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7화 (17/225)
  • < 17. 미래를 향한 기대 >

    초현초 선수들이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공을 돌리는 것을 확인한 재혁을 포함한 중앙초의 선수들이 편대로 갈라져 강하게 압박을 넣었다.

    64강을 진즉에 확정짓고 예선 마지막 2경기를 로테이션으로 돌리면서 비축한 체력을 시작부터 전부 터트릴 기세로 말이다.

    경기가 막 시작된 참이라 안일한 생각을 품고 있던 초현초의 선수들은 그런 중앙초 선수들의 강한 압박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하다가, 결국 패스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

    제대로 동료에게 공을 건네주지 못 한 초현초의 선수가 안타까움에 탄식을 흘렸다.

    빠르게 패스를 돌려야 한다는 조급한 생각이 낳은 실수였다.

    데굴데굴, 목표를 찾지 못한 공은 운동장 바닥을 정처없이 구르다가···.

    퉁!

    재혁의 발끝에 걸려 멈춰 섰다.

    가볍게 오른발 안쪽으로 주인을 잃은 공을 컨트롤한 재혁이 공을 몰고 전방을 향해 움직이면서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공을 잡기 전에 이미 수차례 숄더 체킹을 하면서 주변을 살폈지만, 정확한 패스를 동료에게 이어주기 위한 마지막 점검이었다.

    그렇게 빼곡하게 쌓여 있던 초현초의 수비진을 노려보던 중···.

    “···지금!”

    재혁이 눈동자를 빛내며 인사이드로 공을 차면서 경기 첫 번째 패스를 뿌렸고, 마치 선이라도 그은 것처럼 정확하게 초현초 수비들의 발을 피해 운동장 바닥을 훑으면서 나아간 공은 박스 안쪽으로 침투해 가던 동료의 발을 찾아 날아갔다.

    “저, 저 패스!”

    그런 재혁의 패스를 본 장감독이 경기장 밖에서 비명을 질렀다.

    단 한 번 찾아온 기회를 살려 시도한 스루 패스를 동료에게 바로 연결해 주다니.

    장감독은 경기 시작과 함께 찾아온 위기 상황을 바라보면서 양손을 움켜쥐었고, 중앙초의 공격수가 어이없는 슈팅으로 기회를 날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진땀을 식힌 뒤 얼굴을 쓸어낸 장감독이 수비수들과 골키퍼를 향해 소리쳤다.

    “아까 내가 뭐랬어! 수비수는 최대한 라인 내리고, 골키퍼는 가능한 넓은 범위를 커버하랬잖아! 애들아, 정신 똑바로 차리자! 다음 라운드 진출 해야지!”

    그의 목소리를 들은 선수들이 고개를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장감독은 벤치에 가만히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수 없었다.

    일단 현재 최대한 라인을 내리고 무게 중심을 뒤쪽으로 몰아놓은 전술은 최재혁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후 다급하게 준비한 전술이었는데, 재혁은 그런 장감독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좁은 틈 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기회가 오는 족족 스루 패스를 찔러 기회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에 장감독이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연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을 때.

    최재혁이 또 한 번 공을 잡았다.

    ‘흐음. 빽빽하네.’

    공을 발밑에 두고 안전하게 컨트롤하면서 재혁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필드를 살폈다.

    골문 근처인 어택킹 서드까지 계속해서 양질의 패스를 공급해주곤 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일단 연결이 되는 것까지는 문제가 되질 않았지만, 연결이 되어도 다들 긴장하고 있는지 압박을 버텨내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측면 돌파도 신통치 않고 말야.’

    적어도 속도만큼은 다른 선수들보다 재빨랐던 김주성이 있는 오른쪽 측면도 상대가 라인을 뒤로 물리니 평소와 같은 돌파를 기대할 수 없었다.

    이래저래 초현초의 전력 수비가 참 난감한 상황.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꿔본다면···.

    ‘한 골이라도 넣으면 문이 열린다.’

    철저하게 잠그고 있는 상대일수록 잔금이 만들어낸 균열에 더 크게 당황하는 법이다.

    하물며 득점을 해야 이기는 경기인 축구에서 그 한 점은 단순한 한 점이 아니었다.

    승리를 위한 한 점.

    지키기만 해서는 절대로 회복할 수 없는 한 점이 되는 것이다.

    그 점을 떠올린 재혁은 생각을 바꿨다.

