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26화 (26/225)
  • < 26. 23번 째 선수 >

    주로 말을 거는 쪽은 코헨 감독이었고, 안토루는 그에 답하는 입장이었다.

    “무릎은 어때? 수술까지 했잖아?”

    “그래도 비교적 큰 수술은 아니었죠. 3개월 푹 쉬면서 재활에 집중했으니 이젠 멀쩡해요. 예상보다 근 손실도 적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다행이고.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아. 컨디션 조절을 위해 U-21팀으로 내려왔는데 여기서 또 다쳐버리면 내가 루아드 감독을 볼 면목이 없잖아.”

    “알고 있습니다. 적당히 눈치 봐가면서 뛸게요.”

    “그게 또 적당히 뛰라는 의미는 아니었거든? 그러다가 내 목이 달아나면 네가 책임질래?”

    과거에 같이 했던 경력이 있는 지라 무난히 대화를 주고받던 둘은 다른 선수들이 회의실에 들어와 자리를 하나씩 채워나는 것을 보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려 노력했다.

    이 또한 축구 선수라는 업무의 일종이라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축구란 혼자 하는 게 아닌 팀으로서 움직여야 하는 운동이었으니. 팀원들간 결속을 다지는 일이 업무의 하나라는 말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리라.

    그렇게 약속한 시간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회의실에 도착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코헨 감독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후 선수들에게 정식으로 인사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이번에 또 만나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시드니 FC의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 앉아서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안토루를 발견하고 코헨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안토루가 그를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에 있는 선수들의 숫자가 23명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혹시 풀 스쿼드가 아닌 건가요?”

    “어떤 부분에 대해 기대하고 던진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시즌은 다행히도 풀 스쿼드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코헨 감독이 대답을 해주다가 입술을 멈추고 턱을 긁적이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끊었던 말을 이었다.

    “한 선수가 지금 이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건 현재 수업을 듣고 있어서겠죠.”

    “수업이요?”

    그게 무슨 말이냐는 선수의 질문에 코헨 감독은 무뚝뚝하게 답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겁니다. 그러면 이제 옷들 갈아입고 필드에서 보도록 하죠. 오전 훈련은 12시까지 진행한 뒤,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오후 훈련을 진행할 겁니다. 스케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아놀 수석코치와 대화를 나누시면 됩니다. 그럼 운동장에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코헨 감독이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선수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벗어나 탈의실로 향했다.

    혼자 멍하니 자리에 앉아 머리를 긁적이고 있던 안토루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수차례 갸웃거렸으나,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을 시간이 아닌, 훈련을 소화해야 할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회의실에서 찾을 수 없었던 선수에 대한 안토루의 궁금증은 그 날 오후가 되서야 풀릴 수 있었다.

    오전 훈련이 끝나고 2시간의 휴식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필드 위로 선수들이 하나둘 모일 때, 안토루의 눈에 낯선 이가 그들보다 먼저 필드 위에 올라와 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상대를 발견 했을 때엔 거리가 어느 정도 있었기에 제대로 살필 수 없었던 안토루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다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삼켰다.

    “허, 헐? 뭐야?”

    “응? 안녕하세요?”

    “아, 응, 네···.”

    축구공으로 리프팅을 하다가 자신이 다가온 것에 공을 내려놓고 인사를 건네는 상대방을 앞에 두고 안토루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학생···? 아니, 고등학생인가?’

    척 보기에도 많아야 16살,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훈련장 필드 위에서 공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짧은 인사 이후, 다시 리프팅을 하기 시작한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안토루의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U-18팀의 유소년인가? 그러면 훈련 장소가 여기가 아닐 텐데? 혹시 오늘 처음 온 거라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건가? 그럼 역시 내가 제대로 알려줘야···.”

    “?!”

    계속해서 아이가 리프팅을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던 안토루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고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지금···, 리프팅을 몇 개째 하고 있는 거지?”

