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발견이란 >
재거는 뮌헨에서, 길로스는 프리 에이전트로 구단이 아닌 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카우터였는데, 둘 다 독일 유망주들의 실력 점검을 위해 한국과의 친선전을 관람하려고 서울까지 온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재거는 뮌헨에 속해 있었던 만큼, 독일 유망주들이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구단 측에서 관심 있는 선수를 영입할 수 있도록 보고서를 작성해 자주 올렸는데, 안타깝게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유망주, 위즈헤이머가 현재 뮌헨과 오랜 라이벌 관계에 있는 1860 뮌헨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야장천 오퍼를 넣어도 칼같이 잘리기 일쑤였는데, 그 과정을 항상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길로스는 자연히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 꿈 좀 접어라. 1860 뮌헨에서 위즈헤이머를 보내줄 거 같아?”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고. 저 놈은 독일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어줄 미래야. 그런 선수를 우리가 키우지 않는다면 어디서 키우겠어?”
“키울 곳은 많지. 바이에른 뮌헨만 구단인가? 다른 독일 구단들을 너무 무시하지 말라고.”
“흥. 퍽이나.”
길로스의 말에 재거는 재차 콧방귀를 뀌면서 경기를 녹화할 카메라를 준비했고, 길로스도 쯧쯧 혀를 차면서 재거의 카메라 옆에 바로 자신의 카메라를 나란히 설치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서로에게 화면을 겹치게 찍지 말라던지, 선 꼬이니까 다른 곳으로 가라며 신경전을 끊임없이 벌였는데, 선수들이 하나둘 필드 위로 등장하는 것을 발견하고 둘 다 입을 닫았다. 괜히 쓸데없는 잡음으로 오디오를 엉키게 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카메라를 설치해놓은 곳과 몇 발자국 거리를 두고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턱을 괴고 시합을 준비하고 있는 선수들을 내려 보면서 중얼거렸다.
“분명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살펴보면 우승 후보인데 말야.”
“그렇긴 하지만, 선수들 사이의 격차가 너무 심해. 당장 프로에서 벌써 뛰고 있는 선수들하고 아닌 선수들의 차이가 심하잖아?”
재거의 말에 길로스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사실 유망주라는 말을 다시 풀자면 프로 지망생이었고, 그보다 더 신랄하게 평가하자면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한 선수라는 의미였다.
프로가 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만한 능력이 아직 완연히 꽃이 핀 게 아니라는 소리였으니, 벌써 프로로 데뷔한 선수들과 아닌 선수들의 격차가 심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설명이었고, 현재 그것이 바로 독일
선발 선수가 빠져버리면 그 뒤를 받쳐줄 선수가 거의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비록 업무에 관해서는 경쟁 상대였지만, 둘 다 독일인이라는 공통된 의식으로 연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심판이 주변을 정리하고 양팀의 주장을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곧 경기가 시작될 것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입을 닫았다가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몇 마디를 추가로 나눴다.
“그래서 길로스, 네가 알아보고 있는 선수는 누구야? 아무 일 없이 여기까지 온 건 아닐 거 아냐? 분명 어떤 구단한테 의뢰를 받았으니까 여기에 앉아 있는 거겠지?”
“흐음. 글쎄. 구단 명까지 알려줄 순 없고. 영국에서 들어온 의뢰라는 것만 알려줄게.”
“어차피 몇 다리 건너면 다 알게 될 일인데, 비싼 척은.”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려는 것뿐이야.”
재거가 턱을 괴고 눈썹을 꼬면서 다시 한 번 혀끝을 퉁기자, 길로스는 그런 재거를 옆에서 바라보면서 어깨를 으쓱이다가 알겠다면서 한 마디를 더했다.
“중원에서 뛸만한 자원을 구하고 있더라고. 아무래도 은퇴를 앞 둔 선수가 있다 보니, 키워서 쓸 만한 선수를 찾고 있는 거겠지.”
“중원에서 뛸만한 선수를 찾는 영국 팀이라···. 흐음.”
길로스가 미드필더들을 중점으로 살필 것이라고 말하자 재거가 슬쩍 선발 명단을 살펴보면서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벌써 들어오는 몇몇 선수들의 이름이 있었으나···.
“영국에서 뛰기 적합한 선수는 별로 없어 보이는데.”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일이니까. 그리고 또 모르는 일이잖아?”
재거의 말에 간단히 대꾸하면서 길로스가 독일 팀의 선발 명단의 옆에 나란히 작성된 한국 팀 선수들, 그 중에서도 유일한 한 명의 프로 선수의 이름을 눈에 담으면서 작게 속삭였다.
“원래 발견이란 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는 거니까 말야.”
***
한국의 선발 11명에 이름을 올린 재혁이 자리에 서서 호흡을 고르면서 상대 팀을 살폈다.
