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미드필더-10화 (10/225)
  • < 10. 특급 혜성 >

    후반전도 전반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녀석의 독무대였다.

    중앙을 두텁게 쌓아 중앙초를 공략하려던 영동초의 전술은 오히려 스스로를 잡아먹는 자충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최재혁, 저 한 선수 때문에 말이다.

    공을 간수하는 키핑력, 동료에게 이어주는 패스, 그리고 압박에서 벗어나는 능력까지.

    모든 것이 초등학교 리그 수준의 것이 아니었기에 영동초에선 그를 막을 수단이 없었고, 허리에 집중했던 전력은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결국 최종 스코어 3대0으로 재혁이 속한 중앙초에 여태껏 경험하지 못 했던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동안 실력에 자신이 있었던 호준도 재혁에게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자만했나를 깨달고 혀를 찼다.

    ‘대체 저런 놈이 어디서 갑자기 튀어 나온 거야?’

    질투는 났지만, 싫지는 않았다.

    언제고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된다면 그때는 녀석과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가 되어 한 팀에서 뛸 수도 있었으니까.

    그가 꿈꾸는 국가대표라는 이름 아래에서 말이다.

    상념은 거기서 접어두고, 호준이 골키퍼의 등을 계속해서 토닥이면서 말했다.

    “야야,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이러다가 시간 다 가겠네. 얼른 정렬하고, 악수하고 집으로 가자.”

    “으응.”

    실망감으로 어깨가 축 쳐진 골키퍼를 먼저 보낸 뒤, 호준은 슬쩍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져 있던 주장 완장을 집어 들고 센터 서클로 향했다.

    주심은 모여든 선수들을 확인하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악수를 나눌 것을 이야기 하려다가 영동초에서 한 사람이 모자란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동초의 주장은 어디로 갔나?”

    “배가 아프다고 경기 끝나기 무섭게 화장실로 뛰어갔어요.”

    “뭐?”

    호준의 둘러대는 말에 그런 건 경기 전에 미리미리 해결을 했어야지, 라고 중얼거리면서 혀를 찬 심판은 일단 모인 선수들에게 악수를 나누라 이야기 한 뒤 3대0, 중앙초의 승리로 끝이 난 개막전의 끝을 알렸다.

    ***

    “최재혁이라고 했지?”

    악수를 모두 나누고 벤치로 돌아가려던 재혁의 귓가로 앳된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경기 내내 그와 충돌했던 영동초의 6번이었다.

    이름은···.

    “난 김호준.”

    “아. 그래, 반가워.”

    상대의 이름을 들은 재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건넸고, 호준은 씨익 웃으면서 재혁이 건넨 손을 힘주어 맞잡았다. 그리고 몇 차례 흔든 뒤 재혁을 향해 말했다.

    “너 굉장하더라. 난 여태까지 축구하면서 누구한테 이렇게까지 당해본 적은 처음이야.”

    “그래? 그럼 앞으로 힘들 텐데. 세상엔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까.”

    “으, 그런 말 하지마라. 우린 아직 한창 꿈을 꿔야 할 아이들이라고. 벌써부터 꿈을 꺾지 말아 줘.”

    호준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재혁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고, 재혁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 것을 발견한 호준이 재차 그에게 말했다.

    “아무튼 오늘은 적으로 만나서 싸웠지만, 언제고 다시 만나면 그땐 같은 팀으로 뛰자.”

    “같은 팀?”

    “뭐, 국가 대항전 같은 곳에 나가면 그땐 같이 태극기 달고 뛰지 않겠어? 설마 네 목표는 초등학교 리그에서 끝이 나는 건 아니겠지?”

    은근한 미소와 함께 건넨 호준의 질문에 재혁은 그를 따라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단순히 여기서 만족하는 게 내 목표는 아니지.”

    “그러면 서로 더 열심히 하자고. 그리고 나중엔 위에서 만나자.”

    “글쎄, 일단 근 시일 내에는 너희 학교가 우리 학교로 원정 오는 경기가 있을 텐데···.”

    “그건 그때 일이고. 아무튼 오늘 즐거웠다! 우리 팀이 졌다는 사실만 빼면! 그럼 잘가!”

    그렇게 짧은 대화를 나누고 멀어지는 호준을 향해 재혁도 같이 손을 흔들어 주다가 벤치로 돌아왔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임감독이 재혁을 향해 양팔을 벌리며 환호했다.

