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22화 (22/225)
  • < 22. 없다면 만든다 >

    감독이 보다 강한 압박을 넣을 것을 요구하자, 호종초의 선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때마침 공도 재혁이 아닌 다른 두 명의 미드필더 사이를 돌고 있었으니, 기회를 잡아 공을 빼앗은 후 역습을 노릴 심산으로 선수들이 발에 힘을 주었다.

    그런 상대 선수들을 앞에 두고 중앙초의 두 명의 미드필더가 입술을 꾹 깨물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일단 공을 뒤로 돌렸다.

    길게 넘어간 공은 센터백들 사이에 뚝 떨어졌고, 누구보다 먼저 공을 터치할 수 있었던 고명성이 공을 잡기 무섭게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재혁에게 패스를 넘겨주었다.

    재혁의 발밑에 공이 닿자, 호종초에선 곧장 그에 맞춰 반응했다.

    재혁을 전담하는 두 선수가 일렬로 자리를 맡고, 재혁의 행동에 재빨리 반응할 수 있도록 선 것이다.

    양옆으로 벌리는 패스를 할 것이라면 둘 중 공에 가까운 사람이 패스를 쫓아 달릴 것이고, 혹 드리블을 한다면 앞에서부터 한 명씩 빗장을 쳐 최대한 멀리 갈 수 없게 방해를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은 재혁을 집중해서 막는 게 아닌, 중앙초 다른 선수들을 향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전술임을 둘은 계속해서 상기하면서 재혁의 이어질 행동을 기다렸고, 재혁은 발바닥으로 슬그머니 공을 굴리면서 각을 살피다가 빠르게 짧은 패스를 찔러 넣었다.

    “···?”

    재혁이 선택한 패스 루트를 확인한 호종초 감독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가 보낸 공은 양쪽 측면도 아니었고, 위협을 주기 위해 드리블을 노리고 움직인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다른 미드필더를 향해 패스를 준다고?’

    재혁은 정확하게 자신의 앞에 서있는 두 선수 사이로 공을 빼내, 그의 앞에 라인을 맞추고 있던 미드필더에게 공을 전달했다.

    여태까지 공격의 핵이 되어 패스를 연결하던 재혁이 다른 미드필더에게 공을 주다니.

    갑자기 달라진 재혁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던 호종초 감독이 턱을 감싸 쥐고 눈살을 찌푸렸는데, 이어지는 상황을 지켜보곤 왜 재혁이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알아차리고 눈동자를 키웠다.

    “패스 앤 무브? 아니, 단순히 공을 주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인 주변으로 우리 선수들을 끌어 모으려고 하고 있어?!”

    투웅, 투웅, 투웅!

    재혁이 중앙에 찔러 넣었던 공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공을 소유하면 일단 어떻게든 공이 멈추지 않고 계속 구르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위험하다면 중앙초에선 수비수들이 모여 있는 뒤쪽으로 길게 넘겨버렸고, 수비수들은 넘어온 공을 컨트롤하면 근처에 있는 재혁에게 바로 공을 넘겨주는 일관적인 플레이를 반복했다.

    이런 모습이 언뜻 보면 쓸데없는 동작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었으나, 만약 상대측에서 패스를 쫓아 압박을 넣으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한다면···.

    ‘···끌려나왔다!’

    지금 재혁이 발견한 것처럼 어쩔 수 없이 공을 쫓아 이동하면서 자신이 지키던 공간에서 끌려나오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된다.

    아군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공간이 열리길 기다리던 재혁은 그 틈을 발견하기 무섭게 자신의 위쪽에 자리를 잡고 서있는 중앙 미드필더에게 패스를 건네준 후, 전력을 다해 열린 공간을 노리고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라진 패스의 페이스와 재혁의 행동에 호종초의 선수들이 황급히 그의 뒤를 쫓았지만, 반복적인 패스 워크를 쫓다보니 선수들의 위치는 정해진 자리를 벗어나 있었고, 무리 없이 하프 라인 너머에서 패스를 돌려받은 재혁이 공을 소유함과 동시에 정면을 살피곤 씨익 웃었다.

    마침내 그가 원하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드디어 둘이 겹쳤다.”

    “!”

    지금까지 계속 한 명씩 순서에 맞춰 재혁을 상대했던 두 선수는 지켜야 할 자리를 잃어버리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둘이 동시에 재혁에 앞에 서버리고 만 것이다.

