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8화 (18/225)
  • < 18.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

    3차 예선 진행 중 전 감독의 대표팀은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최종도 아닌 3차 예선에서 탈락 위기를 맞게 했고, 협회에선 책임을 이유로 전 감독을 경질했다. 그리고 선임한 것이 자신을 ‘예선용 감독’이라고 못을 박았던 조감독이었다.

    당시 클럽 팀을 지도하고 있던 조감독은 한사코 대표팀을 맡기를 거절했으나, 협회 측에서 규정-국가대표 운영 규정 제 11조 2항, 협회는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구단 장에게 통보를 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응해야 한다.-을 들이대며 압박을 가한 것에 어쩔 수 없이 대표팀에 승선해 키를 쥐게 된 것이다.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았으니, 당연히 예선이 진행되는 내내 불협화음이 사라질 줄을 몰랐고, 후에는 파벌 논란까지 일어나며 대표팀 내부가 거의 와해될 뻔 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협회는 조감독이 월드컵까지 팀을 맡아주길 기대했으나, 조감독은 본선 확정 기자 회견에서 위에 서술했던 예선용 감독이라는 말을 재차 언급하며 바로 사의를 밝혔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최종 경기까지 패배했으니, 대표팀을 향한 축구 팬들의 원성이 어떤 식으로 터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어차피 나가봐야 광탈할 거, 뭐하러 나가냐? 차라리 건투한 우즈베키스탄한테 티켓 양보해라.

    -ㅋㅋㅋ 월드컵 이제 1년 남았는데 대표팀 감독 자리는 또 공석ㅋㅋㅋ. 대한민국 대표팀이 아니라

    -그렇게 외국인 감독 들이라고 사람들이 소리쳤는데, 과연 누가 뽑힐까요?

    -대충 때우면 된다는 생각에 적당한 인물을 협회에서 앉히겠죠. 여태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들이잖아요?

    -안습···. 주장 한 명 은퇴했는데, 팀 전체가 박살이 나버리네. 3년 전에 은퇴한 선수의 공백이 아직도 채워지질 않다니.

    다들 속에 품고 있던 솔직한 감정을 댓글에 담아 써 올렸고, 이제 과연 대표팀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새로운 기사가 떠오르며 모두의 관심을 받았다.

    [협회, 조감독의 뒤를 이어 대표팀을 이끌 인물로 황재욱 감독을 선임! 계약 기간은 2년으로 2015년까지.]

    조감독의 뒤를 이을 대표팀 감독 선임 발표.

    비어있는 자리는 최대한 빨리 채워야 한다는 설명을 시작으로 작성된 기사는 계약 기간까지 언급하며 최대한 협회의 편의를 보아 작성되어 있었고, 해당 기사를 본 팬들의 반응은 당연하게도···.

    -장난하냐? 결국 또 협회 라인 태워서 감독 뽑았냐?

    -대표팀 감독 자리는 사다리로 뽑나요? 어떻게 사람들 예상을 한 번도 벗어난 선택을 한 적이 없는 거죠?

    -모르겠습니다. 뭐···, 그래도 일단 뽑았으니 지켜 봐야죠···.

    -제가 예언함. 이번 월드컵 16강 진출 못 할 겁니다. 수고요.

    -그 정도 예언은 저도 가능. 저는 거기서 0승으로 탈락할 거라 예상합니다.

    뜨겁게 타올랐다.

    이번 월드컵은 미래가 없다며, 앞으로 우리 축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신세 한탄을 쏟아내던 팬들은 이번 월드컵은 글렀으니, 다음 월드컵을 기대하자면서 자연스럽게 유망주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언제쯤이면 바르셀로나에 있는 코리안 듀오가 성인 대표 팀에서 뛸 수 있을까요? 2018년엔 뛰려나···.

    -그것도 이르죠. 적어도 20살 초중반까진 성장해야하니까요. 아직은 너무 어려서···.

    -발렌시아에 있는 이경수도 얼른 컸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포텐셜로 보면 경수가 제일 장난 아닐 듯.

    -독일이랑 영국에도 몇 명 있던데. 다들 얼른 크자 ㅠㅠ.