    아무리 좋은 패스를 몇 번이고 시도해도 같은 이유로 막히는 공격 방식을 계속 유지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좋은 과정이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때 좋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결국 과정도 문제가 있다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일단 상대가 철저하게 수비 일변도로 대응해주는 덕에 나도 활동하기에 마음이 편하니, 더 이상 사려줄 이유가 없지.’

    투웅, 투웅!

    “!”

    센터 서클 안쪽에서 공을 잡고 있던 재혁이 패스가 아닌 드리블을 시작했고, 갑자기 필드 위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낀 장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드리블로 경기를 풀어내려고 하는 건가? 라고 생각을 하던 장감독은 재혁의 의도가 그렇게 단순한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눈을 키웠다.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경기장을···, 줄이려 하고 있어?’

    지금 이 순간, 필드 위에는 새로운 ‘중앙선’이 생겨났다.

    재혁을 중심으로 그어진 중앙선이 말이다.

    초현초에선 절대로 넘을 수 없고, 중앙초에선 지속적으로 강한 압박을 넣어 시도할 공격의 시발점이 되어줄 그런 중앙선이 재혁에 의해 새로이 그려진 것이다.

    새로 그려진 중앙선 때문에 초현초는 더욱 밑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고, 어느덧 초현초의 수비수들은 골에어리어 안쪽에서 공세를 막기 위해 힘겨운 수비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중앙초와 초현초가 치열하게 공을 다투던 중.

    터엉!

    박스 안쪽으로 굴러오는 공을 초현초의 수비수가 걷어내기 위해 발을 휘둘렀다.

    하지만 공은 안타깝게도 그리 멀리 날아가지 못했다.

    가빠오는 숨과 계속되는 압박에 공을 제대로 차내지 못한 것이다.

    힘이 실리지 못해 두둥실 공중을 떠돌던 공은 이내 중력의 영향을 받아 천천히 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고, 공이 떨어지는 위치에 서있는 선수를 발견한 장감독이 파들파들 눈썹을 떨었다.

    하필 왜 저곳에 있는 선수가 최재혁이란 말인가.

    “···설마.”

    혹시, 설마, 저기서···.

    “슈팅을 시도하진 않겠지?”

    제발 아니길.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읊조린 장감독의 생각을 마치 읽기라도 한 것처럼 재혁은 떨어지는 공을 쫓아 움직이면서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확인한 뒤 가볍게 오른발을 휘둘렀고, 발등 위에 제대로 얹힌 공은 파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 골키퍼의 장갑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동도 없었던 골망을 철썩이며 울렁이게 만들었다.

    멍하니 자리에 서서 심판의 휘슬 소리가 고막을 때리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장감독은 혼이 나간 얼굴로 양손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재혁의 모습을 지켜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아까 본 슈팅은 실력이었어.”

    경기가 시작되기 전 몸을 풀 때 보여주었던 슈팅.

    마치 리플레이를 보여주듯이 정확히 당시의 궤적을 그대로 쫓아 날아간 공의 움직임은 연습 때 보여준 재혁의 슈팅이 단순한 우연이 아닌, 실력에 의한 슈팅이었음을 증명해주는 듯 했다.

    그렇게 동료들의 환호를 받으며 본래 진영으로 돌아가는 재혁을 보면서 장감독이 길게 한숨을 내쉰 뒤 실점을 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초현초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고개 들어! 아직 경기 안 끝났다! 한 점 잃었으면 한 점 되찾아오면 돼!”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장감독이 짐짓 큰 목소리를 냈고, 곧 주장 완장을 차고 있던 학생도 동료들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아직 경기가 끝나려면 후반전이 남아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감독과 선수들의 노력에도 경기의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다.

    최종 점수 2대0.

    후반전에 추가점을 올린 중앙초는 무난하게 다음 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었고,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은 센터 서클에서 서로 악수를 나눈 뒤 벤치로 돌아왔다.

    벤치에 서서 50분을 뛴 선수들을 훑어본 장감독은 무거운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말했다.

    “고생했다. 아쉽지만 결국 여기서 떨어졌구나. 비록 경기에선 졌지만 모두 마지막까지 힘내줘서 고맙다. 그러니까 자책하지는 말아라.”

    “하지만 졌는걸요···.”

    선수들 중 하나가, 주장 완장을 차고 있던 아이가 울상이 된 얼굴로 장감독에게 대꾸했고, 그런 선수를 빤히 내려 보던 장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못해서 진 게 아니야. 이건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진거지.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너희들에게 미안하다.”

