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36화 (36/225)
  • < 36. 명단 >

    [헐. 진짜요?]

    [제발 올려주세요. 궁금해서 못 참겠어요.]

    [영상 올려주실 때까지 숨 참겠습니다. 사람 죽는 거 보기 싫으면 얼른 올려주시길.]

    [전 금식합니다.]

    [전 담배를 참겠습니다.]

    [윗분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안올리는 게 나을 지도···.]

    [그래도 다른 두 분은 살려드리려면 올려야죠. 그럼 저도 영상이 올라오기 전까지 물을 안마시겠습니다.]

    대체 어떤 식으로 재혁이 플레이를 했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인지 궁금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글을 남겼고,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새로운 글과 함께 수십 개의 영상 클립이 첨부된 글이 올라왔다.

    재밌게 보겠다는 댓글을 먼저 남겼던 사람들은 이후 영상들을 감상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게 정말···, 고등학생이요?]

    [A리그 프로팀들 물갈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고딩 수준이···.]

    [마지막 골 어시스트 쩔었다. 오른쪽에 시선 집중 시켜놓고 반대쪽으로 한 번에 뚫어버리는 패스라니. 빌드업 과정 보고 소름 돋았음;;;]

    영상들을 모두 둘러본 후 놀람으로 가득한 댓글들을 추가로 달았다.

    재혁의 플레이를 비록 풀 경기가 아닌 조각난 영상들을 통해서 밖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매 영상들이 하이라이트처럼 보이는 효과를 낳았던 것이고, 영상마다 자신들이 확인한 재혁의 실력을 떠올리면서 사람들은 잔뜩 흥분한 어조로 계속해서 댓글을 달았던 것이다.

    영상을 모두 확인한 사람들은 이제 경기에서 재혁이 쌓은 스텟까지 가지고 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본이 되는 패스부터 느낌이 남다른데요? 거의 실수가 없는 것 같던데.]

    [90분을 모두 뛰었을 때 패스 성공률이 93% 였다고 하니, 실수가 거의 없는게 맞죠.]

    [드리블도 되게 간결한 거 같은데, 엄청 효과적인 듯? 미드필더면서 드리블 돌파가 6회네요.]

    [볼 터치 횟수도 100회 이상으로 팀내 최다···.]

    [이거 진짜 미쳤네.]

    이제 겨우 한 경기.

    하지만 그 한 경기에 남긴 임팩트가 누구보다 강렬했기에 그 날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하루종일 재혁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었고···.

    “슬슬 빛이 나려 하는군.”

    그런 재혁의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이상민 기자가 옅게 미소를 보이며 웃었다.

    3년을 기다렸던 꽃망울이 드디어 터질 준비를 끝마친듯 했으니까.

    ***

    시드니 유나이티드 전이 끝나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일단 첫 째로 팀 내 위상.

    팀에서 재혁에게 프로 계약에 대해 문의한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단순히 컵 대회에서만 써먹기에는 재혁의 능력이 아깝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으나, 재혁의 대리인 역인 로니는 팀의 프로 계약 제의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처럼 파트타임 유소년 계약이면 충분합니다. 2부 리그에서 경험을 쌓고, 간간히 컵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면 재혁도 만족하고 있으니까요.”

    루아드 감독을 대신해 협상 테이블에 앉은 시드니 FC의 관계자가 로니의 말에 난처하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그렇지만 그래서야 팀에서 주급도 못 주지 않나? 절대 섭섭치 않게, 최소 로테이션 급 계약까지 해줄 의향이 있소.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유소년 계약이 아닌, 프로 선수 계약을 하는 게 어떻겠소?”

    “그건 당연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아시아쿼터를 이용해도 협회가 인정할 수준의 급여가 아니라면 애초에 허가가 떨어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

    “정 계약을 하고 싶으시다면 아까 제가 말씀 드렸듯이 1년의 단기 계약. 그게 아니면 안 됩니다.”

    로니가 확고한 어조로 단언한 것에 관계자가 당황해 눈썹을 찌푸렸다.

    “그건 우리가 곤란···.”

    “그러면 답은 정해졌군요. 지금 계약 상태를 유지하는 걸로 매듭짓도록 하죠.”

    “로, 로니 단장!”

    로니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버리자 관계자가 당황해 목소리를 높였고, 로니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관계자를 향해 왜 불렀냐고 물었다.

    이에 관계자는 하얗게 색이 바래가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앞으로 시드니 아카데미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 지, 난 장담 못하오!”

    유소년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 연결되어 있는 협력 관계.

    그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것···, 아니. 협박에 가까운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로니는 피식 실소를 흘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편한 대로 하십쇼. 그 생각에 루아드 감독도 동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 그건···.”

    “그 부분에 대해선 제가 따로 루아드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대리인 자격으로 이곳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전 먼저 실례할테니, 편하실 때 알아서 나가시길.”

    그 뒤로 이어지는 관계자의 성난 목소리에 대꾸하지 않고 로니는 그대로 자리를 빠져나왔고, 휴게실에서 냉수를 벌컥이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물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벌써 왔나? 오늘은 추가 훈련이 없었나 보지?”

    “내일은 퍼스트 팀의 리그 경기날이라 제가 오래 있을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러면 훈련실에서 따로 개인 훈련이라도 해. 마침 B룸이 비어있으니까 잘 됐군. 오랜 만에 내가 폼을 봐주지.”

    다 마시고 빈 종이컵을 휴지통에 던져넣은 로니는 그대로 재혁을 이끌고 훈련 장소로 향하려 했으나, 재혁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뒤를 돌 수밖에 없었다.