    -해외 유망주들만 기다릴 게 아니라 국내 유망주들도 요즘 미래가 탄탄함. 메탄중, 메탄고 유스 선수들도 그렇고, 메탄 중학교로 입단 확정된 선수들 리스트만 봐도 후덜덜해요.

    다들 자신들이 아는 해외 유명 클럽에서 훈련 중인 유망주들의 이야기를 꺼낼 때, 누군가 국내 유망주에 대해 언급을 했고, 몇몇 사람들이 알은 체를 하며 댓글을 추가로 달았다.

    -최준이랑 김호준 선수 메탄 중학교 입학이 확정 됐나요? 한창 그걸로 시끌시끌했던 거 같은데.

    -네. 그거 때문에 영동초로 전학 갔던 거잖아요.

    -박민기는요? 셋이 같은 초등학교로 전학간 거 아니었어요?

    -박민기는 아직 확정이 안 난듯. 계속 간보는 거 같던데.

    -크, 정말 기대 되네요. 애들까지 커서 나중에 터져주면 국대 라인업 정말 덜덜 할듯.

    -그럼 그 선수는 어떻게 됐나요?

    -그 선수 누구요?

    -최재혁이요. 최재혁 선수는 어느 중학교로 간다고 하던가요?

    -최재혁?

    누군가 재혁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설명 대신 물음표를 찍으면서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

    -전 처음 듣는 선순데. 어디 유럽 클럽 유망주 축구 선수임?

    -아뇨. 국내 유망준데요. 요즘 초등학교 리그에선 얘가 제일 핫해요.

    -핫하다고요? 미래 트리오보다 더 핫해요?

    미래 트리오라는 말에 댓글을 작성했던 유저는 땀방울 마크를 마구 찍어댔다.

    -유망주 소식 잘 모르시네;;; 이상민 기자님 칼럼 안 읽으세요? 국내 유망주 관련 소식 정보통은 이 분이 최곤데.

    많은 사람들이 비단 재혁만이 아니라 리그 기사 칼럼에 대한 것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자, 처음 재혁에 대해 언급한 사람이 계속해서 댓글을 달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16강까지 진행된 전국대회에 관해서랑 눈에 띄는 유망주들에 대해 매주 칼럼을 작성해주시는 분이세요. 지난 주까지도 재혁이 스페셜 급으로 칼럼 뽑아 쓰신 분이라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다들 알고 계셨을 듯.

    -호오. 그런 칼럼이 있었어요?

    -저도 한 번 찾아봐야 할듯요.

    -아마 처음부터 읽어보시면 충격이 좀 클 걸요?

    사람들이 하나둘 집중하는 것을 느낀 유저는 자부심이 잔뜩 녹아든 어체로 댓글을 추가했다.

    -박민기, 김호준, 최준. 이 세 명이 있는 영동초가 최재혁, 이 꼬마 때문에 예선에서 중앙초를 만난 두 경기에서 2연패를 했거든요. 중앙초는 이번 시즌 결과는 예선 탈락을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최재혁이라는 이 꼬마가 미친 듯이 활약해서 예상을 뒤집고 현재 16강까지 온 상태에요..

    -헐. 영동초가 2연패요?

    -예선에서 2연패야 뭐 그렇다 쳐도, 대체 어떻게 활약을 했길래 16강까지 선수 혼자 캐리를? ㄷㄷ···. 실화임?

    다들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댓글을 달자, 처음 댓글을 달았던 유저가 이번에는 리그 기록을 가지고 와 댓글에 추가했다.

    -현 리그에서 전대미문인 8경기 연속 골. 공격 포인트는 총 14점으로 지금 리그에서 얘를 따라올 친구가 없으니, 말 다했죠.

    -8경기에서 14 포인트. 헐.

    -진짜 혼자 메시 놀이하고 있네요.

    -플레이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면 칼럼에 가보세요. 경기 영상도 함께 포스팅 되어 있으니까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을 거예요.

    -저 지금 보는 중인데, 얘가 8번이죠? 완전 미쳤네. 와, 혼자서 다른 애들 다 바보 만들면서 축구하고 있음 ㅋㅋㅋㅋ.