    “감독님···.”

    “다들 마지막까지 뛰어줘서 고맙다. 그럼 응원을 와준 분들께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서 버스로 돌아가자.”

    장감독의 말에 선수들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한 뒤 응원석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멍하니 멀어지는 선수들을 바라보던 장감독이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그를 향해 일단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감독님. 짧은 시간만 함께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물론이죠.”

    손에 마이크와 녹음기를 들고 있는 기자들이 경기 종료 후에도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것에 장감독은 침착하게 맞이하며 목을 풀었고, 기자들은 순서대로 한 명씩 질문을 던졌다.

    “아쉬운 결과겠습니다. 2대0이면 충분히 해볼 만한 점수였으니까요.”

    “결과는 아쉽지만 과정에서 완패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일이죠.”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역시 최재혁 선수의 존재를···.”

    “중앙초의 8번은 분명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 팀의 문제는 선수들이 아닌 제게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재혁을 언급하는 기자들의 말을 단호하게 끊은 장감독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상대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습니다. 전술적으로 이미 크게 지고 갔던 거죠. 전에도 말했듯이 축구는 11명이서 하는 운동입니다. 그 11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지 못한 제가 패배의 원인입니다.”

    “그러시군요. 흠흠, 아쉬움이 크시겠습니다.”

    재혁에 대해 계속 물었던 기자가 뻘쭘한지 목을 가다듬으며 헛기침을 뱉었는데, 그런 기자를 향해 장감독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한 팀을 지도하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한국 축구의 팬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날이었습니다.”

    “흥미로운 날이요?”

    “그렇지 않습니까?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우승 후보인 영동초가 예선에서 2번을 만나 2번 모두 패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자신의 경기는 모두 끝이 났다는 생각에 한결 후련해진 얼굴로 장감독이 웃는 얼굴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앞으로 전국대회가 어떻게 진행될지, 정말 기대되는 군요. 특히 올해의 중앙초가 어떻게 대회를 마무리 할지···. 다들 기대되지 않습니까?”

    ***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유동 접속층을 자랑하는 인터넷 검색 엔진 웹사이트, 네이스.

    다양한 성향의 사용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시사, 정치, 연예 등등 폭 넓은 분야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끊임 없이 올라왔는데, 그 중에서도 스포츠 뉴스 쪽의 방문자들의 숫자는 매번 탑 5위에 들만큼 애용자들이 많았다.

    물론 그 안에서도 야구, 농구, 해외 스포츠 소식 등등으로 갈라졌지만, 요즘 특히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곳은 따로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팀, 졸전 끝에 결국 이란에 패배.]

    [우즈베키스탄, 카타르를 상대로 5:1 대승. 하지만 한국에 골득실에서 밀려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실패.]

    [대한민국, 최종 예선 결과 월드컵 본선 합류. 8회 연속 본선 무대 진출은 세계 6번째의 대기록! 그 비결은?]

    2014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그 길었던 여정이 마침내 오늘 끝이 난 것이다.

    조 1위를 달성한 이란이 16점, 그 밑으로 대한민국과 우즈베키스탄이 14점으로 동률을 이루었지만 득실에서 1점을 앞선 한국이 조 2위를 차지하면서 본선 무대로 향하는 직행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 종료와 함께 축하와 우려를 담은 기사들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기사들을 읽는 사람들의 실시간 반응이 댓글 창에 차오르면서 순식간에 수십, 수백, 그리고 수천에 이르는 댓글들이 기사들에 달렸다.

    -장난하냐? 결국 턱걸이로 간신히 올라간 거네.

    -우즈베키스탄이 2골만 더 넣었으면 우리가 아시아, 그리고 대륙간 플레이오프 진출해야 했음ㅋㅋㅋ. 그랬다면 아마 100% 떨어졌겠죠.

    -연속 진출 대기록? 세계 6번째는 무슨···. 16강 광탈이 몇 번째일지나 보자.

    -다들 너무 날카로우신 듯;; 일단 어떻게든 본선 진출까지 고생하신 조감독님께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남기는 게 먼저 아닐까요?

    -팀 자체가 개판이 되어버렸는데 누굴 보고 축하를 해요? 요즘 정말 답답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현재 대표팀을 향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 17. 미래를 향한 기대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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