬프트 >

“상대해보니까 어때?”

“확실히 내가 더 빨라. 다음에도 충분히 따돌릴 수 있겠어.”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 선수들이 하나둘씩 필드 위로 올라가고 있을 때 오토가 위즈헤이머에게 물었고, 쉬는 동안 바짝 마른 금발을 위즈헤이머가 쓸어 넘기면서 답했다.

위즈헤이머의 답에 오토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면 후반전도 비슷하게 해볼까?”

“막히지만 않으면 같은 방식으로 몇 골이라도 더 넣을 수 있을 걸?”

“막힐 리가 없잖아. 네가 뚫는 건데.”

신뢰가 가득 깃든 오토의 한 마디에 위즈헤이머가 씨익 웃었고, 두 사람은 곧 자리로 돌아간 뒤 심판의 휘슬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겁도 없이 선취점을 먼저 올린 상대 팀에게 확실한 승리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겠다고.

그 뒤로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한국의 공으로 경기가 재개되었을 때 독일의 필드 플레이어들이 모두 열을 올리며 한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남은 시간 동안 역전에 쐐기 골, 그리고 추가 득점까지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한창 한국을 압박하며 공을 쫓던 위즈헤이머가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눈썹을 꼬았다.

“···패스가?”

분명 한국 선수들은 유기적으로 쉬지 않고 패스를 주고받고 있었지만, 무언가 이상했고, 가만히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위즈헤이머는 그 이상함의 이유를 확인하고 미간을 모았다.

한국의 패스 워크에 일정한 규칙이 생겨난 탓이었다.

언뜻 보기엔 그저 근처에 있는 선수들과 공을 교환하는 것 같았지만.

“저 8번한테 모든 패스가 집중되고 있어?”

마치 모든 선수들과 공을 주고받는 것처럼, 아무리 못해도 최대 두 번의 패스가 이어지면 세 번째 패스는 꼭 8번에게 향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연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후 8번이 자리까지 옮겨가면서 모든 선수들의 패스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을 확인하곤 확신할 수 있었다.

단순히 착각이나 의심이 아니라, 실제로 지금 한국의 패스가 8번에게 몰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점을 뒤늦게 오토도 알아차리고 재혁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가면서 눈을 부릅떴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난질은 더 이상 못 할 거다.’

패스가 어디로 가든 결국 올 곳이 정해져 있다면 그곳에서 기다리면 되리라.

그 간단한 원리를 이용해 오토는 공을 뺏을 생각을 했고, 계속해서 재혁의 뒤를 쫓으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언제고 공이 재혁의 발밑에 떨어진다면···.

‘그걸 뺏어서 위즈헤이머에게 또 한 번 패스를 찔러주면 역전 골을 노릴 수도 있어.’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기회는 언제고 찾아올 것이고,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다면 경기는 완전히 자신들 쪽으로 기울 것이리라.

마침 한국의 후방을 돌던 공이 다시 한 번 8번을 향해가고 있던 상황.

그 타이밍에 정확히 맞춰 오토가 공이 오는 방향을 향해 발을 쭉 뻗으면서 미소를 떠올렸다.

이건 확실히 뺏었다고.

그런 확신에 찬 미소였다.

그렇게 자신의 발끝에 분명 공이 걸칠 것이라 생각하며 미소를 떠올리던 오토의 얼굴에···.

“!”

순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분명 자신이 먼저 건드릴 것이라 예상했거늘.

투웅!

“치잇!”

자신의 발보다 재혁의 발이 먼저 공에 닿더니 무난하게 다음 패스를 연결시킨 것이다.

하지만 오토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샛바람을 토해내며 바로 몸의 균형을 맞춘 뒤 재혁의 뒤를 쫓았다.

‘괜찮아. 이제 한 번이야. 앞으로 계속 압박을 넣는다면 분명 실수를 한다.’

비록 공은 뺏지 못했지만, 자신이 뒤를 쫓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각인 시켜준 상태.

자신의 존재를 상대가 의식하기 시작하면 부담감에 어쩔 수 없이 실수할 것이 분명할 테니.

