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시드니 FC… 의 2부 >
A리그.
호주에 있는 10개의 프로 축구팀들이 모여 이룬 프로 축구 리그이며, H자동차 회사의 후원을 받아
전면적인 개편 이후 2005/06 시즌에 첫 출범을 했고, 대대적인 투자와 발전을 바탕으로 모인 만큼 해당 시즌에 5만 관중을 끌어 모으면서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으며 현재까지도 아시아 국제 대회에서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리그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1부 리그라는 꿈의 무대를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작년에는 어떻게든 넘겼지만 이번 시즌은 정말 위험한데···. 후우.”
호주의 2부리그, NPL에 속한 팀을 운영 중인 코헨 감독의 이마에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골이 패였다.
정확히는 A리그에 속한 시드니 FC라는 팀의 U-21팀을 관리 중인 감독이었지만, 1부 리그에 속한 팀을 제외한 모든 프로, 아마추어 팀들이 그 산하에 유지되는 하부 리그들에 참여하게 되어 있었으니, 코헨 감독 또한 팀을 하나 운영하는 감독과 같았던 것이다.
그런데 참 재밌게도 프로 리그인 A리그에도 없는 강등 시스템이 하부 리그인 NPL에는 있었으니···.
매 시즌마다 운영하고 있는 팀의 강등을 걱정하고 있던 탓에 코헨 감독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머리카락을 오늘도 참지 못하고 쥐어뜯었다.
“좀 크면 콜업해서 데려가고, 부상자가 나오면 또 포지션 채우려고 데려가고! 작년엔 하마터면 1점 차이로 강등 당할 뻔 했잖아! 그럴 거면 강등 가지고 압박이나 주지 말던가!”
정확히는 다른 구단보다 뛰어난 유소년 시스템 유지를 위한 압박이었지만, 코헨 감독의 입장에선 밤마다 혓바늘이 돋아날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었으니, 매 시즌이 시작될 때면 정기적으로 터지는 울화통을 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가 이번 시즌에 참여한 선수들이 속한 로스터를 확인하면서 연신 펜대로 눈썹 주변을 긁었다.
“싹수가 보일만한 선수는 전부 콜업 되고, 계약 연장을 안한 선수들도 모두 빠져버리고···. 결국 이번 시즌도 23인 로스터는 또 못 채우고 시작하겠구나.”
쓸 만한 유망주들이 슬슬 터질 기미를 보이면 싹 다 콜업해가서 사용하는 퍼스트 팀의 루아드 감독을 속으로 욕하면서 코헨 감독이 한숨을 푹 내쉬다가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몇몇 선수들의 이름을 살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마 컨디션 조절 때문에 안토루가 당분간 함께 뛸 수 있으니 다행인 건가. 근데 이것도 길어야 두 달 정도일 텐데···.”
지난 시즌 로테이션 공격수로 퍼스트 팀에서 활약하던 안토루는 시즌 막바지 허벅지 부상으로 3개월간 결장을 하다가 지난주부터 필드 훈련에 합류한 선수였다.
퍼스트 팀에서 활약하던 만큼, 좋은 선수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장기 부상 복귀에 앞서 예열을 하기 위해
그 외의 다른 선수들을 쭉 훑으면서 시즌 스쿼드 준비에 열을 올리던 감독이 노크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누구?”
“감독님, 접니다.”
“오. 아놀 코치. 안 잠겼으니 그냥 열고 들어 와.”
감독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무실 밖에 서있던 아놀 수석 코치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고, 코헨 감독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준비는 잘되고 있습니까?”
“자네 생각엔 잘하고 있을 것 같나?”
“머리카락이 그 사이 더 빠지신 걸 보면 쉽지 않은가 보네요.”
아놀 코치가 큭큭, 웃으면서 책상 위의 머리카락을 털어내는 행동을 장난스럽게 취하자 코헨 감독의 표정이 바로 구겨졌다.
“당장 내일부터 이 빌어먹을 구단에 탈모 약부터 경비로 처리 할 거야. 작년보다 더 심해진 거 보이지? 이유가 뭐겠어? 젠장!”
감독이 손에 쥐고 있던 펜을 탁자 위로 거칠게 내려놓은 뒤 의자에 몸을 던졌고, 그런 코헨 감독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던 아놀 수석 코치가 슬그머니 품에 안고 있던 서류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아마 감독의 기분이 다 풀리진 않아도, 어느 정도 나아질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다름이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올라온 선수들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벌써? 올해는 빨리 준비해 줬는걸?”
“거기서라도 선수를 구해보라고 그렇게 닦달을 하셨으니, 안 할 수가 있었나요?”
아놀의 은근히 날이 선 답에 코헨 감독이 잠시간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몸을 곧게 세웠다.
U-21팀이 A리그 팀의 빨대에 꽂히는 존재라면, U-21에게 있어서 지역 아카데미는 A리그 팀에게 빨린 선수들을 어느 정도 수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다만 자갈돌처럼 널린 선수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원석을 발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급한 건 이쪽이었으니. 코헨 감독이 얼른 손을 뻗어 아카데미에서 보내준 선수 명단을 훑으면서 아놀 코치에게 물었다.
“자네가 보기엔 괜찮은 선수들이 좀 있던가?”
“시드니 유나이티드 쪽에서 군침을 흘리고 있는 선수 몇을 확인하긴 했죠. 가장 앞장에 적혀있습니다.”
“그것들은 꼭 나랑 겹치더라. 뭐, 결국 모두가 보는 눈이 비슷하다는 의미겠지만···. 맘에 들지 않아.”