    “재혁아! 고생했다.”

    “감독님도요. 그리고 팀 동료들도 고생했죠. 첫 번째 프리킥은 제가 아니라 종호가 얻어낸 거고, 두 번째 골도 주성이가 패스를 잘 내준 덕이니까요.”

    “이미 너 오기 전에 다들 고생했다고 이야기 했어. 너는 날 그 정도 생각도 못하는 감독으로 본거냐?”

    “그랬다면 다행이고요. 이거 마셔도 되는 거죠?”

    벤치에 앉으면서 축구화를 벗고, 생수병 하나를 재혁이 손에 집으며 물었고, 임감독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고개를 저었다.

    역시 초등학생 같지 않은 녀석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 뒤로 짧게 박수를 쳐 아이들의 시선을 모은 임감독이 웃으면서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모두 고생했다. 일단 개막전을 승리했으니 앞으로 이어질 경기들도 최선을 다해 이겨보도록 하자! 그리고 첫 번째 홈경기에선 이야기 했던 대로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치르는 거야. 알겠지?”

    “네!”

    “그러면 이제 해산하고, 내일 운동장에서 보자!”

    집에 가도 좋다는 말에 신이 난 아이들은 가방을 둘러메고 삼삼오오 모여 영동 초등학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재혁도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어디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거라고 했더라?’

    축구가 끝났으니, 이제는 오빠의 역할을 하러 갈 차례였다.

    ***

    그 날 저녁, 스포츠 뉴스에선 중앙초와 영동초가 치른 개막전이 아주 짧게 소개되었다.

    원래 예정되었던 영동초에 대한 소개와 차세대 유망주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생략되었고, 초등학교 리그의 성공적인 개막을 축복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재혁의 활약은 아는 사람들끼리만 아는 내용으로 조용히 사그라질 뻔하다가.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 최강 영동초를 부수다!]

    인터넷에 떠오른 온라인 기사를 통해 작지만 확실한 불씨를 태웠다.

    약간 격할 수 있을 법한 제목에 비해 기사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했다.

    앞의 문단들에선 중앙초와 영동초, 두 학교의 경기 내용을 간략히 정리했고, 그 후에는 중앙초의 핵심 역할을 소화한 재혁의 활약에 대해 기자는 서술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감독간의 전술에 대한 이야기도 쓰여 있는,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내용의 기사였고, 평범한 사람들이 읽었다면 그저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는 수준으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을 기사이기도 했다.

    허나, 한국 축구 유망주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겐···.

    [잠깐만요. 영동초라면 ‘미래 트리오’가 이적한 곳이잖아요? 걔들 안 뛰었어요?]

    [박민기, 김호준, 최준···. 기사에 적힌 대로라면 전부 선발로 뛰었는데요?]

    [헐. 그런데 중앙초한테 3대0으로 완패를 당했다고요? 이거 실화임?]

    가히 충격적인 내용의 기사였다.

    ‘미래 트리오’라는 별명처럼, 동 나이 대에선 상대가 없을 것이라 평가받는 세 명이었고, 후에 성장한다면 당연히 연령대별 대표 팀에 승선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유망주들이 모여 있는 영동 초등학교가 중앙초라는 최근 2년 연속 조별 예선도 통과하지 못 한 학교에게 완패했다는 소식은 도저히 믿기 힘든 종류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물론 중앙초도 3년 전에는 전국 8강까지 진출한 적이 있었던 학교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영광이었다.

    몇몇 유망주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면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자, 평범한 사람들도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영동초가 그렇게 강한 곳이에요?]

    [전문가들이 올해는 전국 우승도 가능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학교에요. 그런데 중앙 초한테 묵사발이 나다니···.]

    [뭐, 어린 애들이 공차는 건데.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죠.]

    [다른 친구들이라면 그렇구나, 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김호준이란 아이는 유럽 스카우터들도 눈여겨 살펴보고 있는 재목이에요. 그런데 호준이가 중앙에서 힘도 못 쓰고 완전히 말린 경기라니. 혹시 이거 동영상 가지고 계신 분 있나요?]

    [풀 경기는 아니지만 하이라이트 식으로 엮은 영상들을 현재 업로드 중입니다. 업로드가 완료되면 후에 첨부하겠습니다.]

    [오! 기자님! 국내 유망주들을 위해 써주신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영상 올라가면 꼭 기사에 추가해주세요!]