그 점을 노리면 된다고 생각하며 계속 재혁의 뒤를 쫓으면서 그의 얼굴을 살피던 오토는···.

“···?!”

재혁의 얼굴이 여전히 차갑게 식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 얼굴은 흔들리기는커녕.

‘···반응도 없잖아?’

자신이 뒤를 쫓는 것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재혁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얼굴로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려는 듯, 동료가 자신을 향해 내준 공을 향해 재혁은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움직였고, 그런 재혁의 움직임을 쫓아가면서 오토가 이를 갈았다.

‘건방진 자식이···!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계속해서 자신이 공과 함께 놈을 쫓고 있던 만큼, 다음 패스는 바로 누구에게 주어야할지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공을 받는 그 순간, 틈이 생길 게 확실하다.

공격이 아닌 수비를 하는 입장에서, 하물며 공이 상대 진영에 머물고 있는 이 순간만큼에서 자신은 재혁보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어떻게든 공만 놈의 발에서 멀어지게 만들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다른 것 없이, 무조건 상대가 공을 받는 행동과 패스를 방해하겠다는 목적으로 오토가 재혁의 뒤를 쫓았고, 그런 오토의 움직임을 슬쩍 살핀 재혁은···.

스륵!

“?!”

공이 굴러오는 것을 건드리지 않고 다리 사이로 지나치게 만든 다음 가볍게 몸을 돌리는 턴으로 뒤를 쫓아 오던 오토의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가면서 가뿐하게 그의 압박에서 벗어났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턴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당한 것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역동작에 걸린 몸을 간신히 추스르고 있는 오토를 뒤로 하고서 작게 조소했다.

‘너무 빤히 보였어.’

목적이 뻔했던 만큼, 공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도 방법이 뻔했다.

상대가 공을 건드리길 원한다면 공을 건드릴 수 있는 각만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설명으로는 너무 간단한 방법이라 왜 상대가 막지 못했는지, 보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하나만 떠올리니 두 가지의 고민을 알 수가 없었던 거지.’

시야가 좁아지면서 스스로 자초한 결과인 것이니.

재혁은 균형을 잃고 발을 헛디디며 바닥으로 무너지고 있는 오토에게서 멀어지면서 가라앉은 눈동자로 전방을 살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으로 임종철 감독이 하프 타임에 전술판을 가지고 설명했던 ‘쉬프트’가 떠올랐다.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에 위치한 선수들이 끊임없이 ‘삼각형’을 이루는 쉬프트를 말이다.

한 때 스페인에서 유행하고, 바르셀로나가 사용하는 티키타카의 삼각 대형과 비슷한 바로 그 쉬프트였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은 필드에서 뛰는 10명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패스의 뿌리가 될 수 있었지만, 종철이 감독하고 재혁이 뛰던 중앙 초등학교에선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오직 재혁뿐이었던 것이다.

바로 지금 쉬프트의 삼각대형은 그때의 고민이 그대로 녹아들어 ‘오직’ 재혁을 중심으로만 선수들이 돌면서 삼각형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쉬프트였고, 이런 전술을 가능케 한 재혁을 벤치에서 바라보면서 임종철 감독이 미소를 떠올렸다.

‘원래대로라면 전국대회 4강전에서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당시에도 준비하면서 과연 가능할까 반신반의였는데···. 역시 저놈은 괴물이야. 이러니 ‘최재혁 쉬프트’라고 이름을 지을 수밖에 없지.’

선수 전원이 하나가 되어야 가능한 티키타카식 삼각대형에 비하면 많이 모자랐지만, 이거면 충분했다.

아직 조직력이 완성되지 않은 U-20팀을 상대론 말이다.

게다가 패스에 대한 부담도 필드에서 뛰는 10명의 선수들 중 오직 한 명, 재혁에게만 쏟아지는 만큼, 다른 선수들은 자유롭게 공간을 헤집으면서 재혁의 패스를 기다리는 게 대부분이었으니.