혀를 쯧쯧 차면서 명단에 적힌 선수 이름들과 프로필을 쭉 읽어 내려가면서 코헨 감독은 계속 아놀 코치에게 의견을 물었고, 아놀 코치는 그에 신중히 답하면서 코헨 감독이 선수를 선발하는데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대략적으로 로스터에 채워 넣을 선수 몇을 선정할 수 있었던 코헨 감독이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고개를 털어낸 뒤 아놀 코치를 찾았다.
“그럼 이걸로 이제 남은 건 딱 한 자리인데, 혹시 아놀 코치가 추천할만한 선수가 있나?”
“흐음. 글쎄요. 사실 유망하다고 알려진 선수들은 다 뽑아놓은 단계라. 아무래도 크게 알려지지 않은 아카데미 소속 선수들 중 하나를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아!”
“왜 그래? 누가 있어?”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하다가 갑자기 탄성을 흘리는 아놀 코치를 보면서 코헨 감독이 활기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고, 아놀 코치는 손을 뻗어 건네주었던 서류 더미들을 훌훌 넘기다가 한 선수의 프로필을 꺼내 감독의 앞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10학년에 올라가는 학생들 중 한 명을 추천한 사람이 있어서 말입니다.”
“10학년? 아직 너무 어린 거 아니야? 기껏해야 15, 16살 되는 꼬마 아니야?”
대략 만 15살, 혹은 16살 정도 되었을 학생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 코헨 감독이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되물었고, 아놀 코치는 그런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목소리에 실은 힘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에게 답했다.
“어리긴 하지만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는 선수라서 말예요. 게다가 시드니 아카데미의 단장이 직접 선수 구성에 여유가 있다면 한 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던 선수거든요. 내년이면 떠날 선수라 그냥 보내기 아쉽다면서 말이죠.”
“시드니 아카데미의 단장이라면 로니? 그 친구가 직접 그런 말을 했단 말야?”
“예.”
아놀 코치가 건넨 종이를 손에 쥔 코헨 감독이 미간을 좁혔다.
시드니 아카데미라면 그와도 꽤 오랜 기간 동안 일을 하면서 관계를 다진 곳이었고, 단장인 로니는 선수 보는 눈이 썩 괜찮은 친구였던 탓에 쉬이 무시하기 힘든 의견이었던 것이다.
다만 내년이면 떠날 선수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니.
‘선수를 키워내야 하는 입장에서 그건 너무 아쉬운 일인데. 노장 선수를 FA로 꾸린 것도 아닌 것을···.’
“아무튼 이게 그 선수의 프로필입니다.”
생각에 잠겨있던 코헨 감독을 향해 아놀 코치가 다시금 선수의 프로필이 적힌 종이를 밀었고, 건네받은 종이 위에 적힌 선수의 이름을 한 자씩 입에 올리면서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 재혁? 여기서 태어난 선수가 아니야?”
“3년 전 한국에서 온 선수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차범수라는 전설적인 선수의 지원을 받아서 말예요.”
“뭐? 차범수?!”
뜻밖의 인물에 대한 언급이 나온 것에 코헨 감독이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아놀 코치는 그런 감독을 향해 고개를 재차 끄덕여 주면서 말했다.
“지금은 어려서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크면 분명 무서운 선수가 될 거라고 시드니 아카데미의 단장이 신신당부를 하던 친굽니다. 게다가 차범수가 지원을 해준다면 절대로 평범한 재능은 아니란 소리겠죠.”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말야, 만약 평범하게 어린 선수가 아니라면 왜 아직까지 조용했던 거야?”
코헨 감독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코치에게 물었고, 아놀은 감독의 말에 뺨을 긁적이면서 단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식전에 나가지 않고 개인 훈련만 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도, 아카데미에서도 말예요 그러니 알려지고 싶어도 알려질 수 없었던 거겠죠.”
듣고 있자면 더더욱 이해가 힘든 이야기에 코헨 감독의 미간이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는데, 한 가지 만큼은 확실해졌으니 코헨 감독이 코치를 향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좋아. 그러면 마지막 자리엔 이 친구로 넣자고. 내일까지 필요한 서류들을 모두 준비해서 오후엔 같이 훈련할 수 있도록 부탁하네.”
***
“안녕하세요!”
“오, 안토루. 벌써 왔어?”
“흐흐, 몸이 근질근질하니까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훈련장으로 바로 가면 되죠?”
시드니 FC의 U-21팀이 사용하는 건물로 들어온 안토루가 양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건넨 말에 구단 스태프가 한 차례 크게 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재활이 막 끝나서 얼른 공을 차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일단은 회의실로 먼저 가. 코헨 감독님하고 아놀 수석코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회의실이요?”
“소집 이후 첫 날이니까. ‘신고식’을 하려는 게 아니겠어?”
“아아. 하긴, 여긴 퍼스트 팀이 아니었죠.”
그나마 고정에 가까운 로스터를 유지하는 퍼스트 팀이 아닌, U-21팀은 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선수들이 대거 바뀌는 일이 일상다반사였으니. 감독이 선수들과 얼굴을 익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에 안토루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후 멈췄던 발을 움직여 회의실로 향했다.
복도를 따라 걸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회의실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도착해 있던 코헨 감독이 안토루를 향해 알은 체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성실하군.”
“하하. 프로니까요. 퍼스트 팀에 올라가면 평소보다 더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 해주셨던 분이 감독님이셨잖아요? 그 말씀에 따를 뿐입니다.”
“그거야 보통 게으른 애들이 많으니까 그런 말을 했던 거지. 안토루, 넌 그게 과해.”
미소를 띤 얼굴로 서로 정답게 대화를 나누면서 악수를 주고받은 둘은 곧 자리에 앉으면서 대화를 계속 이었다.
< 25. 시드니 FC… 의 2부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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