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1화 (11/225)
  • < 11. 선수의 가치란 >

    누군지 지칭하지 않았지만 상대가 재혁이라는 것을 바로 이해한 종철이 예의 미소를 보이면서 답했다.

    “운이 좋았지.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걸 보고 바로 데리고 온 거거든.”

    “어디 다른 학교에서 공을 차던 것도 아니란 말이야?

    종철의 말대로라면 일반 학생을 축구부로 끌어 들인 것인데, 저만한 실력이라니.

    믿기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양감독을 향해 종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말했잖아. 운이 좋았던 거라고. 아마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저놈은 더 무서운 선수가 될 거야.”

    더 무서운 선수.

    지금이 초등학생이라는 것을 고려한 종철의 말에 양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센터 서클에 정렬해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재혁을 눈에 담으면서 중얼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대표 팀의 허리 고민은 확실히 사라지겠어. 흐음···. 그런데 재혁이란 녀석, 유럽으로는 나갈 생각이 없는 건가?”

    “유럽?”

    “요즘 대세잖아. 발렌시아라던가, 바르셀로나의 유스 팀에서 이미 뛰고 있는 선수들도 있고. 내가 보기엔 재혁이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어 보이는데?”

    양감독의 말에 종철이 잠시간 턱을 쓸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뭐, 녀석이 알아서 판단하겠지. 나도 쟤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없거든.”

    “···?”

    “그럼 다음에 보자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종철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양감독도 머리를 긁적이면서 몸을 돌렸다.

    ***

    “실례하겠습니다.”

    “응? 누구십니까?”

    경기를 마무리하고 오늘도 수고했다며 다음 경기도 힘내자고 종철이 목소리를 내던 중, 누군가 찾아왔다.

    종철과 함께 선수들의 시선이 모두 낯선 남성으로 향했고, 남성은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건넨 후 명함을 꺼내 자신에 대해 소개했다.

    “한국 스포츠 미디어의 이상민 기자라고 합니다. 짧게 취재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짧게 취재라고요?”

    종철이 눈썹을 모은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의심의 눈초리를 얹어 자신의 앞에서 웃고 있는 이상민 기자를 살폈다.

    아무리 현재 동네 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라고 할지라도, 그도 한 때 선수였고, 이 바닥에서 굴러먹은 햇수가 양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다.

    종철은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이상민 기자에게 먼저 속에서 떠오르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 건 보통 학교 쪽에 먼저 연락을 하지 않습니까?”

    “정식으로 중앙 초등학교 축구부에 관해 칼럼을 게시할 생각이었다면 학교 쪽에 먼저 연락을 취했겠지요. 하지만 전 어디까지나 이번 시즌 리그와 현재 중앙초의 상승세에 관해 기사를 쓰고 싶었기 때문에 감독님께 먼저 말씀을 드린 겁니다.”

    “흐음.”

    언뜻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종철이 거뭇거뭇하게 자란 턱수염을 쓸어내며 혀를 끌었고, 그런 종철을 향해 이상민 기자가 다시 한 번 물었다.

    “혹시 지금이 불편하시다면 다음에 편한 시간을 정해주신 뒤, 그때 응해주셔도 괜찮습니다.”

    “뭐, 저야 지금이라도 응해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원하시고, 쓰고 싶으신 이야기는 단순히 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정곡을 찌르는 종철의 한 마디.

    재혁이 목적이잖아?

    종철은 그렇게 묻고 있었고, 이상민 기자는 종철의 한 마디를 바로 파악하고 생긋 웃으며 답했다.

    “2경기 연속 MVP로 선정된 선수인데, 세 번째를 받을 때까지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재혁아, 너는 어떠냐?”

    “저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축구화를 갈아 신고 자리를 떠날 채비를 모두 끝냈던 재혁은 갑자기 말을 건 임감독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언제 인터뷰를 하는 건 상관없지만, 저 축구 끝나면 뭐 하러 가는 지 아시잖아요. 늦으면 동생 또 울어요. 중앙 놀이터에 있을 거라 해지기 전에 만나려면 지금 바로 출발해야 돼요.”

    “중앙 놀이터라면 거기죠? 중앙 초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그 놀이터.”

    “알고 계시네요?”

    감독이 아닌 이상민 기자가 놀이터에 대해 알은 체를 하자, 재혁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고, 상민은 가볍게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심 있는 선수의 학교 근처에 있는 놀이터 정도쯤이야 기억하고 있는 거죠.”

