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41화 (41/225)

< 41. 불안요소 >

어이가 없기보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귀도 감독은 옆에 자리하고 있던 코치를 불렀고, 코치는 감독이 묻는 것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답했다.

“프리킥이었습니다. 시작부터 한국 측이 주입하던 강한 압박에 마이나가 컨트롤 실수를 했고, 그걸 억지로 파울로 끊었다가 거기서 그대로 프리킥으로 실점을···.”

“프리킥을 이용한 득점이라. 세트 피스는 아니었겠지?”

“네. 직접 골대 구석을 정확히 노려 찬 슛이었습니다.”

귀도 감독이 어이없어 하는 것처럼 코치 또한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좀처럼 표정을 펴지 못했다.

선취점에 경기를 주도하고 있어도 모자를 판에, 겨우 3분 만에 선취를 빼앗겨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치와 달리 나름 여유가 느껴지는 얼굴로 귀도 감독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서 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됐어. 세트 피스도 아니고, 필드 플레이로 이루어진 실점이 아니었으니, 아직은 괜찮아. 상대가 운이 좋았을 뿐이지.”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에 실점했다는 부담감이···.”

“우리 선수들이 그 정도로 부담을 느낄 것 같나? 이정돈 가벼운 핸디캡이라고 생각해. 마이나가 오히려 기세를 잃지 않게 기운을 북돋아 주라고.”

코치가 걱정하는 것에 감독은 어깨를 작게 들썩이면서 웃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감과 자부심, 그것들은 다른 어디에도 지지 않을 정도로 키워놓은 선수들이었다.

겨우 프리킥을 통한 실점으로 플레이에 자신감이 결여될 리 없을 것이리라,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이고, 실제로 경기장 위의 선수들은 한 점을 잃었어도 여전히 기세를 잃지 않고 전력을 다해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독일 선수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겨우 한 점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듯이 한국 측의 선수들도 여전히 강한 압박을 토대로 독일에 맞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8번, 최재혁.

중앙에서 쉬지 않고 재혁과 몸을 맞부딪치고 있는 독일의 미드필더, 오토가 인상을 구겼다.

‘이자식···, 뭐야?’

4백을 사용하지만 중앙에 5명을 놓는 4-2-3-1로 한국과 싸우고 있는 독일의 중원에서 패스의 핵이 되어주는 오토.

그런 만큼 공이 있든, 없든 쉬지 않고 한국의 선수들과 충돌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중원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재혁과 계속해서 몸을 부딪치고 있던 것이다.

이번에 또 한 번 오토는 공을 지키기 위해, 재혁은 공을 뺏기 위해 서로 어깨를 부딪쳤고, 오토는 재혁의 강한 압박을 바로 버티지 못하고 일단 공을 뒤로 빼는 선택을 취했다.

‘몸이 뭐 저렇게 단단해? 전부 뼈냐?’

겉으로 보기엔 호리호리해서 근육도 별로 없을 것 같았는데, 직접 부딪쳐보니 그게 아니었다.

마치 바윗돌과 몸싸움을 벌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오토가 아직까지 저릿한 왼쪽 어깨를 내려 보면서 중얼거렸다.

“아마 거기서 조금만 더 밀렸더라면···.”

“오토!”

잠시간 공이 뒤쪽을 도는 사이, 최전방에 자리하고 있던 위즈헤이머가 붉어진 얼굴로 오토를 향해 다가왔다.

오늘 경기를 뛰는 동안 공을 제대로 만져본 적이 거의 없었던 위즈헤이머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동료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패스가 내가 있는 곳까지 전혀 이어지질 않잖아! 어떻게 된 거야?”

“···힘들어.”

“뭐?”

“패스를 주기 힘들다고.”

다가온 위즈헤이머를 향해 오토는 땀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칼을 쓸어 올리면서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지금 저쪽에선 필드에 올라와 있는 10명이 자리를 가리지 않고 공만 보면 미친개들처럼 달려들고 있단 말야. 그 중에서도 저 8번이 특히 제일 미친개고. 네가 있는 최전방까지 빌드 업을 쌓아 올라갈 여유가 없어!”