    그 말의 의미인 즉, 여태까지 강한 압박을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있던 중앙초의 선수들 중 한 명이 자유로워졌다는 소리였고.

    투웅!

    재혁이 지체 없이 자유롭게 열린 동료를 향해 땅볼로 빠르게 패스를 찔러 넣었다.

    운동장 바닥을 뒹굴뒹굴 구른 공은 공간을 좁혔던 중앙초의 7번, 주성을 향했다.

    지금까지 계속된 압박에 공을 제대로 만져볼 수 없었던 주성이 마침내 공을 발로 건들면서 눈빛을 빛냈다.

    동시에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 재혁이 그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재빨리 공을 옆 공간으로 밀었다.

    ‘최대한 아무도 없는 곳에 패스를 밀어놓으면···!’

    퉁!

    데굴데굴, 적군도 아군도 없는 공간을 향해 구르기 시작한 축구공.

    분명 이대로 두면 아무도 못 잡을 것처럼 보였던 공을 향해 한 명이 달려들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중앙초의 8번, 최재혁이었다.

    드디어 찾아온 역습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재혁은 매서운 속도로 공을 몰고 상대 진영을 파고들었고, 그런 재혁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면서 임종철 감독이 미소를 띤 얼굴로 모자를 고쳤다.

    “이걸로 일단 동점.”

    한 번 열린 틈을 놓칠 재혁이 아니다.

    그저 한 번.

    감독으로서 선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면 재혁은 반드시 보답을 해주는 선수였고, 그런 그의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눈앞에서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원을 뚫고 공을 몰면서 드리블을 시작한 재혁은 고개를 들어 전방을 살폈다.

    그의 눈에 상대 팀의 포백 라인과 아군 공격수 세 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재혁의 발끝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지금이 중앙초의 본격적인 역습의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열린 공간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패스 워크로 공간을 열고 빠른 속도로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점하며 돌파한 덕에 공격자의 숫자가 수비자의 숫자와 동수를 이루고 있는 기회는 분명 쉽게 찾아올 기회가 아니었다.

    하물며 전반전 내내 압박을 당하다가 실점을 한 팀의 입장에서 지금 같은 기회가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재혁이었기에 드리블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최대한 상대 선수들을 끌어내면서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단순히 패스와 드리블, 두 가지 선택지만으로는 보다 확실한 득점 찬스를 만들 수 없었으니까.

    가까이 붙어라. 그러지 않으면 계속해서 공간을 차지하면서 드리블을 치겠다, 그런 의지를 상대에게 보여줄 기세로 재혁이 여전히 공의 속도를 늦추질 않자, 호종초의 수비수들 중 한 명이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왔다.

    그 움직임을 확인한 재혁의 눈동자가 빠르게 한 번 더 전방을 훑었다.

    ‘오른쪽 센터백.’

    두 명의 센터백들 중 오른쪽을 맡고 있는 센터백이 다가오는 것을 읽어낸 재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을 시작했고, 곧 어떤 방법을 취할지 결정을 내린 뒤···.

    투웅!

    또 한 번 공을 길게 치면서 드리블을 이었다.

    드리블 방향은 오른쪽 센터백이 다가오고 있는 장소를 곧장 향하고 있었다.

    호종초의 센터백은 그런 재혁의 행동에 당연하게도 눈썹을 찌푸렸다.

    ‘얕보였어?’

    수비를 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면서 피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그대로 정면에서 충돌할 기세라니.

    센터백이 찌푸린 얼굴처럼 구겨진 입술 끝으로 칫, 바람소리를 낸 다음 달려가던 발의 속도를 줄였다.

    혹여 갑작스런 방향 전환으로 역동작이 걸릴 것을 우려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절대 쉽게 뚫리지는 않겠다는 듯, 다가오는 재혁을 한눈에 담아내고 있던 수비수가 두 눈을 모으고 있을 때. 그런 수비수의 행동을 마치 진즉에 읽고 있었다는 듯···.

    텅!

    “!”

    재혁이 또 한 번 공을 발등으로 밀면서 센터백의 코앞에서 가속했다.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속도를 높인 재혁의 행동에 수비수가 서둘러 멈추려던 발에 힘을 주었다.

    ‘날 속도로 제치겠다는 거냐?!’

    비록 지금 센터백을 보곤 있지만 또래들과 달리기 시합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던 센터백은 속도에서 재혁에게 얕잡아 보였다는 생각에 붉어진 얼굴로 그의 옆을 쫓아 달리면서 눈을 부라렸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경기 전, 감독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중앙초에서 수세에 몰리면 반드시 지금 눈앞에 있는 8번이 개인 기량으로 무언가를 하려 할 테니, 그 순간을 조심하라던 말을 말이다.