분명 신체 나이는 자신과 비슷할 텐데, 체구에서 꽤 차이가 나는 독일 선수들을 보면서 재혁은 뺨을 긁었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호주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들의 몸이 더 무식하긴 했지.’
이미 신체적으로 우위에 선 선수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특별히 겁이 난다거나, 두려움이 생기진 않았지만, 호기심은 있었다.
과연 지금 자신의 실력과 저 선수들과의 차이가 어느 정도나 될지 말이다.
임종철 감독에게 전해 듣기론 자신처럼 벌써 프로 팀에서 데뷔를 한 선수들도 몇몇 있다고 했으니, 분명 무시할 만한 수준의 선수들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재혁이 슬쩍 고개를 들어 관중석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눈에 담곤 빙그레 웃었다.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 머리가 제법 길어진 만큼 숙녀 티가 나는 재혁의 동생, 재희였다.
멍하니 필드를 내려 보던 재희가 뒤늦게 재혁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앉은 자리에서 양손을 넓게 펼쳐 손을 흔들어 주었고, 재혁도 그런 동생을 향해 짧게 손인사를 보낸 뒤 다시 시선을 중앙으로 옮겼다.
‘오랜 만에 동생이 보는 앞인데, 창피를 당할 순 없지.’
초등학생 이후, 처음으로 동생 앞에서 시합을 뛰는 것인 만큼, 재혁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휘슬을 기다렸고, 심판이 경기의 시작을 알리기 무섭게 공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 축구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 캐스터를 맡게 된 박상철입니다. 그리고 옆에는 오늘 저와 함께 중계를 맡아주실 최장수 해설과 이진용 객원 해설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장수입니다.”
“이진용입니다.”
붉은 빛이 떠있는 카메라를 향해 짧게 자기소개를 끝마친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꾸벅였다.
그 뒤로 캐스터인 박상철과 본래 방송국에 속해있던 최장수 해설은 평소처럼 밝게 웃었으나, 객원으로 자리한 이진용 해설은 기계적인 미소로 간단히 예만 갖춘 뒤 뚱한 얼굴을 카메라에 비추었다.
마치 지금 이 자리가 불편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 점을 바로 읽은 박상철 캐스터가 간단한 오프닝 이후 이진용을 향해 물었다.
“이진용 해설께선 오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시네요. 이유가 따로 있으신가요?”
“이유라고 굳이 밝힐 이유가 있겠습니까? 안일한 선수 선발 때문인 게 당연하지요.”
“대표팀에 안일한이라는 선수는 없는데요?”
“···.”
“농담이었습니다. 계속 말씀하실까요?”
방송만 아니었다면 몇 가지 형용사를 덧붙였을 얼굴로 진용이 말을 계속 이었다.
“컨티넨탈 컵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을 배제하고 뽑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임종철 감독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하지만 검증된 선수들을 제외하고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하겠다는 취지는 분명 좋은 의도가 아닐까요?”
“취지가 좋다고 꼭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여전히 불만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말을 이어가던 진용이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 말했다.
“당장 있는 선수들의 조직력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데, 새로운 선수를 선출한다면 또 다시 팀워크를 가다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디 선수란 팀이란 옷의 전술에 맞춰 움직이는 거니까요. 그 점을 고려한다면···.”
슬그머니 시선을 내려 오늘 출전하는 선수들의 명단이 적힌 종이 두 장을 눈에 담던 진용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독일이라는 구하기 힘든 평가전 상대를 앞에 두고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번 선수 선발은 ‘성적을 우선시 하겠다’라는 임종철 감독의 모토에 어긋나는 일이 되겠지요.”
“글쎄요.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이진용 해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너편에 앉아 있던 최장수 해설이 안경을 고쳐 쓰면서 침묵하고 있던 입술을 뗐다.
“오늘 상대하게 될 독일도 분명 강팀이긴 하나, 청소년 대표라는 특성상 1군과 2군의 격차가 심합니다. 당장 눈앞에 열릴 컨티넨탈 컵이 아닌, 내년에 열릴 더 큰 대회를 목표로 한다면 선수들 사이의 실력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고른 분포가 중요한 법이죠.”
“고른 분포를 고려하다가 대회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대회 중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입니다. 그에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안전한 대비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저는 이번 선출에 이의가 없습니다.”
“이의가 없으시면 안 되죠.”
진용이 자신의 말에 그대로 반박하자, 최장수는 잔뜩 끌어 모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향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고, 진용은 검지를 꺼내 책상을 톡톡 건드리면서 한 선수의 이름을 읽었다.