    “그러면 여기서 놀이터까지 얼마나 걸릴 지도 알고 계시겠네요?”

    “물론 잘 알고 있죠.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재혁의 발길을 다시 한 번 붙잡으면서 상민이 말했다.

    “제가 차로 최재혁 선수를 중앙 놀이터까지 데려다 주도록 하죠. 그러면서 이동하는 동안 대화 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겁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흐음.”

    이번에도 종철은 수염을 긁적이며 재혁이 스스로 답을 내리길 기다렸다.

    다른 학생들이라면 몰라도 재혁이라면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굳이 자신의 도움이 필요치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종철의 생각처럼, 재혁은 잠시간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 훈련도 할 겸, 뛰어서 가려고 했는데. 뭐, 알겠어요.”

    “체력 훈련···? 재혁 선수 오늘 풀타임으로 뛰지 않았던가요?”

    “그래봐야 50분이었는걸요. 90분을 뛸 체력은 미리미리 쌓아야죠.”

    재혁의 대답에 이상민 기자가 동그랗게 눈을 떴고, 그의 옆에 서있던 종철은 그저 어깨를 으쓱여 보일 뿐이었다.

    재혁을 매일 보는 종철에겐 특이한 일이 아니었지만, 오늘 처음 대화를 나누어보는 이상민 기자에겐 충분히 놀랄 만한 모습이었을 테니까.

    어느 초등학생이 벌써부터 성인이 되었을 때를 준비한다는 말인가?

    ‘이러니 녀석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있나.’

    흐뭇한 얼굴로 재혁을 바라보던 중, 종철을 향해 재혁이 다음에 뵙겠다며 고개를 꾸벅였고, 종철은 알겠다며 제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이상민 기자가 운전하는 차의 보조석에 앉게 된 재혁은 안전벨트를 착용하면서 말했다.

    “혹시라도 돌아간다거나, 그런 식으로 시간 끌지 마세요. 저도 이곳 지리는 나름 잘 아니까요.”

    “하하. 설마요. 이래봬도 꽤 양심적인 사람입니다.”

    양심적이라는 말에 재혁은 흐음, 말을 아꼈고, 상민은 시동을 걸기 전에 가방에서 조그마한 녹음기를 꺼내 둘 사이에 내려놓았다.

    “그럼 녹음기부터 키겠습니다. 녹음 중이라고 특별히 긴장하거나, 말을 조심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기사는 제가 후에 편집해서 글로 써서 올릴 거니까요.”

    긴장이라.

    이상민 기자의 말에 재혁은 그저 뺨을 긁적였다.

    비록 고교 시절이었지만, 나름 적지 않은 인터뷰와 취재에 응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정도로 배려해주는 인터뷰라면 특별히 긴장할 이유가 없었기에 재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상민은 그런 재혁의 고갯짓을 확인한 뒤 시동을 걸면서 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가 이번 시즌에 갑자기 중앙초 축구부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원래는 중학교에 올라가면 축구부에 들어갈 생각이었어요. 사실 초등학교 리그에 흥미가 없었거든요.”

    “호오. 흥미가 없었는데 갑자기 참가하게 되었다라. 그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성공하기 위해서요.”

    “···성공이요?”

    빨간 불에 신호가 걸려 차가 멈춘 틈에 재혁의 얼굴을 살피면서 상민이 물었고, 재혁은 여전히 정면을 응시하면서 그의 질문에 답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축구고, 축구를 통해 성공하려면 지금부터 활동하는 게 좋을 거라고 감독님이 꼬셨거든요. 생각해보니 틀린 말씀인 것 같지 않아서 팀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호오, 그런···.”

    “기자님. 신호 바뀌었는데요.”

    “아. 이런, 실례.”

    멈췄던 차의 엑셀을 밟자 차가 천천히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고, 상민도 재혁에게 멈췄던 질문들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

    주로 기본적인 질문에, 재혁의 성격이라던가, 꿈의 종류를 알 수 있는 류의 질문들이었다.

    조용히 질문들에 계속 답하던 재혁이 이번에는 상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기자님은 제게 계속 존댓말을 사용하시네요? 초등학생한테 그렇게 격식 차리지 않으셔도 괜찮은 거 아닌가요?”

    “아. 그거야 전 지금 초등학생 최재혁이 아닌, 선수 최재혁을 만나고 있는 거니까요.”

    “!”

    “게다가 미래에 크게 될 선수인데, 미리 잘 보여 놓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뒷말은 농담이었지만, 앞에 말은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재혁이 조그맣게 미소를 머금었다.

