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30화 (30/225)
  • < 30. 2부 리그 데뷔 >

    “응? 저건 누구야? 처음 보는데.”

    “글쎄요. 저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인지라.”

    “시드니 FC의 프리 시즌 경기들은 다 복기 했다며? 근데도 몰라?”

    벤치에 앉아 있던 APIA FC의 감독과 코치가 후반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시드니 FC에서 선수를 교체한 것을 확인하고 미간을 모으며 대화를 나눴다.

    감독은 다른 무엇보다 코치가 상대 선수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일단 첫 경기는 잡고 가겠다는 생각에 다른 팀들보다 시드니

    그래도 일단은 선취점을 올린 것은 자신들이었으니, 감독이 나름 침착한 어조로 재차 코치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시드니 FC에서 3백을 시도한 적은 없었지?”

    “네. 아무래도 U-21에선 퍼스트 팀에 선수들을 자주 빼앗기다보니 선수들이 적응하기 쉬운 4백을 주로 썼고, 그건 프리 시즌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지금 갑자기 3백을 꺼낸다? 이거 완전 구리잖아.”

    구리다 못해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아무리 2부 리그라고 할지라도 정규 시즌은 훈련과 연습을 위한 자리가 아닌, 증명을 위한 자리였다.

    그런 곳에서 대뜸 도박성이 짙은 전술을 시도한다?

    ‘못 할 짓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야. 특히 코헨 감독 같이 신중한 스타일의 감독이라면 더더욱.’

    APIA의 감독이 입을 가리고 가라앉은 눈빛으로 경기장을 노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상대가 먼저 행동을 취했으니, 그에 반응을 해야 한다.

    하지만···.

    ’겨우 1점이지만 일단은 우리가 앞서고 있어. 상황을 지켜보자.’

    상대가 보인 변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으니, 감독은 일단 이어질 경기를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주심이 휘슬이 부는 것을 확인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필드 위에 올라와 발목을 풀고 있는 선수, 교체로 들어온 시드니

    ***

    단순히 3백이라는 숫자를 놓고 본다면 여러 가지 의견들이 제시되는 상황이 자주 나온다.

    수비적인 3백, 공격적인 3백, 유지를 위한 3백.

    그만큼 수비에 3명을 두는 것으로 다양한 전술적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소리였지만, 한 가지 만큼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중앙에 힘을 실어주는 것.

    3백의 근간이 되는 일차적인 목적은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흐름이 바뀌어도 항상 똑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목적이 확실했던 만큼, 후반전이 시작되자 시드니 FC의 공은 틈만 나면 중앙에 모였고, 중앙으로 공이 향하면 항상 시드니

    그런 재혁을 상대하고 있는 APIA의 미드필더, 비즈코가 숨을 몰아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또 쟤야?’

    후반전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10분 가량이 흐른 것 같았는데, 어째선지 벌써 다리가 무겁고 숨이 가빠왔다.

    비즈코는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선수가 그 원흉이었던 것이다.

    공이 일단 저 8번한테 향하니 그를 따라가긴 해야 했는데, 단순히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앞을 막기 위해 움직이면 공을 옆으로 빼내 양 측면으로 패스할 공간을 뚫었고, 드리블을 경계하고 거리를 약간만 벌려 놓으면 주위에 위치한 동료와 2대1패스를 주고받은 뒤 공간을 열어 중장거리 패스를 시도해버렸으니.

    이러나저러나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저 녀석의 뒤꽁무니를 쫓아가야만 했는데, 놈의 움직임이 워낙 기묘하고 기민해서 쉬이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틈을 노려 전방으로 공을 찔러 넣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만 없었던 비즈코를 향해 동료가 소리쳤다.

    “뭐하고 있어? 아까부터 저 8번에 압박이 전혀 안 되고 있잖아?”

    공을 뺏으려면 실수를 유발시켜야 하고, 실수를 유발시키려면 압박을 넣어 조급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만 그걸 모르고 있는 게 아니었던지라 비즈코가 동료의 외침에 바로 반박했다.

    “다람쥐처럼 이리저리 잘 도망 다니는 녀석을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아니, 그러면 패스라도 못하게 확실히 묶던가! 저 8번한테만 공이 가면 박스까지 자꾸 뚫리잖아? 일단 어떻게든 자유롭게 뛰게 두지 말라고!”

    “···후우.”

    그걸 몰라서 못하고 있겠냐?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토해내려던 비즈코가 간신히 숨을 삼키고 호흡을 골랐다.

    일단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 한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세미프로가 아닌 진짜 프로가 목표라면 이곳에서 겨우 저만한 이름도 모르는 선수에게 당할 수는 없었으니까.

    상대 골키퍼가 골킥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즈코가 슬그머니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8번을 확인하고 그의 옆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나마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상대의 체격이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것인지 자신과 비교했을 때 많이 작았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피지컬로 누른다.’

    가장 원초적이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을 떠올리면서 비즈코가 얼굴을 굳혔고, 골키퍼의 발끝을 떠나 하늘 위로 높게 솟은 공을 살피면서 자세를 고쳤다.

    기껏해야 고등학생 정도로 아직 앳되어 보이는 선수를 상대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일단 경기에서 이기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라면 특히 더더욱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재혁의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맞닿으며 떨어지는 공을 노려보던 비즈코가 역시 예상대로 물렁한 상대의 몸싸움에 자연스레 미소를 떠올렸다.

    ‘이 정도라면 해볼 만하겠어.’

    비록 공이 떨어질 위치를 상대가 선점한 탓에 떨어지는 공을 바로 발로 건드리거나, 헤딩을 시도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허술한 몸싸움 능력이라면 공이 땅에 내려온 이후에 충분히 뺏어볼만 하다.