“···.”

“그렇다고 롱 패스를 남발하면 그건 저놈들이 원하는 결과대로 흘러가는 걸 테고. 그러니 일단은···.”

“그러니까 네 말은 저 8번이 문제라는 소리지?”

짜증스럽게 불만을 토로하던 오토의 말문을 위즈헤이머가 중간에 막았고, 그의 말에 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을 확인하는 순간 위즈헤이머가 멈췄던 발을 다시 움직이면서 한 마디를 남기고 이동했다.

“그럼 필요한 순간엔 내가 놈을 맡아 줄테니까 넌 그때 네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라고.”

***

선취 득점을 올린 후 20여분이 지났고, 여전히 1대0으로 득점에선 앞서고 있었지만 경기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독일은 쉬지 않고 공세를 퍼부었고, 한국은 간헐적으로 역습을 시도하면서 추가 득점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여전히 전반전을 진행 중이었지만 선수들의 피로가 점차 쌓여가고 있을 순간, 재혁의 눈동자에 한순간 빛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내려왔어?’

수비에 집중적으로 시간을 쏟고 있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상대 팀의 공이 머무는 장소가 점점 후방으로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최전방에 머물고 있던 독일의 10번, 위즈헤이머가 수비를 달고 점차 2선에 가까운 쪽으로 위치를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레 독일의 7번인 오토와 몸을 부딪치는 일보다 10번인 위즈헤이머와 충돌이 잦아지게 된 재혁이 공을 따라 수비 위치를 계속 바꾸면서 눈썹을 모았다.

무슨 꿍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대가 의도적으로 자리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 탓이다.

자연히 자신의 압박에서 벗어난 오토는 위즈헤이머를 향해 패스를 뿌려 주었고, 재혁을 등진 상태에서 오토의 패스를 받았던 위즈헤이머는 공이 굴러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멈추지 않고···.

투욱!

“!”

축구화 옆면으로 살짝 건드리는 것으로 공이 굴러가는 각도만 살며시 깎았다.

재혁이 패스의 방향을 알아차렸을 때, 위즈헤이머는 등을 지고 있던 재혁의 옆을 뚫고 공간을 찾아 뛰고 있었고, 위즈헤이머가 각도만 살짝 바꿨던 패스는 패스와 동시에 자리를 찾아 이동하고 있던 오토의 발앞에서 멈춰섰다.

재빨랐던 독일의 월패스. 하지만 그들의 플레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는 것은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찌른다!”

투웅!

위즈헤이머에게서 돌려받은 패스를 멈추지 않고 재차 전방으로 송곳처럼 찔러넣은 오토.

그는 굴러가는 공이 향하는 장소와 그 공을 향해 달려가는 여러 선수들을 눈에 담으면서 씨익 웃었다.

‘역시 내가 아는 선수들 중엔 저 녀석이 제일 빨라.’

붉은 유니폼들 사이를 뚫고 오토의 패스를 받아 유유히 드리블을 시작한 위즈헤이머.

그는 단 한 번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수비수들을 뿌리치기 무섭게 정교한 드리블로 골키퍼와의 거리를 가늠하더니 비어있는 왼쪽 하단에 공을 찔러 넣은 후, 동점골을 기뻐하며 고함을 질렀다.

***

“아, 결국 실점하고 맙니다.”

“공간을 이해하는 독일 선수들의 움직임이 매우 좋은 플레이였죠. 이래서 오토 선수를 자유롭게 두면 안 되는 겁니다. 득점을 하는 것은 위즈헤이머 선수지만, 득점이 나올 상황을 만드는 것은 오토 선수의 패스거든요.”