    어쩌면 이 사람은 꽤 괜찮은 기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떠오른 미소였다.

    그 뒤로 몇 번의 질답이 더 오갔고, 어느새 중앙 놀이터의 앞에 도착한 차가 갓길에 멈춰 섰다.

    상민은 재밌었다며 녹음기를 끈 후 손을 건넸고, 재혁도 그런 상민의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렇게 차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간 재혁을 향해 상민이 창문 너머에서 물었다.

    “다음에는 제대로 된 인터뷰를 나눠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이미 약속은 잡은 거 아니었나요?”

    “예?”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상민이 되묻자 재혁이 미소와 함께 그에게 답했다.

    “3번 째 MVP를 타는 순간까지도 기다릴 수 있으시다면 서요? 약속은 그럼 그때 잡힌 거죠.”

    “!”

    “그러면 그때 뵙겠습니다. 조심히 운전하세요, 기자님.”

    재혁은 다시 한 번 상민을 향해 고개를 꾸벅인 뒤 등을 돌리고 멀어졌고, 차안에서 벙찐 얼굴로 멍하니 재혁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상민이 허탈하게 웃었다.

    “헛, 참. 요즘 초등학생들은 다들 저렇게 조숙한가?”

    자신이 지금까지 초등학생 선수와 인터뷰를 나눈 것인지, 아니면 성인 선수와 나누었던 것인지 혼란이 왔던 상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털다가 다시금 미소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꽤 재밌는 녀석이 등장했어.”

    짧은 인터뷰였지만 재혁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시간이 즐거웠던 상민은 얼른 사무실로 돌아가 오늘 취재한 내용을 기사로 적고 싶어졌다.

    아마 지금 재혁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비단 상민, 혼자가 아닐 테니 말이다.

    ***

    “흐음? 중앙초면 세훈이 녀석이 다니는 학교가 아니던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노트북으로 인터넷 기사들을 쭉 훑어보던 케이 브랜드 스포츠의 사장, 조연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는 만큼, 아침 일과로 관련 기사들을 읽는 것을 즐겼는데, 간밤에 올라왔던 기사를 읽던 중 익숙한 초등학교의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허참, 신기한 일이라고 중얼거리던 중 때마침 세훈이 방에서 나와 식탁 앞에 앉았다.

    오늘 아침은 뭐냐고 엄마를 찾는 세훈에게 연호가 물었다.

    “세훈아. 너 혹시 재혁이라는 아이랑 아는 사이냐?”

    “재혁이요? 네. 저랑 친군데요.”

    “너랑 친구야? 혹시 그 재혁이란 애가 축구를 잘하냐?”

    “잘하죠. 우리 반에서 제일 잘해요.”

    엄마가 준비해준 토스트를 오물거리면서 대답하는 아들을 보면서 연호가 재차 물었다.

    “아니, 그냥 반에서 잘하는 게 아니라···. 혹시 그 재혁이란 애 축구부에 들어갔어?”

    “응? 아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신기하다는 듯 되묻는 아들을 보면서 연호가 고개를 주억였다.

    “허어, 그럼 이 최재혁이 네가 아는 그 재혁이가 맞나 보구나.”

    “오. 이 기사가 재혁이에 관한 기사에요? 와, 축구화 주길 잘했네.”

    “···축구화를 줘?”

    자신의 옆에 다가와 같이 기사를 읽어 보던 중, 아들이 한 말에 연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고, 세훈은 기사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재혁이 보고 축구부에 들어가라고 했거든요. 축구를 잘하는데 축구부에 안 들어가면 아쉽잖아요? 그런데 재혁이는 축구화가 없어서 제가 신던 거 줬어요.”

    “네가 신던 거라면···, 작년 모델 K 축구화?”

    “네. 작년에 아빠가 주신 거요. 아, 혼내려고 물어보신 거 아니죠? 재혁이 되게 착한 애에요. 축구화 뺏지 마세요!”

    “아니, 아니야. 아빠가 네 친구 축구화를 왜 뺏겠니?”

    갑자기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이는 아들을 향해 연호가 손을 내젓다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오히려 아빠는 가능하다면 재혁이란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싶구나.”

    “선물이요?”

    “후후. 그래, 그래. 선물. 이거, 우리 아들이 정말 좋은 친구를 두고 있었구나.”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동그란 눈동자에 물음표를 담아 갸웃거리고 있는 세훈의 머리칼을 쓸어준 연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휴대폰을 집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 11. 선수의 가치란 > 끝

    ⓒ 권주호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