    실제로 32강전과 16강전에서 팀의 승리를 확정짓기 위한 골을 넣었던 것은 재혁이었고, 필요하다면 개인 돌파로 득점 기회를 창출하는 유형의 선수였으니.

    센터백은 최대한 재혁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의 곁을 따라 다니면서 쉽게 파고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어깨를 부딪쳤고, 그 결과, 재혁이 점차 중앙에서 벗어나 측면으로 이동 루트가 밀려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수비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뗬다.

    지금 이 순간까지는 말이다.

    “···?!”

    재혁의 옆에 바짝 붙어 이동하던 센터백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눈동자가 당혹감에 흔들렸다.

    드리블을 치면서 이동하던 재혁의 몸이 순간 공위로 크로스 오버되더니, 공의 앞으로 향하던 발을 멈추고 그대로 뒤꿈치로 힐 패스를 찔러 넣은 것이다.

    갑작스레 이게 무슨 패스인가? 라는 생각을 떠올리던 센터백은 재혁의 발뒤꿈치에 맞은 공이 통통 굴러서···.

    “받았다!”

    중앙초의 7번, 김주성에게 닿는 것을 확인하고 눈을 부릅떴다.

    저기서 저런 감각적인 패스를 망설임도 없이 시도한 것도 어이가 없었는데, 그 패스가 저렇게 성공적으로 이어지다니.

    ‘드리블을 계속 치면서도 동료가 어디 있는 지를 어떻게 알고 있던 거야?!’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시야라는 말인가.

    재혁의 패스가 이어진 것에 센터백이 일순 당황했으나, 이내 침착을 되찾았다.

    어차피 저 7번이 할 수 있는 건 속도를 살린 드리블 뿐.

    지금처럼 측면이 아닌 중앙에 가까운 위치에서 그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안도하고 있었다.

    공간을 잡아두는 수비를 계속 유지한다면 7번은 아무 것도 못하고 공을 빼앗기고 말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센터백은 귓가에 이어서 들린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평정심이 깨져버렸다.

    “지금이야! 바로 찔러!”

    8번, 최재혁.

    공이 없는 재혁이 비어있는 공간을 향해 달려가면서 소리를 쳤고, 재혁의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렸던 센터백은 재혁이 노리고 있는 공간을 확인하고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재혁이 지금 달려들고 있는 공간은 방금까지 그의 옆을 쫓아 이동하고 있던 본인이 자리를 벗어나면서 생겨난 바로 그 공간이었던 것이다.

    패스와 드리블.

    여태까지의 과정이 처음에 가지고 있던 두 가지 선택지들 중 공간 침투라는 세 번째를 만들기 위한 것임을 뒤늦게 알아차린 센터백이 황급히 그의 뒤를 쫓으려 발을 움직였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구겼다.

    “···망할.”

    그리고 그 모습을 경기장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호종초의 감독이 이를 갈았다.

    이어지는 상황은 재혁과 골키퍼의 일대일이었으니, 결과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매 경기 득점에 성공하고 있는 재혁이라면 이번 기회도 놓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감독의 예상대로, 달려드는 골키퍼를 앞에 두고 침착하게 공을 깎아 찬 재혁의 칩샷이 둥실 떠올라 골망에 휘감기면서 호종초는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기 무섭게 벤치에서 벌떡 일어난 감독이 애꿎은 얼굴을 쓸어내린 다음 머리를 벅벅 긁었다.

    ‘단순히 기량만 좋은 게 아니라 상대하는 팀에 맞춰 전술적인 선택을 내릴 머리도 있다는 건가?’

    강한 압박을 펼치는 팀이라면 주변에 있는 공을 쫓아 자연히 선수의 행동이 강제되기 마련이다.

    그런 움직임을 이해하고, 끌어낸 뒤, 탈 압박을 통해 공간을 공략하는 전술적인 움직임을 완벽하게 선보이다니.

    자리에서 일어난 감독이 건너편 벤치에 앉아 있는 종철을 노려보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가장 지고 싶지 않은 경기에서 어쩌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손까지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런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종철이 경기장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 호종초의 감독과 눈을 마주치더니.

    “풉.”

    “!”

    피식 실웃음을 흘리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이번 경기에서 호종초 감독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 22. 없다면 만든다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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