“골키퍼인 신용구 선수가 매우 아쉬웠는지 장갑을 낀 손으로 잔디를 때리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박상철 캐스터와 최장수 해설이 실점 상황을 다시 보면서 연신 안타까움이 깃든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으나, 그 사이에서 이진용 객원 해설은 타블렛 펜을 꺼내 한 선수 위에 붉은 색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결국 여기서 실수가 나왔던 겁니다. 위즈헤이머를 마크해야 할 최재혁 선수가 상대를 제대로 따라가질 못해주니, 수비의 열린 틈을 자유롭게 노리고 재빨리 득점할 수 있었던 거죠.”

“방금의 실점은 한 선수에게 모든 책임을 전과할 순 없지 않나요?”

“오토 선수와의 월패스 이후, 바로 공간을 찾아갈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건 최재혁 선수의 실수가 맞죠.”

“···.”

“전반전 내내 쉬지 않고 계속 뛰어다니더니, 정작 중요한 순간에 지쳐서 속도를 잃어버린 겁니다. 제가 경기 시작 전에 말했던 ‘불안 요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군요. 사실 이건 감독의 문제이기도 하죠. 애초에···.”

기회가 찾아오자 이번에도 재혁과 임종철 감독에 관해 쓴소리를, 아니. 가시 돋친 말을 사정없이 쏟아내기 시작한 이진용 해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그런 진용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최장수 해설이 뒤늦게 마이크에 대고 있던 입을 열었다.

“불안 요소라는 말은 무리가 아닙니까? 선취점을 성공 시키고 지금까지 독일과 대등하게 경기할 수 있게 유지한 것이 최재혁 선수의 득점 덕이었으니까 말이죠.”

“축구는 후반전까지 치러야 끝이 나는 운동입니다. 초반에 있었던 상황으로 기뻐할 순 없죠.”

“그렇다면 그 말씀 그대로, 아직 후반이 모두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불안 요소라고 최재혁 선수를 평가하긴 힘든 거죠.”

“!”

진용이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해 반박한 최장수 해설은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용의 시선을 외면하고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다시 한 번 마이크에 말했다.

“방금 실점은 굳이 이야기하자면 조직력의 문제였죠. 선수 하나를 마크하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패스를 자르지 못한 게 문제였던 겁니다. 아직까지 큰 실점 없이 비등하게 경기를 치르고 있는 만큼, 부디 선수들이 실점에 마음 쓰지 말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계속 했으면 좋겠군요.”

“아, 최장수 해설이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순간, 마침내 전반전이 끝이 났군요. 주심의 휘슬에 맞춰 선수들 벤치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후반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박상철 캐스터의 빠른 상황 정리 이후 카메라의 불이 꺼졌고, 마이크를 내려놓은 사람들이 화장실이라던가, 갈증이 난 목을 축이기 위해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났다.

하지만 최장수 해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면서 이진용 해설이 앉아 있는 곳을 한동안 노려보더니 혀를 쯧, 차곤 말라가는 입술을 축였다.

***

“모두 잘하고 있다.”

벤치로 돌아온 선수들이 목을 축이거나 다리 마사지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임종철 감독이 박수를 쳐가면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전체적인 경기력에선 밀리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적어도 동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이것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럼 지금부터 잘 들어라. 후반전은 전반전과 약간 차이를 둘 생각이다.”

“차이를 둔다고요?”

“전반전 내내 쟤들이 공을 가지고 노니까 심심했지? 특히 최재혁.”

다리를 곧게 펴고 종아리를 마사지 해주고 있던 재혁이 자신의 이름을 듣고 고개를 슬쩍 들어 임종철 감독의 얼굴을 살폈고, 종철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재혁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전술판 위의 말들을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반전엔 심심할 시간이 없을 거야.”

“···그건.”

“이 진영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 지는 기억하고 있겠지?”

말들의 위치가 변화하면서 익숙한 형체를 갖춰가자, 재혁이 살며시 모은 눈동자로 계속해서 전술판을 살폈고, 그런 재혁을 향해 종철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함께 준비했던 거니까 말이다. 비록 그땐 빛을 보진 못했지만, 오늘이라면 확실히 보여줄 수 있겠지. 불안 요소들이 완전해지는 법을···.”

< 41. 불안요소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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