    단순히 성공한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공을 발등으로 가볍게 터치하고 있는 상대의 동작을 보고 있자면 절대로 이 친구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양발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공의 높이는 절대 무릎 위를 넘지 않았고, 시도하는 리프팅마다 정확히 발등에 얹혀 공이 회전하지 않고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퉁겨 오르는 것은 지금 이 아이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런 동작들이 횟수가 쌓여감에도 흔들림이 없다니.

    대체 이 아이가 누구길래, 라는 생각을 품고 입술을 벙긋이려던 안토루보다 먼저 목소리를 내 그를 향해 소리를 친 인물이 있었다.

    “재혁! 언제 도착한거야?”

    “방금요. 옷만 갈아입고 바로 필드로 나와서 몸을 풀고 있었어요. 전 오전 훈련에 참가할 수 없으니까, 이런 기회가 있을 때 바로, 바로 풀어둬야죠.”

    “그것도 좋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일단···. 응? 뭐야, 벌써 안토루랑 만난 건가?”

    코헨 감독이 재혁이란 낯선 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것을 안토루가 자리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고, 그런 안토루를 발견한 코헨 감독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한쪽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오후 훈련 때 네 파트너는 얘니까. 그럼 둘이 잘 지내라고. 다행히 벌써 인사는 나눈 것 같으니···.”

    “자, 잠깐만요 감독님! 이 친구도 저희랑 함께 훈련하는 겁니까? 아직 성인도 아닌 것 같은데···.”

    “말했잖아, 마지막 23번째 선수는 수업을 듣고 있었다고.”

    당황하는 안토루를 진정시키려는 듯, 침착한 어조로 코헨 감독이 그에게 답을 해주면서 웃었다.

    “시드니 고등학교의 10학년, 최재혁. 이 친구가 우리 팀의 23번째 선수야.”

    “네? 감독님, 잠깐만요! 고등학생이라고요? 설마 진짜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을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그럼 가짜 고등학교에 다니는 가짜 고등학생도 있나?”

    자신의 말에 농담조로 답하는 감독을 앞에 두고 안토루가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닌데···, 라고 작게 중얼거렸으나, 코헨 감독은 안토루에게 재차 한 마디를 남긴 후 자리를 떠났다.

    “안토루. 실없는 농담은 그쯤하고 이제 오후 훈련 세션에 집중하자고. 소집 이후 첫 훈련인데, 마무리까지 제대로 가야지? 자 그럼 모두 집합!”

    두 손을 모아 박수를 치면서 선수들을 모은 코헨 감독은 텐션을 올릴 수 있는 가벼운 패스 워크를 지시한 다음 아놀 수석 코치와 23명의 이름이 적힌 로스터를 살펴보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 내용에 대해 동의를 했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둘은 다시 한 번 선수들을 한 데 끌어 모은 후 말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6명씩 4팀으로 나눠 미니 게임을 진행하겠다. 한 명이 모자라는 한 팀에는 아놀 코치가 골키퍼로 합류할 것이니 불평하지 말도록.”

    “선수들 사이에 끼셨다가 괜히 고생하지 마시고 그냥 저희끼리 하게 하시죠?”

    “지는 팀이 오늘 사용한 훈련 도구들을 정리하게 될 운명인데, 그래도 5명이서 괜찮겠나?”

    “아닙니다! 코치님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벌칙 있을 것이란 말에 선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놀 코치를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아 박수를 쳤고, 그런 선수들의 반응에 아놀 코치는 비죽인 입술을 쯧쯧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선수와 코치들을 웃으면서 지켜보던 코헨 감독은 분위기를 환기시킨 다음 호명하는 선수와 팀을 지정해주면서 23명을 차례에 맞춰 네 팀으로 나눴다.