    -저도 막 영상 재생했습니다. 프리킥 차는 거까지 봤는데, 와. 궤적이 장난 아니네요.

    -얘가 지금 몇 살이라고요? 초6? 하아, 넌 또 언제 크냐. 제발 좀 빨리 커서 우리나라 국대 좀 네가 살려줘라 ㅠㅠ.

    밝았던 과거, 그리고 어두운 현재라는 터널을 뚫고 지나가고 있는 국내 축구 팬들은 희망이라는 미래를 꿈꾸면서 계속해서 재혁을 포함한 유망주들에 대해 댓글을 달았다.

    현재 언급되고 있는 유망주들이 제대로 성장만 해준다면 분명 미래에는 우리나라 축구팀도 세계 강호가 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실어서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댓글로 대화를 나누던 중, 처음에 재혁에 대해 댓글을 달았던 유저가 느낌표로 알람 창을 띄우면서 댓글을 추가했다.

    -그러고 보니, 곧 16강전 끝날 시간이네요. 전 중앙초의 경기 기록 좀 찾으러 가봐야 할듯. 모두 수고하세요.

    ***

    64강전, 2대0.

    32강전, 3대2.

    그리고 16강전을 1대0으로 승리한 중앙초의 선수들이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에 맞춰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고, 마지막까지 공을 몰고 이동하던 재혁도 마침내 발을 멈추고 손을 올려 수도꼭지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재혁이 축축하게 젖은 머리칼을 한 번 쓸어내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추켜올리면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전국대회 8강.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 업적, 우승이라는 목표까지 앞으로 2경기.

    그 말인즉···.

    “오빠!”

    경기가 끝날 때까지 관중석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동생, 재희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재혁이 웃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반드시 성공하기 위한 목표까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리였으니, 동생 재희를 보면서 재차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던 재혁의 입가에 자연히 미소가 떠오른 것이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 무섭게 땀에 절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재혁에게 찰싹 달라붙은 재희가 뺨을 비비면서 말했다.

    “헤헤, 이번에도 우리 오빠 완전 멋졌다!”

    “놀이터에서 안 놀고 계속 경기 봤어?”

    평소라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을 동생이었을 텐데.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던 것을 묻자, 재희는 앙증맞게 웃으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오빠가 축구하는 게 더 재밌어!”

    “뻥치고 있네. 축구 규칙도 다 모르면서.”

    “아냐, 진짜야! 재희는 오빠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정말 재밌어!”

    “거짓말 자꾸 하면···.”

    “글쎄, 내가 보기에도 정말 재밌었는걸?”

    또 한 번 동생의 이마를 쿡 찍으면서 장난을 치려던 재혁의 귓가에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재혁이 상대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잠시간 그대로 얼어서 말을 잇지 못하던 재혁을 향해 남성이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손을 건네며 말했다.

    “최재혁 선수가 보여주는 축구는 왠지 미래를 꿈꾸게 해주거든. 그러니까 보고 있기 즐겁지 않을 수가 있나?”

    낯선 남성, 차범수가 내민 손을 멍하니 바라보던 재혁이 황급히 고개를 털었다.

    “차, 차범수 선수···!”

    “으응? 나를 보고 선수라고? 허헛! 보통 어린 친구들은 내가 축구를 했던 것도 잘 모르던데···.”

    재혁이 자신을 발견하기 무섭게 선수라고 부르자, 오히려 차범수가 당황해 헛웃음을 흘렸고, 뒤늦게 자신이 성급했다는 것을 파악한 재혁이 재빨리 머릿속에 떠오른 변명거리를 입밖으로 던졌다.

    “티비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때 누가 아저씨가 축구 선수였다고 말을 해줬던 게 기억이 나가지고···.”

    “호오, 그래? 역시 어리니까 기억력이 좋은가보구나. 그런데 최재혁 선수가 어릴 때면 대체 얼마나 더 어렸을 때였을까? 하하하.”

    다행히 어린 아이의 이야기라고 치부한 차범수는 재혁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아니, 오히려 재혁이 자신이 선수로 활약했다는 것을 알아주자 기뻐하는 눈치였다.

    상황이 모쪼록 나쁘지 않게 흐른 것에 재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따라 웃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 18.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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