    사람들의 관심과 댓글들이 많아지자, 이번에는 기자가 직접 댓글에 참여하면서 분위기를 이었고, 곧 머지않아 그가 약속했던 것처럼 기사 하단에 몇 개의 짧은 클립 영상들이 추가로 삽입되었다.

    동영상들이 얼른 올라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사람들은 영상이 추가되기 무섭게 곧바로 감상에 들어갔고, 모든 영상들을 보고 나서는 다들 하나같이 폭주할 기세로 댓글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뭐죠? 중앙초의 8번 누구에요?]

    [프리킥, 소름! 궤적이 장난 아니네!]

    [와, 미쳤다. 김호준보다 더한 녀석이 있었네.]

    [최준한테 찔러준 패스 커버하려고 전력질주 한 다음에 몸을 날린 슬라이딩은 또 어떻고요? 이거 정말 초등학생들 맞나요? 공방이 고교 급으로 치열하네.]

    [미래 트리오를 포함해서 저 8번이 특이한 거지, 다른 애들은 다 평범한 수준이에요. 근데 진짜 장난 아니네. 2번째 골 넣을 때 슈팅 임팩트 맞추는 거 보신 분? 순간 유럽 유스팀 보는 줄;;;]

    [그거 말고도 기본적인 키핑 능력이나 축구 센스를 보면 중앙초에서 뛰는 8번은 이미 초등학생 수준이 아닌데요? ㄷㄷㄷ. 대체 어디서 저런 녀석이 나타났대?]

    [이름이 최재혁? 난 오늘부터 네가 크기만 기다리면서 축구 본다! 제발 잘 커서 성인 대표팀 좀 어떻게 해줘 ㅠㅠ.]

    [그래봐야 선수 한 명인데···. 재혁이가 커도 성인 대표 팀은 답이 없어요. 일단 감독부터가···.]

    초등학교 리그 이야기에서 유망주 이야기, 그리고 후에는 성인 대표 팀 이야기까지.

    축구에 관해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쏟아내면서 사람들은 댓글 달기를 멈추질 않았다. 애초에 초등학생 유망주들을 살펴볼 정도로 축구에 열정적인 이들이었으니, 이러한 흐름은 당연했던 것이리라.

    그리고 또 그만큼 재혁의 존재감이 강렬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리그의 판도를 흔들면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쳐 보이는 유망주. 이 소설 같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미래를 꿈꾸며 계속해서 댓글로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인터넷에 조그맣게 소개된 작은 해프닝 정도였을 뿐.

    99%의 한국 축구 팬들은 아직 재혁이란 존재에 대해 알지 못 했다.

    ***

    “···영동초가 몇 대 몇으로 졌다고 했지?”

    “3대0입니다.”

    “확실히···.”

    후우.

    말을 잇다가 중간에 한숨을 폭 내쉰 남성, 대정초의 감독 양승훈이 머리를 긁적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동초가 강하긴 강했던 거군.”

    삑, 삑,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경기가 끝이 났다.

    양감독은 멍하니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점수판을 찾았다.

    6대0.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좋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지도하는 대정초가 중앙초를 상대로 대파를 당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영동초가 3대0으로 중앙초에게 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채용우 감독을 비웃었다.

    어떻게 중앙초 정도 되는 학교에게 그런 부끄러운 점수로 질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미래 트리오라는 다시없을 재능들을 스쿼드에 추가하고도 말이다.

    하지만 직접 상대해보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3대0이면 굉장한 선방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최재혁이라고 했던가.’

    중앙초의 허리를 책임지고 있는 저 8번.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녀석은 혼자의 힘으로 중원을 휘어잡더니 슈팅과 패스, 그리고 경기 조율까지 경기의 전반적인 모든 부분에서 50분 내내 영향력을 뿌리더니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경기에서 소정초와 비기는 바람에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해 이번 경기에서 승리가 절실했는데···.

    “이건 위험하군.”

    이걸로 1무 1패. 앞으로 남은 경기는 넷.

    벌써부터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있는 자신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고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젓던 그에게 임종철 감독이 다가왔다.

    종철은 생글생글 밝은 얼굴로 웃으면서 양감독과 손을 섞은 뒤 말했다.

    “수고했어. 다음엔 우리 구장에서 보자고.”

    “임감독.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나?”

    멀어지려는 종철의 발을 붙잡은 양감독이 찌푸린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녀석을 찾은 거야?”

    < 10. 특급 혜성 > 끝

    ⓒ 권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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