‘다른 조건 없이 최재혁, 한 선수만 있으면 가능한 전술이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오늘 경기에선 확실한 장점이 되어줄 게 분명했고, 그가 생각했던 대로 재혁을 중심으로 패스를 주고 받기 시작한 한국은 무서운 속도로 독일 진영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최후방에서 중원을 뚫고, 이제는 최전방을 목표로 이동하면서 패널티 박스를 눈앞에 둔 상황.

독일의 골키퍼 호프만이 그 모습을 보면서 당황한 목소리로 선수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지금 뭐하는 거야? 수비 제대로 안 해?!”

“그러고 싶어도···.”

“이건 알고도 막을 수가 없죠! 빠르게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계속해서 침투하는 한국!”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박상철 캐스터가 흥분한 얼굴로 마이크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소리쳤고,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최장수 해설도 빠르게 입을 움직였다.

“최재혁 선수, 계속해서 주변에 있는 동료들을 이용하고 있어요. 아주 영리한 플레이입니다!”

“그러는 와중 독일 선수가 최재혁 선수의 옆으로 밀착 마크에 들어갑니다!”

“어떻게든 패스를 끊어내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것 같지만···, 최재혁 선수는 머리가 좋은 선수거든요! 오히려 수비수가 다가오면서 열린 공간에 위치해 있는 동료와 2대1 패스를 주고받고···.”

“그대로 박스까지 침투! 득점 찬스죠!”

“호프만 골키퍼,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각을 줄이기 위해 뛰쳐나왔지만, 가볍게 키만 넘기는 로빙슛!”

“골! 공이 그대로 골대로 들어가면서 한국이 득점에 성공합니다! 두 번째 득점도 최재혁 선수의 발끝에서 터집니다!”

“이 득점은 큽니다. 단순한 1점이 아니에요.”

박상철 캐스터에 지지 않으려는 듯, 핏대가 선 목에 잔뜩 힘을 준 최장수 해설이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을 완전히 와해시킨 거거든요. 어떻게 대응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완벽하게 뚫어낸 겁니다!”

“전반전 내내 여유 있게 자리에 앉아 있던 귀도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을 보면 크게 당황한 것 같죠?”

“단순히 당황한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캐스터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최장수 해설이 그를 따라 웃으면서 답했다.

“오늘이 최상의 전력이라고 했던 독일인데, 그런 독일을 상대로 선전···, 아니. 압도하고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불안 요소라고 평가하겠지만, 저는 다릅니다. 최재혁 선수는 현 선수단에 꼭 필요한 선숩니다. 절대적으로요.”

“과연 그렇죠!”

최장수 해설의 말에 박상철 캐스터가 흥이 난 얼굴로 호응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한 사람, 이진용 해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뒤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진용 해설은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입술만 몇 차례 벙긋이다가 고개를 떨궜다.

***

“이건 끝났군.”

“···믿고 싶지 않지만 말이지.”

관중석에 앉아 있던 재거와 길로스, 두 독일인 스카우터들은 멍한 얼굴로 경기장을 내려 보다가 전광판에 적힌 점수를 확인하고 이마를 긁적였다.

2대1.

아직 20여분이 남아있지만, 아마 역전의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오히려 점수가 더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게 옳으리라.

두 사람이 동시에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선수, 한국의 8번 최재혁을 살펴보면서 중얼거렸다.

“저런 미드필더를 상대라면···, 1점을 지키는 것도 힘들겠지.”

“1점을 지킨다고?”

재거의 말에 길로스가 피식 실소를 흘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20분이 남았나? 3점···, 아니. 4점까지 차이가 벌어지지 않는 것도 기적이라고.”

“그래, 그렇겠지···. 응? 그런데 어딜 가나? 그래도 경기가 끝날 때까진 기다려야지.”

“당연하지. 경기는 마지막까지 지켜볼 거야. 다만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서 말야.”

재거가 당황한 목소리로 묻는 것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면서 답을 한 길로스가 관중석 뒤쪽으로 향하면서 짧게 답했다.

“호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새로 끊어야 해서.”

< 42. 최재혁 쉬프트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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