“그런 식으로 대비를 한다고 말씀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최재혁. 이 선수의 존재가 사실 모든 것을 흐려버리지 않았습니까? 해외에서 뛰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국내가 아닌 호주에 있는 선수를 뽑아오다니요. 이건 어불성설이죠.”
“!”
“오늘 경기에서 선발로 뛸 요량인 것 같습니다만, 만약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짧게 입술을 끌면서 한 차례 숨을 고른 진용은 자신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는 최장수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서 말을 끝냈다.
“임종철 감독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죠. 물론 최재혁 선수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을 거고요.”
“선수를 겨우 한 경기로 판단을 할 수는···!”
“아무래도 많은 축구팬들의 관심이 많았던 만큼, 해설을 맡아주신 두 분도 뜨거운 열기로 이야기를 나누어주셨군요!”
카메라를 앞에 두고 충돌한 두 사람을 캐스터인 박상철이 웃으며 바라보다가 서둘러 회장을 정리했다.
더 이상 기름을 부었다간 어떻게 대화가 흘러갈지 갈피를 잡기 어렵기도 했고, 이만하면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충분히 쓸만한 그림을 뽑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곧 있으면 경기가 시작될 테니, 이 이상 말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었다.
두 사람도 결론이 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캐스터의 의도에 맞춰 유려하게 대처했다. 그러기 위한 프로였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스포츠에 만약은 없다. 모든 것은 결과론에 따라가니까.
결국 오늘 떠든 이야기는 독일과의 평가전 결과가 어떻게 나오냐에 달려 있었으니, 다른 두 사람도 입을 닫고 시작될 경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렇게 짧았던 광고가 지나가고, 필드 위로 선수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중계 카메라가 잡아주면서 세 사람의 대화 소리가 빨라졌다.
“먼저 한국의 선수들입니다. 골키퍼 신용구, 수비수 이서문, 이양현, 유정규···.”
“이어서 독일입니다. 골키퍼에 호프만, 수비수에 네크벨, 브라크멘, 크보라···.”
“선축은 독일 선수들 같죠?”
“그렇군요. 독일의 최전방을 맡고 있는 위즈헤이머의 패스로 경기 시작됩니다!”
“시작과 동시에 전방에서 압박을 시도하는 한국! 기운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군요!”
“그 중에서도 8번, 최재혁 선수가 눈에 띕니다. 중앙에서 쉼없이 뛰어주는 군요. 저런 선수가 같은 팀이라면 아무래도 함께 뛰는 선수들이 부담이 덜하겠죠?”
카메라에 비추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는 박상철 캐스터와 최장수 해설은 최대한 열의가 끓어 넘치는 목소리로 중계를 이어갔으나···.
“자신의 체력을 과하게 신용하고 있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결국 체력이 방전되면 그에 대한 부담감을 모든 동료 선수들이 안고 가야하니까 말이죠.”
“···.”
“게다가 첫 대표 선출인데, 과욕으로 어긋난 결과를 이미 많은 선수들이 보여줬으니. 부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진용 해설은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형식으로 자신만의 해설을 이어갔다.
***
한국의 선발 명단을 확인하고 실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은 이진용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독일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귀도 감독 또한 한국의 선발 명단을 확인하고 자연히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기대했던 선수들의 이름을 명단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야 애써 한국까지 온 이유가···. 쯧.’
하다못해 다른 건 몰라도 바르셀로나 유스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체크해보고 싶었는데.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은 전부 제외하고 국내에서 뛰는 선수들만 잔뜩 모아서 팀을 꾸리고 나온 한국 팀을 보니 귀도 감독은 연습을 위한 상대로 만족하기 힘이 들었던 것이다.
그나마 해외에서 온 선수라고는···.
‘8번, 최재혁이라는 선수뿐인가. 그것도 호주에서 온 선수라.’
내년에 열릴 대회의 사전 점검이라는 이유로 한국에 온 이유가 무색해지게 만드는 전력에 귀도 감독은 아쉬움에 찬 한숨을 푹 내쉬더니 뺨을 긁적였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돌릴 수 없다면 현재 주어진 기회를 그나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떠올리기 위해 귀도 감독이 턱수염 끝을 긁적이며 생각을 계속 했다.
‘2점 차이로 앞서 나가기 시작하면 위즈헤이머를 포함해 1선에서 뛰는 선수들을 전부 후보 선수들로 교체를 해줘야겠···.’
“와아아아!”
“?!”
한창 후보 명단을 살피면서 펜대로 이마를 긁적이고 있던 귀도 감독은 갑자기 들린 환호성에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눈에 비추는 상황을 확인하곤 두눈을 부릅떴다.
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을 뗐던 것은 겨우 3분 남짓.
그런데 그 시간 안에···.
“골을 넣었다고? 대체 언제, 어떻게?!”
한국 선수들이 선취점 득점에 성공하고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40. 발견이란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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