    비즈코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공이 땅에 닿기를 기다렸고, 곧 그의 눈에 재혁이 발등으로 트래핑을 시도하면서 공의 속도를 죽이려는 게 들어왔다.

    동시에 비즈코가 재혁의 등 뒤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으면서 재혁이 쉽게 돌지 못하게 방해를 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원하는 바를 쉽게 이루지 못하게 해 실수를 유도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일단 공격을 하려는 쪽에서 공을 소유하고 있을 때 골대가 있는 방향을 등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수비하는 쪽에게 유리하다는 의미였으니. 비즈코는 이번만큼은 확실히 막았다고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상체를 좌우로 뒤틀고 있는 재혁에게 재차 강한 압박을 넣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라면 기껏해야 눈에 보이는 동료를 향해 패스를 하는 것, 혹은···.

    ‘네가 취한 선택은 도망이냐?’

    안전한 지역으로 공을 가지고 이동하는 것뿐이리라.

    좌, 혹은 우로 이동할 시 언제든 몸을 비집어 넣을 준비를 하고 있던 비코즈는 재혁이 공을 가지고 일단 멀어지려고 하는 것에 짧게 웃더니 그의 뒤를 쫓아 발을 움직였다.

    역시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어린 선수는 어린 선수였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일단 공을 빨리 돌려 틈을 노려야 했을 텐데, 자신의 선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보려고 하는 것이 또래 아이들이 참지 못하고 내보이는 승부욕과 닮아 있었던 것이다.

    다만···.

    ‘거기서 그런 식으로 도망가면 오히려 위험하다고!’

    아무리 안전한 곳을 찾아 이동한다지만 결과적으로 공이 아군 골대와 가까워지는 상황은 결국 득보다 실이 더 큰 상황이다. 게다가 혹 실수라도 저지른다면 그 대가는 최악에 실점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으니.

    재혁의 뒤를 노리고 달려드는 비즈코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을 뿌렸다.

    ‘···잡았다!’

    뒤로 물러나는 속도가 꽤 빨랐기에 이용할 동료마저 잃어버린 상황에서 결국 재혁이 택할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비즈코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공을 빼앗을 것을 다짐하면서 재혁의 등 뒤에서 재차 강하게 압박을 넣으면서 틈을 노리다가 발을 놀렸는데···.

    “···?!”

    갑자기 허전해진 눈앞을 발견하고 눈썹을 꼬았다.

    분명 방금까지 재혁의 오른발에 축구공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고, 공이 없어?’

    어느새 공이 감쪽같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당황한 비즈코의 발이 순간적으로 멈췄고, 이번에는 재혁이 그의 옆을 뚫고 스치듯이 지나쳤다.

    자신의 옆구리를 뚫고 달아난 재혁이 향하는 방향에서 주인을 잃은 공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비즈코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다시 재혁의 뒤를 쫓아 움직였다.

    어느 틈에, 어떤 마술을 부린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두 번은 당하지 않으리라.

    그런 다짐을 하면서 입술을 꾹 깨물고 재혁의 발밑에서 구르고 있는 공을 빼앗기 위해 비즈코가 다시 한 번 발을 던졌는데, 이번에도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진 공을 찾지 못하고 헛발을 휘두르게 된 상황에 당황해 눈을 크게 떴다.

    공을 뺏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재혁이 무엇을 했는지를 이번에는 똑똑히 목도한 비즈코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었다.

    ‘빠르게 굴러가는 공을 발바닥으로 밟아 방향을 바꾼 뒤 발등으로 치고 재차 달리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순간적인 볼 컨트롤이다.

    그러니 순간적으로 공이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밖에.

    다만···, 알아차리는 것이 너무 늦었다.

    재혁이 어떤 마술을 부리는지는 파악했지만, 마지막에 헛발을 휘두는 것으로 돌파를 허용하면서 균형을 잃은 비즈코의 몸은 잔디 바닥 위를 거칠게 굴렀고,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 재혁이 공을 치고 달리는 드리블에 속도를 붙이면서 반격의 불씨를 당겼다.

    지금까지 시드니 FC가 3백을 고집하고 있던 이유.

    중앙에 밀집해 있던 선수들은 수비가 아닌 공격 상황이 찾아오기 무섭게 사방으로 산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송사리 떼가 흩어지듯, 조금이라도 유리한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시드니 FC의 선수들을 보면서

    ‘저런 식으로 이동하다니. 정말 저런 식으로 무식하게 공간을 찾아 들어가면서 패스가 오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빈틈을 찾아 이동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패스를 받을 수 있는 공간에 자신이 위치해 있느냐, 였다.

    아무리 수비수들이 느끼기에 위협적인 위치를 찾아 이동한다고 한들, 패스를 주는 입장에서 해당 공간으로 공을 찔러 넣을 수 있는 틈이 없다면 그건 단순히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APIA의 수비수들은 시드니 FC의 선수들 중 몇몇이 노리고 달려가는 위치를 보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특히 최전방에서 연신 뒤를 힐끗거리며 이동하는 10번, 안토루를 보면서 그들의 비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오프사이드 라인을 타고 이동하면서 연신 뒤를 살피는 것이 영락없이 무리한 패스를 바라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름 라인을 깨고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지만, 라인을 타고 달리는 공간을 뚫고 공이 오려면 적어도 수비수 두 명이 걸치고 있는 루트를 거쳐서 날아와야만 했다.

    ‘그런 패스를 해낼 수 있는 선수가 여기 있을 리···.’

    뻐엉!

    수비수의 생각이 채끝나기 전에 재혁이 드리블을 치고 달리던 공을 찼고, 빠른 속도로 잔디를 훑으며 이동하는 공의 방향을 확인한 수비수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30. 2부 리그 데뷔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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