    “저 때문에 괜히 스트레스 받으시는 건 아니죠?”

    “스트레스?”

    “방금 저기서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재혁.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반쯤 열렸던 휴게실 문을 다시 닫은 로니가 재혁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우리 관계는 비지니스다. 서로의 성공을 위해 열린 관계란 소리지. 그걸 이어주고 있는 것은 차범수고, 그 이상을 나는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있다.”

    “···.”

    “그러니까 네가 내게 미안해 할 이유는 없어. 오히려 날 돕고 싶다면 실력을 키우는 게 도와주는 거야. 내 목표는 아카데미 출신의 선수가 세계 톱급 선수가 되어 이력에 한 줄을 남기려는 거니까 말이지.”

    그 뒤로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를 더 했던 로니 단장은 차갑게 굳은 얼굴로 휴게실을 벗어나면서 준비가 끝나면

    “단순히 그런 이유 치고는 사정을 꽤 많이 봐주고 계신데 말이죠.”

    비지니스 관계라는 로니 단장의 말에는 동의할 수 있었지만, 그랬다면 로니는 팀의 프로 계약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이미 재혁의 배경에는 로니가 운영하는 시드니 아카데미가 확실히 새겨져 있었으니까.

    자신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그저 수익을 위해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고, 여러 부가 사항들을 추가해 클럽에 넘겨버리면 모든 게 쉽고 간편하게 해결 됐을 것이다.

    하지만 로니는 그러지 않았고, 꼭 해야 한다면 1년 계약을 고집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운신이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니···.

    재혁은 운동복으로 갈아 입은 후 훈련장으로 향하면서 자신을 다잡았다.

    ‘신세 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꼭 성공해야겠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으니,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리라.

    그런 다짐을 하면서 재혁은 가라앉은 눈동자를 빛냈고, B룸으로 들어가 로니와의 훈련을 시작했다.

    ***

    그 뒤로도 여전히 시드니 FC의 U-21팀에 소속되어 경기들을 치루던 재혁은 컵 경기가 있을 때면 퍼스트 팀으로 콜업이 되어 시합을 뛰었고, 매번 눈에 띄는 활약으로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겨우 고등학생 쯤 되는 선수가 A리그의 특급 선수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관중들은 복잡한 심정이었는데, 그래도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혁은 분명 빅 리그에 진출할 것이라는 사실에 말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자국 리그의 수준이 낮다고 한탄하는 게 아닌, 유망주가 성장하는 재미로 재혁을 지켜보기 시작했고···.

    [U-18 청소년 축구 대표팀, 컨티넨탈 컵 대비 소집 명단 발표. 명단에는···.]

    [최재혁! 연령대 대표로 뽑혔구나!]

    [하긴. 저런 선수가 있는데 안 뽑는 게 이상한 거지.]

    재혁이 청소년 대표로 소집되었다는 기사에 사람들은 마치 자국 선수가 뽑힌 것처럼 기뻐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재혁에 대해 알고 있는 호주의 축구팬들의 사정이었고, 국내 팬들의 반응은 사못 달랐다.

    [최재혁이···, 누구에요?]

    [어디 고등학교임?]

    [그보다 이 선수 연령대 대표팀에 여태까지 뽑힌 적이 있었나요? 전 처음 보는 이름인데요.]

    기존에 소집된 선수들에 비해 알려진 바가 없었던 이름이 느닷없이 명단에 등장한 탓에 꽤나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U-18의 대표팀이라고 한다면 꾸준히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한 선수들이 모이는 자리였으니, 난생 처음 보는 이름인 만큼, 혹여 어딘가에서 따로 알려진 인물인가 싶어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째선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 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명성답게 사람들은 머지않아 집단지성을 이용해 재혁에 관한 정보들을 하나둘 찾아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람들이 찾아낸 정보는 재혁이 한국에서 중앙 초등학교의 선수로 뛸 때의 기록이었다.

    그것도 오래된 것이 아닌, 겨우 몇 개월을 뛰었을 때의 기록이었는데···.

    [8강전까지 전 경기 득점? 이거 실화임?]

    [이거 기록만 보면 중앙초가 4강에서 몰수패만 안 당했으면 우승까지 했겠는데요? 영동초가 우승을 하긴 했는데, 예선에서 중앙초를 두 번 만나 두 번 다 졌었잖아요?]

    [그건 장담할 수 없는 거지만, 확실히 결승전까지 갔다면 어떻게 될 지 모를 대회였긴 했네요.]

    [오진다. 이런 선수가 있었구나. 처음 알았네.]

    다들 재혁의 기록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출전한 경기들에서 모두 득점을 성공했다는 말도 안되는 기록은 도저히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기 힘들었지만, 그 기록이 몰수패만 아니었다면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다들 흥분했다가···.

    [그런데 왜 초등학교 이후 기록이 없죠?]

    [중학교는 어딜 간 거에요?]

    [그보다 지금 이 친구가 속한 고등학교 아시는 분? 전국대회 영상으로 뛰는 모습 좀 찾아보려고 하는데, 찾기가 힘드네요.]

    그 이상 되는 기록을 찾을 수가 없어 다들 의아해했다.

    이만한 성적을 낸 선수라면 분명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평범한 학교로 가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허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정보를 알 수가 없어 다들 당황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제목에 느낌표를 잔뜩 박아 넣은 글을 작성했다.

    [대박! 제가 최재혁이라는 선수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찾았습니다!]

    < 36. 명단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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