    그렇게 모든 선수들이 팀 색깔에 맞는 훈련 조끼를 집어 들고 자리를 찾아 이동할 때, 안토루가 슬쩍 좌우를 살펴 같은 팀에 속한 선수들의 얼굴을 확인하다가 으익, 짧은 신음을 흘린 후 코헨 감독을 향해 볼멘소리를 냈다.

    “학교에서 런치 박스 먹는 고딩이랑 노땅 코치님과 같은 팀이라니. 이거 대놓고 청소하라고 짜준 팀 아니에요?”

    안토루의 말에 코헨 감독은 여전히 미니 게임을 위해 팀을 나눠놓은 조직 표를 내려 보면서 가뿐하게 답했다.

    “그래도 공격수론 네가 있잖아?”

    “이기려면 공격보다는 수비, 그리고 균형이 가장 중요하죠. 제가 다른 사람들 몫까지 노력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해결 가능한 범위란 게 있다고요.”

    코헨 감독의 냉랭한 말에 안토루가 재차 입술을 툴툴 퉁기자, 감독은 그런 안토루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이더니 스쳐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손에 쥐어진 패가 투 페어일지 풀 하우스일지는 숨겨진 카드들을 다 열어봐야 알 수 있는 법이야.”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에요?”

    “포커도 안 해봤나? 카드를 다 열어보기 전까진 접지 말라고. 그러면 운동장을 반 씩 나눠서 반코트로 미니 게임을 진행한다! 준비 시간은 3분을 줄테니, 3분 뒤에는 모두 경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할 것! 그럼 카운트다운 시작!”

    안토루는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남기고 멀어져버린 코헨 감독의 뒤통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뱉은 뒤 다른 5명이 모여 있는 장소로 향했다.

    이미 포지션이 정해진 아놀 코치를 제외하고 다섯 사람들은 각자 뛰고 싶은 포지션을 말하고 있던 중이었다.

    “전 원래 센터백으로 뛰었어요.

    “저는 풀백이요. 그런데 6명이서 뛸 건데 포지션을 나누는 의미가 있나요?”

    “최소한의 균형은 유지해야하니까요. 골키퍼를 제외하고 필드 플레이어가 5명이니. 기본적으로 2-2-1로 나눠지되, 가능하다면 서로 공간을 커버하고 유기적으로 위치를 바꿔가면서 플레이합시다.”

    센터백과 풀백이 백라인을 맡고, 안토루가 최전방을, 그리고 재혁과 다른 선수가 허리를 맡는 것으로 포지션이 정해졌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 불만은 없는 듯 했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한 가지 걱정을 맘속에 품고 있는 듯 했다.

    센터백을 맡기로 한 백인 남성, 트레디가 은근히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재혁을 불렀다.

    “아직 고등학생이라고?”

    “네. 시드니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그래? 내 작은 동생도 거기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계속 쭈뼛거리며 뺨을 긁적이거나, 말끝을 흐리는 행동을 보여주다가 마음을 정했는지 트레디가 딱딱한 어조로 재혁에게 계속 말했다.

    “혹시라도 체력적으로 힘이 들거나, 경기 페이스를 맞추기 힘들 것 같다면 그냥 뒤로 쳐져. 아무래도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 너보다 큰 사람들이니까, 아무도 널 탓하지 않을 거야. 정 못 뛰겠으면 무리하지 말고 중간에 감독님께 말하고 빠지는 것도···.”

    “아저씨. 우리 축구를 하는 거죠?”

    “응? 그렇지.”

    “그럼 됐어요.”

    길게 늘어지는 트레디의 말을 중간에 툭 자른 재혁은 고개를 끄덕이는 트레디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이더니 한 마디를 남기고 자기 자리를 찾아 발을 움직였다.

    “세계 어디를 가도, 나이가 몇 살이든. 축구는 항상 똑같으니까. 제 걱정은 하실 필요 없어요.”

    “···.”

    “그럼 다들 힘내요.”

    < 26. 23번 째 선수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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